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둡고 불편하고 아프다. 이야기의 느낌이나 생각 모두가 그랬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좋다는 느낌이 동시에 든다. 왜 그럴까. 아픈데 슬픈데 힘든데 좋을 수도 있다. 폭력은 깊은 상처를 남긴다. 앨리시어의 상처는 피할 수 없었다. 버젓이 집안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사람을 왜 때리는 걸까.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인생 제대로 망가지는 게 분명 확실한데. 들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는 시간이 지나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떤 나쁜 과거가 그저 과거지사의 일이 아닐 때. 삶에 연속적으로 등장해 지대한 영향을 미칠 때. 빠져나오고 싶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때. 그게 비극이다. 꼭 같진 않더라도 과거 폭력의 현장을 경험했던 나로서는 앨리시어의 감정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찢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얄궂게도 더 오래 기억되는 법이다. 내 안을 파고들면 어떤 기억이 가장 오랫동안 존재해 왔을까. 내가 선택해서 벌어진 일이라면 감당하기가 조금은 쉽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겪게 되는 끔찍한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해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 너무 많다. 함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 쉬운데 그 여파를 곰곰 생각해보면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씨발이라는 욕이 대체 불가능한 언어로 문학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인상깊다. 욕은 강도가 센 언어니까 더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얇은 분량의 책이었는데 책장이 마냥 휙휙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 내용이 가볍지 않으니까. 좀 더 써줬으면 싶은 약간의 아쉬움도 들었지만 군더더기 없이 덜어낼 건 최대한 다 드러내는 게 작가의 생각인 것 같다. 없는 걸 억지로 끌어다 붙일 필요는 없지. 관심가는 작가가 한 명 더 생겼다. 이야기도 방식도 마음에 파문을 남겼다. 이제 이야기와 이미지로 남은 앨리시어. 내게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거북해지는 그 기억을 말이다. 말할 수 없는 기억은 말할 수 없는 기억으로 앞으로도 내게 남아 있을 것이다. 겹겹이 쌓인 채 작아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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