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씨네21)

경의선 개통 기념행사장, 꽉 채워진 행사장 한쪽에 늘어선 빈 의자들이 눈길을 끈다. 외국 인사들은 아무도 참석을 하지 않은 것.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더니, 남쪽 대통령(안성기)의 휴대폰이 울린다. “경의선 개통을 불허한다고요?” 일본쪽은 대한제국 시기에 맺었던 조약을 빌미로 경의선의 모든 권한을 주장하고 나선다. 경의선 개통을 취소하지 않으면 경제적 압박에 들어가겠다는 것.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이때 일본이 제기한 문서에 찍힌 국새가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학계에선 퇴출된 사학자 최민재(조재현)가 진짜 국새의 존재를 입증하겠다고 나섰다. 이후 영화는 진짜 국새를 찾으려는 최민재와 진짜 국새가 있어도 없게 해야 한다는 국정원 요원 이상현(차인표)의 대결로 진행된다. 이상현은 최민재의 학교 후배. 오늘날 일본은 대한민국에 없어선 안 될 스폰서라고 믿는 현실주의자다. 국새를 둘러싼 논란 속에 대통령은 갑자기 쓰러지고, 국정은 또 다른 현실주의자 국무총리(문성근)의 권한대행으로 이뤄진다.

100여년 전에 작성된 문서로 갈등의 축을 만드는 영화 <한반도>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전작 <실미도>에서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급습 장면과 강인찬(설경구)의 결혼식 습격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줬던 강우석 감독은 <한반도>에서도 고종황제(김상중)의 독살 장면과 남쪽 대통령이 쓰러지는 장면을 교차로 잡아낸다. ‘우리는 한번도 이 땅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는 영화의 메인카피처럼, 해방이 된 지금도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는 셈이다.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영화는 대한제국 시대의 역사적 사건과 오늘날의 현실 정치를 너무나도 단순하게 연결시킨다. 국새만 찾으면 주변 강대국들의 문제도 모두 해결된다는 식이다. 드라마의 허술함도 보인다. 일제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등장한 것 같은 애국지사 민재는 “민비를 이미연”이라고 답하는 주부들을 상대로 핏대를 세우고, 민재를 한심한 민족주의자라고 칭했던 상현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민재의 손을 들어준다. 캐릭터들의 내적인 감정 변화는 쏙 빠져 있다.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것처럼 시작했지만, 끝내 국가주의를 긍정하며 끝났던 <실미도>처럼, 강우석 감독은 다시 역사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길을 잃는다. 땅 주인 노릇 좀 해보자던 애국심은 어느새 국수주의로 빠져들고, 극일(克日)이라는 주장은 배타적 민족주의와 손을 잡는다. 의욕만 앞서 드라마적 재미는 물론 자신의 주장마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경우다. 강우석 감독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너무 우습게 알고 사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문제의 원인은 우리의 무심함이 아니라 강우석 감독의 어깨에 들어간 힘이 아닐까.
 
글 : 정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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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씨네21)
 
“불꽃같이 살고 젊은 나이에 죽어 아름다운 시체를 남긴다.”

보니와 클라이드, <트루 로맨스>의 클레런스 같은 부류의 막 가는 청춘을 위한 이 슬로건은 뤽 베송 감독이 잿더미 속에서 부활시킨 15세기 프랑스 성녀 잔 다르크에게도 꼭 들어맞는다. 뤽 베송이 연인 밀라 요보비치의 육체에 불어넣은 잔 다르크의 영혼은 흡사 고조기에 접어든 조울증 환자다. 구원받고 구원하려는 신열에 들떠 한시도 자신을 가만두지 못하는 그녀는 잠자지 않아도 피곤을 모르며 허벅지에 화살이 꽂혀도 아픈 줄 모른다.

1899년 이래 열여덟편에 이르는 ‘잔 다르크 영화’가 만들어진 사실이 웅변하듯 오를레앙의 처녀는 스크린이 누구보다 경애하는 성인(聖人)이다. 칼 드레이어(<잔 다르크의 수난>(1928))의 잔이 지복에 닿은 순교자였고, 빅터 플레밍(<잔 다르크>(1948))의 여성 전사가 페미니스트의 원조였으며, 오토 프레밍거(<성녀 잔>(1957))의 히로인이 감당 못할 일을 저지른 틴에이저였다면, 뤽 베송의 잔 다르크는 그 모든 것이 되기를 욕심낸다. 베송과 앤드루 버킨의 무엄한 각본은 잔 다르크 신화에 드리운 가톨릭적인 휘장과 성스러운 동기마저 쑤시고 찔러본다. 대관절 군사들은 뭘 믿고 애송이를 따랐는지, 어쩌자고 신쯤 되는 존재가 인간들의 패싸움에 끼어 들었는지, 엄청난 살생을 하고도 성녀가 될 수 있는지. 평범한 현대인이라면 품음직한 ‘경망스런’ 궁금증을 툭 까놓고 던지는 것이다.

