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이 그간 내가 빌려준 책들을 다 읽었다고 연락했다. 아.. 나 이자식 오래 걸릴 줄 알고 씐나게 다른 책들 읽고 있었는데.. 이자식한테 빌려줄 책이 시급하다. 그렇다면 나는 미스테리나 스릴러 중에 무언가를 읽어야만 해! 그렇게 책장 앞에 가 섰는데, (다른 많은 책들과 마찬가지로) 오래전에 사두고 안읽었던 '톰 롭 스미스'의 책이 보인다.
오만년전에 《차일드 44》1 권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2권도 잽싸게 사두었더랬다. 그리고 잊고 살았지..나는 가끔 잊고 살아요, 아니 자주..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오래전에 읽은 책이다 보니 1권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레오가 국가 요원이었으며 그러다 살인 사건을 파헤치면서 그간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게 됐고, 아내와 함께 딸 둘을 입양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만 기억이 났다. 물론 2권은 1권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도 읽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런데 읽다보니 너무 재미있고, 와, 이거 영화로 만들면 대박이겠는데, 하다보니 '어? 1권은 톰 하디 주연의 영화로 나왔잖아?'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넷플에 들어가 검색했으나 넷플엔 없었고.. 네, 넷플은 항상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없어요... 네이버에 검색하니 있기 때문에 유료로 구매해 다운을 받던 중, 어? 나 이거 본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나랑 이 영화를 같이 보았을 거라 추측되는, 나랑 거의 같이 극장에 가던 친구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우리 차일드 44 영화 봤던가? 하고. 그러자 친구는 응 우리 극장에서 같이 봤지, 답을 보내왔는데... 어쩌면 이렇게 아무것도 기억이 안날까. 그래 다시 보면 되지, 뭐, 하고 나는 다운을 받아둔 것이었던 것이었다.
까지 써놓고, 내가 이 영화를 봤다면 글을 써두지 않았을까 싶어 검색했더니 ㅋㅋㅋㅋㅋㅋㅋ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영화는 그저 그랬다' 라고 역시나 글을 써놨네. 나여... 책의 중요한 내용을 다 덜어내서 그저 그랬다고 써놨어. 나여 어떡하냐. 앞으로 영화 보기 전에 페이퍼 검색해봐라.... 나여.....
자,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자. 《차일드 44-2》권에 대한 얘기다.
책은 1940년대 후반의 스탈린 체제하의 소련에서 시작한다. 1권의 레오보다 조금 더 과거의 이야기, 즉 레오가 이제 막 비밀경찰로서 첫 임무를 띠게 된 꼬꼬마 시절의 이야기인거다. 정부에서 교회를 파괴하고 그걸 반대하는 사람들을 색출해내면서 라자르라는 신부가 고발당하고 그의 아내 '아니샤' 역시 잡혀들어간다. 그리고 7년의 시간이 훌쩍 흘러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이야기가 처음에 왜 나왔을까, 이렇게 처음에 나온 까닭은 뒤에서 다 밝혀질 것이다, 생각하는데, 아아, 이 아니샤가 결국 국가에 사적 복수를 하기 위해 갱단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돌아오는 거다. 두둥- 스탈린은 죽었고 스탈린 시절에 너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들어가 잔인하게 고문당했던 걸 정부 관리가 인정한 연설문도 돌았던 터라 이제 사람들은 동요한다. 그 시절 사람들을 고발하고 고문했던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간다.
아니샤가 라자르와 부부였던 시절, '너 혼자만이라도 살 수 있다'고 그녀에게 남편을 고발하고 살라고 말해줬던 비밀경찰의 말을 듣지 않고 남편을 따라 잡혀갔지만, 그러니까 남편을 배신하지 않고 그와 함께 수감되긴 했지만, 그러나 그녀가 남편과의 결혼시절에서 남편에게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다. 라자르는 남편으로서 아내의 말을 귀담아 듣지도 않았고 아내가 잘한 공도 가로채는 남자였다.
그녀는 이해했다. 남편은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다. 남편은 그녀를 위해서도,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원칙을 굽힐 사람이 아니다. 그에겐 그들의 목숨보다 원칙이 훨씬 중요하다. 그 철거 현장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건 쓸데없이 위험을 자초하는 짓이라고 그녀가 경고했다. 분명 비밀경찰이 구경꾼을 감시할 텐데 그는 그중에서도 눈에 띌 거라고. 항상 그렇듯이 그는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그녀의 충고를 생각해보는 척하지만 거기에 귀를 기울인 적은 한 번도 없다. 교회 당국과 소원해지지 말라고 그녀가 애원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국가와 교회를 모두 적으로 만들 만큼 힘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p.19
"우린 저 종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게 아니야. 우린 저것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고 있는 거라고."
