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어디에...?

천사는 여기 머문다 - 2007년 제3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전경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7년 1월

매년 이상문학상을 읽어왔었던 것도 아니고, 대상 수상작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을 얼핏 알게 되자, 읽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반감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왜 나는 결국 이 책을 붙잡고 다 읽었을까. 이유는 두 가지다. 내 취향에 맞지 않아서. 즉, 박수치고 좋아할 만한 성격의 글은 아닌 게 확실했만 전경린이란 이름만 알고 있는 작가의 글도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한번이라고 읽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생겼고, 같이 실린 우수작 중에서 관심작이 있었기에 같이 읽어볼 요량으로 말이다.

역시 글을 보기 전에 나 홀로 지레짐작으로 생각했던 것보다는 읽을 만해서 다행스러웠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상징적인 비유와 살아있는 묘사 속에서 소설이 가지고 있는 농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를 느꼈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느낌의 것인지는 표현하기 어렵다. 내용만 놓고 본다면 뭐 대단한 내용은 없어 보이는 소설이지만, 내가 이해하기에는 좀 난해한 구석이 있는 소설임이 틀림없지만, 중요한 것은 읽기가 싫지는 않았고 '다른' 느낌을 주긴 했다는 거다.

김연수의［내겐 휴가가 필요해］와 김애란의［침이 고인다］를 보기 위해 이 책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관심작가라서 그런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 작품집을 볼 때마다 독자로서 이야기를 다 읽고나서 느끼는 느낌과 여러 심사위원들이 이야기에 관해 평한 글을 마주하고 읽다 보면, 간혹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면 그 분들이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더 부여하고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혼자만의 건방진 생각일 수도 있지만, 문학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사평을 보면서 작품에 관한 이해력 부족으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깨닫는 해주는 면은 좋게 생각하지만, 심사평을 보면 꼭 그런 식으로 소설을 읽어내야 하는 게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다. 그래도 한 권으로 엮어진 이 작품집으로 다양한 형식의 소설의 세계로 빠질 수 있었다는 것은 만족한다. 

나오키 상, 받을 만 하구나!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우선 오랜만에 제대로된 재미난 추리물을 읽어서 만족스러운 기분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간판 작가 중의 한 명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개인적으로 처음인데,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천재라는 말이 적절할 두뇌의 소유자이자, 고등학교 수학 교사 이시가미. 그의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단연 '수학'이란 학문이다. 지루한 일상을 버티게 하는 삶의 의미이자 유일한 즐거움 또한 '수학'인 이 사람. 논리적인 사고력으로 논리적인 일을 간단히 해내는 솜씨가 상당하다.

운명적인 도어벨 소리. 아마도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됐을 그 순간에 옆집으로 이사온 야스코, 미사토 모녀와의 만남은 필연적인 만남이었을 테다. 이 찰나의 만남으로 인해 이시가미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경험하게 됐으니까. 수학이란 대상에게만 쏟아부었던 몰입의 형태가 다른 대상으로 옮겨질 수 있을 줄은 이시가미 자신조차 예상치 못했던 변화였으리라. 그러나 우발적인 갑작스런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이 살인사건에 관계된 야스코의 죄를 덮기 위한 이시가미의 논리적이며 다각적으로 짜여진 치밀한 은폐 과정의 시나리오는 차곡차곡 실행된다. 야스코를 향한 사랑으로 가능했을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대체 그 무섭도록 강렬한 순수한 감정이란 어떤 것일까 싶었다. 그 순수함이 이룩한 결과라는 것은 또 어떤가. 순수의 욕망으로 시작된 행동은 그야말로 '헌신'이었다. 딱히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계산없이, 별다른 감정의 동요없이 그런 일이 가능할까.

숭고한 순수한 욕망이 윤리의 세계와 포개질 때. 이야기는 가슴 아프게 안타까워진다. 순수와 윤리가 맞닿아 있어서 고심하게 만든 이야기였다. 한 사람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넘쳐 끝까지 순수를 지킬 수는 없었던 이야기. 이시가미의 한 여자를 향한 마음은, 이것저것 생각하고 주저하는 마음이 아니라, 실제 행동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아름답게만 좋게 보이는 그 헌신이 다른 각도에서는 또 전혀 다른 식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같다.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전부를 걸고 완전범죄를 바랐을 이시가미가 저지른 행동은 윤리적으로는 올바른 모습은 아니겠지만, 그 마음은 손가락질 받을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흡인력을 가진 재밌는 소설임이 틀림없다! 

