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며칠간 병원에 입원을 했다. 살면서 입원은 처음이었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섯 권의 책을 준비해갔다(아무것도 안하고 책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조용히 읽으며 그 시간을 온전히 휴식에 집중하고자 한다면, 나는 1인실에 묵어야 했다. 1인실에 묵으면서, 병원에서 내어주는 밥을 먹으면서, 그리고 가져온 책들을 읽자, 나는 그리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것이던가.
한 달전에 미리 1인실에 입원하겠노라 예약했지만, 병원측에서는 1인실에 빈자리가 없다고 했다.
1인실에 빈자리가 없을 수가 있나? 나는 당황스러웠다. 1인실은... 돈만 있으면 병원에서 얼씨구나 하고 받아주는, 그런 병실이 아니란 말이야? 1인실보다 더 좋은 특실은 자리가 있었지만, 1인실보다 하루에 30만원이나 더 비싸서, '나 돈 좀 써보겠다!' 작정했던 나였어도 차마 특실에 묵을 수는 없었다.
"2인실은요?"
"거기도 자리 없어요."
나는 하는수없이 5인실에 들어가야했다.
5인실도 일반병동과 간호병동이 있다 했다. 간호병동은 하루에 2만원 정도를 더 줘야 하는데, 간호사가 더 많이 배정되어 있고 집중적으로 돌보아주기 때문에 밤에 병실에서 보호자가 함께 자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간호병동으로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살면서 처음, 입원했다.
5인실이 소란스러우면 어쩌나 했던 염려와 달리, 네 개의 침대가 비어있었고, 오호라, 나는 내가 원하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창가 옆이었다. 창가 옆에 자리잡고 커튼을 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짐을 꺼냈다. 그리고 이렇게, 가져간 책을 꺼내두었다.
히힛 씐나. 나 포함 사람 두 명이고 그래서 병실 조용해. 창가 옆이라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도 잘 들어와. 굳이 1인실 갈 필요 없겠어. 나는 중간에라도 자리가 나면 1인실로 바꿔달라 요청하였지만, 이정도라면 5인실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빈 병실은 금세 채워졌다. 나 포함 다섯 명의 환자들이 금세 자리를 잡게 되었고, 당연히 보호자들도 따라왔다. 엄마는 수술을 앞둔 나를 두고 안타까운 마음에 쉬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셨고, 혼자 있고 싶은 나는 엄마가 자리를 뜨지 않아 답답했다.
엄마 가, 가, 가란 말이야. 나 혼자 있고 싶어!!
그렇게 발걸음 안떨어지는 엄마를 겨우 돌려보냈건만, 아아, 세상은 정말이지 어쩌면 이렇게나 제멋대로인가요... 혼자이되 혼자가 아니었으니, 병실 안이 시끄러운 거다. 게다가 할머니 한 분은 목청도 너무 크시고 잠시도 수다를 참지 않으시며 게다가 매사가 다 부정적이었다.
흑흑. 1인실 자리나면 당장 옮길거야 ㅠㅠ
나는 초저녁부터 잠을 잤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밤 시간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 덕분에 이디스 워튼을, 마이클 코넬리를 읽었는데, 이디스 워튼의 책에다 옮긴이 무슨 짓을 한거냐... 이건 따로 욕해주마... 아무튼,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시간대를 달리하자, 생각했다.
수술 당일날은 그게 쉬웠다. 수술을 하고나자 잠이 쏟아져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으니까. 깨어있는 시간은 곶..통... ㅠㅠ 너무 아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 다음날 부터는 병실의 모든 분들이 한마음 되어 수다를 떨 때(애초에 우리 커튼 걷고 수다떨자! 라고 얘기를 하시더라), 나는 책을 들고 휴게실에 가거나, 병원에서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걸어야 한다고 해, 복도로 나가 아픈 배를 부여잡고 걸었다.
그리고 중간에 다시 체크했다. 혹시 1인실 자리난 거 아직도 없느냐고. 병원에서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네.... ㅠㅠ
밥 시간... 밥 먹는 시간에는 나도 그 분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다른 분들은 친절하게 어디가 아파서 들어온거냐 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물으셨고 또 본인들의 이야기도 하셨다. 다들 자랑할 것들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아픈 사연들도 갖고 계시더라. 내가 시끄럽다고 했던 할머니 한 분은 모은 돈을 아들이 사업한다고 가져갔다고 했지만, 수술하는 날에도 아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퇴원할 때까지 할머니의 아들은 한 번도 오질 않았어. 한 아주머니는 형부의 사연을 말해줬는데, 들으면서 내 마음이 어찌나 아프던지. 본인의 얘기를 마치고나서 아주머니는,
"문을 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라요."
