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의 성정치 - 여혐 문화와 남성성 신화를 넘어 페미니즘 - 채식주의 비판 이론을 향해 이매진 컨텍스트 68
캐럴 J. 아담스 지음, 류현 옮김 / 이매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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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여자들이 꾸밈 노동을 멈춰야 한다고, 남성에게 선택받기 위한 노력을 그만둬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어째서 그런 결론이 되냐고 물으면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책을 읽고난 뒤에도 계속해서 내가 내게 물어야 했다. 그러니까, 왜? 왜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됐지? 이 책을 읽고난 후의 내 감정은 한마디로 정리 되질 않는다.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하지도 않다. 내가 이 책을 예전부터 읽고 싶었으면서도 자꾸 미뤘던 것은 내가 육식을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읽는다면 이 책에서 육식의 비윤리성을 지적할테고, 그것에 나도 동의할테고, 그렇다면 죄책감에 몸부림 치겠지, 라는 짐작으로 자꾸만 읽기를 미뤄왔던 거다. 뭐가 됐든 읽어보자, 괴롭다면 그것 또한 내가 가져가야할 몫이다, 했는데, 예상외로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육식을 한다는 것에 크게 죄책감을 얻거나 괴롭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잘하고 있다는게 아니라, 이 책에서는 그보다 다른 많은 것들을 주었다는 것이다. 한 번 읽어서는 확연히 정리되지 않는 것이지만, 그러나 자꾸만 질문하게 만드는 것들을 준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이 책을 읽던 도중, '정말 육식은 인간에게 맞지 않는 것일까?'를 생각해야 했다. 책에서는 동물이 동물을 잡아 먹는 세계에서는 그 동물을 익혀 먹지 않는데 인간은 동물을 먹기 위해서는 굳이 익혀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본연의 모습을 자꾸 지워낸다는 것.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새로운 요리법으로 가공해서 내가 먹는 것의 실체를 지워낸다는 것. 동물이 살기 위해 다른 동물을 잡아먹을 때는 그 동물을 잡는 것도 스스로이며 해체헤 먹는 것도 스스로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다른 인간에게 시킴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멀어진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한다. 만약 동물을 먹는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그 동물을 죽이고 해체하고 먹는것까지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또한 다른 동물의 살이 내 몸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떠한가. 굳이 익혀서 혹은 튀겨서 그것을 먹는다는 것, 그것은 그렇다면 정말 자연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먼 게 아닐까. 인간은 사실 동물의 살을 먹기에 적합한 구조는 아니지 않을까. 정말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애써 우리 몸을 그에 맞추는 것은 아닐까. 이 책 속에서는 채식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사례들이 나오는데,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사실 고기를 좋아하는 나도 내 몸이 무겁거나 어떤 질병을 앓게 되면 아 당분간 고기 좀 자제하자, 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나. 저녁에 고기를 먹으면 가볍게 밥과 김치를 먹는 것보다 소화하는데 더 시간이 걸리는 것도 사실이잖아. 어쩌면 나는 내 몸을 고기에 너무 길들여놓은게 아닌가, 길들이려고 애썼던 게 아닌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애써 적응하려고 한걸까? 정말 인간의 몸에 육식은 딱히 어울리지 않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되는 거다.



도축과 도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고기로부터 멀리 있다. 그것이 동물이었을 때로부터 아주 멀리 있다. 내가 삼겹살을, 스테이크를 먹고 싶어서 사 먹거나 구워 먹을 때, 내 눈앞에 있는 것은 그저 고깃덩어리다. 잘 익혀내면 맛있는 고기. 나는 돼지나 소가 그리고 닭과 오리가 내 입으로 들어가기 전에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굳이 상상하지 않으며, 그것들이 어떻게 죽어갔을지 역시도 상상하지 않는다. 칼로 찔렀을까? 목을 졸랐을까? 죽도록 때렸을까? 같은걸 생각한다면 아마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런과정을 건너 뛰고 내가 만나는 건 순수한 고기 그 자체이다. 나는 삼겹살을 먹으면서 돼지의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이 돼지는 자신이 결국은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인간은 돼지와 소와 거위와 닭과 양을 그저 인간 마음대로 태어나게 하고 살게 하고 또 죽이는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번 페이퍼에서 영화를 언급했던 것처럼, 도축업을 하는 사람을 멸시하면서(그들은 도살당하는 짐승으로 태어나게 될거야, 라고 영화 주인공은 말했더랬다) 고기를 먹는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 속에서는 결국 고기가 될 동물들을 키우면서 그 동물들을 학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항문에 막대기를 찔러넣는 것부터 발로 차고 때리는 것까지. 그런 일들을 하는 그 사람들. 그들이 아마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것이다. 처음에 그 일을 하게 됐을 때부터 나는 돼지 똥구멍에 막대기를 꽂는 사람이 되어야지 같은거 결심하고 그리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계속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그들은 처음에는 자기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바뀌게 된 게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몇차례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를 떠올렸다. 


