코뿔소 '노든'은 코끼리의 세상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코끼리인줄 알았지만 나중에서야 코뿔소라는 것을 안다. 코뿔소는 자신과 같은 코뿔소들이 있는 곳을 찾아 가고 싶다. 그렇게 코끼리들의 세상으로부터 격려를 받으며 나와 코뿔소가 있는 세상으로 향한다. 다른 코뿔소를 찾아 작은 코뿔소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인간에 의해 가족을 잃고 코뿔소는 동물원에 갇힌다. 동물원에서 만난 또다른 코뿔소친구는 가족을 잃고 악몽을 꾸느라 긴긴밤을 보내는 노든에게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면 악몽을 꾸지 않을 것이고 악몽을 꾸지 않는 밤은 긴긴밤은 아닐 것이라고, 평생을 동물원에서만 살았던 친구가 말한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고 동물원의 많은 동물들이 그로 인해 죽는다. 노든은 그곳에서 친구를 잃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인간에게 복수하기 위해 동물원을 빠져나온다. 그 과정에서 펭귄 알을 운반하는 펭귄을 만난다. 그들은 함께 걷는다. 펭귄은 새끼 펭귄을 부화시키기 위해 바다를 만나러 가고 싶고 노든은 인간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 그들은 계속 걷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그 시간들 틈틈이 긴긴밤을 만나고 펭귄은 허약해지고, 이제 세상에 남은 것이라고는 노든과 갓 부화한 펭귄 새끼 뿐이다. 노든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전에 일단 이 새끼 펭귄을 무사히 펭귄의 바다에 닿게 도와주어야 한다. 아직 둘다 바다라는게 무엇인지 본 적도 없지만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사이, 그들은 아주 긴긴밤을 맞이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함께 걷는다.
꿈을 꿨다.
꿈에서 그는 인터넷에 글을 게재했다. 인터넷에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데 글을 썼다. 그 글은 자신이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자신의 동거인을 어떻게 만났는지를 쓰고 있었다.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어떻게 말을 걸었는지 상대의 리액션은 어땠는지, 그들 사이에 주고받은 이메일의 일부를 인용하기도 하면서 그 시간들이 즐거웠음을, 그래서 그들은 지금 함께하게 되었음을, 그래서 지금 평온함을 말하는 글이었다. 아 이 사람은 평온하구나,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나는 내가 어디에 있었을까를 궁금해했다. 그가 상대를 만나는 바로 그 순간, 상대에게 말을 걸던 순간, 리액션을 받고 기뻐하던 순간, 상대에게 이메일을 보내던 순간, 결국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하기로 결정한 순간까지, 나는 그에게 어디쯤 있었을까, 그의 어디쯤에 있었을까, 나는 궁금해했다. 이디스 워튼의 소설에서처럼 마음속 성소에 나를 담아두고 그는 모든 시간들을 살아낼까. 아니면 그가 상대를 만나 이야기 나누고 웃는 내내 나는 '없었을까'?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나는 어디에 있었냐고, 나는 어디쯤에 있었냐고, 나는 당신의 어디쯤에 있었느냐고 묻고 싶었다. 나랑도 즐겁지 않았냐고, 나랑도 행복하지 않았냐고, 이런 점은 나만한 사람이 없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걸 묻는 순간, 기어코 그로부터 답을 들어내려고 하는 순간, 나는 그에게 마음속 존재도, 없는 존재도 아닌, 끔찍한 과거가 될 거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묻지 못하고 그저 그가 게시한 글들을 읽으며 쪼그라들었다. 당신이 행복한 건 다행이네, 평온을 바랐는데 다행이야, 그렇지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네. 나는 끔찍한 과거가 되기는 싫어. 구질구질해지기 싫어. 책상위에 켜둔 컴퓨터에서 그의 게시물을 읽으면서 나는 의자 위에 두 발을 올리고 쪼그라들었다.
그러다 깼다.
아직 자정이 되기 전이었다.
나는 내가 왜 이런 꿈을 꾸었는지 궁금했다.
나는 항상 내가 꾼 꿈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혹은 내가 이 꿈을 왜 꾸었는지를 분석해보고 싶다.
아마 이래서 꾼것이겠지, 아마 저래서 꾼것이겠지,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곤 한다.
어제도 긴 시간 뒤척이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이래서 꾼거야, 그러니까 이제 이렇게 하면 돼, 라고.
그런데 나는 그런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내 말을 잘 듣는 것도 내가 하는 일이지만 내 말에 반항하는 것도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반항하려고 한다.
한참을 뒤척였다. 왼쪽 옆으로도 돌아누워 보고 오른쪽 옆으로도 돌아누워 봤다. 잠이 오지 않았다. 엎드려 보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와 발의 위치를 바꾸어보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것이 긴긴밤이로구나, 했다.
노든은 악몽을 꾸는 괴로운 밤을 긴긴밤이라고 했다.
나에게도 긴긴밤이었다.
어제는 저녁을 배불리 먹고 소화를 시킬겸 시장구경을 갔다. 슬렁슬렁 집 밖으로 나왔는데 바깥을 보는게 너무 좋았다.
체리가 눈에 띄면 사려고 했는데 보이질 않았다. 멜론 앞에서 살짝 망설였다. 먹고 싶어서 사고 싶은데, 저걸 껍질을 까고 씨를 발라내면 음식물쓰레기를 또 내다버려야 하겠지. 귀찮네. 잠시 멜론 앞에 멈춰 서서 사서 먹고 쓰레기를 버리느냐, 안버리고 안사느냐 고민하다가 뒤돌아섰다. 나 멜론 좋아하는데 까서 먹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가기가 싫어서 참았다.
시장 안의 마트에 들어갔다. 마파두부 양념을 사려다가 아니야 집에 두개 사둔거 있으니 또 사지마 하고 내려두었다. 비요뜨가 하나에 천원이길래 아이코 이게 뭐람, 하고는 네 개를 담았다. 복숭아 네 개가 한 팩에 담겨있고 6,800원인데, 두 팩을 사면 만원이라고 했다. 두 팩에 만원인데 두 팩을 사면 좋겠지만, 출퇴근하는 평일에 내가 과일을 잘 안먹고 게다가 복숭아는 아빠가 안드시는 과일이라 내가 혼자 먹는다. 두 팩은 너무 많았다. 복숭아 앞에서 나처럼 계속 팩을 들었다 놨다 망설이는 여자분을 보았다. 우리 두 팩 사서 하나씩 나눌까요,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주책일것 같아 꾹 참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한 팩만 담았다. 그렇게 시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에코백에는 비요뜨와 복숭아가 담겼다.
지난주에도 역시 책이 왔다. ㅋㅋㅋㅋㅋ
책은, 사는 순간이 제일 신나는 것 같다. 그 다음은 저렇게 인증 사진 찍는 순간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 읽을지 알 수 없다.
서재활동을 하면 책을 더 사게 되는건 틀림없다. 안한다면 덜 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니까 더 사는 건 맞다. 지난주에 새로 발견한(?) 서재에 죽치고 있노라니 이 책 저 책 담게 되어서 덕분에 저렇게 책을 산거다. 서재활동을 하는 것은 옳은가 그른가. 확실한 건 돈을 쓴다는 것.....
돈이란 무엇인가...
아무튼 돈 벌려고 또 회사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