아니샤는 남편의 뻔뻔스러움에 왈칵 분노가 치밀었다. 그 젊은 작곡가는 그가 아니라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녀가 애원하고 설득해서 라자르가 그 악보를 맡아주었다. 그런데 라자르는 지금 막심에게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품었던 의심과 불안은 싹 빼버리고 그녀를 소극적인 동조자로 바꿔버렸다. 그녀는 라자르가 자신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을 의식이나 하는지 궁금했다. -p.23
크- 아니샤의 빡침이 뭔지 사실 여자라면 누구나 다 알지 않을까. 말 지지리도 안들어서 위기에 몰아넣는 것, 잘된 일에 대해서는 주인공을 자신으로 설정하고 여자를 보조의 위치에 놓는 것까지. 자기 원칙 중요하게 지키는 남자지만 아내 말은 듣지 않는 남자여..
그러나 이 흔해빠진 이야기를 내가 하자고 이 페이퍼를 쓴 건 아니다. 여자 두목, 여자 두목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아니샤는 감옥에서 보르이들을 알게 된다. 보르이란 갱단을 의미하는데 범죄 조직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아니샤는 갱단의 일원이 되어 국가에 대한 사적 복수를 감행하고자 한다. 여자는 안받아준다며 까다로운 원칙들을 적용함에도 불구하고 아니샤는 시키는대로 해서 일원이 되고 급기야 두목이 된다. 여자의 몸으로 갱단의 일원이며 두목이 되기까지도 힘들었지만,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 게다가 그들에게 국가에 대한 복수를 하자고 이끄는데도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남자 조직원들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줘야 하고 그들을 다루는데 계속해 신경을 쓰고 긴장을 해야 한다. 두목은 여자지만 조직원들이 전부 남자라 시도때도 없이 이들은 그녀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고 노리고 있다. 여자인 것이 영 마땅치 않은 거다.
그러던 차에 십대 소녀를 납치해오게 되고 이들 조직원중에 가장 인기 있는 '리코이'란 놈이 그 소녀를 강간하려고 한다. 이에 십대 조직원 '말리샤'가 같은 조직원을 총으로 쏘고, 이 일은 조직 내에서 시비를 가려야 하는 일이 된다. 리코이는 조직원을 다치게 한 '말리샤'를 처벌해야 한다 하고, 말리샤는 두목이 시키는대로 인질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했다고 한다. 아니샤에서 '프레이라'로 이름을 바꾼 이 브로이의 두목은 이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자 조직원들은 리코이의 편을 든다. 리코이는 자신의 변명을 한다.
"난 그저 그 여자애랑 한 번 하고 싶었어요. 그게 죕니까? 범죄자에게 그건 죄가 아니잖아요!"
그 말에 다른 보르이가 씩 웃었다. -p.194
리코이는 그 여자애랑 한 번 하고 싶었고 그건 범죄자에게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조직원들의 생각도 역시 같다. 만약 조직의 두목이 남자였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리코이의 말에 수긍했을 것이다. 조직원들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 두목이 남자였다면 자신들과 함께 이 일을 해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기대한다. 그동안 조직의 원칙대로라면 프레이라는 말리샤라는 소년을 죽여야 한다. 그녀는 리코이의 말을 들었던 것처럼 말리샤의 변명도 듣는다. 말리샤는 안전하게 지키라는 두목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한다.
말리샤가 지켜보는 동안 프레이라는 자신을 동그랗게 둘러싼 부하들 안에서 천천히 왔다 갔다 하면서 그들의 분위기를 판단했다. 여론은 말리샤에게 불리했다. -p.195
말리샤는 이 강간을 그대로 벌어지게 방치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말리샤 나름의 개인적 사정이 있다. 말리샤는 아직 동정이었고, 게다가 인질로 잡혀온 이 소녀에 대해 개인적으로 마음이 생겼다. 이 소녀를 좋아하게 됐다. 말리샤가 만약 지금 이 나이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이 상황-동정, 연정-이 아니었다면, 말리샤 역시 그 조직원들과 같은 행동을 했을런지도 모른다. 말리샤가 이 강간을 중간에 방해한 것은 '강간은 해서는 안될짓이다'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이들 조직에게 퍼져있는 인식은 '우리에게 강간은 죄가 아니다' 였지 않은가.
