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자들 환상문학전집 8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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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르 귄의 장편이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오랜만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영원회귀 부분을 펼쳐보기도 했다. 할 말이 너무 많은데, 몇 개의 테마를 골라 본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키워드들은 이런 것들이다. 두 시간성의 공존, 과학과 윤리, 약속, 책임, 집으로 돌아오는 것... 그런데 이것들을 엮어 줄거리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한 번 해보자.

 

1. 화려하지만 불평등한 현실 Vs. 척박한 자연 속의 가난한 아나키스트 공동체

1974년에 출판된 이 책에서 르 귄이 상상한 두 행성의 모습은 당시의 현실과 이상 간의 대조이다. 우라스에는 자본주의 국가내 양극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간의 냉전, 3세계의 독재와 민주화 운동의 대립이 미니어처처럼 들어 있고, 아나레스에는 1960년대말 히피들이 이루고 싶어 한 평등한 공동체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우라스의 현실이 아주 참혹하지도 않고, 아나레스에 구현하고자 노력한 이상이 그리 완벽하지도 않다. 분명히 밸런스 게임 같은 인상은 존재한다. 부와 지식을 소유하고 그것을 과시하는 상층계급과 그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하층계급 사람들이 상층계급에 의해 소유된 채 필요없을 때는 보이지 말아야 하는 양극화된 나라인 에이이오 국. 자연환경도 척박하고, 식량이나 천연자원도 넉넉하지 않지만, 화폐, 도둑, 감옥, 거지, 소유, 계급, 직업, 성매매, 결혼, 가족, 음주가 없는 오도주의(Odonian) 공동체 아나레스. 이 대립적인 두 장소는 생태계, 제도, 언어, 어휘, 복장, 사고방식, 관계맺음이 모두 다르다.

 

160여년 전만 해도, 아나레스는 우라스의 위성, 곧 달이었다. 아나레스에도 생명이 살았지만 우라스만큼 많은 종이 살지는 않고, 자연환경도 훨씬 더 척박하다. 우라스력 아홉 번째 천년대의 738년 아나레스에 수은 채굴을 위한 정착지가 건설된다(113). 우라스에서는 저항운동이 전개되어서 747년 봉기가 발생하였고, 이를 이끌던 지도자 라이아 아시에오 오도(698~769)는 검거되어 드리오의 감옥에서 9년을 지내야 했다(102, 106). 그녀가 죽은 후 771년 정부가 전복되었고, 오도주의자들에게 달, 그러니까 지금의 아나레스를 주어서 그리로 이주시키자는 제안이 제시된다.이에 따라 오도주의자들의 아나레스행 이주가 20년 동안 진행되었다(113). 정착이 완료된 이후 두 행성간에는 그 어떤 인적 교류도 없이, 무역물을 수송하는 우주선이 1년에 8회만을 왕복하고 있다. 일종의 관리무역인 셈이다. 아나레스의 인구는 2천만 명이다(57). 10억명의 우라스의 1/50밖에 안 되지만, 지구상의 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평등한 대규모 공동체인 것이다.

 

2. 원환 구조: 13개의 장과 교차편집 구성

이 소설은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은 쉐벡이 아나레스에서 우라스로 떠나는 이야기이고, 마지막 장은 그가 다시 고향 아나레스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그 사이의 열 한 개의 장들은 우라스와 아나레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교차 편집되어 있다. 우라스에서의 약 6~7개월과 아나레스에서의 약 38년 남짓의 세월이 책 전체에 걸쳐 교차하며 탄탄한 이야기 전개를 선보인다. 시간상으로는 2, 4, 6, 8, 10, 12, 1, 3, 5, 7, 9, 11, 13장으로 배열된다. (만약 다음에 읽게 되면, 한 번 이 순서로 읽어봐야 하겠다.) 12장의 이야기가 1장으로 이어지는 원환 구조이다. 그런데 이 원환(cycle)은 소설의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다.

