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간신히 서론만 읽고 저쪽으로 제쳐두었었는데, 아아 야속한 시간은 왜 이다지도 빨리 흐르는지, 벌써 8월이 다 갈 기미가 보이는게 아닌가. 이러다 이번달 안에 못읽겠다 싶어 어제는 딱 마음먹고 이 책을 펼쳤다.


역시나 쉬운 문장들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책장이 잘 넘어가는 건, 익히 아는 이름들이 나오기 때문인 것 같았다. 루소랑 밀 나올때는 아무 감정 없이 읽어갔는데 막 제인 오스틴하고 브론테 자매 나오기 시작하니까 씐나버려... 그리고 나는 이런 구절을 만난다.



18세기 작가들과 달리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소설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p.81)



《제인 에어》는 아주 오래전에 읽었고, 로체스터 집에 갇혀 있던 부인의 입장에서 쓴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도 읽었다. 《폭풍의 언덕》은 고등학교때 읽었는데, 한참 트와일라잇 읽을 때 벨라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이 폭풍의 언덕이라고 해서 몇해전 다시 읽었더랬다. 모두 내가 막 좋다고 말하는 소설이 아니고 제인 오스틴의 경우는 더하다. 제인 오스틴의 경우는 내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무려 네 권이나 읽었더라. 《오만과 편견》,《설득》,《에마》,《노생거 사원》인데, 그중에 에마는 내가 너무 싫어했던 소설이다. 그렇지만 노생거 사원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노생거 사원은 사실 정확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중 제일 좋았던거다. 그리고 저기, 소설의 정치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생거 사원에서 제인 오스틴은 소설속 등장인물을 통해 소설에 대해 얘기하는 거다. 나는 그 부분을 짜릿하게 읽었다.
















오전에 비가 와서 할 일이 없으면 굳이 축축하고 더러운 길을 달려가 둘이 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소설을 읽었다. 그렇다. 소설이었다. 나는 소설가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바, 경멸적인 비난으로 자기들도 생산해 내는 바로 그 소설의 역할을 깎아내리는 옹졸하고 무례한 관습을 따르지 않으리라. 소설가들은 적들과 합세하여 소설에다가 심한 욕설을 하고, 여주인공에게 소설을 허락하지 않고 만약 여주인공이 우연히 소설을 집어 든다면 분명 그 재미없는 페이지를 욕하면서 넘기게 만든다. 안타깝다! 한 소설의 여주인공이 다른 소설의 여주인공에 의해 후원받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보호와 관심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난 인정할 수 없다. 문학비평가들이 한가할 때 공상을 발산하도록, 그래서 요즘 출판사에서도 싫어하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새로 나온 소설에 대해 떠들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자. 우리는 서로를 배신하지 말자. 우리는 이미 상처받은 몸이다. 우리의 작품 활동이 다른 문학 관련 활동보다 훨신 광범위하고 꾸밈없는 즐거움을 제공하는데도, 어떤 글쓰기도 이렇게까지 비난받은 적이 없었다. 오만과 무지와 유행에 휩쓸려 우리를 비난하는 무리가 우리의 독자만큼이나 넘친다. 『영국의 역사』의 구백 번째 축약본을 쓴 작가, 또는 밀튼과 포프와 프라이어를 수십 줄 인용하면서 『스펙테이터』한 부와 스턴의 소설 한 장을 모아 펴낸 작가의 재능을 무수한 사람들이 나서서 찬양하는데, 여기에는 소설가의 능력을 비판하고 소설가의 노동을 깎아내리고 천재성과 위트와 취향을 골고루 갖춘 소설을 우습게 보려는 태도가 깔려 있다. "난 소설을 안 읽습니다. 소설은 거의 안 봐요. 내가 소설을 읽을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소설에서나 있는 일이죠." 이렇게들 떠든다. "무슨 책 읽어요, 아가씨?" 아가씨는 "그냥 소설이에요"라고 대답한다. 무관심한 척하면서 또는 순간적으로 부끄러워하면서 소설책을 내려놓는다. "그냥 『세실리아』, 『까밀라』, 『벨린다』라는 책이에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정신의 위대한 힘이 드러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과 인간 본성의 변화에 대한 가장 행복한 묘사와 위트와 유머의 생생한 발현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선별된 언어로 전달되는 그런 작품이란 말이다. (p.39-41)


크. 역시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소설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던 제인 오스틴 되시겠다. 나는 소설을 무시하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소설을 잘 안읽고 소설이 뭔지도 모르며 심지어 소설을 읽을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흥!!


아무튼 노생거 사원 저 부분 읽고나니 흐음, 그렇다면 오스틴 한 권 더 읽어볼까~ 생각하게 되었고 맨스필드 파크를 사도록 해야겠다. (네?)

