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1. 193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수입대체공업화
1960년대 경제모델의 한계. 해외 경제로의 편입. 독재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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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2003년 여름에 시작되어 한해가 넘도록 지속되었던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하 방폐장) 유치 반대 시위를 기억하고 있다. 혹자는 그것을 '부안 사태', 혹은 '부안 민란'이라고 지칭했을 정도로, 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정부와 부안군민 사이의 갈등은 깊었고 격렬했다. 수천명에 달하는 군민들이 모여 촛불시위와 상경집회를 벌였고, 정부와 부안군청을 향한 분노는 전의경들과의 마찰로 번져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2004년 1월 정부가 주민투표법을 공포한 이후로도 1년여간 계속되었다. 결국, 새로운 방폐장 부지를 선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 갈등은, 농사를 짓거나 구멍가게를 하던 평범한 시민 43명이 구속되고, 지역 공동체가 분열하는 상처로 계속 이어졌다. 물론, 방폐장 설치를 둘러싼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1990년 안면도, 1995년 굴업도를 비롯해 20여년간 무려 8차례나 시도했으나 실패한 '숙원의 국책 사업'이었던 것이다. 20여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을 되돌아 보며, 우리는 핵과 원자력 발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갈등은 일단락 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도 우리 국민들 사이에 핵과 원자력 발전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아픈 상처를 끌어안고 다시금 핵과 원자력, 그리고 에너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잠시 눈을 해외로 돌려보자. 미국은 석유 확보를 위해 중동에서 두 차례의 전쟁을 일으켰고, 중국 역시 러시아와 합심해 중동에서의 석유 확보에 들어갔다. 일본은 지방자치단체장들까지 나서서 시베리아, 아프리카 할 것 없이 세계 방방곡곡을 찾아다니고 있다. 가히 전쟁에 견줄만 한 국제사회의 에너지 쟁탈전에, 세계 4위의 석유 수입국인 한국의 미래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 미리 준비되어 있지 못하다면, 그에 따른 대가는 고스란히 국내 갈등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노력에 지난 갈등의 두 주체였던 정부, 국민과 더불어 에너지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어떤 지역에 방폐장을 설치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현재 전체 에너지 소비의 15%에 불과한 원자력 발전의 향후 전망과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이며, 그에 앞서 "핵과 원자력 발전은 안전한가? 그리고 왜 필요한가?"라는 국민적 질문에 답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부용 박사의 <대안 없는 대안 원자력 발전>이 놓여진 자리가 이곳이다. 저자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장 부지선정위원으로 활동한 분으로서, 일선의 경험과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 역할을 해주시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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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국책사업

반대하던 군수가 동의

찬성했었으나 부안 군민들의 반대로 지금은 반대

3000억원을 지자체에 줘서 3~5억 현금 보상 해준다.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 /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새만금 방조제, 영광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보상 못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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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폐기물

핵 폐기물
수조에 갖힌채 5년 있으면 1/400으로 줄어든다.

1990 안면도
1995 굴업도
2003 부안군 위도

중저준위 폐기물 저장소(옷과 신발, 장갑과 같은 오염정도가 낮은 것들) 100냔 300년 보관

[에너지대안센터] 너무 빠르다..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를 늘려가자.
[반핵국민행동]
[한국원자력연구소] 태양열, 원자력보다 20배 비싸다.
[녹색연합] 기존 원전 부지별로 보관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원자력 발전을 얼마만큼 확대할 것인가 라는 국민적 공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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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에너지 수입액 496억 달러(자동차 246억, 반도체 265억)
-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9위
- 45% 석유, 24% 석탄, LNG 12%, 14% dnjswkfur 1% tnfur

- 나무(40~50만년) - 석탄(300여년) - 석유(1950여년)
"19세기를 영국이 석탄과 기차로 지배했다면, 20세기는 석유와 자동차로 세상을 지배했다."
화석연료 사용 멈추지 않으면 40년 이내에 환경 재앙
100여년 이후에 석유자원 고갈(캐나다 오일샌드, 미국 알래스카 유전, 오일셰일)
2010년에는 석유 사용 최고점

- 지속 가능 에너지
청정에너지, 그린에너지
전기를 싸게 만드는 것, 수소를 만들어내는 것(연료전지)

- 에너지 전환에 따르는 비용
수소 충전소, 도시가스관

- 원자력 단점
방사능 누출 위험, 최소 300년 이상 관리, 수명 되면 폐기

- 원자력 발전방향
유럽형 가압경수로, 핵융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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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사선: 원자핵이 변할 때 나오는 알맹이나 파동
radial 방사형
약한 방사선은 세포를 활성화