 

3. 일반 시간성 이론: 두 개의 시간성의 공존

오도의 핵심 사상 중 하나는 목적과 수단(ends and means)이 뒤바뀔 수 있다는 인과적 가역성(Causative Reversibility) 원리인데, 이는 당시 우라스와 아나레스 모두에서 정상과학 반열에 올라있던 시간 연속성(Sequency) 이론과는 모순된다(59). 숫자를 좋아하던 아이 쉐벡은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이 간극에 대한 논문을 계획했고, 이후 시간물리학자로 성장한다. 그를 최고 학자로 만들어줬던 것은 동시성(Simultaneity) 이론이다(123). 동시성 원리라는 말은 그의 음악가 친구 살라스가 작곡하고자 한 실험음악의 이름에서 유래했다(200). 이전까지 아나레스의 정상급 물리학자였던 사불은 우라스 물리학계와의 교류를 독점하였고 처음에는 쉐벡의 연구를 도와줬지만 나중에는 그를 견제한다. 타크베르의 조언을 수용한 쉐벡의 타협으로 둘은 공동연구를 발표했고, 이 저작은 우라스 물리학계 최고권위자인 아트로의 무한연속성 가설을 정상과학의 지위에서 끌어내린다(133).

 

연속성과 동시성은 무엇인가? 7장에서 우라스인 디어리에게 쉐벡이 자신의 이론을 설명할 때 이 두 시간관은 명확히 나타난다(253~256). 연속성이 시간의 화살”, 곧 시간이 과거를 거쳐 현재를 통과해서 미래로 가는 모델이라면, 동시성이란 시간의 원이다. 이 책에서는 오도주의의 상징인 생명의 원이 이를 상징하는데, 이는 곧 니체의 영원회귀이고, 르 귄과 해러웨이가 사랑해마지 않는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인 오우로보로스(Ouroboros)의 형상이다. 이는 아기나 성인의 무의식 상태의 마음이며 신화와 전설의 시간이다. 여기에는 시제의 구분이 없고, 원인과 결과가 뒤엉킨다.

 

쉐벡은 (오도로부터 영감을 받은) 동시성 이론으로 (우라스 최고 물리학자 아트로의) 연속성 가설을 쳐부수는 것을 넘어서, 양자를 통합한다(318). 르 귄은 쉐벡의 입을 빌어, 데카르트와 베이컨을 종합한 칸트와 같은 말을 한다.


존재(being)나 생성(becoming) 어느 한쪽을 환영이라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요? 존재 없는 생성은 의미 없는 것이지요. 생성 없는 존재는 커다란 지루함이고...”(256)

그의 일반 시간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의 꿈을 상기시킨다. 아니, 그보다 더 원대하다. 왜냐하면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을 물리학 자체로 받아들여야지 철학이나 윤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316). 그러나 쉐벡은 지속만이 아니라 창조까지, 존재만이 아니라 생성까지, 기하학만이 아니라 윤리학까지 포함하는 복잡성을 다루는 질문에 골몰한다(258)

 

4. 시간의 윤리: 약속과 책임

아인슈타인과 달리, 쉐벡의 우주론은 윤리학을 수반한다. “지금과 지금 아닌 것의 차이를 보면서양자간의 연결을 만들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는 도덕성, 책임이 개입한다. 약속을 깨는 것은 과거의 실재성을 부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실현될 미래에 대한 희망도 부인하는 것이다(257). 동시성만 존재한다면, 곧 존재 없는 생성만 있다면, 이러한 윤리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책임성의 약속이 과거와 현재를, 현재와 미래를 함께 묶어두는 것이다. 이 약속의 윤리는 그의 시간 이론뿐만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한다. 기억을 통해 과거는 현재와 연결되고, 의도를 통해 미래 또한 현재와 연결된다(210).