전쟁 당사자 중에서 가장 잔인한 의사(意思)를 가진 인간, 즉 전쟁 개시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만큼 적으로부터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었다. 백악관에서 만찬회에 출석하고 있는 대통령은 적이 흩뿌린 피를 뒤집어쓰지도, 육체를 파괴당한 전우가 내뱉는 단말마의 외침을 듣지도 않는다. 살인에 뒤따르는 정신적 부담을 거의 받지 않는 환경에 있다. 군대 조직이 이러한 형태로 진화하고 과학 기술 덕에 병기가 개선되고 있는 이상, 근접전에서 살육이 격렬해지는 것이 당연했지만 전쟁의 의사결정자는 아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대규모 공중 폭격을 명령할 수 있는 셈이다.


(중략)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모든 정치적 투쟁을 승리한 인간은 정상의 범위에서 이탈한 호전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런 인간을 리더로 선출하는 시스템이 국민의 뜻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뽑힌 사람이야말로 집단의 의사를 체험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전쟁의 심리학은 권력자의 심리학이라고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pp.255-256



결국 인간이 동물을 먹기 위해 다른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을 죽이고 해체하게 한다는 것은, 권력자가 전쟁 개시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닌가. 근접전에서 살육이 격렬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쟁 의사결정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것처럼, 고기를 먹는 인간도 살육을 눈앞에서 자신이 보는게 아니기 때문에 육식이 가능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제노사이드 에서는 전쟁의사를 결정하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이 국민들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도축과 도살을 직업으로 삼게끔 하는 것은, 육식을 하는 육식인들이 아닌가.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부터 그 거리가 얼마나 먼가. 혹은 얼마나 가까운가. 



대부분의 책속 주장들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거나 짐작 가능한 것이었는데, 육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여성이 부엌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놀라웠다.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햇던 부분이었다. 



19세기 여성들은 기름기 많은 음식을 만들고 뜨거운 스토브 옆에서 일하는 시간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며 채식주의를 반겼다. 페미니스트이자 노예제 폐지론자인 새러 그림케Sarah Grimke와 앤젤리너 그림케Angelina Grimke 자매는 자기들이 받아들인 실베스터 그레이엄의 채식이 "'건강에 이로울 뿐 아니라 ……  여성이 고된 부엌일에서 해방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Lerner 1971, 253)


그러고보니 내가 집에서 요리를 할 때도, 나가서 고기를 사 먹을 때도 고기 요리에는 시간이 걸렸다. 불 앞에서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고기를 먹기 위해서라면 필요했다. 그러네, 하루 세끼 가족들의 식사를 차려줘야 하는 대부분의 가사 노동자인 여성들이 고기 요리를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가사노동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정말 그렇네.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그러나 그것은 일방적으로 여자들의 몫이었지. 내가 먹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고기를 익혀야 했다. 어쩌면 나는 가사노동에 그다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햇던 것일 수 있겠다. 나는 주말 외에는 딱히 요리라 할만한 것을 하지 않으니까, 가사 노동이 고되다는 것은 알아도 내가 그것이 어디서 얼마나 고된 것인지에 대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또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말 고기를 안먹어야 하는 건 아닐까. 아니 나로 말하자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덜먹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러자 나는 다른 사람들의 육식중단에 대한 시작이 궁금했다. 육식을 그만두기로 한 사람들, 그들은 처음에 어떤 계기로 그것을 그만두게 되었을까? 어쩌면 동물학대 영상을 보고나서 그 참촉함에 육식에 동조하지 않기로 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몸을 좀 더 가볍게 만들기 위해 채식을 선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불 앞에서 가사노동하는 것에 시간을 들이는 게 싫어 육식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 고기를 먹으면 몸에서 소화시키지 못해 선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계기로 선택을 했든 그들의 선택으로 인해 동물이 도살당하는 확률은 줄어들었을텐데, 그들은 처음에 어떻게 마음 먹게 되었을까? 