이성과 감성도 안읽었지만 어쩐지 맨스필드 파크가 더 재미질 것 같아. 오스틴 기다려요~



















《소설의 정치사》에서는 '새뮤얼 리처드슨'의 《파멜라》도 언급된다.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언급될것 같긴한데, 이 책은 내가 어떤 책에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거기서도 분명 자주 언급되어서 전자책으로 사둔 터다.

오늘 아침 잠깐 어디 볼까, 하고 몇 장 읽었는데 오... 흥미롭다. 이 책 1권만 전자책 사뒀는데 2권도 사야겠다.
















제인 에어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은 이미 집에 있는데 지난번에 조카가 빌려갔던가..그것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오만과 편견 빌려갔던가, 제인 에어 빌려갔던가? 제인 에어 민음사 두권짜리였던가? 그러면 안빌려갔을 것 같다. 여튼, 소설의 정치사에서 제인 에어의 한 부분을 인용했는데, 너무나 새롭고 좋은거다!




말해야 한다, 나는. 나는 심하게 짓밟혀 왔다. 이제 돌아서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돌아설 수 있는가? 나는 내 적수에게 복수할 힘을 갖고 있는가? 나는 내가 가진 힘을 모아 이 투박한 문장 속에 터뜨렸다. "나는 속이지 않아요. 속임수를 쓰지 않아요. 내가 속인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고 말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나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인간이며, 당신이 싫다고 말합니다. -p.90, 제인 에어 재인용


위 부분은 외숙모에게 하는 말이라고 한다. 내가 놓친 많은 것들이 제인 에어 안에 있을 것 같아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원서는 읽겠다는 거 아니고 그냥 뽀대로 올려봤다...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든 제인 에어라는 책에 대해서든, 읽는 사람의 입장이나 관점에 따라서 책은 당연히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것이다. 단순히 재미있다 없다를 떠나서 여기엔 어떤 의미가 있다, 하는 것들. 제인 에어를 읽고 다락방에 갇힌 로체스터 부인의 입장으로 진 리스가 소설을 쓴 것도 역시 그것대로 의미가 있고, 브론테 자매는 이렇게 소설을 통해 할 말을 했다고 하는 낸시 암스트롱의 글을 읽는 것도 좋다.


《앵무새 죽이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내가 읽은 어떤 책에서는 앵무새 죽이기가 그렇게나 널리 읽혔는데, 왜 하퍼 리는 하필이면 그 책에 등장하는 흑인의 무고가 '강간'에 대한 것이었는지 유감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던거다. 일어나지 않은 강간을 일어났다고 거짓 신고해 무고한 사람을 잡아들인 일. 나는 책의 그 부분을 읽다가, 그러게, 그게 왜 하필 강간에 대한 것이었을까, 백인의 인종주의를 꼭 백인 여성의 강간으로 보여줘야 했을까, 고개를 끄덕인거다. 그런데 최근 읽은 《백인의 취약성》에서도 역시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실제 백인 여성이 거짓을 말하기 때문에 흑인 남성이 린치를 당하는 일. 그러니까 그 일은 없는 일을 허구로 만들어낸건 아니고 실제 일어나기도 했던 일인거다. 빈번하달 수 없겠지만, 그러나 일어났던 일에는 틀림 없던 것. '리처드 라이트'의 《백인의 아들》에서는 흑인남성이 백인 여성을 죽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런데 그 죽이기까지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배경이 있었다. 만약 내가 지금 이 사람과 여기 있었다는게 알려지면 나는 분명 린치를 당할 테고, 그걸 막으려면... 하다보니 죽음에까지 이른 것. 하나의 이야기도 누가 어디에 서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지게 될것이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게 될것이다. 낸시 암스트롱의 관점 역시 기존에 내가 읽었던 다른 작가들의 관점과 같은 부분도 있을 수 있고 다른 부분도 있을 터. 가장 중요한 건,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나의' 관점일 것이고, 그 이야기에 대한 비판을 읽는 '나의' 견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낸시 암스트롱의 소설의 정치사를 읽는 일은 매우 재미있을 것 같다. 나로 하여금 별로 호감 가지 않았던 제인 오스틴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제인 에어를 다시 읽어볼 마음이 생기게 하다니... 후훗.



아무튼 어제도 책 박스가 도착했다.




어쩌자고 두꺼운 책들을 자꾸 사대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책샀숑 또샀숑-

9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라서 《페미니즘의 투쟁》샀는데, 저건 또 왜이렇게 두꺼운가요. 왜...왜....왜.....