 

약속은 오도가 747년 봉기 이후 투옥되어 감옥에서의 편지유추를 쓰며 9년의 시간을 견디게 해준 힘이며(106~109), 수단과 목적을 분리하지 않는 쉐벡과 타크베르의 반려관계가 존재의 완전함이라는 기쁨에 이르게 한 힘이기도 하며(210, 378~380), 우라스의 총파업에 쉐벡이 앞장서고, 총상을 입은 참가자를 끝까지 돌보게 한 힘이면서 다른 동료들이 쉐벡을 탈출시키게 한 힘이기도 하다(341). 약속은 자발적이어야 하고, 일단 맺은 약속은 방향을 택했다는 것을, 따라서 선택이 제한됨을 뜻한다. 따라서 약속은 자유와 대립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복합적 자유에 있어서 필수적이다(280).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가늠할 때에 계속 곰곰 생각해봐야 할 말 같다.


행동은 과거와 미래의 조망 속에서 일어날 때라야 인간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의 지속성을 확고히 하고, 시간을 전체로 묶는 충실함이야말로 인간 힘의 근원이다”(379).

5. Come back home

진정한 여행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13/439, 번역누락) ... 나는 이 구절을 르 귄의 다른 글들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익숙한 글의 출처를 찾아보았지만 도대체 어떤 글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왠지 그 글을 찾으면 이 섹션을 훨씬더 마음에 들게 쓰고 리뷰 자체를 알잘딱깔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과거에 보았다고 생각한 다른 글은 지금은 못 찾았지만 미래에 보게 되리라.


세계일주처럼, 여행(the voyage)의 진정한 본성은 귀환을 포함한다”(68).

이 소설의 줄거리를 아주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빈손으로 우라스로 떠난 쉐벡이 일반 시간성 이론을 완성한다. 이것이 전우주적 실시간 의사소통 시스템인 앤서블(ansible) 개발의 기반 이론이다. 이 이론의 소유권을 확보하고자 했던 에이이오국의 음모에 넘어가지 않고, 쉐벡은 이를 전우주적 공통재(commons)로 만든 다음에 다시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이 전체적 구조 안에서 과거에 대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의도가 현재라는 순간 안에 교차되고, 여정 끝에 결국 집으로 돌아오면서 약속이 이뤄진다. 아직까지 아나레스에서의 반응이 어떨지는 분명치 않은 채 소설은 끝이 난다.

 

Come back home, 귀환이라는 테마는 소설 전체에 걸쳐 복선으로 계속 등장한다. 어린 쉐벡은 벽에 가로막혀 집에 돌아가지 못하다 부모의 음성을 듣고 집에 돌아왔음에 안도하는 꿈을 꾼다(2/43~44). 타크베르와 여행 중의 쉐벡이 주고 받은 편지도 쉐벡의 귀환에 대한 갈구를 담고 있다(8/ 289, 293).

 

우라스에는 얻을 수는 있지만 충족될 수는 없는 쾌락(pleasure)이 있었을 뿐이다. 쾌락은 끝나고, 끝나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닫힌 원, 잠긴 방, 감옥이다(379). 여기에는 시간도 길도 약속도 없다. 반대로, “여행과 귀환(journey and return)”은 시간 안에서 이뤄진다. 여정은 시간의 흐름과 미래에 대한 불확정성을 수반한다. 한 순간에 끝나거나, 꽉 짜여진 각본이 그대로 실행되는 여행은 없다. 여행에는 운, 우연, 용기가 필요하다. 시간을 낭비하거나 거스르지 않고 그 안에서 일하면서 존재의 완성을 추구하는 여정. 그 끝에 약속이 실현된다. 이것은 쾌락(pleasure)이 아니라, 기쁨(joy)이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지만, 기쁨은 고통마저 포함한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쉐벡이 타크베르와 파트너십을 결심하던 순간(6/206)뿐만 아니라, 우라스로 떠나기 직전 임신한 타크베르와 함께 있을 때(10/377~380)에도 찾아온다. 타크베르는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대화로 표현한다. 그녀는 우라스로 떠나는 것을 망설이던 쉐벡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이 길을 떠난다면 말이야. 당신은 늘 가려는 곳에 도달하지. 그리고 항상 돌아오는거야.”(12/431)