2013년에 어느 지역 경찰국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주민들의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경찰서장은 지역 신문에 이렇게 설명했다. "그 이상한 소리는 송아지를 잃어버린 어미소들의 울음소리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송아지와 새끼들을 강제로 떼어버려야 하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어미소들이 내는 소리다" <육식의 성정치 슬라이드 쇼>를 본 뒤 어느 젊은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자기가 낳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는데, 퉁퉁 불은 젖가슴은 아기에게 줄 모유로 가득하지만 죽은 아기는 먹을 수 없다는 현실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말했다. 사람들이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를 물을 때, 그 여성은 그런 변화는 비극을 통해 알려진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그 일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버겁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그 젊은 여성은 슬픔에 잠긴 어머니에게서 모유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고 있다. -p.371



이 책의 에필로그에는 육식의 성정치를 읽고난후 사람들이 보내준 사진들이 삽입되어 있다. 낙농가에서 육우용 소로 태어나 기계화된 시스템으로 우유를 짜내는 소들의 사진이기도 하고 하체는 인간 여성의 신체와 합성하여 선택을 기다리는 돼지와 소들의 사진들로 손님을 끌려는 가게들의 광고 이기도 하다. 버거킹은 커다란 햄버거 옆에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엎드려 있는 광고를 내걸기도 했다. 햄버거와 비키니를 입은 여성이 나란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일까. 게다가 인간 여성의 하체를 가진 동물들의 광고는 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다리 한쪽을 구부리고 요염하게 서있거나 가터벨트를 입고 있는 것. 그러니까 소나 돼지가 고기로써 선택받기를 원한다는 것 '나를 선택해주세요' 라고 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의 이미지는 성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차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제 시장에 갔다가 이런 풍경을 보게 됐다.



'자연산 미녀' 참도미.. 라고 한다. 왜 참도미는 '자연산 미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야 할까? 왜 선택받기 위해서 '자연산' 이며 게다가 '미녀'라는 수식어가 필요한걸까? 왜? 왜 자연산 미녀는 더 잘 팔리게 하기 위한 꾸밈어가 될까? 왜 자연산 미녀가 더 가치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걸까? 그건 어디서부터 온것일까? 자연산 미녀를 굳이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아주 오래전에 읽은 잡지에서는 독자들이 사연이나 고민을 보내온 것을 실어주는 코너가 있었다. 거기에 한 여자가 억울하고 속상하다고 보냈는데, 사연인즉,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은 공부도 못해서 대학도 못갔는데 얼굴이 너무 예뻐 부자 남자를 만나 시집을 갔다는 거다. 자신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월급을 받는데, 그 동창의 집에 갔다가 자신은 살 수 없는 명품 가방이 가득 쌓인걸 보고 놀랐다는 거다. 그러면서 몇 번 안들었는데 갖고 싶으면 가져가라고 했다는 것. 공부 열심히 해서 잘했던 자신이 왜 더 초라하게 느껴져야 하는지, 얼굴이 예쁘면 열심히 살지 않아도 이렇게 부자로 살 수 있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는 거였다. 이게 정말 오래전의 사연인데(고등학교때 본 것 같다), 그 때는 이런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여자는 예쁘기만 하면 된다는 것, 무조건 예쁘면 팔자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부자 남자한테 시집을 가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취직해봤자 부자 남자한테 시집가는 것만큼 돈을 벌 수가 없으니 무조건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것, 착해야(에쁜게 착한거니까!) 한다는 것. 