Orz



* 아, 그리고 제가 잭 리처 시리즈 마니아 2위를 다시 가져왔습니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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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8-20 12: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저야말로 여기 언급된 책 다 읽어봐야 할 거 같아요.
<제인에어>, <오만과 편견>,<설득>,<에마>, <노생거 사원>, <맨스필드 파크>-
저 진짜 안 읽었네요;;;

오, 잭 리처 2위 탈환 축하해요. ㅋㅋㅋ 괭님 보고 있어요? ㅋㅋㅋㅋ

독서괭 2021-08-20 12:48   좋아요 4 | URL
후우.. 이미 다락방님께서 댓글로 자랑질하셨습니다.. ㅜㅜ

독서괭 2021-08-20 13:09   좋아요 2 | URL
근데 2위를 뺏긴 건 단발머리님이고 전 사실 상관은 없네요 4위라 ㅋㅋ

다락방 2021-08-20 14:14   좋아요 5 | URL
잠자냥님이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를 읽으신다면 어떤 리뷰를 적어주실까요. 너무 기대되네요. 꼭 읽고 리뷰 써주세요, 잠자냥 님. 잠자냥 님 리뷰 읽는 재미가 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겸손과 거리가 먼 저는, 2위를 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가 독서괭님께 자랑하였다고 합니다. 엣헴- ㅋㅋㅋㅋㅋ

수이 2021-08-20 1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왜 못 읽어?! 읽을 수 있어요! 읽을 수 있습니다! 이미 읽은 어떤 분 말씀에 따르면 쉬워! 라고 하지는 않았던 거 같지만…… 전 노생거를 얼른 읽어야겠습니다.

다락방 2021-08-20 14:15   좋아요 2 | URL
제인 에어 너무 두꺼워요 근데. 노생거 사원.. 도전해볼까. 아 일단 지금 하는거나 좀 제대로 하고요 ㅋㅋ 이번주 분량 읽으려면 어휴... ㅋㅋㅋㅋㅋ 그 다음에 오바마.. 제인 에어는 나중에 생각하겠습니다. ㅎㅎ

꼬마요정 2021-08-20 12: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생거 좋아요… 전 제인 오스틴 좋아해요 ㅎㅎ 영드로 만들어진 것들도 좋구요. 그나저나 다락방님 책 읽는 속도도 엄청 나네요. 전 요즘 눈이 침침한데다 드라마에 빠져서 게을러졌어요ㅠㅠ

다락방 2021-08-20 14:16   좋아요 4 | URL
저 책 읽는 속도 엄청나지 않아요, 꼬마요정 님. 저 이번 해에는 아마 작년보다 훨씬 적게 읽을 것 같습니다. 어휴.. 알라딘에 워낙 빠르게 많이 읽는 분들 많으셔서 저는 그저.. 쪼렙... 입니다.
저는 노생거 책은 팔았고 맨스필드 파크 사서 도전해볼까봐요. 후훗.

청아 2021-08-20 13: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의 투쟁> 엄청 두껍네요?! 저도 이제 사야겠어요ㅎㅎ책이 있는 풍경~♡

다락방 2021-08-20 14:16   좋아요 4 | URL
저 페미니즘의 투쟁 두꺼워서 제 자신을 후려치고 싶었어요. 이사람아, 왜 저렇게 자꾸 두꺼운 것만 골라! 하고 말입니다. 흑흑 ㅠㅠ

공쟝쟝 2021-08-20 17:14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두껍죠? (두달전에 사둠)

다락방 2021-08-20 17:15   좋아요 2 | URL
너무 두꺼워요, 너무. 너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공쟝쟝 2021-08-20 18:03   좋아요 1 | URL
요 책은 월 딱 시작라면 바짝 땡겨읽구로 ㅋㅋㅋ

얄라알라 2021-08-20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부장님의 애정을 듬뿍 받는 조카님은 완역본 <제인에어>를 기특하게도 빌려갔단 말인가요? 고전 읽는 청소년을 거의 본 적이(저만 그런지...) 없어서 인상 깊네요.


지난 번에 이어 <백인의 취약성> 리마인드시키며 이 리뷰에서 엮어주시니, 요건 9월에 꼭 읽어야겠네요.

다락방 2021-08-22 12:52   좋아요 1 | URL
제인 에어는 안빌려갔고(집에 있네요) 오만과 편견을 빌려갔어요. 물론 빌려만 가고 아직 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하하하. 잔뜩 빌려가고 안읽고 그러면서 어제 와서 책 또 한권 빌려갔어요. 쌓아두고 안읽는게 제이모랑 똑같네요.. 하하하하하

얄라알라 2021-08-20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신의 화살> 데려왔는데 올려주신 <신의 전쟁>이랑 표지 색깔까지 비슷하네요. 두께랑 ㅋㅋ<신의 전쟁> 검색하러 갑니다용

다락방 2021-08-22 12:53   좋아요 1 | URL
저 북사랑님 댓글 읽고 신의 화살은 뭔가 싶어서 검색해봤어요. 이건 바이러스 얘기네요? 오오... 세상엔 왜이렇게 책이 많을까요. 좋으면서 싫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