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주목하라. 최근 출판계에 우리 고전을 원전으로 하여 조선시대의 미시사와 일상사를 파헤치는 저작물들이 쏟아지고 있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이승수), ‘간찰’(심경호), ‘조선의 문화공간’(이종묵), ‘선비답게 산다는 것’(안대회), ‘다산선생 지식경영법’·‘18세기 조선지식인의 발견’·‘스승의 옥편’(이상 정민) 등. 이러한 흐름의 한복판에 정민(47·한양대)·안대회(46·명지대) 교수가 있다. 한문학을 전공한 두 학자는 한문고전들을 번역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인문서들을 펴내며 출판계 고전붐을 주도하고 있다. 두 사람이 지난 22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출판계의 고전 열풍과 고전의 가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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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학자인 안대회 교수(왼쪽)과 정민교수는 “미개척 분야인 우리 고전을 발굴하고 번역해 독자와 소통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지윤기자 |
안대회 교수=고전이라고 하면 중압감부터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무거운 소재를 다룬 게 많다보니 흥미있는 읽을거리로 대하기에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지요. 그러나 최근에는 이를 쉽게 풀어쓰고 다양한 소재, 이야기로서 다가가다 보니 독자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민 교수=그간 거대담론과 민족담론 위주로 고전을 받아들이다 보니 사람의 체취는 없고 이데올로기만 전달되는 경향이 있었지요. 그러나 최근 달라진 책을 보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까’ 하며 동질성을 느낀 것이 독자들이 호응하는 바탕인 것 같습니다.
안=최근 들어 젊은 학자나 작가들이 고전을 새롭게 풀어쓰는 작업들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런 작업이 고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성호사설’의 원본이나 번역본을 읽기는 어렵지만, 젊은 학자들의 글을 통해서 이익의 생각이나 사상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되는 거죠.
정=매체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된다는 것도 특징이죠. 아이들은 ‘만화 삼국지’를 읽으면서 모든 고사를 이해하지 않습니까. 고전이 동화로, 애니메이션으로 재가공되기도 하고요. 또 원전으로 다가가는 가교 역할을 해주는 출판물이 많아졌죠. 결국 고전을 전달하는 방식, 소통과 콘텐츠 가공의 문제이지 않나 싶습니다.
안=고전을 새롭게 전달하는 방식 중 하나가 문학작품이지 싶습니다. ‘방각본 살인사건’ 등 김탁환씨의 소설이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요. 한승원씨의 ‘흑산도 하늘길’도 그렇고요. 김탁환씨는 18세기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소설로 각색을 했는데 문예적 가치도 있고 시대를 바라보는 현재의 새로운 시각도 담겨있어 그 시대를 재구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 고전뿐 아니라 중국과 서양의 고전도 새롭게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키케로의 ‘수사학’을 봤는데 역자가 직접 라틴어 원전을 번역하고 상세히 주석을 달아서 상당히 좋은 작업이다 싶었습니다. 이러한 고전 붐은 최근 부각되고 있는 논술 고사의 영향도 있겠지요.
정=서양고전이나 중국고전의 경우 이미 검증된 글들이 번역돼 소개되고 있지만 우리 고전의 경우는 자가발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콘텐츠를 요리하는 수준이 서양의 저작들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최근에 이에 부응하는 저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꼭 논술열풍과 연결지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이같은 움직임은 논술열풍이 일기 전부터 있었으니까요.
안=최근 논술 대비를 위한 고전 축약본 등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는데, 이런 책들이 오히려 고전의 이해를 가로막는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정=고전을 이야기할 때 자꾸 논술문제가 거론되는데 고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식견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 문제를 해결하는 안목의 열림 등을 고전을 통해 얻어야 하고 또 이를 목표로 삼아야 됩니다. 사유의 힘을 일깨워주는 고전읽기가 되어야 하는데 원전 그대로 읽으면 재미없는 경우도 있죠. 아무리 ‘열하일기’가 재미있다 하더라도 일반독자가 읽기엔 무리가 있었죠. 그런데 고미숙씨가 들뢰즈, 푸코 등의 담론을 통해 새롭게 접근하니까 많은 독자들이 원전 ‘열하일기’를 찾게 됐거든요. 이처럼 발랄한 작가적 해석도 고전을 소개하는 한 축으로서 필요하다고 봅니다.
안=다양한 형태로 고전을 다루는 작업은 필요합니다. 현재 이만큼 고전을 풀어쓸 수 있는 것은 학계의 연구성과가 상당량 축적돼 있기 때문이지요. 학계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않고 책을 만든다면 미숙하거나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정=고전 붐은 정보화 사회의 개가입니다. 인터넷 발달로 서가에만 꽁꽁 박혀있던 책들이 알려지면서 정보의 소재를 알고 필요에 따라 재배열하는 게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됐거든요. 그간 학계의 지나친 엄숙주의도 고전의 대중화, 혹은 저변 확대에 상당히 걸림돌이 됐습니다. 외국의 경우에 학술서가 인문서가 되고 논문도 에세이 풍이지 않습니까. 최근 우리 학계의 유연해진 글쓰기도 고전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중저술작업은 학문 연구를 보완해주기도 합니다.