이것은 아주 많은 것을 의미하는데, 일단 그 예쁘다는 평가 자체가 누구로부터 오는 것이냐는 거다. 누구한테 예뻐 보여야 할까? 남자한테다. 왜? 남자한테 선택을 받아야 하니까. 누구한테 섹시한 여성이 되어야 하는가? 남자한테다. 남자한테 선택을 받아야 팔자를 필 수 있으니까. 그것은 평가를 하는 입장이, 그러니까 너는 예쁘구나 너는 못생겼구나 기준을 정하고 평가하는 쪽이 남자라는 걸 의미하고 남자가 그렇게 여자를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은, 남자가 더 가진게 많은 권력자라는 뜻이다. 돈을 가진 쪽도 힘을 가진 쪽도 이 사회의 기준을 정하는 것도 남자였고, 여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사회에서 위로 올라가는데에 한계가 있었다. 선택받아야만 비로소 더 나은 삶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선택받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것. 

결국 여자의 삶이란 사회적 약자로서, 선택받기 위해 살아온 삶이 아닌가.



동물을 고기로 소비하면서 그들에게 여자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 동물의 의지는 전혀 상관없이 나를 선택해달라는 그림을 그려놓는 것,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하는걸까. 동물은 과연 고기로 자신을 선택해주기를 바라고 있을까? 그들이 바랄 거라는 것은 인간의 추측이며 인간의 표현이 아닌가. 결국 가장 힘있는 자에게 선택받기를 원할것이라는 짐작은, 가진자의 시선에서 온 것일테다. 당장 육식을 멈추는 것이 이 사회를 바꿔가는데 필요하며 중요한 일이겠지만, '자연산 미녀'로 도미를 포장하는 일부터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햄버거 옆에 비키니의 여자를 엎드려 놓는 것부터 없어져야 하는게 아닐까. 고기를 선택하는 것, 어떤 고기를 먹을지 어디에서 먹을지 어떻게 먹을지는 육식을 하는 육식인이 선택할 일이겠지만, 그러나 선택을 받기 위해 자연산 미녀라고 내세우는 것은 도미의 일이 아닐 것이다. 더 선택을 하게끔 고기를 여성화 시키는 것부터 그만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선택받는 입장이라는 것으로부터도 우리가 빠져나와야 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결국 나는 하고야 만것이다. 



물론 사회의 미의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내보이고 강요하고 억압하는 것은, 나아가 유리천장으로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을 막는 것은 힘있는 자들의 횡포이고 명백한 잘못이다. 그것은 너무도 견고하여 쉽게 무너지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다. 아직 많은 권력이 남성들에게로 기울어져있는데 그 사회를 바꾸는 것을 여자에게 짐지우는 것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해 보이지만, 그러나 선택받기 위해 사는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너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나는 너에게 선택받기 위해 살지 않아. 나는 너의 선택 없이도 잘 살아 보이겠어.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할거고, 나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애쓸거야. 그 모든 순간들마다 번번이 후려침과 내동댕이 쳐짐이 나를 공격하겠지만, 그러나 나는 너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 성격을 죽이지도 않을 것이고 너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밥을 굶지도 않을 거고, 너에게 선택받기 위해 가터벨트를 입지도 않을 거야. 그리고 이런 사람이 하나씩 둘씩 늘어난다면, 그러니까 사회 전체적으로 '여자는 남자들의 선택과 무관한 삶을 산다'는 것을 계속해 보여준다면, 어느 순간 '자연산 미녀'라고 도미를 광고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돼지에게 가터벨트를 입혀서 광고로 내걸 순 없지 않을까? 그런것은 다 무용해지는 일이므로. 마치 여자를 먹는 것처럼 가터벨트 입은 돼지를 먹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일들이 사라진다면, 모두가 육식을 그만두는 세상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육식과 멀어지는 삶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캐럴 제이 애덤스는 '메리 매카시'의 아메리카의 새들》 의 추수감사절 저녁 만찬 사건을 언급한다. 