잔 다르크는 그저 환각에 홀린 운 나쁜 광신자에 불과한지도 모른다고 소근대는 무람없는 태도는, 실상 최신판 <잔 다르크>가 지닌 제일 쓸 만한 창과 방패다. 하긴 누군들 그러지 않을까. 간구할 때마다 응답하는 존엄하고 아름다운 신이 있다면, 그 신이 너를 믿노라고 어떤 소명을 쉼없이 속삭여온다면, 어떻게 그를 실망시킬 수 있으랴. 전장에 나선 소녀는 죽도록 무서웠을 것이다. 토막난 팔다리에 걸려 넘어질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으리라. 이처럼 눈높이 전략을 택한 베송은 기적에 대해 철저히 인색하다. 잔의 통쾌한 무용담이나 기적을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여, 나를 따르라!”고 소년 같은 목소리로 외쳐 병사들의 미묘한 집단 심리를 휘젓는 ‘치어리더’를 보여줄 뿐이다. 대관식의 성유를 보통 기름으로 바꿔치기 하는 일화도 기적에 대한 코웃음에 다름 아니며, 잔의 종교적 비전을 원색의 넝쿨과 꽃잎으로 장식된 다소 유치한 소녀적 판타지로 꾸며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성한 후광을 걷어낸 <잔 다르크>의 승부수는 상업 영화의 그것이다. 악귀 같은 적군과 기회주의적인 왕실과 교회에 포위된 외로운 영웅, 남녀 관객 모두에게 호소하는 요보비치의 중성적 섹시함, 카메라로 드럼을 치는 듯한 베송 특유의 박력있는 스타일에 <브레이브 하트>류의 중세적 잔혹함까지 버무려진 액션 시퀀스는 기나긴 상영시간 동안 관객을 붙잡아둔다. 그러나 피부 안쪽까지 소름돋게 하는 흉칙한 모양새의 무기들이 일으키는 피보라와 불필요하게 잔혹한 강간 장면은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잔 다르크>의 또다른 주요 병기는 강인한 젊은 여성의 이미지. 잔은 시종 여자를 얕잡아보는 병사들에게 으르렁대고, 끝내는 남장이 독신(瀆神)보다 더 큰 죄인 양 심문받는다. 하지만 전장에서 바람둥이, 무뢰한, 지적인 미남 등 다양한 유형의 장군들에게 보호받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이 든든한 ‘오빠’들을 거느린 ‘막내공주님’을 연상시킨다. 들판을 누비고 성벽을 타오르던 영화는 잔이 포로가 되는 순간 잉그마르 베르히만 풍의 사이코 드라마로 변신한다. 인간의 형상을 한 잔의 양심으로 등장하는 더스틴 호프먼은 “들판에 놓인 검! 그것이 징표였어요!”라고 도리질하는 잔을 “아니. 그건 그저 들판에 놓인 검일 뿐이야”라고 일축하며 가엾은 소녀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미국과 러시아의 배우들이 영어 대사를 주고받는 프랑스 시대극 <잔 다르크>는 베송의 영화가 언제나 그랬듯 프랑스영화의 적통과도 관계가 멀지만 할리우드 관습에서도 비스듬히 비껴간다. 국적없는 영화가 2000년대 영화의 한 경향이 된다면 베송은 훗날 개척자로 기록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예산 6천만달러의 대작 <잔 다르크>가 당장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는 스타일의 소화불량이다. 서로에게 단단히 동여매졌더라면 이완과 긴장의 매력적인 리듬을 창출할 수도 있었던 전쟁 서사극의 악장과 심리극의 악장은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는 데 그쳤고, 전투 시퀀스 내에서는 다시 중세적 하드고어와 코미디가 서툴게 공존하는 딱한 광경이 연출됐다. 이 영화의 처음이자 끝이 되는 인물 잔을 민중의 벗과 근왕주의자, 광신자와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고단하게 방랑하도록 만든 것도 시대극 팬들을 맥풀리게 할 만하다. 스펙터클과 영웅담, 인간성의 비밀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위대한 서사극의 징표를 <잔 다르크>에서 찾기는 힘들다.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승전고를 울린 지점에서 뤽 베송의 <잔 다르크>는 총총히 퇴각하고 만다.