마음과 정신을 깨우는 '죽비소리'

죽비소리 - 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월

나를 좀 번쩍 깨워주는 죽비소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옛사람이 남긴 소중한 문장들을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꼭 내 마음에 맞는, 지금 상황에 맞는 관련 문장을 만나게 되는데 그런 문장들은 잠든 내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길지 않은 분량의 옛글에서 발견한 귀한 가르침을 잊지 말고, 배우고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미쳐야 미친다］와 비슷한 듯하지만,［죽비소리］는 순전히 문장과 그 문장에 따른 평설을 정민 교수가 다는 형식을 띄고 있는데, 그 풀어내는 이야기들 또한 이 책의 대한 느낌을 더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정민 교수의 글은 바르다. 군더더기가 없이 간결한 맛이 난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곱씹어볼 가치가 있는 우리 문장을 읽으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삶의 이치와 진리는 변함이 없어 연대를 뛰어넘어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모두 다 필요한 말들이다. 다 알고 있는 가르침이지만, 자주 잊게 된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읽어야 할 테다. 맑은 정신과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삶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많은 문제들을 겪는 수고로움을 줄일 수 있을 테니까.

책을 읽어도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수는 없다는 점이 아쉬운 것 같다.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처음 마음을 잊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무르팍을 탁 치게 되는 명쾌한 문장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올곧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서 삶을 더 진실되게, 바르게 살아가고 싶다. 아는 것은 이제 그만. 행동으로 앎을 나타내는 것이 제일이다. 스스로 속이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겠다. 고전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생각이 깊어지게 되는 것 같다. 좋은 문장가들을 빌어 얻게 되는 깊은 통찰과 사고는 내 삶에 이롭다. 옛글이 가진 힘은 결코 작지 않다.

기분좋은 간결한 '포스트 잇'

포스트 잇
김영하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10월

소설만 계속 읽다 보면, 좀 물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면 그땐 다른 종류의 책으로 갈아타기를 하면 된다. 난 주로 산문집을 집어드는 편이다. 크게 거창하지 않아서 좋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주는 잔재미가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더구나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집이란 더 말해 무엇하랴. 특히 작가가 가지고 있는 견해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야기는 한번 더 읽게 되고,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되짚어서 읽게 만든 이야기는 인상에 남는 법이다.

포복절도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몇 번은 낄낄대면서 가볍게 웃음 짓게 만든 이야기도 있고, '문학'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보이고 있는 묵직한 무게감은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벼운 것은 가벼운 대로, 무거운 것은 무거운 대로, 읽을 재미가 있다. '포스트 잇'이란 게 뭐 대단한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적어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귀도 있다.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추억도 좋고, 불현듯 떠오른 찰나의 생각들도 적혀 있다. 놓치면 적어둘 걸 하고 후회하게 되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개중에는 아무것도 아닌 글도 엄연히 함께 존재한다. 김영하는 다양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문학이 가지고 있는 면면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점에서 역시 김영하는 똑똑하고 잘쓰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문학을 왜 시작하게 됐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해당되는 이야기 안에서는 작가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이 충족된 것도 사실이다. 역지사지란 뜻을 새롭게 생각하게도 했고.

김영하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과 동경을 가지고 있는 나와 같은 독자들이라면, 나름 괜찮게 가볍게 읽을거리로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가벼움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도 재미나지 않은가. 가벼움이라 해서 꼭 무거움에 반하는 뜻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테다. 가벼움 안에서 우리는 가벼움 이상을 발견하기 마련이니까. 난 이 책 재미있게 봤다. 별 깊은 생각없이 편하게 널브러져서 보기도 좋고, 쭉 이어지는 긴 호흡의 책이 아닌지라 읽기에 간편하고 간결한 느낌을 주었다.

산문집을 보다가.

오늘 김영하 산문집 '포스트 잇'을 읽었다.
'프랑스 중위의 여자' 란 소설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게 글을 써놨으니 원. 또 살 책이 한 권 생겼군.
궁금해서 읽어야겠다.

이 책은 아마 김영하의 또다른 산문집 '랄랄라 하우스'에서도 잠깐 언급된 작품이었다.
내 오락가락한 기억력이 맞다면 말이다. 추천할 만한 책을 언급하다가 그랬었던가.
아무튼 그렇다. 호감있는 작가가 언급한 책을 꼭 읽어야하는 의무는 없건만,
의무는 뒤늦게라도 수행되는 편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이라도 읽으리라 일단 다짐하게 만든다.

책값이 착하다. 500원도 할인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