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기는 현재 200일까지 지속되고 있고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은 구약성경의 <잠언>이다. 잠언의 지은이는 대부분 솔로몬이라고 알려져있는데 솔로몬 이란 이름에서부터 짐작 가능한것처럼 지혜에 관해 실려있다. 조언 혹은 교훈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언, 정도라고 하면 될까.
굳이 잠언을 읽어야 삶의 교훈을 알 수 있다고 하진 않아도 되는 것이 우리가 익히 아는 내용이다. 근면하라, 선하게 행동하라, 약자를 무시하지 마라 등등. 그러나 잠언의 청자 혹은 독자로 상정되는 건 '인간 남자'구나를 금세 알 수 있다. 어떻게 살라는 지침등이 보편적 인간을 향한 것이지만, 그러나 수시로 거기에는 '음란한 여자'를 피하라고 나온다. 음란한 여자와 가까이 하면 인생 망한다고. 잠언의 청자는 인간이되 남자이고 남자이되 인간인 것이로구나. 잠언의 청자에 여자는 없다. 현재 잠언의 23장까지 읽었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음란한 남자와 사귀지 말라', '음란한 남자를 피하라'는 구절은 나오지 않았다. '음란'이란 수식어는 단연코 여자만을 향한다. 여자는 음란할 수 있지만 남자가 음란하진 않다. 남자는 단지 음란한 여자의 꾐에 빠질 뿐.
여자들에게만 특정되는 수식어가 있다. 음란하다는 것.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음란 마귀는 그렇다면 성별이 여자일까? 모르겠다. 어쨌든 세상 모든이들에게 전하는 이 지혜의 말들은 음란한 여자를 피하라고 한다.
음란한 여자를 피해라, 사람들이여.
도처에 깔린 게 남성에 의한 성폭력이지만, 음란한 여자를 피하라, 사람들이여.
어린 여자아이들한테도 덤벼드는 게 성인 남자들이지만, 음란한 여자를 피하라, 사람들이여.
디지털 성폭력으로 다치고 죽고 내몰리는 건 여자들이지만, 오, 음란한 여자를 피할지어다.
각설하고,
오늘 아침 읽은 잠언 22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 -잠언 22장 23-24>
꿈을 꿨다.
꿈에는 주지훈이 나왔다. 왜 뜬금없이 주지훈이 나온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꿈에 주지훈이 잘 나온다. 주지훈의 어떤 역할을 보고 오 좋다 한 적은 있지만 딱히 주지훈에게 팬심이 있지는 않은데. 나로 말하자면 팬심 같은 거 딱히 없고 오래 한 사람만 좋아하는 타입인데. 그런데 꿈에 주지훈이 잘 나온다. 어쨌든 오늘 꿈에도 주지훈이 나왔다. 어제 배터지게 먹고 잔 김치만두 때문일까. 여하튼 주지훈이 나왔는데, 주지훈은 꿈 속에서 내가 사는 단독주택의 맨 꼭대기층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의 부모도 가난하고 그도 가난했고, 그래서 그의 가슴 속에는 화가 많았다. 나는 주지훈과 알고 지내기는 했지만 막 친하진 않았는데, 그가 늘상 화를 내고 뭔가 나쁜 짓을 벌일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가 잠깐만 발을 헛디디면 범죄로 갈 것 같았다. 나는 주지훈을 불러서 얘기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거기서 길을 잘못 들어서면 안된다고. 주지훈은 마음을 다잡는 것 같았는데 그러다가도 수시로 화가 나는 것 같았다. 가슴속에 쌓인 화가 많았는데, 그건 그가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자신의 환경 때문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구원이 될 수도 없고 또 한 개인이 다른 한 개인을 구원해주는 서사에 대해서도 심드렁한 편이며 누군가 나에게 구원을 바라는 것도 원치 않지만, 저러다가 주지훈이 잘못될까봐 너무 두려웠다. 또다시 주지훈의 화가 뿜어져 나오려고 하고 그에게서 어떤 폭력적 기미가 보이면 사람들이 와서 내게 말했다. 쟤 이러저러했어, 라고. 그러면 나는 또다시 주지훈에게 갔다. 너 그러면 안돼, 그러지말고 이렇게 해봐, 하고 말을 하는데, 주지훈은 막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내가 말을 하면 잘 들어주었다. 그가 다시 잠잠해지는 게 마음이 안정이 되어서 나는 꿈에서 주지훈의 팔짱을 껴고 함께 걷기도 했다. 그는 자신안의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 운동도 많이 한 것 같았다. 팔짱을 꼈는데 알통이 막 뽝...