6. 원환이면서 화살인 시간

읽는 데 열흘, 리뷰 쓰는 데 보름쯤 걸린 것 같다. 제대로 읽고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을 이겼다. 그런데도 부족함을 느낀다. 애초에는 아나키스트 유토피아 소설이라는 점이 기대되었는데, 그보다는 시간 이론, 진정한 여행은 돌아오는 것, 쾌락과 기쁨의 대조 등이 더 마음에 남는다. 물론 누군가와 아나키즘 이야기를 해야할 일이 있을 때면 이제 크로포트킨이 아니라, 르 귄의 이 책을 떠올릴 것 같다.

 

화살이면서 원환이기도 한 시간이라는 아이디어는 매우 매력적이다. 심장이 뛰는 것,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 내딛으며 걷는 것, 다 아주 작은 현재의 반복이다. 이 작은 반복은 그보다 큰 반복 또는 순환이라 할 수 있는 오늘 하루 안에 존재하고, 그 하루도 올해 1년 안에 존재하고, 그러한 순환의 단위를 셈으로써 우리는 시간을 측정한다. 걷거나 뛰거나 헤엄쳐서 어떤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몸의 반복행위의 현재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공간적 이동의 궤적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출발 지점부터 도착 지점까지 나는 반복운동을 하지만, 그것의 결과는 두 지점 사이의 선, 방향을 따라 걷는 길로도 나타난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 나는 걸어서 고개를 넘었고, 이따가 퇴근할 때는 막걸리와 간단한 찬거리를 사서 언덕을 올라 집으로 돌아간다. 걷는 현재의 반복이 시간의 흐름 안에서 출퇴근이라는 공간적 이동 여정으로 바뀐다.

 

하루가 아니라 더 큰 시간단위라면 어떤가? 올해 안에 마쳐야 하는 일들... ... 생각하기 싫다. 그래도 해야 한다. 하기로 약속했고, 하고 싶기도 했고, 결과물도 보고 싶다. 미래가 현재가 된 순간 행복하려면 지금 현재를 잘 보내야 한다. 이 웬 갓생러 같은 소리냐?

 

Ps.

다음 헤인 시리즈 읽기는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이다. 이 시리즈 읽기 시작하면서 원래 해야 할 일들, 먼저 약속한 것들을 미루지 않기로 혼자 다짐했다. 그래서 언제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을 읽을지는 모르겠다. 약속이란 선택의 제한을 동반하는 것이니...

 

이 리뷰의 별점은 순전히 내용에 관한 것이다. 번역은 문제가 좀 있다.

(번역 문제는 이 페이퍼에 정리해두었다: https://blog.aladin.co.kr/eroica/14638111 )


기억해둬야 할 것 하나 더. 르 귄은 폴 굿맨이라는 미국 아나키스트를 좋아했다고 한다. 찾아보니, 국내에 번역된 책이 하나 있다. 바보 어른으로 성장하기: 부조리한 사회에서 생존한다는 것. 정성과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둔다.

 

또 하나 더.

찾아보니, The Disposseseed를 포함해서 르 귄의 작품들 중 일부가 라디오극으로 제작되었다. https://libcom.org/article/dispossessed-radio-play

이 사이트에 가면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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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spossessed (Mass Market Paperback)
Le Guin, Ursula K. / Eos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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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sula K. Le Guin is not just one of SF authors, but also a speculative fabulator, fabulous philosopher!

Must read before getting too old.


The passage I quote below reminds me of the dialogue between Zarathustra and Time, the famous scene from Thus Spoke Zarathustra.