실존인물 잔 다르크(1412∼31)
성녀인가 정신병자인가

 
“절망과 복수심으로 싸웠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구원으로 믿고 계속 피흘리게 했습니다. 저는 오만하고 편협했으며… 그래요, 잔인했습니다.” 영화 <잔 다르크>에서 화형을 앞둔 잔은 메마른 목소리로 이렇게 고해한다. 진짜 동기가 무엇이었든 근세로 넘어오는 길목에서 프랑스 국민의식 형성의 마스코트가 된 영웅 잔 다르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로렌 근교의 시골마을 동레미의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난 잔은 대천사 미카엘과 성녀들의 음성을 통해 프랑스를 유린하던 영국군과 부르군디 일파를 축출하는 사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신과 직접 교통한다는 그녀의 고백은 후일 종교재판에서 교회의 심기를 거스른 원인이 된다. 잔의 언니가 반송장 상태로 강간당하는 영화 속의 끔찍한 사건은 역사에 기록된 바 없지만 시농성에서 신분을 감춘 황태자를 한번에 알아본 일화는 유명하다. 기록에 의하면 잔은 힘세고 건장했지만 얌전한 몸가짐을 가진 처녀였고 영화와 달리 태자를 만났을 때 이미 무장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진두지휘에 나선 잔은 계시를 받은 듯 갑작스런 공격을 명하거나 그녀가 들어봤을 리 없는 지역으로 출동을 명해 승리를 거둠으로써 프랑스 군의 사기를 크게 진작했다. 현실적 조건을 초월한 몇 차례의 승전과 잔의 불가해한 육체적 정신적 용기는 신화가 됐고 영국군은 잔의 흰 옷자락이 나타나기만 해도 줄행랑을 쳤다. 1430년 콩피에뉴 전투에서 후위를 방어하다 사로잡힌 잔은 극심한 탈출 욕구에 시달린 나머지 첨탑 위에서 몸을 던져 실신하기까지 했다. 잔 다르크의 마지막 부탁은 화형의 순간에 십자가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현대의 연구들은 잔 다르크가 적인 영국인보다 프랑스 내분의 희생양이었다는 점을 밝혀내왔다. 종교에 비판적이던 후세 작가 아나톨 프랑스는 잔 다르크를 성직자들의 조종을 받은 신경쇠약증 환자라고 냉정히 평했으나, 전기 작가 앙드레 모로아는 그의 <프랑스사>에서 잔 다르크를 가리켜 신앙과 의지가 성취할 수 있는 기적의 가장 경이적인 예라고 썼다. 1920년 5월16일 성녀로 추증된 그녀의 축일은 5월30일이다.
 
글 :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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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교육방송 ‘독립영화극장’ 5년만에 부활
“젊은 감각·재능 담을 것”…봄개편서 다큐 프로 대거 편성

 
교육방송 〈독립영화극장〉이 5년 만에 부활한다. 14일 봄개편 설명회에서 교육방송은 2002년 2월 막을 내린 〈독립영화극장〉(금 밤 12시35분)과 2004년 8월까지 방송됐던 〈예술의 광장〉(화 밤 11시45분)을 각각 3월과 2월부터 다시 방송하겠다고 했다. 특히, 〈독립영화극장〉은 얼마 전 비슷한 취지의 프로그램인 〈KBS 독립영화관〉이 영화·문화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폐지된 뒤라 관심이 모아진다.

1998년 〈단편영화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EBS 독립영화극장〉은 한때 독립영화를 방송하는 유일한 프로그램으로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함께 누렸으나 2001년 한국방송에서 〈KBS 독립영화관〉을 시작한 뒤로 작품 수급과 프로그램 차별화에 어려움을 겪다가 문을 닫았다. 연출을 맡은 오정호 피디는 “교육방송이 5년 전 프로그램을 부활하는 이유는 독립영화의 창구가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만이 아니라 시장에 대한 판단도 있다”고 했다.