안=외국에는 인문서와 교양서, 학술서가 결합된 작업들이 많죠. 일본에서 나온 ‘마테오 리치’나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잘 소개가 되어 있거든요. 쉽게 쓴다고 해서 학술적이지 않거나 학문적 엄격성이 없는 게 아니죠. 사실 쉽게 쓰기가 더 어려워요. 그런데도 학계에서는 꼼꼼하게 연구하는 이들을 조금 더 쳐주는 부분이 있었죠.
정=사실 우리 고전은 전부 전인미답의 경지입니다. 널린 게 보석같은 글들인데 이걸 어떤 식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죠. 이건 몇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학문 후속세대들과 연계해 아름답게 가꿔가야 합니다. 고전의 싹이 묻히거나 없어지지 않도록 국가적 차원이나 출판계·학계 내부에서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안=우리 고전은 양적으로 방대해 개인이 손을 대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지요. 한 사례가 바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인데, 내용도 방대한 데다 일상사·경제사를 다루고 있어 번역이 쉽지 않습니다. 최근 몇몇이 모여 이를 번역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런 책이야말로 국가의 지원을 받는 기관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다양한 방식을 통해 고전에 접근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안=정선생님의 ‘다산선생 지식경영법’도 사실 여러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산, 다산의 대표저작을 한문학이 아닌 다양한 시각에서 봤다는 게 의미가 깊죠. 앞으로 사회학자, 생물학자, 기계공학자가 바라본 다산 등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이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그게 사실 학제간 연구 아닙니까. 사실 초창기에 우리가 학제간이라는 말에 대해 많은 오해를 했던 것 같아요. 부분을 모았지만 결국 다 따로 놀고 수렴이 안되어 파편적인 결과물만 나왔었죠.
안=고전번역자와 관련 전공자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상승할 수 있죠. 그런 점에서 고전을 해석하고 번역하는 것이 학계의 전반적인 질적 상승에 밑거름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정=지난번 이태원씨의 ‘현산어보를 찾아서’만 해도 이전까지 책이름만 알았지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거든요. 이걸 생물교사가 직접 찾아다니면서 확인하고 그림으로 보여주고 설명하니까 ‘자산어보’라는 책이 갑자기 친숙한 고전이 돼버렸거든요. 이런 체험을 해야 합니다.
안=요즘 여러 출판사에서 고전시리즈물을 펴내고 있습니다. 돌베개 고전시리즈, 태학산문선, 서해문집의 ‘오래된책방’ 등이 있고 문학동네에서도 고전 100선을 펴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각각 차별은 있지만 우리 고전의 경우,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발굴해서 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고전이라고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거든요. 또 번역을 할 때도 현대의 우리말의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요.
정=고전시리즈물이 많아진다는 것은 고전의 다양한 수요에 대한 응답으로 볼 수 있겠죠. 고전이 포괄하고 있는 내용은 현재 우리 삶의 모든 것과 맞닿아 있거든요. 몇백년 동안 글쓰기로 관료를 뽑아온 나라에서 글쓰기 이론이 발전하지 않을 수 없죠. 여행문학은 금강산만 해도 100권은 나올 정도로 여행기가 쌓여있죠. 일기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분야가 고전에 녹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해답도 그 속에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해답을 못찾았을 뿐이죠.
안=옛글로 쓰여 있다고 다 고전이 아닙니다. 현재를 살고 미래를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옛글을 통해 현재를 되짚어볼 수 있다면 고전은 현재에도 여전히 가치가 있는 것이거든요. 널려있는 옛글 가운데에서 고전을 고르고 번역해 진수를 뽑아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될 때 고전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정=학계에 우스갯소리로 ‘고전을 하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꺼려하는 작업이 됐는데, 일단 단계를 넘어서면 무진장한 보고가 널려 있거든요. 이런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선 이를 고무시킬 작업이 좀 더 많이 나와야되겠습니다.
〈윤민용기자〉
◇ 정민 교수는
한양대 국문과 출신으로 모교에 재직중인 정교수는 10여년전 ‘한시미학산책’을 통해 대중과 처음 만났다. 연암 박지원을 알게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그는 ‘비슷한 것은 가짜다’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 ‘초월의 상상’ 등을 펴냈다. 최근에는 문학을 넘어 문화사 전반으로 관심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근작인 ‘미쳐야 미친다’와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이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다. 최근에는 ‘18세기 조선지식인의 발견’을 펴냈다.
◇ 안대회 교수는
옛글에 빠져 자신을 ‘호고벽(好古癖)’을 지닌 사람이라고 부르는 안교수는 연세대 국문과를 나왔다. 연세대 대학원 재학 당시 ‘균여전’을 완역할 정도로 한문에 조예가 깊다. 명지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한문학·역사학 등 한국학 전반에 걸쳐 문헌자료를 발굴하면서 고전의 현대화에 힘쓰고 있다. 번역서로 박제가의 산문선 ‘궁핍한 날의 벗’과 ‘북학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가 있으며 최근에 ‘선비답게 산다는 것’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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