- 단위는 밀리시버트
X선 0.1 전신CT 50~100
250까지는 괜찮음
7000이면 즉사
항암치료는 50000~120000

- 임계상태와 초임계상태

- 원광 정제 > 우라늄235, 우라늄238 > 천연우라늄(옐로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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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공민왕과 원-명 사이의 갈등, 이성계의 북벌 4대 불가론
- 1392년 조선 건국
※ 1396년 종묘와 궁궐 도성의 완성: 궁문(건춘문, 영춘문, 광화문, 신무문) 대문(흥인문, 돈의문, 숭례문, 숙청문)
- 이방원 왕자의 난
- 계유정난: 단종과 수양대군, 한명회, 사육신, 생육신
- 갑자사화/언문투서/: 성종과 연산군, 폐비 윤씨
- 중종과 조광조
- 명종과 임꺽정
- 선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통신사(1590), 홍의장군 곽재우, 고경명, 유정(사명당)
- 광해군과 후금의 건설(1616): 친청친명
- 인조반정과 이괄: 친명배금,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과 삼전도의 치욕
- 효종: 북벌
- 현종: 예론논쟁
- 숙종: 장희빈과 인현황후, 상평통보 발행(1678)
- 영조: 탕평책, 박문수, 사도 세자
- 정조: 박제가 <북학의>, 정약용과 수원성, 이수광 <지봉유설>과 천주교
- 순조: 천주교 금지, 신유박해,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홍경래의 난(1811)
- 고종: 흥선군과 안동 김씨, 서원 철폐, 경복궁과 원납전 당백전, 병인박해(1866), 병인양요(1866), 오페르트 도굴사건(1868), 신미양요(1871), 운요호 사건(1875),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과 톈진 조약, 동학농민운동(1894), 갑오경장(1894), 을미사변(1895), 아관파천(1896), 헤이그특사(1907), 한일합병조약(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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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 토지조사, 호패법
- 세종: 집현전
- 세조: 궁에 잠실 설치, 상평창(물가 조정), 중앙군 재편성, 호패법 정비, 강원 3도 북방이주
- 중종과 조광조: 공신칭호 박탈과 토지 노비 몰수
- 광해군: 대동법, 창덕궁 재건(서울 종로)
- 숙종: 대동법 확대실시, 양전 마무리, 백두산 정계비, 왜인의 울릉도 출입 금지 보장, 상평통보 발행(1678)
- 영조: 균역법, 노비종모법
- 정조: 규장각
- 순조: 관노비 해방, 천주교 금지
- 고종: 신분세습법 폐지, 군포세를 호포세로 변경, 서원 철폐, 갑오경장(과거 폐지, 신분제 철폐, 연좌법 폐지, 조혼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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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기관: 서당 - 4학/항교 - 과거 - 복시 - 생원/진사 - 성균관
- 내용: 한문과 글쓰기, 4서 5경(논어 맹자 중용 대학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
- 무과: 궁술, 창술, 격구 / 경서 병서 - 선달
- 잡과: 역과 음양과 의과 율과
- 신분제도: 양반, 중인, 상민, 천민
- 유교: 삼가 금지법, 서얼 금지법
- 농업: 직파법/이앙법, 상업과 육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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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종: 훈구파와 사림파
- 선조: 서인(사림파 구세력) 동인(신세력), 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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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서울 종로
- 창덕궁: 서울 종로
- 덕수궁: 서울 중구
- 창경궁: 서울 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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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7세기: 초대 덴노 진무(아마테라스 여신의 5대손)
만세일계

-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야요이 시대

- 4세기 ~ 7세기: 아스카 시대 - 최초의 나라 야마토
538년 백제가 불교, 천자문, 논어 전래
587년 처음이자 마지막인 종교전쟁(불교와 신토)
607년 첫 견수사 파견
645년 나카노 오에 - 소가 세력(덴노의 외척) 제거 후 중앙집권화
660년 백제 멸망

-
690년 후자와라쿄로 천도: 니폰을 정식 나라이름으로 채택,
701년 다이카가이신(토지의국가소유), 율령제도(2관8성제, 역사책 저술)의 시작과 고대국가의 완성

- 헤이안 시대(794~1192): 귀족의 시대, 후지와라 가문의 세도정치, 일본의 정체성 확립
794년 교토(헤이안)로 천도
장원과 부시(무사)의 형성, 후지와라 가문의 세도정치
902년 장원정리령
양대 부시 가문인 미나모토 가문 - 다이라 가문의 대립
1068년 고산조 덴노 후지와라 가문 몰아냄, 장원정리령(1969)
1072년 시라카와 덴노 조우고 취임, 인세이(원정) 정치
1156년 호켄의 난: 덴노파와 조우고파로 나뉘어 전쟁 - 덴노파의 승리
1159년 헤이지의 난 - 다이라 가문의 승리 >> 부시의 힘에 의해 덴노의 자리가 좌우됨
헤이지 정권: 덴노파인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조우고 유폐, 인(원)을 폐쇄 /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反헤이지 세력 규합: 불교세력, 조우고 세력, 미나모토 가문, 중앙 부시계급
1185년 단노우라 전투
1192년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세이이다이쇼군에 취임, 가마쿠라에 바쿠후 설치(2원 정치체제)
1121년 조큐의 난: 고도바 덴노가 바쿠후 토벌 시작 / 겐지 가문 이후 호조 가문이 집권
1274년 몽고 고려 연합군의 일본 침공
1332년 덴노와 아시카가 다카우지(겐지 가문) 연합군이 가마쿠라 점령