상업영화의 흥행성적 잣대를 독립영화에 들이대 비주류로만 보는 시선에 대한 의문도 있다. “해마다 독립영화 600편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은 그만큼 독립영화의 가치나 잠재성을 보여주는 일이며 한국에서 독립영화 제작여건이 성숙했다는 증거입니다. 예전 독립영화 프로그램이 카메라를 든 몇몇 게릴라들의 독립 권역이었다면, 2007년판은 일상적으로 영상을 만들어내는 젊은 세대들의 반짝이는 감각과 재능을 담아낼 것입니다.” 첫 방송인 3월2일에는 진행자 없이 영화아카데미나 영상원 영화제 졸업작품 중에서 2~3개 작품을 선별해 방송할 예정이며 1년에 600편 이상의 극영화, 애니메이션을 방송하는 독립영화의 대중적 창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교육방송은 이번 개편에서 다큐멘터리를 대거 편성했다. 2006년 전체 방송의 12.5%였던 다큐멘터리 비중을 2007년 19.1%로 높였다. 편성기획팀 김시준 피디는 “다른 방송3사에서 밤 10시만 되면 드라마를 방송한다면, 교육방송은 매일 밤 9시20분부터 2시간 동안 다큐멘터리를 집중 방송한다”고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밤 9시50분에는 인문·교양을 소재로 한 국내외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는 〈다큐 10〉이 방송된다. 매주 목요일 밤에는 여러 분야의 명의들을 찾아나서는 〈명의〉, 화요일 밤에는 문정현 신부, 이문열 작가 등이 나오는 〈시대의 초상〉 등 인물 관련 다큐멘터리 여러편도 신설한다. 소수자 인권을 조명하는 〈똘레랑스〉는 폐지 반대론이 많았으나 결국 3월부터 〈EBS 시사 - 세상에 말 걸다〉로 바뀐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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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조기원 기자)

온가족 ‘도드리’ 장단 맞춰 어깨춤 덩실
설 연휴 국립국악원서 상설공연

어머니와 함께 ‘공연 나들이’를 간다는 것은 조금은 난감한 일이다. 우아한 오케스트라 공연은 폼이 날지 모르나, 클래식 음악에 취미가 없으시면 마냥 졸리울 수 있다. 그렇다고 신파극을 보자니 내 몸이 배배 꼬일 것 같다. 모처럼의 겨울 휴가, 방바닥에 눌어붙어 주전부리만 하는 게으름뱅이에게 효도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참을 뒹굴다가 공연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서울시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하는 토요상설공연! 지난 10일 토요일 오후 5시 어머니를 모시고 국악원을 찾았다. 반응은? 다음날 한우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막이 오르자 조선시대 궁중 정악 연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 마네킹 마냥 앉아 있던 30여명이 일제히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은 ‘들을 거리’ 뿐 아니라 ‘볼 거리’도 제공했다. ‘다시 돌아가서 들어간다’는 뜻인 장단 ‘도드리’를 연주하는 이들은 화려한 궁중 예복으로 눈을 사로잡았다. 어머니 역시 “한복이 곱다”는 말을 먼저 하셨다.

이어서 대금 산조와 가곡 ‘태평가’, 남도 선소리 ‘화초 삼거리’, 창작곡 ‘섶섬이 보이는 풍경’, 장구춤이 이어졌다. 산조란 가야금이나 대금 등의 연주자가 다양한 장단에 맞춰 여러 악장을 단독 연주하는 양식이다. 19세기말 삼남지방에서 나타났다는데,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가락을 덧붙이거나 덜어내기도 한다. 물론 이런 상식은 공연 팸플릿 읽으며 얻은 덤이다. 생경한 한자가 많은 가곡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어진 남도 선소리와 장구춤의 흥겨움은 평범한 관객도 금방 들썩이게 할만 하다.

국립국악원 장악과 서정호씨는 “토요상설공연은 1시간10분 동안 7개 팀이 출연하고 각 공연이 10분 안팎”이라며 “일반인들이 지루해 하지 않도록 하이라이트 위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도 경극, 인형극, 변검 등 전통 연희들을 맛보기로 짧게 이어붙인 프로그램을 쉬이 볼 수 있는데, 국악원에서도 이런 공연을 내놓은 것이다. 실제 공연장에는 외국인도 많이 온다.

토요상설공연은 한 해 동안 12가지 레퍼토리가 반복된다. 1년치 공연 일정은 국악원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공연장에서 천원짜리 팸플릿을 사면 공연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읽을 수 있다. 국악원 소속 악단만이 연주를 담당하는데, 한 차례 무대에 30여명에서 많게는 100여명이 출연한다. 서씨는 “정악단과 민속악단, 무용단, 창작악단 4개 악단에 출연기회를 고루 안배한다”고 설명했다.

설 연휴가 시작되는 17일에도 공연은 이어진다. 전통 음악의 십이율에서 다섯번째 음이자 절기로는 삼월을 뜻하는 <유빈>이란 제목 아래 경기민요, 살풀이, 설장구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공연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부모님과 나들이 나선 김에 국악원이 자리잡은 우면산을 산책하거나 국악박물관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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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아리랑문학관에 다녀왔습니다. 전라북도 김제에 있는데, 교통이 썩 좋은 편은 못됩니다. 김제 기차역과 버스공용터미널은 택시로 5분 거리이지만, 그 부근에서 부터 문학관이나 금산사 까지는 대략 20~30분 정도 소요됩니다.

