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드레드'는 칠개월 전에 딸을 강간살해로 잃었는데 이에 그녀는 이미 광고 끊긴지
오래인 길의 광고판 세 개를 사서 거기에 광고를 낸다. 딸이 강간당하며 죽어갔는데 경찰은 어째서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한거냐고. 이
광고판은 그 마을의 경찰 서장을 대표로 저격하고 있었고, 경찰 서장은 동네에서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기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밀드레드에게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헤어진 남편까지 찾아와 그녀가 잘못했다고 하고 있으며 마을 신부도, 아들의 학교
친구들도 역시나 그녀가 잘못하는 거라고 말한다. 밀드레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을 누구도
응원해주지 않아, 영화 내내 나는 그녀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는 무척 좋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는 모두 '옳은' 것들을 행할수만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혐오를 가슴에 품고 있으며,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그
혐오는 내 말과 행동으로 뿜어져 나오게 된다. 그래서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하고 또 내일의 적이 다음날 동료가
되기도 한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행동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광고판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뜻하지 않게 우리는 누군가를 위기로 몰아갈 수가 있고 역시나 뜻하지 않게 우리는 타인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자신의 행동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채, 내가 옳은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어딘가에서 누구는 나의 행동으로
인해 다칠지도 모른다.
이런 모든 이야기들이 의미 있고 게다가 밀드레드 역의 프랜시스 맥도먼드
연기가 진짜 엄청나서 이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내내 불편한 장면이 있다. 정말 그럴까, 여자
감독이었어도 저 대사를 넣었을까, 하는 부분. 그러니까 꼿꼿한 성격의 밀드레드가 다른 여자를 창녀라 부르거나 냄새난다고 모욕하는
것은, 뭐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라고 다른 여자를 그렇게 부르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여자도 여자를 혐오하니까. 계속 인지하려고 노력하고 바꾸려고 노력한다 해도 나 역시도 그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렇지만, 강간에
대해서라면 다르다.
밀드레드는 딸이 자동차를 끌고 나가겠다는 말에 택시를 타고 가라면서 싸운다.
싸우다가 딸이 화를 내면서 '오다가 강간당할거야' 라고 하는데, 이에 '그래, 오다가 강간이나 당해라!'고 맞받아치는 거다.
이게... 말이 되나? 이 꼿꼿한 여자가, 자신이 하려는 일이 무언지 알고 앞으로 뚜벅뚜벅, 그 고독한 길을 갈 수도 있는 여자가, 물론 난쟁이를 혐오하기도 하지만, 그러니까, 딸을 키우는 엄마가, 자신의 딸에게 '강간이나 당해라' 라는 말을, 아무리 싸운다 해도 진짜 할 수 있는걸까?
모든 일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어쩌면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여자이면서 다른 여자에게 강간당하라고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모든 여자를 대변하지도 않으며 세상의 모든 여자에게 물어본 게 아니니 '그렇지 않다'고 단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강간'에 대해서라면 이 세상의 여자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상대가 밉고 싫어도, 그게 나랑 같은 성별의 여자여도, 그러니까 심지어 '죽어버려' 라는 말을 할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엿먹어라 다쳐라 뭐, 모르겠다 어떤 나쁜 말을 상대에게 할 수도 있고 또 욕을 퍼부을 수도 있겠지만, 강간당하라는 말을, 강간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 역시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몇있고 그중에는 당연히 나랑 같은 성별의 여자도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싫어서 그냥 꼴도 보기가 싫다. 나랑 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아무리 홧김이라도 '강간당해라' 라는 말을 한다? 강간에 대해서라면 여자들은 누구나, 바로, 다른 누군가가 강간당했을 때, 그게 설사 알지 못하는 누군가라도,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라도, 바로 내 일처럼 가슴아파 하지 않나, 내 일처럼 비참하지 않나, 그 끔찍함을 내 일처럼 느끼게 되지 않나. 상대가 너무 싫어 자기가 아는 모든 욕을 총동원해서 퍼부을지라도, 우리는 누구나 강간을 말하진 않지 않나? 강간당해라, 를 홧김에 한다는게 나는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거다. 사춘기의 딸이 엄마와 싸우면서 '오다가 강간당할거야' 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게도 엄마의 마음을 가장 후벼파는 말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능적으로 강간이 자신이 당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임을 인지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엄마를 공격하기 위해 퍼부은 말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마가 '그래 강간당해라' 라고 말한다? 나는 이게 너무너무 두고두고 불편한거다. 어느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강간당해라' 말을 하지? 아무리 상대가 싫어도 그 말은 안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말실수를 하고 두고두고 곱씹으며 그 말을 했던 걸 후회하기도 한다. 그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는 걸 인지하기 때문에 그 말을 내뱉었을 것이며, 그것이 너에게 상처가 됐을텐데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거였는데, 후회하고 미안해하며 자책하고 또 상대에게 사과를 하거나 아예 인연을 끊기도 한다. 그 모든 말 실수들 중에 '강간당해라'가 있다는 것은.. 모르겠다. 나는 여자에게 '강간당해라' 라고 말을 하는게... 모르겠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누구나 그 때 그 말을 해서는 안되는거였는데, 그건 진짜 내가 나빴어 할 때가 있지만, 강간당해라, 라니... 이게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여자가 여자에게 강간당해라, 말실수를 하기도 하는걸까?