어떤 특정한 소비 윤리에 상관없는 내용을 다루던 이 소설은 식사 중에 갑자기 채식주의장 ㅕ성 스콧이 말을 시작하면서 이 채식주의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그리고 이 채식주의자가 무어슬 먹지 않는 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중단은 여러 수준에서 일어난다. 미국인 여성인 로버타 스콧은 자기를 초대한 어느 나토 소속 장군이 식탁에 내놓은 고기를 거부한다. 충격을 받은 장군은 고기 써는 나이프를 내려놓은 뒤에 스콧에게 정중히 묻는다. "칠면조 고기를 싫어하나요?" 고기 써는 나이프는 장군의 힘을 상징하며, 포크로 찍어놓은 고기는 군인으로서 위신을 드높인다. 그러나 스콧의 고기 거부는 이런 상징적인 수단들을 사용하는 장군에 대응하는, 다시 말해 장군의 권력에 맞서는 도전이다. 장군이 사용하는 수단들은 여자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무용지물이 되고, "오늘은 추수감사절이니까!" (MaCarthy 1972, 166) 라고 말하면서 장군이 "서둘러" 발뺌하게 만든다. -p.268



나는 위의 부분에서 또다시 제노사이드를 떠올린다.


직업으로 몸에 익힌 기술이라곤 살인 기술밖에 없는 남자들은 무력한 기분 속에서 침묵했다. 예거는 500미터 앞에 있는 사람을 단 한 방의 총알로 처리할 수 있었다. 적이 단말마의 비명조차 못 지르도록 등 뒤에서 신장을 한 번에 찔러 즉사시킬 수도 있었다. 아들 저스틴은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평화로운 사회에서는 있을 장소가 없는 아버지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으로 여기고 있었다. 저스틴의 순수한 존경심을 느낄 때마다 예거는 입맛이 썼다. 자기 스스로가 전투복으로 몸을 단단히 감싼 하찮은 사기꾼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p.120



 

무용지물.

나는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

나이프를 드는 것은 육식을 할 때 필요하고, 칠면조 고기를 먹지 않기로 선택한다면 나이프가 필요 없다. 

멀리 있는 사람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총쏘는 기술도, 평화로운 때라면 무용지물이 된다. 


예쁨을 섹시함을 무용하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선택받는게 최고 가치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무용하게 만든다면.

예쁜게 착한거라는 인식을 무용하게 만들고, 선택하는 게 권력과 힘이라는 것을 무용하게 만든다면.

선택받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무용하게 만든다면.

미의 기준을 무용하게 만든다면, 자기관리 안하는 여자는 정말 싫다는 말을 무용하게 만든다면. 

가터벨트를 무용하게 만들고 한쪽 다리를 요염하게 구부리는 것을 무용하게 만든다면. 자연산 미녀를 무용하게 만들고 자연산도 미녀도 모두 무용하게 만든다면. 이 모든 것들이 무용해진다면 간판에서 립스틱 바른 돼지는 사라지지 않을까. 햄버거 옆의 비키니 입은 여자는 사라지지 않을까. 

꾸미는 것, 선택받는 것? 우리는 그런거 관심없어. 우리는 우리의 건강한 삶을 위해 달리고 걷고 스쿼트하고 플랭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외국어를 익히고 돈을 벌고 밥을 하고 앞으로 나아갈거야. 결국은 그런 태도와 삶에 대한 방향은 광고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광고가 바뀐다면 선택도 달라지지 않을까?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고 그것이 한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아 결국 글이 길어지고 말았다.


육식을 거부하는 행동에 혐오자라는 딱지를 붙일 때, 지배 사회는 육식 거부에 관한 해석을 왜곡한다. - P304

가부장제 문화에 둘러싸인 여성들에게도 우리는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먹히는 사람이고, 한편으로는 고기를 먹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비자이자 소비 대상이다. 우리는 귀가 없어서 듣지 못하는 위를 가진 사람들이고, 귀가 달려 있지 않은 위를 통해 들으려 하는 사람들이다.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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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1-24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뒤로 갈수록 고조되는 느낌이 좋은데요!!이 흐름에 동조하지 않는 것.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떠오릅니다.
제목은 <육식의 성정치>인데 여러모로 영감을 주었던 책이어서 더 좋았어요. 수고하셨어요. 👍👍