- 문학관은 너른 김제평야 한 복판에, 다소 황량히 서있습니다. 바로 뒷 편에는 폐교를 고쳐 만든 도자기공예실이 있고, 길 건너 편에는 벽골제 -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 진 최초의 저수지 - 와 농업 수리시설 전시관, 김제농악 전수관, 미술관이 모여 있습니다.

- 문학관은 2개 층, 3개 전시실로 작고 아담한 편입니다. 1 전시실에는 소설 <아리랑>의 내용과 관련한 역사적 사건들이, 2 전시실에는 조정래 선생 개인적인 자료들이, 3 전시실에는 <아리랑> 집필 과정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1 전시실에서 단연 눈에 띄이는 전시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감옥' 과 사람 키 보다 높은 원고가 <아리랑> 집필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전에 <아리랑> 마이리뷰를 쓰면서 말씀드렸지만, 일본의 식민지배와 부역자들에 대한 인적 정신적 청산에 대해, 조정래 선생은 남다른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 집필 후기에도 잠깐 언급되었던 사전 답사 자료들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전시물들이었습니다. <아리랑>의 역사적 배경은 김제, 군산 뿐만 아니라, 만주, 중국, 일본, 하와이, 연해주, 중앙아시아 까지 널리 펼쳐져 있는데요, 선생께서는 이곳을 직접 답사해 녹취와 그림, 등으로 자료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늘 감탄하게 되는 눈에 선한 묘사들은 이런 노력 덕분이겠지요.



- 항구도시 군산으로 이사를 온 주인공들이 일하게 되는 새로운 직업, 미곡공장의 사진입니다. 소설에서 묘사된 그대로, 넓직한 탁자 위에 바싹 붙어 앉아 쌀을 골라내야 하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지요. 온몸의 결리고 눈이 상하는 노동을 했던 이들의 모습이 흡사 오늘날 전자 공장의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 악명 높았던 토지조사사업 장면입니다. 1910년 한일합방 직후에 시작된 경제적 수탈 로서, 많은 농민들이 만주, 연해주로 이주하거나, 화전민, 노동자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려가는 많은 양의 쌀입니다. 사람 키 보다 높이 쌓인 쌀과 이것을 나르는 부두노동자들, 그리고 어디엔가 낙미쓸이(바닥에 흘린 쌀을 줍는 사람) 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 일본인으로서 토지조사사업 기간 김제 만경 평야를 독식했던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 하와이로 이주한 한국인들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 창설된 국민군단의 사진입니다. 국민군단의 모습에서 당시 하와이 이주의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 토지조사사업에 이은 산미증식계획은 농사를 현대화 해 생산량을 늘린다는 명목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수리조합을 세워 수리시설을 정비했지만 조합비 공출의 부담이 남겨졌고, 농기구가 개량되었지만 농기구 및 비료 대여의 부담이 남겨졌습니다.



-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종군위안부, 일본의 항복 장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에서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강제 이주는 스탈린의 소비에트 연합이 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영토 외곽에 일괄적으로 취한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 2 전시실에 전시된 조정래 선생의 개인 물품들입니다. 선생은 하루에 서너갑의 담배를 태우는 지독한 골초라고 합니다.



- 프랑스어로 번역된 <아리랑> 입니다. 구수한 방언들을 어떻게 번역해 냈을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 한국일보 연재 당시의 신문 지면입니다. 읽는이들이 감질맛 나서 어찌 읽었을지. 연재 때문인지, 선생은 하루, 한달, 일년의 집필량을 정해 꾸준히 써나가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집필 계획을 꼼꼼하게 적어놓은 달력, 계획표,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앞서 말씀드렸던 취재, 답사 공책들입니다. 1 전시실에도 일부 전시되어 있지만, 3 전시실에 모두 전시되어 있습니다. 취재, 답사 과정에서는 지역의 방언이나 주인공들의 이름까지 꼼꼼히 조사 계획되었습니다. 세번째 사진은 해당 지역의 지도입니다.



- 왠 닭도리탕이냐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굉장히 중요한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문학관 근처에는 식당이 단연코 없다는 것입니다. '벽골제 가든' 이라는 식당이 있습니다만, 보시다시피 "무기한 휴업" 하고 있습니다. 유념하시고, 식사 든든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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