마치 신성한 것이라도 되듯이 그들이 보르이의 규칙을 들먹이는 소리를 들으며 프레이라는 그들에게 도통 자의식이란 것이 없다는 점에 경이로워했다. 그녀가 세운 조직의 규칙은 전통적인 보르이의 규칙들을 유지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깨고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예는 바로 그들이 여자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리이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다. 다른 도둑 집단의 두목들과는 대조적으로 프레이라는 국가와 아무 관계없이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녀는 국가와 국가를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녀는 부하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그 복수를 묘사하면서 국가도 그들의 조직보다 큰 라이벌 갱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녀는 국가에 대해 크나큰 원한을 품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심 보르이가 보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남자 지도자를 선호한다. 그들은 돈과 섹스와 술에만 관심을 쏟고 싶어 한다. 그들은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참고 있듯이 그녀가 국가를 상대로 복수를 기도하는 것도 그냥 참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참는 유일한 이유는 그녀는 똑똑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들에게 자금을 대며 보호해주었고 그들은 그런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다. -p.198
그들은 리코이를 대표적인 보르이로 보고 있다. 그들은 그의 성적 욕구를 자신의 욕구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p.198
리코이의 성적 욕구를 자신의 욕구처럼 받아들이는 남성들이다. 그러니 여자 두목이 달가울 리 없다. 그녀를 두목으로 삼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내내 그들의 불만이다. 게다가 이번 판결에 있어서 더 불만이 터져나온다. 프레이라는 리코이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리코이는 이에 분노한다. 그리고 반항한다.
"이년을 우리의 창녀로 만들자. 우리도 사내답게 살아보는 거야!" -p.205
그렇다. 여자 '두목'이지만 이 조직의 구성원들은 '여자' 두목에 항상 방점을 찍고 있었다. 불만이 터져나오자 가장 먼저 하는 말은 그녀를 성적물화 시키는 일이다. 만약 조직의 두목이 남자였다면, 그래서 반항하고자 했다면, 그 때 가장 먼저 나올 말은 무엇이었을까? 단언하건대, '창놈으로 만들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남자 두목을 죽여야 자신들이 '사내다워'진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프레이라가 이 강간시도범을 처벌하고자 한 것에는 '강간이 나쁜 일'이라는 인식이 가장 먼저 우선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프레이라는 프레이라 나름의 이 조직을 지켜야 할 위치에 있었고, 리코이의 말리샤 중에 한 명을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가 만약 '여자' 두목이 아니었다면, 이 강간시도가 두목 앞에 오는 일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사회적으로 여러 곳에서 여자들이 있어야 한다고,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의 우두머리가 '여자' 라면 상황은 여러가지로 달라질 수 있다. 여자가 '교사' 라거나 '상사'라거나 학생이나 사원보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도 성희롱을 비롯한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표면상 더 권위적인 자리여도 오히려 여자라며 깔보는 일들도 일어나지만, 그러나 그 조직 내에서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대응하는 건 달라질 수 있다는 거다. 여자가 우두머리가 된다고 해서 그 여자가 반드시 정의롭고 선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자도 한 사람의 인간이기 때문에 비리와 폭력에 앞장설 수도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여자도 인간이니까. 그렇지만 그 조직내에서 성범죄 앞에 '다른' 행동을 할 확률은 여자가 우두머리라면 아주 높아진다. 나만해도 몇해전 직장내 성희롱 사건을 공론화하면서 다른 여직원들에게 말했더랬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일어나면 나한테 말해' 라고. 일전에 여자 구청장이 '만약 사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된다면 내 개인핸드폰으로 연락하라'고 했던 일이 화제가 되었었다. 나도 살면서 잘못한 일이 많은 사람이고 빻은 말과 행동들을 숱하게 했던 사람이다.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나는 쌍년이기도 할 것이고 나쁜 인간이기도 할 것이다. 그 여자 구청장 역시 안티가 존재할 것이고 누군가에겐 어마어마한 욕을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여직원이 성희롱 당하고 울고 있는 걸 보면서도 가만 있는 남자 과장하고는 달랐다. 그럴 때 하지말라는 말을 한 번도 입밖으로 낸 적도 없고 자신의 일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남자'과장과는 달랐다. 사내에서 그런 일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남자' 임원과도 달랐다. 나는 그 일을 알게 됐고 알게 됐으므로 어쩔 수 없이 행동해야 했다. 자신 때문에 분위기 나빠질까봐 그저 울기만 했던 직급 낮은 직원과 달리, 나는 임원실 문을 열고 들어가 이 일을 얘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때 직급 있는 여직원들을 임원실에 같이 들어오게 했다. 이 일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그러니까 조직에 여자 상사가 있으면 심지어 우두머리가 여자라면, 달라질 수 있는 거다.