다락방 2021-01-25 09:20   좋아요 1 | URL
시키는대로 하지 않는게 필요한 것 같아요. 흐름이 틀렸다면 그 흐름에 따라가지 않는 것도 필요하고요.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같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미미님. 미미님이 읽고 글 남겨주시는 걸 보는 것도 제가 읽고 쓰는데 힘이 되었답니다. 감사해요! :)

난티나무 2021-01-24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으면서, ‘자연산 미녀’라고 써붙인 가게 주인에게 그 팻말을 빼라고 롸잇 나우 요구하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가게 주인은 비유를 갖고 뭘 그러냐고 하겠지만. 동시다발적 노력이 필요한 일 같아요.ㅠㅠㅠㅠㅠㅠ

저는 꾸밀 일이 없어 자연 그대로 살지만 ㅎ 꾸밈노동과 관련해서 제가 할 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집 남자들 생각 바꾸기. 번번이 견고함에 부딪히지만 계속 해야 할 일인 거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계속 하는 것!!!! 다락방님 화이팅!!!!

다락방 2021-01-25 09:26   좋아요 0 | URL
난티나무님, 저도 언젠가부터 꾸미지 않고 살고 있어요. 처음엔 볼터치를 안하다가(저는 볼터치 매니아였답니다? ㅋㅋ), 그 다음엔 피부 화장을 안하고 눈썹과 립스틱만 남겼다가, 이제는 눈썹 립스틱도 아예 안해요. 이게 안하다보니까 너무 편해서 도대체 어떻게 그동안 화장하고 살았나 싶더라고요. 이제는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고요, 화장품 다 버리고 있어요. ㅋㅋㅋㅋㅋ
저는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인 제가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은 그것 자체로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 저 사람은 회사 다니는데도 저러고 다니네, 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누군가는 ‘나도 그래도 되나보다‘ 하게될 수도 있으니까요. 난티나무님 말씀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다보면 조금씩 변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합시다, 난티나무님. 그리고 이 책 읽기도 함께 해주셔서 기쁘고 감사드려요! >.<

공쟝쟝 2021-01-24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택당할 수 밖에 없는 약자로서의 처지. 으아, 저도 리뷰 읽으니까 무슨 맥락인지 느낌이 왔어요. 동물의 의사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권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더 힘있는 남성에게 선택당해야 그나마 안전하고 덜 고생했으니.. 생존전략으로서 꾸밈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선택하는 입장’인 그 힘을 가진자들 -전통적으로 남성/육식인들의 - 시선이 고기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할 수 밖게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되었고 몰랐으면 몰랐지 그 폭력의 시선을 우리 스스로에게는 투사하지 말자고 말씀하신 것 같아요. (지송..거칠게 요약하게 되네요ㅋㅋㅋ)

네, 그래요. 우리는 착취하지 않는 시선, 선택하지 않는 시선 적어도 선택 당하려 노력하지 않는 시선 ㅡ 그들의 시선이 아닌 우리 자신의 시선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합시다!!

다락방 2021-01-25 09:28   좋아요 1 | URL
개떡같이 써도 찰떡같이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공쟝쟝님 ㅠㅠ 소중한 사람이야 정말 ㅠㅠ
공쟝쟝님 댓글 보니 그거 생각나네요. 남자들이 보통 페미니스트 욕할 때 ‘남자친구도 없는‘, ‘남자한테 사랑도 못받는‘ 못난이들로 정체화하잖아요. 남자 없어서 여성주의 하는것처럼요. 그런것 부터가 여자가 남자를 필요로 한다는 걸 전제로 하는데, 우린 남자 따위 없어도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없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니, 오히려 없어야 더 잘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그저 우리 자신만으로 당당하고 건강하고 행복합시다!!