- 에도 시대(1602~1868): 부시들의 시대


1868년 도쿄로 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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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노 : 고조쿠(지방호족)
- 덴노 : 셋쇼(섭정), 간바쿠
- 덴노 : 귀족
- 덴노 : 후지와라 가문
- 덴노 : 조우고(상황)
- 덴노 : 쇼군(고케닌, 싯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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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토쿠 태자: 최초의 셋쇼, 고조쿠 탄압, 관직 12계급, 17개조 헌법, 와(和)의 강조, 견수사 파견
- 나카노 오에: 소가 세력(덴노의 외척) 제거 후 중앙집권화, 고쿠시(도지사), 군시(군수) 현지 파견, 반전수수법(토지배분), 호적제도
- 다이라노 기요모리: 조우고 유폐, 인(원)을 폐쇄
- 미나모토 요리토모: 부시계급으로 슈고, 지토를 임명하여 고쿠시, 군시를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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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폰, 저펀, 제팬: 나카노 오에의 집권으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다음의 일
- 세이이다이쇼군(쇼군): 동북 지방의 오랑캐 민족들 정벌을 위한 최고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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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지배자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안정을 위해 중국이 필요하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 자본주의의 산물임과 동시에 꼭 필요한 버팀목이 되어가고 있다.

- 중국의 경제호황은 몇몇 남동 연안 지방들에 한정돼 있고, 대부분 유럽과 미국으로 값싼 소비재를 수출하는 데 의존하고 있다.

- (중국 초기 경제발전의) 핵심은 소비를 제한하고, 농업 집산화로 농민을 더 효과적으로 착취해서 뽑아낸 잉여를 이용해 세계 경제로부터 고립된 국가 주도 중공업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 덩샤오핑은 1978년에 4대 현대화를 시작했다. 해외 투자와 기술 이전, 농업과 많은 공업분야에 시장 도입, 중앙 정부의 경제 통제 해체, 등. 하지만, 중국 경제 호황의 첫 단계는 농업 개혁의 부산물인 향진기업의 예상치 못한 성장 덕분에 가능했다. 이미 향진기업의 생산가치는 농촌 총생산가치의 절반을 차지했고, 1992년에는 2/3에 달했다. 1988년에 이르러, 중국 전체 인구의 17%를 차지하는 연안 3성이 전체 농촌 공업 산출량의 절반을 생산했다.

- 경제가 성장할 수록, 중앙의 계획대로는 되지 않았고 이것은 권력 다툼과 연관이 있다. 부패가 없었다면 향진기업도 없었을 것이다.

- 1988년의 인플레이션 심화. 지방 정부가 식료품 보조금 삭감하자 광적인 사재기와 은행 현금 인출 시작.

- 1989년 이후에는 신규 외국인 투자 덕분. 투자 원천은 대부분 홍콩 자본. 1992년 이후 중국 경제의 부활은 조립과 소규모 제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 물결에 기초하고 있었다. 1998년까지 수입 가치가 수출 가치보다 많았고, 지금도 둘 간의 차이는 근소하다. 1990년대 중반에는 많은 국영기업들이 도산 일보직전이었다.

- 1997년. 외국인 투자와 무역이 침체했고, 동아시아 시장이 축소되었으며, 주료 식료품 가격 상승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도시 노동자들에게 식료품 보조금을 지원하든지, 아니면 물가상승에 항의하는 도시 노동자들의 반란에 직면할 위험을 감수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 그렇게 많은 것을 잃을 텐데 중국은 왜 그토록 WTO 가입을 바라는가? 중앙의 지배계급은 WTO규정을 이용해 지방 관료와 기업 경영자들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 1945년 국민당은 대만 통치권을 회복하고, 체계적으로 약탈. 본토인에 대한 분노. 1947년 가장 거대한 항쟁 발생. 1949~67년까지 본토인 카스트가 지뱋나느 군사독재 국가. 강력한 국가통제. 48%를 국영기업이 생산. 1986년 민주진보당 창당. 2000년 민진당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 민족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쟁점으로 선거.

- 신자유주의 경제이론대로라면, 중국과 대만의 경제적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군사적 긴장도 완화되어야 한다. 세계적 통합으로 군사적 경쟁이 자동으로 완화되리라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몽상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 중국 수출업체 중 대미 수출 상위 50위 중 7개는 미국 회사, 이들은 환율 유지에 이해관계 있다.

- 언론과 예술의 발달, 일부 농촌에서 씨족이나 혈연 조직의 부활, 토착 종교와 기독교의 부활 등 두드러지게 정치적이지 않은 형태로 나타났다. 아동결혼, 아동중매, 결혼신부값 며느리가 시어너미에게 철저하게 복종한다는 전통적 관념도 되살아났다.

- 의료비 지출은 도시에 집중.

- 1980년대 학생시위증가. 공개적인 반체제 조직이 등장. 최소한 15개 도시에서 독립노동자연맹이 창설. 1949년 이후 공개적 노동자 조직이 결성. 톈안먼 항쟁 이후 지하노조 건설을 시작하거나, 합법적 통로를 이용해 의견을 표현. 파룬궁 운동. 수만명 체포.

- 내몽고, 신장, 티베트. 반이슬람 테러에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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