프레이라는 조직 내 남성들이 어떻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새끼들이 한 남성의 성욕을 자신들의 성욕과 같이 취급한다는 것, 강간을 범죄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프레이라가 여자였기 때문에 이 일은 프레이라 앞에 판결을 기다리며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지금보다 더 높은 위치에 그리고 더 넓게 퍼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에도 법원에도 구청에도 시청에도. 여자가 있다고 백프로의 확률로 성범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아주 많은 부분이 다른 식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성범죄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러 갔을 때 그 담당이 여자라면, 그 피해자는 억울해하며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적어질 수 있다. 성범죄 피해자가 재판을 받으러 갔을 때 그 변호사나 검사 판사가 여자라면, 가해자가 받아야 할 벌은 달라질 수 있다. 공개석상에서 디지털 성폭력 영상을 보자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김수정 변호사'의 책을 들고나와 읽기 시작했다.
몇 장 읽지도 않고 이런 구절을 만난다.
치마가 들춰지고, 마음대로 볼일도 못 보고, 남자아이들의 잘못으로 소문에 오르내려도 ‘행실 잘하라‘며 오히려 혼나던 여자아이들이
자라나, 남자 사진을 촬영해 유포하거나 남자로부터 당한 일을 그대로 되갚자며 똑같이 하려고 하거나, 혹은 하고 있다. 이른바
‘미러링‘이다. 여자들이 미러링하는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데, 내 눈에는 싫어하는 벌레가 온몸에잔뜩 들러붙었는데 이를
떼어내지 못해 몸부림치는 고통으로 느껴진다. 내 눈에 미러링은 여성의 비명이다.- P20
여자들이 아무리 미러링해봤자 원본을 어떻게든 이겨낼 수도 따라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미러링에 대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여자들을 얼마나 욕했던가. 그러나 김수정 변호사는 이 미러링을 '여성의 비명'으로 본다. 그렇게 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뒤는 지난 여름 매달 몇만명의 여성들이 불법촬영 그만두라고 시위했던 이야기로 이어진다. 매달 불편한 용기 시위에 나가 목이 터져라 외쳤던 사람으로서 이 부분에서 눈물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여성이 지금보다 더 많이 변호사여야 하고, 여성이 지금보다 더 많이 기자여야 하고, 판사여야 하고, 사장이어야 하고, 회장이어야 하고, 화가여야 하고, 가수여야 하고, 목사여야 하고, 피디여야 하고, 구청장이어야 하고, 시장이어야 하고, 국회의원이어야 하고, 총리여야 하고, 대통령이어야 한다. 여성의 비명을 알아채는 사람, 여성의 비명을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오늘 아침 사무실에 도착해 환기를 하고 커피를 내리면서 바깥을 보는데 또! 바깥이 예쁘다. 아직 어둑해서인지 빌딩들의 조명도 반짝거렸다. 이거슨 도시불빛.... 도시불빛 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자마자 <회전목마>가 생각났다.
저기 하늘 멀리로 애드벌룬
도시 불빛은 내게 위로일까?
낡은 조명을 켜고
좋은 음악을 틀고
할 수 있는 건 이것 밖엔 없네요
그래도 나와 함께
슬퍼하지 말아요
기뻐하지 말아요
다 지난 일이야, 이젠 잊어버려요
다시 바람은 불고
우린 함께 있으니
그래, 그대 눈물은 이제
시간에게 맡겨요
그대와 날 믿어요
늘 같은 하루라 모두 잊었겠지만
언제나 여기에서
난 이렇게 웃어요 이제
슬퍼하지 말아요
시간에게 맡겨요
사진으로 찍으니 도시 불빛은 잘 나오질 않는구나..
업무 시작하기 전, 보쓰가 출근하기 전에 준비할 것들을 준비해두고서는 벗어두었던 롱패딩을 다시 입고 내려둔 커피를 들고 그리고 핸드폰을 들고 정원으로 나갔다. 그사이 어둠은 물러가버렸네.
겨울 바람이 차지만 좋다. 오늘 노래도 좋았다.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이 노래는 내게 상징이 되었었지. 오랜만에 노래 들으면서 좋았다. 다시 바람은 불고 우린 함께 있으니. 크-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 토요일 점심에 아빠랑 같이 짜장면 시켜먹자, 고 내가 말했다. 엄마는 깔깔 웃으며 그것 때문에 출근하다 전화했냐 물으셨다. 나는 그렇다고, 코로나 때문에 짜장면 한그릇 먹으러 간지도 오래되었다고, 짜장면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알겠다고 탕수육도 먹자고 하셨다. 나는 "대자로 시킬거얏!" 했다. 그렇게 토요일 점심의 스케쥴이 생겼다. 나는 간짜장 먹을거야. 간짜장하고 탕수육 대자로 시켜야지. 탕수육은 거의 남을텐데, 그 남은 건 그 날 밤의 안주가 될것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줌으로 모임을 갖기로 했는데, 그때 탕수육 데워서 와인하고 준비해가지고 아이패드 앞에 두고 건배를 외쳐야지. 건배!
시간은 참 잘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