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사진은 방금 찍어서 따끈따끈한 제 책상 위 미니 책장입니다. 6권이나 꽂혀 있군요. 여기에는 산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메인 책장에 입주하지 못한 책이나 조만간 읽겠다고 계획한 책이 꽂혀 있을 때도 있습니다만, 지금은 그런 책은 없네요. 맨 오른쪽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며칠 전에 완독했으나 아직 꽂아 놓은 북다트를 제거하지 않은 탓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읽는 중인 책은 5권이네요. <니체 극장>은 주로 자기 전에 읽는 책,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과 <은둔 기계>, <끝과 시작>은 심심할 때 꺼내서 한두 페이지씩 읽는 책입니다.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은 작가들이 세계문학전집에 속한 문학을 하나씩 소개하는 책이고, 참여한 작가만 무려 134명(!)(글쓰기가 업인 사람들은 서평이나 독후감을 어떻게 쓰나 궁금해서 샀는데 824페이지에 8000원이라 가성비까지 굿ㅋ), <은둔 기계>는 단상 모음집, <끝과 시작>은 시집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 권은 한 호흡에 읽기 애매한 책이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니체 극장>은 보시다시피 벽돌입니다. 이런 책은 완독이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기 전에 읽는 책으로 임명해서 제 부담을 덜고, 적당히 노잼이기 때문에 수면 도우미로도 씁니다.
메인은 <교만의 요새>인데요. 메인으로 읽는 책은 보통 1권 아니면 2권입니다. 이런 책은 빠르면 하루, 늦어도 일주일 내로 다 읽게 되고요. 2권씩 읽는 경우 조합은 비소설-비소설일 때도 있고 비소설-소설일 때도 있지만 소설-소설인 경우는 없습니다. 잠자냥 님도 말씀하셨는데, 소설을 두 권 동시에 읽는 건 몰입에 방해가 되더라고요. 뭔가 주인공 둘을 동시에 사귀는 것 같기도 하고(좋은데?!)....
정리하자면, 호흡이 뚝뚝 끊기는 책(산문집, 아포리즘, 시집)은 주로 심심할 때 펼쳐 읽는 용도로(언제 완독할 지 모름), 두꺼운 책은 천천히 완독을 목표로, 그 외의 책은 한 권이나 두 권씩 메인으로 삼아 읽습니다.
2. 도서관에 신청도 하시고 전자책도 구입하시는 것 같은데 도서관 신청 or 전자책 구입 or 종이책 구입은 어떤 기준인지?
전공책을 뒤적여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습니다(전공책 너무 비싸서 필요하다고 다 사면 거덜남). 제가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집에 썩히고 있는 책을 읽기에도 바쁘기도 하고 전 남의 손을 탄 책을 싫어합니다(같은 이유로 절판이 된 경우가 아니라면 중고책도 구입하지 않는 편). 근데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1빠로 대출하면 새 책을 읽는 것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아직까지 한번도 이용하지 않은 걸 보면 그냥 귀찮은가 봅니다. 하지만 저의 이용 빈도와는 별개로 도서관은 정말 사라져서는 안 되는 공공문화시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밖에 나가면 다 돈인 요즘 같은 시대에 무료로 장소 제공해주고, 에어컨 틀어주고, 책 읽게 해주고, 심지어 계속 읽고 싶으면 집에 가져가서 읽으라고 빌려주기도 하는 곳이 존재한다니! 도서관 최고!
전자책은 구입하지 않은 지 꽤 오래 됐습니다. 예전에 크레마 사운드를 사용하기도 했고, 편리성으로는 종이책이 전자책과 이북리더기 조합에 비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편리성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종이책이 압도적으로 좋다고 생각하기에 종이책만 구입하고 있습니다.
일단 전자책은 구입해도 제 책 같지가 않더라고요. 종이책에 비해 저렴하다지만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돈 주고 샀는데 앱을 끄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으니 손해 본 느낌이 들더랍니다. 내 돈 가져가고도 소장욕을 충족시키지 않는 전자책.... 넌 탈락이다.
사실 더 크게 와 닿은 전자책의 단점은 집중의 어려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디지털 화면에서 활자를 읽을 땐 종이에 인쇄된 활자를 읽을 때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F자 읽기였나? Z자 읽기였나? 그러니까 원래 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고, 다음 줄로 내려가서 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디지털 화면을 통해 활자를 읽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추적해 보면 저런 알파벳 모양이 찍힌다는 겁니다. 건너 뛰고 대강 읽는다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디지털 화면에서 접하는 글은 SNS나 커뮤니티의 글, 인터넷 기사 정도이다 보니 대강 읽어도 상관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제 문제는 이미 디지털 화면에서 글을 읽는 방식이 습관화돼서 그 화면으로 이북을 읽을 때도 동일한 방식으로 읽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다 건너 뛰고 읽는 절 발견했어요. 내 돈 가져가고 집중력도 가져가는 전자책.... 넌 탈락이다.
밀리의 서재도 현재는 이용하지 않고 있는데요. 처음 결제했을 땐 신세계를 발견한 듯 했습니다. "9,900원에 누워서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다고? 개꿀ㅋ" 하면서 신나게 읽고 싶은 책들 찜해 놓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미 언급한 집중력의 문제도 있고, 구독 앱 특성상 선택지가 과하게 주어지다 보니 넷플릭스 메인 화면에 시청 중인 콘텐츠가 쌓여가는 것처럼 이 책 읽다가 저 책 읽다가 결국 다 건드려만 놓고 완독은 하나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랍니다. 그래서 구독 해지했습니다. 내 돈 가져가고 찍먹만 하게 만드는 밀리의 서재.... 넌 탈락이다.
