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드라마와 일본 경제 정책의 은밀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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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하나의 사랑>의 주연, 아야세 하루카와 가메나시 가즈야 | |
얼마 전 한 드라마가 종연을 맞이했다. 한국에도 알려진 인기 그룹 TOKIO의 멤버(수많은 남자 아이돌을 배출하며 한국에도 잘 알려진 쟈니스 사무소에 속한 그룹이다)인 나가세 도모야(長瀬 智也)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조폭 No.2를 연기하며 호평을 받은 <마이★보스, 마이★히어로(マイ★ボス マイ★ヒーロー)>의 후속 드라마이자, <KAT-TUN>의 멤버인 가메나시 가즈야(龜梨 和也)가 주역을 맡은 니혼TV의 <단 하나의 사랑(たったひとつの戀)>이 그것이다. 이 드라마는 시작되기 전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시청률 10퍼센트를 간신히 유지하며 지난주 토요일에 종연을 맞이했다. 가메나시 가즈야의 입장에서 보자면 3분기 드라마인 후지TV의 <사프리(サプリ)>에 이어 연속으로 조기 종영한 작품이 되어버렸지만, 내가 제작자도 아닌 이상 그렇게 상관할 필요도 없고, 그 이유를 논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 이 드라마의 지지부진한 성적에 대해서 다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한국에는 있고 일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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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족 여성이 등장하는 한국판 신데렐라 이야기, <열아홉 순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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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전의 인기를 누린 일일극 <굳세어라 금순아>의 한혜진, 강지환 | |
자주 방문하는 ‘씨네 블로그’ 중 하나인 <검정에 더 가까운 파랑>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아이디 ‘tulipfest’라는 블로거가 있다. 이 블로거에 의하면 <단 하나의 사랑>은 ‘고졸 학력, 집안일은 망하기 직전, 어머니는 술집에 하나뿐인 동생은 병으로 고생 중인, 가진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남자 주인공’과 ‘대학 재학생, 잘나가는 보석 체인점 사장 아버지, 화목한 가정 등 모든 걸 다 가진 여주인공’이 연애하는 이야기이다. 덧붙이자면, 세상물정 모르지만 처음 꽂힌 필에 정신 못 차리는 여주인공 덕분에 이 사랑이 유지된다는 얘기다. 이 블로거는 어디서 본 듯한 이런 이야기가 “계절과 날씨를 생각하면 꾸미기에 따라서 충분히 먹힐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실패의 분위기로 흐르는 이유란, 사랑을 ‘단 하나’로 한정한 제목의 이미지와 현재 볼 수 있는 이야기의 차이가 건너지 못할 강만큼이나 너무나 크고 애절함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작가의 설명과는 달리 그들의 사랑은 마치 소꿉장난처럼만 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나로서도 대부분 수긍이 가는 이야기이다. 한 가지, 위에 인용한 구절에서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라는 말에 대해서 보충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그가 얘기한 ‘어디선가’는 바로 ‘한국에서’를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잠깐만 생각하더라도 <파리의 연인>부터 <열아홉 순정>, <굳세어라 금순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드라마 제목이 연속해서 떠오를 만큼, 한국 드라마에는 신분이 다른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많다.
그에 비해 일본의 경우는, 후지TV의 4분기 드라마 <배우의 혼!>에서 모리야마 미라이(森山未來)가 연기하는 연예 사무소 경리담당자와 가토 로사(加藤ローサ)가 연기하는 부잣집 딸 여배우와의 사랑이 서브 스토리로서 나왔지만, 결국 모리야마 미라이 역시 부잣집 아들임이 밝혀진데다가, 서로의 아버지가 라이벌이라는 ‘로미오와 줄리엣’ 상황도 최종적으로 해소되어 버렸다. 이외에도 과거의 드라마들 중에서도 이렇다 할 예를 쉽게 찾을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멜로드라마와 일본의 일억총중류의식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이런 경향 뒤에는 아무래도 일본사회의 ‘일억총중류의식(一億總中流意識)’이 있는 것 같다. 일억총중류의식이란, 종신고용 이후에 전 국민의 90퍼센트가 스스로를 중류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조금만 힘내면 자기 집, 자가용차, 그리고 고급 가전제품 등의 내구소비재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다시 말해 자력으로 신분상승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게 된 1960~70년대에 강하게 퍼진 국민의식이다(하지만 실제로 경제적인 격차나 사회적 차별이 없었느냐는 문제는 다른 이야기다). 사람들이 그런 ‘신념’을 믿었던 시절에는 신분 다른 사랑 이야기를 실감 있게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반면 지난주에 지적했듯이 1990년대 이후 고이즈미 정권의 경제 정책(미국형시장원리주의, 신자유주의의 도입)으로 인해 일본 사회가 격차사회로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사랑>같은 드라마에 대중들이 별로 설득당하지 않았다는 걸 보면, 실제 상황과는 달리 일본인들의 내면에는 아직 일억총중류의식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차기 정권인 아베 정부가 효과적인 경제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한, 이런 경향에 제동을 걸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경제정책의 방향에 따라 <단 하나의 사랑>같은 드라마가 전성시대를 맞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드라마의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가 유행하는 날이 온다면, 조기종영의 불운한 드라마인 <단 하나의 사랑>이야말로 그 선구적인 드라마로 간주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