공쟝쟝 2021-01-25 19:14   좋아요 0 | URL
무슨 소리야. 물론 페미니즘 하면서, 있던 남자와 헤어지긴 했지 ㅋㅋㅋ 실컷 욕해라 이 바보들아!! 그래도 난 잘산다~ 나는 남자 없이 잘살아 ~! 빰! (bgm. 미스에이 남자없이잘살아)

바람돌이 2021-01-24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육식의 중단이 꾸밈의 거부로 넘어가는 의식의 흐름이 이해되었습니다. ㅎㅎ
제도나 법의 변화보다 저런 의식의 문제는 정말로 변화가 어려운 부분이죠. 더구나 이제는 여서뿐만이 아니라 남성도 꾸밈이 당연하다는듯 떠드는 자본의 무수한 부추김 광고들을 보면 더하죠. 이제는 꾸밈이 상대에 대한 선택받음을 위한 것이ㅠ아니라 자아실현이라는 광고로까지 뻗어갔잖아요. 그래서 꾸밈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전통적인 견해에서 변화가 오지 않을까싶기도 합니다. 무엇하나 세상이 바뀌는건 쉬운게 없네요.

다락방 2021-01-25 09:41   좋아요 1 | URL
제 의식의 흐름이 이해되시나요? 다행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생각하고 또 제가 써놓고도 이게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일까, 글일까, 고심했거든요.
꾸며서 타인에게 아름답게 인정받는게 마치 최고 가치인것처럼 그동안 매스컴에서 엄청 얘기했잖아요. 과감히 그걸 부수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여성의 경우 굶어가면서, 먹을 걸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미의 기준을 따라가려 하다보니 힘이 더 약해지는 것 같아요. 우리가 타인의 인정이나 선택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 같아요. 한 명이 두 명 되고 두 명이 네 명 되다 보면 세상이 바뀔 수 있겠지요.

Vita 2021-01-25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자마자 제가 든 생각은 그래! 영어공부를 진짜 많이 해버리도록 하자! 그래야 후회를 안하겠다 확고하게 결심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조금 더 가열차게 읽어야겠구나 다짐도 했고. 이 글 다 읽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스쿼트 30개.

다락방 2021-01-25 10:22   좋아요 0 | URL
크- 스쿼트가 우리를 건강하게 해줄것이고 스쿼트가 우울증도 없애준다고 합니다. 수연님, 스쿼트는 정말 잘한 선택이십니다. 저도 스쿼트 한달 챌린지 할까 생각하다가 ‘하겠다‘ 하면 정말 한달동안 꼼짝없이 해야 하니까 그게 싫어서 안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영어공부 계속 생각해요. 아오 진짜 영어공부는 왜 자꾸 생각‘만‘ 하는걸까요. 싫다 증맬루.. ㅠㅠ
실천, 실천! 행동으로 옮기겠어요! 불끈!!

psyche 2021-01-2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다른 건 다 끄덕끄덕인데 고된 부엌일 해방이라는 것은 갸우뚱이에요.
옛날에는 생고기 사서 손질등등을 다 해야해서 그랬을까요?
지금은 고기요리가 제일 간단하고 일이 없거든요. 고기는 그냥 소금 후추만 쳐서 구워도 되니까요.
채식 위주로 하려면 주부가 정말 부지런해야해요.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을 수 있는 고기와 달리 야채는 매번 신선한 걸 써야하니까 장도 자주자주 봐야하고 맨날 샐러드만 먹을 수 없기 때문에 데치거나 해서 양념도 하고 장아찌를 만드는 등 수고가 들어가야 하고. 고기의 경우는 고기 하나에 김치만 있어도 되니만 나물 같은 반찬을 하려면 한개가 아니라 몇가지를 해야 하는걸요.

다락방 2021-01-25 10: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프시케님. 채소 요리라고 사실 생으로만 먹는 것도 아니고 저는 야채 씻는 것도 너무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겨울에 씻을라면 손도 시렵고.. 부엌일 해방이라는 것은 사실 채식을 하든 밀키트로 요리를 하든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해방된다면 다른 누군가가 하겠죠. 그러고보니 장아찌를 만들려도 부엌에서 오래 있어야 하고요. 저는 야채도 샐러드 보다는 익힌 야채가 좋더라고요. 그렇다면 삶거나 볶거나 끓이거나 하는 과정이 필요하고요. 아마 저 때는 지금보다 고기를 익히는 일이 더 수고스러워 나온 생각이겠지만 그러고보니 지금은 뭘 먹든 부엌에서의 노동을 피할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