마지막으로 전자책에는 감성이 없습니다. 감성이! 독서 행위의 즐거움은 내용에도 있지만 책의 물성과 행위 방식에도 있지 않습니까? 새 책 냄새를 맡고, 책을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고(?), 손 끝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책장이 점점 왼쪽으로 쏠리면서 완독에 가까워지는 게 눈에 보이는 그 느낌. 전자책은 그게 없잖아요. 내 돈 가져가고 감성도 안 채워주는 전자책.... 넌 탈락이다.
3. 읽은 책은 다 100자평 남기시는 건가요?
이건 정말 잠모알이 목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난 잠자냥 님의 모든 걸 알고 싶고 잠자냥님이 읽는 모든 책이 궁금한데, 잠자냥 님 서재에 100자평이 자주 올라오기는 하지만 혹시 읽고도 안 올리시는 책이 있는 게 아닐까?" 없다고 하시네요!
저는 100자평 쓰는 거 어려워서 다 안 씁니다.
4. 막상 읽어보니 별로라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가는 책은 미련 없이 덮으시는지 아니면 그래도 붙잡고 완독하시는지?
질문 중에 이게 요새 골칫거리였습니다. 읽다가 별로면 흥미 팍 식고, 니 돈 주고 샀는데 그래도 읽어야지.... 내가 왜 취미생활을 하면서까지 지겨워야 되지? 그래도 니 돈 주고 샀잖아.... 근데 읽기 싫다고!의 반복.... 그러다가 항상 덮습니다(근데 항상 고민은 함). 화가 님처럼 저도 덮으면 대개 초반에 덮는 것 같기는 해요. 일단 중반까지 읽었으면 읽을 만 했던 거고, 그 정도 읽었으면 조금 지겨워도 끝이 보이니까 다 읽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 목록에 3점 밑은 거의 없습니다. 3점 미만으로 별점 줄 책은 애초에 덮기 때문.
근데 답변해 주신 분들 다 붙잡고 읽으시는 편이네요? 저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요(상상만 해도 괴로움).... 그럼 왜 물어봤지?
5. 중고로 팔아버리는 책과 남기는 책은 어떤 기준인지?
남의 중고책은 거의 안 사지만 제 책은 중고로 자주 팝니다. 알라딘에서 사고 다시 알라딘으로.... 그저께도 대한통운 기사님한테 31권의 책을 넘겨서 아마 오늘이나 다음 주 월요일에 알라딘에서 11만원이 입금될 것 같습니다. 31권을 팔았는데 11만원이라니! 그것도 값 나가는 소수의 책이 다 한 거고 대부분 2천 원, 3천 원.... 비싸게 주고 산 책들이 똥 값이 되는 걸 볼 때마다 똥 페티쉬 있는 인간한테 내 똥을 팔아도 이것보단 쳐주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한테 팔면 돈은 더 받겠지만 그럼 택배를 31번 부쳐야 되고.... 음, 알라딘 중고서점 사랑합니다. 내가 이고 가지 않아도 팔 수 있게 해주는 것에도 대단히 감사.
기준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읽고 좋았던 책은 당연히 남기고, 시리즈도 남기는 편이고..... 이번에 팔 책 정리하면서 혼자 어이없어 했던 건 별로여서 덮었는데 왠지 안 팔고 싶은 책이 있던 거(곰곰이 생각해 봐도 왜 굳이 남기는지 모르겠는데 왠지 남기고 싶음), 재미 없어서 읽다가 중단했는데 두껍고 책등 멋있는 책은 남긴 거(어차피 집에 사람 안 데려와서 책장 볼 사람 나밖에 없는데 왜? 자취 5년차 은오의 집 현관을 넘어선 사람 목록: 엄마아빠 세트(3회), 친구 한 명(1회), 에어컨 분해청소 기사님(4회), 계약 연장하러 온 집주인(1회), 주방 서랍장 고쳐주러 온 집주인 아들(1회), 당근마켓에 올린 소파 가지러 온 커플(1회).... 집에 사람 데려오는 거 싫어함. 갑자기 생각난 거. 며칠 전에 에어컨 청소 기사님이 자기가 와본 집 중에 내 집이 제일 깨끗하다고 연신 감탄했다. 깨끗한 집 원하는 분들 결혼 신청 하세요. 대신 전 요리하는 거 싫어하니까 요리하셔야 합니다).
6. 책 구입하실 때 중점적으로 보시는 게 뭔지? 평소 믿고 보는 작가라면 그냥 구입해도 되겠지만 아니라면 저자 이력이나 뭐 소재나 상 받은 목록이라든가 뭘 주로 보시는지. 더해서 이런 책은 아묻따 거른다 하는 것도 있으실 텐데 궁금합니다.
답변이 가장 필요했던 질문입니다. 저는 그냥 꽂히면 꽂힌 대로 막 사기 때문에 막 사지 않기 위해 질문했어요. 하지만 다락방 님도 막 산다고 하셨으니 잠시 그렇다면 나도! 했지만 저는 부장님이 아니기 때문에 꼼짝없이 거지가 되었고....
신나게 갈기고 보니 알맹이는 없고 TMI만 넘쳐나는 페이퍼가 되었습니다. 하나도 도움 안 된다고요? 제가 도움이 필요해서 질문한 사람이었으니까 봐주십쇼. 책나무 님께서 댓글로 말씀하신바 예전에 알라딘에 릴레이로 답변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거 정말 릴레이로 해도 재밌을 것 같네요. 지목을 하려고 생각해 보니 특히 궁금한 몇몇 분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적고 보니 다른 분들이 섭섭해하실 것 같아 지웁니다. 너한테 호명 안 돼도 안 섭섭하다고요? 그럼 제가 섭섭합니다. 아, 그냥 이 페이퍼 읽은 분들 다 심심하실 때 이어서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