알람이 울려 꿈에서 깨고 나서는 아 알람은 왜 늘 제가 울어야 할 때를 모르는가, 조금만 더 뒀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는데, 아니, 지가 여기가 어디라고 울려 울리기를... 왜 이야기의 끝을 쓰지 못하게 해. 이 이야기는 이대로 끝나면 안돼!!! 눈치 없는 알람 같으니라고.
내가 이 꿈을 꾼 건 아마도 어제 자기 전에 읽은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턴 록》때문인 것 같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핑키'는 열일곱살이다. 가난하게 살았던 그는 어릴적부터 아빠엄마가 섹스하는 걸 목격했으며 그게 너무 싫어서 사제가 되고자 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부모도 없고 그를 돌봐주던 어른도 죽고 없어 그는 불량배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고, 그 자리를 지키려고 계속 먹고 살던대로 하려다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살인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이 살인 때문에 겁을 먹거나 이 살인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두려움 때문에 살인은 그 다음까지 일어나고 본인 스스로도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지만 나는 그렇다면 다수를 죽여야 할까, 생각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살인을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자기처럼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여자-그러나 자신과 반대되게 매우 선한-와 결혼까지 한다. 결혼이라는 거,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자야하는 행위들 너무 끔찍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책에 대한 소개에는 '악'이라고 나오는데, 나는 이것이 악인가 싶었다. 악은 무얼까. 나는 악에서 사탄을 떠올렸는데, 이 이야기에 악은 나오지만, 그러나 악이 이 영혼을 부른 것인가, 하면 잘 모르겠다. 핑키는 악속으로, 지옥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지만, 그러나 그에게 다른 환경이 주어졌다면 만나지 않았을 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 좁은 공간에서 부모의 섹스를 목격하는 일이, 아이에게 일어나면 안되었다. 먹고 사는 일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가능해지는 환경에 그가 놓여서는 안되었다. 핑키가 보고 살았던 것이 그런것들 뿐이라, 그가 꿈꾸는 미래는 그래서 그렇게 사는 부자에 대한 것이다. 좋은 가구를 가져다 놓고 좋은 공간에서 사는 것. 그렇게 사는 과정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어도 그게 가능해지는 삶을 살고 싶은 거다. 범죄와 범죄와 범죄가 일어나는 곳 정한가운데에서 어떻게 다른 꿈을 꿀 수 있는가. 다른 꿈을 꿀 수 있다면 다른 가능성을 목격해야 한다.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아야만 비로소 아 내가 되고 싶은 건 저것이다, 할 수 있는게 아닌가.
물론 가난한 환경에 사는 모두가, 그 환경 속에 놓인 모두가, 핑키가 사는 주택에 사는 모두가 핑키처럼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핑키처럼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 까지는 안돼, 그렇게 나쁜 짓을 하면 안돼, 하고 말하는 자들이 더 많다. 그러나 악은 가난에 쉽게, 급속하게 들러붙는다. 그 가난에서 빠져나오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멸시하지 않는 세계로 이동하고 싶은데, 그것이 그 환경에서 매일매일 죽어라 일한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참 이상하다. 아무리 근명성실하게 그리고 착하게 살아도 이 작고 낡은 집을 벗어나는 일이 왜 가능하지 않단 말인가. 부지런한 개미가 겨울에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는 건 그저 동화이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신이시여, 근면성실하면 편하게 살 수 있나요? 정말 그래요?
'크리스 햄스워스'의 자아성찰 하는 영화라는(그러나 딱히 자아성찰 하는 것 같진 않고 살인만 엄청나게 일어난다) 《익스트랙션》에도 역시 어쩔 수 없이 범죄자가 되는 아이들이 나온다. 범죄 속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은 범죄의 희생자가 되거나 목격자가 되고 그래서 살기 위해서는 그 범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신이 이 조직에서 잘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신체에 상해를 입혀 보이기도 해야하는 그런 아이들이 나온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위를 봐도 범죄가 있는 곳에서 다른 꿈을 꾸는 것은 가능한가. 내가 보는 것말고 다른 것이 있다는 것, 다른 삶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걸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 상상력이라는 것도 어떤 수단이 주어져야 가능한 게 아닌가. 교육이, 문화 활동이,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런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데, 애초에 그런게 차단되어져 있다면 어떻게 다른 삶이 가능한가.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고 구해줄 수 있는 어른은 없는 삶, 거기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가. 일년전에 이 영화를 보고 '가난한 사람에겐 도처가 늪이다'고 썼던데, 그렇다. 빈곤에 내몰린 이들에겐 도처가 늪이다. 그에게 악이 찾아와 노크하는 일, 문을 열어 그 악을 들여보내는 일은 쉽다. 악의 면전에서 그 존재를 확인하고 문을 쾅 닫아 내쫓는 일은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브라이턴 록의 핑키의 신조는 '나는 유일한 사탄을 믿는다' (p.344) 이다. 그가 자라 놓인 환경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고작 열일곱 살밖에 안됐는데.