하시더라. 문을 열기 전에는 그 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고. 저마다 문을 가지고 있지만 그 문을 열면 또 각자의 사정들이 있다고. 나는 아주머니께
"혹시 안나 카레니나 읽어보셨어요?"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안나 카레니나에는 이런 문장이 나와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p.11)
수술을 마치고나면 두 시간동안 잠을 자서는 안된다. 그런데 잠이 쏟아져. 옆에서 남동생이 계속 머무르며 누나, 자면 안돼, 일어나, 돌봐주었고, 매일 찾아와서는 내 침대 옆에 앉아 자기 일을 하거나 나랑 수다를 떨다 갔다.
수술 다음날에는 친구가 찾아왔다. 나는 병원 1층의 밥집과 커피숍으로 친구를 데려가 오랜만에 한참 수다를 떨었다. 친구가 나 주겠다며 과일과 빵을 사왔는데, 으으, 크림가득한 빵을 나는 당장 먹을 수가 없어 눈물을 흘립니다...
퇴원 후에는 집 근처까지 찾아와준 친구를 만났다. 네시간 이상을 정신없이 수다 떨었는데, 콜드브루 를 마시던 친구와 자몽허니블랙티를 마시던 나는 박준과 이제니를 얘기하고, 성의 변증법을 얘기했다. 각자의 실패한 연애에 대한 얘기부터 버지니아 울프 전집까지.
아,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사는 게 좋은 사람. 이래야 행복한 사람이야! 나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친구가 필요해!
결국 나는 5인실에 입원하고 5인실에서 퇴원을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발길 떨어지지 않던 우리 엄마, 수술실에 나를 들여보내면서 펑펑 울던 엄마는, 다음날 부터는 '나 안가도 되지?' 전화 한통 하시고는 오지 않으시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매일 들르던 남동생에게도 '야, 걔 혼자 있고 싶어해, 가지마' 이러시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 처음엔 집에 가지를 못하더니, 이제는 오지를 않더라?" 하니 엄마 빵터져서 웃으셨다. ㅋㅋㅋㅋㅋ
오롯이 혼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조용히 있고 싶었기 때문에 5인실에 있었던 것은 불편했지만,
그러나 그 안에서 입원한 다른 분들이 다 너무 친절하셔서 짜증냈던 내가 좀 미안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는 모두 "잘 하고 와요, 잘 될거야." 하며 인사해주셨고, 밥을 먹을 때면 '반찬 가져온 것좀 줄까요?" 챙겨주셨고, 잠이 들라치면 커튼을 쳐주셨다. 수술 후 걷는 운동을 시작할 때는 '젊어서 회복이 빠르네', 다들 감탄하시고, 할머니는 '저렇게 꼿꼿하고 예쁜 사람이 여긴 왜 와있어' 하셨다. 퇴원할 때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나와 배웅해주셨다. 건강하게 지내라며.
유독 목소리 크고 늘상 수다인 할머니에게 짜증이 났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할머니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외로우셨겠다, 너무. 누구든 붙잡고 얘기를 하셔야 했겠어.
출근을 했다. 미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소포가 도착했다.
소포를 뜯어보니 그 안에는 늘 사야지 마음먹었던 라벤더 오일과 tea, 그리고 아프지 말라는, 쾌유를 바란다는 간단한 내용이 적힌 카드가 있었다. 그 두 줄이 마음에 와 박혔다.
어제 자기 전에 라벤더 오일을 살짝 손에 덜어 귀 뒤와 목에 조금 발라주었다. 라벤더 오일은 숙면을 도와준다고 했다. 내가 몰랐기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이 떠올랐다. 몇 해전 여름에, 그 때 우리가 함께이던 그 밤에, 그 때 내가 오일을 알고 또 가지고 있었다면, 오일을 발라줄 수 있었을 텐데. 몰라서 하지 못했네. 몰라서 하지 못했던 게 너무 아쉬웠다. 다음에, 다음에 가능하면 그 때는 내가 라벤더 오일을 준비해갈게. 그리고 자기 전에 발라줄게, 숙면을 취하도록. 왜냐하면 나는 코를 고니까.. (응?)
회복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