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이고 있었다. 핸드폰의 지도를 보고 가만있자, 3번 출구라고 해서 3번으로 나왔는데 그 다음 어느 쪽으로 가는거야.
지도를 보고 가려면 지도에 그려진대로 나를 맞춰야했다. 이 건물과 저 건물 사이의 골목길로 핸드폰의 방향을 일치시켜야만 내가 목적지를 향해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왼쪽으로 가야할 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런데 어제는 지도랑 내가 서 있는 곳을 일치시켜 방향을 잡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뭐여..그러니까 이게 여기라는거여 저기라는거여..핸드폰을 요케요케 바꾸고 있는데, 나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한 친구가 어쩐 일인지 뒤를 돌아보다가 길바닥에 멈춰서 핸드폰을 요케요케 돌려가며 움직이지 않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고, 나는 그렇게 친구가 가리키는 대로 쫄쫄 뒤따라가서 약속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는 지도를 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여기 전에 와봤어? 친구는 아니라고 했다. 아까 지도 봤잖아, 라는게 친구의 대답이었는데, 아니, 어떻게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지도 한 번 보고 끝내버리는가... 대단하다.........
나는 지도를 볼 수 있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도를 보고 길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린다. 그냥 지도보다는 네비게이션을 걷는 모드로 해놓고 따라가는 게 좀 더 쉬운데, 왜냐하면 그 경우에는 네비게이션 상에서의 내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목적지가 왼쪽에 있는데 내가 그쪽을 향해 가는지 아니면 반대쪽으로 걷고 있는지 금세 파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정된 지도라면 얘기가 다르다. 일단 내가 어디 서있는지 파악해야 하고 그 다음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야 한다. 내가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찾기 위해서는 긴 시간 지도를 들여다보고 주변 건물을 보면서 아, 그렇다면 지도의 방향이 이렇게 되는구나, 지도의 방향과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치시키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지도를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중간중간 오케오케, 여기 맞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주 많이, 으이크, 왜 여기까지 왔지? 목적지랑 전혀 상관없는데? 하는 일이 벌어져버려, 나는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제의 친구처럼, 일단 지도를 한 번 스윽- 보면 방향을 제대로 찾아내는 친구들이 있다. 나랑 같이 여행을 다니는 친구는 지도를 보고 나면 머릿속에 그게 똭 새겨지는 모양이었다. 한 번 보고나면 여기서 저기로 가서 저기로 가라고 나오는데, 이 골목으로 가면 좀 더 빠를것 같아, 막 이런게 돼? 칠봉이도 그랬다. 목적지까지 내가 지도를 보며 안내하고 있는데 가도 가도 안나오는 것 같고, 아아 나는 또 헤매이는가, 쪼그라들어 있으니 줘봐, 하고 지도를 보고서는 맞게 가고 있네, 하면서 성큼성큼 가버려...
대전의 수목원에 갔을 때였다. 그 때의 동행과 나는 수목원을 걷다 나와서 버스를 타기 전까지 한두정거장을 좀 걷기로 했는데, 우리가 가는 방향에 맞춰서 나는 핸드폰을 자꾸 고쳐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가면 네비게이션 안의 나도 앞으로 가야 하는거야. 가리키는 방향이 뒤쪽인데 내가 앞으로 가고 있으면 내 사고가 응용을 못해. 그걸 보고 동행이 막 웃었다. 너 똑똑한데(이 친구는 나를 되게 똑똑하다고 생각해준다. 좋은 사람 ♡) 지도는 못보는 거 너무 웃겨, 하면서. 본다니까? 다만, 방향을 일치시켜야 할 뿐이야...
뉴욕에 갔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그러니까 식당에 갔는데 밥을 다 먹고 나서 나가야 할 때, 출구가 아닌 커다란 유리창 앞에 가서 문이 왜 안열리지? 갸웃 거리고 있었던 것. 그러자 동행이 빵터져서 '너 거기서 뭐하나 했어, 우리 여기로 들어왔잖아' 하며 다른 문을 가리키는 거다. 나는 한 번 간 곳, 처음 간 곳에서는 너무나 헤매인다. 들어갔던 문으로 나가는 것도 못해... 내 여행친구와 칠봉이는 며칠을 함께 묵던 호텔에서조차도 객실 밖을 나서면 엘리베이터가 어디있는지 방향을 알려줘야 했다. 문밖에 나오는 순간 나는 난 누구 여긴 어디? 이렇게 되어버려. 나와 함께 낯선곳에 자주 갔던 이들은 걍 으레 그렇듯이 나를 엘리베이터가 있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자연스럽게. 어깨를 잡고 혹은 손가락으로 방향을 표시하면서.
오늘 아침에 갑작스레 이런 일들이 떠오르면서,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그 과정이, 그러니까 목적지에 가기 전에 주변에 뭐가 있나 살피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러다 가면서도 수시로 내가 맞게 가고 있나 혹은 틀리게 가고 있나를 들여다보는 그런 과정들이, 내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도를 보고 목적지로 가는 것이 자신의 삶과 비슷하다, 라고 모두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비슷하다. 특히나 자꾸 수시로 멈춰 내가 맞게 가는가, 길을 잘못들진 않았는가 살피는데 있어서는 더 그렇다. 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 앞에서 내게 몇 번이나 되묻고, 시간이 좀 지난 후에는 '시간을 돌려도 다시 그 선택인가?' 또 멈춰서기도 하니까.