브라이턴 록에는 그러나 유가족 하나 없이 죽어간 피해자대신 질문하는 여성 '아이다'가 나온다. 책 뒤에 아마추어 탐정이 나온다길래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자라고 생각했다가 처음에 조연처럼 등장했던 아이다가 '어? 이 사람이 죽었다고? 그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했는데 자살이라고? 아무도 묻지 않다니, 내가 질문하겠어' 라고 다시 등장하는 걸 보고 너무 깜짝 놀랐다. 앗, 아마추어 탐정이, 아이다를 말하는 거였어? 항상 정의의 편에 서고자 하는 아이다가 나온다. 불행한 결혼으로 빨려 들어가려고 하는 로즈에게 그 남자 곁을 떠나라고 말해주는 것도 아이다의 몫이다. 그러나 아아, 어리석은 여자여, 왜 그 말을 듣지 않는가.
나는 아직 이 소설을 다 읽지 못했고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을 알지 못한다. 내 꿈처럼, 나는 이 이야기의 끝도 알지 못한다. 다만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악이 그러나 악 그 자체인가에 대해서는 갸웃하게 된다. 악은 거기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가 악 그 자체였던 것도 아니다. 그는, 다만 악에 문을 열어주었을 뿐이었다.
자, 남은 부분도 얼른 마저 읽고
그리고 주지훈아, 너는 내게 금기의 대상이지만 오늘 꿈에 다시 와서 우리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꾸나.
나는 나름의 룰이 있는 여자지만 오늘만은 예외로 해줄게.
너느 내게 금기의 대상이어서 꿈꾸면 안되는데, 그러니까 왜 금기의 대상이냐면, 남동생 고등학교 졸업앨범에 너는 잇을테니까, 너는 내 남동생의 동창이니까! 나는 남동생 동창과는 만나지 않겠다는 삶의 룰을 정해서 가지고 있고 여태 잘 지켜왔는데, 너를 아마도 예외로 두어야 할 것 같아. 왜냐하면..너는 모르니까. 너는 모르잖아, 내 남동생하고 동창인줄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남동생은 주지훈을 복도에서 마주쳤지만, 주지훈은 내남동생을 복도에서 마주치지 않았을것이 분명하기에.....
그럼 이만.
아무튼 주지훈, 너는 오고.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우리 한 번 잘 살아보자.
"나라면 그런 일에 말려들지 않을 거야, 아이다. 그 사람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니잖아." "그이는 그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어. 그게 문제야." 아이다가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기억과 본능과 희망의 심층까지 파고 내려가, 그것들에서 자신이 지침으로 삼고 살아가는 유일한 인생철학을 꺼냈다. "나는 정정당당한 것을 좋아해." 아이다가 말했다. - P155
"걔는 널 좋아하지 않아." 아이다가 말했다. "내 말 좀 들어봐. 인간적으로 얘기하는 거니 내 얘길 믿어 줘. 나도 한창때는 한두 명의 사내 녀석을 사랑했었지. 그건 뭐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거니까. 다만 거기에다 온 정신을 배앗겨선 곤란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 녀석은 말할 것도 없고." - P251
소년이 지나가자 그들은 층이 진 갓돌을 발로 더듬어 찾으며 다시 가장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왜 그래, 핑키?" 댈로가 말했다. "쟤들은 장님이야." "내가 왜 거지들 때문에 길을 비켜야 하지?" 그러나 실은 그들이 장님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자신은 어느 정도의 거리 까지만 가려고 했으나 너무 먼 길을 와 버린 듯한 느낌과도 흡사했다. - P268
긴 도정……그러나 그는 한 걸음도 잘못 디딘 적이 없었다. 만약 그가 스노 식당에 가서 그 여자애와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그들은 모두 지금 피고석에 앉아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스파이서를 죽이지 않았다면……한 걸음도 잘못 디딘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로서는 가늠할 수도 없는 압력이 그의 발걸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꼬치꼬치 캐묻는 여자, 스파이서를 겁먹게 한 전화 내용……소년은 생각했다. 내가 그 애랑 결혼하면, 그땐 이 일이 끝나게 될까? 이 일이 어디까지 날 몰아붙일까? 그는 입을 씰룩이며 생각했다. 얼마나 더 안 좋아질까?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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