자, 책 책 책 책들이 도착했다. 처음 도착한 건 이렇게 소박했다.
소박하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소박한 것이 좋았을 것이나. 하하하하. 나는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았고, 어제 택배 박스를 풀고 풀면서, 아아, 스트레스는 책구매와 정비례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새삼, 새삼.
책구매 클라스가 거의 재벌급이여...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다 내 친구들이 나를 말리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내 친구들에게 미션을 준다. 나를 말려라!
이러다가 나를 말리면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어!' 하는 부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이렇게 찍으면 또 너무 이쁘잖아유?
브리저튼 시리즈 새로 나온 표지들이 넘나 예뻐서 나는...나는.....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앞으로 나는 브리저튼 시리즈를 얼마나 더 살것인가. 아니, 안살것인가...
엊그제였나, 나는 도대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가방안에 이렇게 넣고 다니는가...나를 원망했다. 걸을 때마다 허리가 뒤로 꺾인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힘들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누가 나를 힘들게 하는가? 바로 나다!!! 이런 것을 팔자라고 부르나욤??
너무 무겁고,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아직까지 재미도 1도 없고... 언제 재미있어 지나요?
마침 어제 도착한 책들 중에서 내 생각보다 얇아 놀랜 신계숙 쌤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아, 너무 좋고만. 좋다. 신계숙 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애정하며 다 봤는데, 선생님 좋..좋...좋아합니다. 이 분이 열심히 살아오신 거 읽는 거 너무 좋고, 방송에서도 충청도 사투리 하셨는데 책에서도 가끔 튀어나와서 오늘 나의 페이퍼에 자꾸 사투리 튀어나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필수적이지 않은 관계, 필수적이지 않은 일, 필수적이지 않은 사건들에 대해 우리는 많은 시간을 쓰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필수적인 것은 어떻게든 나에게 남아 있게 될 것이며 필수적이지 않은 것은 떨어져나갈 것이다. 이건 내 말을 믿어도 된다. 뭐든 다 겪어보고 결정할 것도 아니지 않나. -p.32
이 책 좋아서 다 읽으면 엄마 읽어보시라 할 거고 엄마 다 읽으시면 여동생한테 보낼 것이다. 지난번에 《왕진가방 속의 페미니즘》엄마랑 여동생 다 너무 좋게 읽었어서 이 책도 그런 경험을 함께 해보고 싶다. 히히히히히.
어제 입사 이주차 신입사원이 내게 자신은 직속 상사(바로 나다!!)를 너무 잘만난 것 같다고 마구 칭찬을 하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으셔서 그런지(자꾸 책 박스 오는거 보고 짐작함) 차장님보다 직급 훨씬 낮은 다른 직원들 모두에게 다 친절하시더라고요. 놀랐습니다. 배워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답했다.
"그건 책을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 인격이 훌륭해서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 가서 김치찌개에 소주 먹으면서 엄마한테 이 얘기 해줬더니 깔깔 웃으시면서 "너 제발 겸손할 줄 좀 알아!"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겸손을 몰라서 미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오늘은 저 책탑들을 보면서도 브리저튼 시리즈 다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다. 금요일이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