다른게 있다면 어제의 친구처럼, 내 여행친구처럼, 내가 길을 찾지 못한다는 걸 알고 누군가 도와주는 것은, 정말로 지도를 보고 길을 찾을 때 뿐이라는 거다. 여행지에서도 나는 서투른 영어로 길을 묻고 낯선이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는 딱히 방향에 있어 도움을 받게 될 일이 없어.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운이 좋은 누군가는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앞으로 착착 나아가고 또 누군가 끌어주거나 밀어주거나 방향을 가리켜 줄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런 식의 방향에 대한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마도 남들보다 더 느리지 않나, 라는 생각을 수시로 하게된다. 여기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다 내가 찾아냈고 내가 들여다보고 내가 멈춰서고 내가 걸어서 왔으니까. 앞선 누군가가 나를 보고 여기로 가면 어때, 이건 어때 라는 식으로 수많은 인생의 방향에 대해 알려주었다면 나는 전공을, 직업을, 취미를 다르게 갖게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내가 지금 서있는 이 자리를 싫어한다거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나에게 수시로 물었던만큼 내가 여기까지 잘 왔다고 생각하고 또 많은 선택들에 있어서 정말 잘했다고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해주기도 한다. 다만,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었다면 조금 더 빠르게 갔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하는거다. 인생에 있어서 기쁜 순간 행복한 순간 평온한 순간들이 찾아온다면, 그건 좀 더 빨리, 가급적 더 이른 나이에 찾아오는게 좋지 않을까. 순간의 판단 실수로 어떤 관계에 대해서 혹은 어떤 실적에 대해서는 '하, 그때 그러지 말걸, 내면에서 하는 말을 애써 무시하지 말걸' 하는 후회도 당연히 찾아오지만, 대체적으로는 잘 온 것 같다. 그간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나는 머리로 하는 생각도 중요하지만 내 감각이 말하는 게 더 중요하고 더 옳은 방향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각과 감각은 전혀 동떨어진 게 아닌, 서로 연결된 것이지만. 내 마음과 감각이 '그러지마' 라고 하는 것을 때때로 머리가 '괜찮아' 하고 억지로 시키려고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내 감각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지만 앞으로 더 나아져야 해. 나는 나를 괴롭히는 결정을 하지 않겟다.
거의 40일만의 외식이었다. 누군가를 만나 함께 밥먹은 지도 오래되었는데, 반가웠다. 세 명이서 각자 다른 음료를 앞에 두었다. 한 명은 소주, 한 명은 맥주, 한 명은 콜라... 하하하하하하하하. 외계인과 섹스해서 지구를 구한 나의 과거의 꿈에 대해 얘기했다가 '너는 한 번이라도 외게인과 섹스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거야!'라는 얘기를 듣고 아냐, 아냐, 그럴리 없어! 열심히 나를 변호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로이트 까기 전에 프로이트를 좀 알아야 할 것 같아, 얘기했고, 우리 푸코 같이 읽으면 어떨까, 얘기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어느새 집에갈 시간이 되었는데, 약속장소에서 집이 가까웠단 말야. 지하철 역으로 모두 합쳐 열정거장도 안될텐데, 집까지 한시간 이상 걸렸다. ㅠㅠ
일단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린게 8분쯤 되었고 ㅠㅠ 그다음 오금에서 5호선을 기다린게 15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강동역에 도착했더니 마천행이 들어올 예정이래. 상일동행은 안내판에 언제 올지 뜨지도 않아 ㅠㅠ 집에 오니 열한시가 넘어있었고 기진맥진했다.
목적지에 간다는 게 이렇다. 내가 혼자 결정하고 혼자 걸어가는 이 길, 알던 길이라도, 지하철의 아다리가 안맞으면 이렇게 시간이 곱 이상으로 들어버려. 빈번하게 나는, 그리고 우리는, 목적지로 가다가 멈춰 서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길을 잃고 헤매여야 한다.
오늘도 평소처럼 일찍 일어났고, 내 수면시간은 그로므로 극히 짧았고, 바로 몇시간전에 머물렀던 역들을 다시 거쳐서 사무실에 도착했다.
집에서 직장까지의 거리가 편도 한시간 이상이 걸린다. 이십년쯤 이걸 반복하다보니, 내 앞으로 남은 직장생활은 얼마일까, 남은 동안이라도 좀 편하게 다니자, 하는 마음이 불쑥 생겨서, 얼마전에는 회사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 가장 싼 집을 알아보았다. 월세를 내서라도 회사 앞에서 다니고 싶다, 그러면 얼마나 편할까, 일어나서 샤워하고 문밖을 나서면 바로 회사야. 그래, 돈 아깝게 생각하지 말고 1,2년이라도 편하게 다니자! 하고 알아보았는데, 모텔같은 원룸, 아주 작은 원룸, 현관문을 열면 바로 그냥 룸 하나만 딸랑 펼쳐진 그 곳이 월세 90만원이었다. 호기롭게 월세가 얼마든 내겠어! 하였지만 90이라는 구체적인 가격을 보자 아니다.... 하게 되었다. 이번 생에서 편한 삶은 이 직장을 관둬야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다시 태어나야지.
좋아하는 다정한 친구가 일전에 '존 버거'의 《결혼을 향하여》를 추천해주어 사두고 아직 읽지 않았는데, 어제 이 책의 개정판 소식을 들었다.
표지 너무 좋구먼... 이걸로 새로 살까?
궁금한 신간들도 쏟아져나왔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매번 사두고 안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왜냐하면 이것이 지난주이므로...
그러므로 책 안사, 안사, 안살거야, 안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