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려주자.
살다보면 기약없이 기다려줘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을 기다려주는 단 몇 시간의 기다림이 아니아 한 사람이 아픔을 홀로 견디어낼 때까지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오래 기대려줘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구도 대신 아파줄 수 없고 누구도 동행할 수 없는길, 기어이 혼자서 막막한 사막을 건너가듯 힘들도 외롭게 견뎌내는 사람을 기다려줘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 구분될 만큼 가까운 사이, 이따금 '저 사람이 혹시 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할 만큼 가까운 사이라면 혼자 앓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고 서운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라도, 연인이라도, 혹은 부모와 자식의 사이라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지요.
그런 순간이 찾아왔을때 우리는 '왜 그러느냐'고 묻는 대신 말없이 그 사람이 터널을 빠져 나오기를 기다려줘야 하는 것이겠지요.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영혼의 골방에 갇혀 도무지 나올 수 없는 순간과 마주칠 때가 있었습니다. 어제까지 나를 움직이던 가치가 모두 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고, 정말 소중한 것을 어디다 잃어버리고 왔을까 되돌아보며 한없이 허전해지고, 아무것에도 마음을 붙일 수 없어서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던 시간이 찾아오던 날이 있었지요.
그럴 때,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 사이에 세 들어 살고 싶어지면 아마도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그 사람들이 외로운 우리의 손을 잡아주면서, '당신이 아무리 형편없어져도 나는 변함없이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해준다면 우리는 저 외롭고 고독한 심연에서 조금은 빨리 되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 일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고, 누구하고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 말고 하고 싶지 않은 순간, 앓고 있는 자신도 도대체 이 아픔이 어디서 온것인지도 모르는 채로 자꾸 늪처럼 빠져들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순간, 가까운 사람글로부터 지켜보기 괴롭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속상해지는 시간, 그런 때가 바로 오래 기다려줘야 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인큐베이터 속의 아기가 그 어린 영혼으로 운명과 사투를 벌이듯이 혼자서 싦의 인큐베이터 속에 들어가 잃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돌아와서 기댈곳이 있다는 믿음을 주는 일이고 말없이 기다려주는 일이겠지요.
홀로 침묵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 수척해진 얼굴로 나타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되는 계절입니다.
그 사람의 병을 치료하겠다고 섣불리 청진기를 들이대지 않는 것. 그 사람이 아픔을 견디고 일어났을 때 기꺼이 '회복기의 휠체어'가 되어줄 자세로 기다려주는것, 이런것이 가을이 깊어가는 무렵에 담요를 준비하듯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 천개의 절망을 이기는 한개의 희망 >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