But Le Guin is much better than Nietzsche in passing her minds to readers. Isn't she? :)

Everything that had happened to him was part of what was happening to him now. Takver saw no such obscure concatenations of effect/cause/effect, but then she was not a temporal physicist. She saw time naively as a road laid out. You walked ahead, and you got somewheere worth getting to.
But when Shevek took her metaphor and recast it in his terms, explaining that, unless the past and the future were made part of the present by memory and intentions, there was ... no road, nowhere to go, - P240

"It is only in consciousness, it seems, that we experience time at all. A little baby has no time; he can‘t distance himself from the past and understand now it relates to his present, or plan how his present might relate to his future. He does not know time passes; he does not understand death. The unconscious mind of the adult is like that still. In a dream there is no time, and succession is all mixed together. In myth and legend there is no time. ... - P290

... What past is it the tale means when it says ‘Once upon a time‘? And so, when the mystic makes the reconnection of his reason and his unconscious, he sees all becoming as one being, and understands the eternal return."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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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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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들이 다 지고... 분주했던 마음도 정리가 되고... 뭔가 새로운 놀이를 시작하기로...

미루고 미루던 헤인 시리즈 읽기를 시작했다.

이것이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은 아니기를...

그냥 짬내 숨쉴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다.


르 귄의 헤인시리즈를 검색해서 나무위키에 들어갔다.

헤인시리즈 작품들을 (발표연도가 아니라), 그 시리즈 전개 상의 순서로 나열해놓은 것을 발견했다.


<혁명 전날>이 처음인가 싶어 다시 읽으려는데, 그 앞에 이렇게 쓰여져 있는 거다.


이 이야기는 오멜라스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470). 

결국 바로 그 앞에 실려 있는 "오멜라스를 떠난 사람들"부터 읽었다. 


72세 여성 라이아 아시에오 오도(Laia Asieo Odo)는 지금 "오도주의자의 집"에서 살고 있는데, 얼마전 뇌졸중을 겪어 오른 편이 불편하다. 

그녀는 <공동체>와 <유추>의 저자이고, 그녀가 바로 오도이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 타비리 오도 아시에오는 캐피톨 광장에서 싸우다 죽었다.


헤인시리즈 읽기는 이 책 <바람의 열두 방향>의 마지막 두 단편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과 "혁명 전날"에서 시작해서 <빼앗긴 자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빼앗긴 자들>에 나온 두 행성 우라스와 아나레스는 바로 오멜라스와 오도주의자의 집이 있던 도시의 확장된 판본임을 깨닫게 되었다.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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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제임스 러브록 지음, 홍욱희 옮김 / 갈라파고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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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보면, 캐머런의 <아바타> 연작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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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제임스 러브록 지음, 홍욱희 옮김 / 갈라파고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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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외면할 수 없는 기후위기와 인류세 논의를 살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개념이 가이아(Gaia)”. 특히, 신기후체제에 관한 라투르의 후기 저작들은 약간의 변용을 거치긴 했지만, 바로 이 가이아 개념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이아라는 이름 자체는 윌리엄 골딩이 작명한 것이지만, 이 가설의 저작권은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 1919~2022)과 진화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1938~2011)가 공동으로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러블록이라고 읽는데 왜러브록으로 표기할까? “마구리스라고 안 하고 마굴리스라고 표기하면서? “마구리스가 구린 것처럼 러브록이란 표기도 구림). 러브록은 작년(2022)에 자신의 103세 생일에 영면하였다. 장수하셨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유명을 달리한 거장들이 참 많다. 러브록, 라투르, 그리고 마이크 데이비스… (내가 존경하는 맑스주의자 데이비스에 대해 추모 서평을 쓰고 싶은데 쓸 수 있을까? 당분간은 못 쓸 듯…)


린 마굴리스와 제임스 러브록 - 가이아 여신상 앞에서


1. 가이아

가이아 가설의 공동저작권자이긴 하지만, 러브록과 마굴리스의 출발점은 정반대다. 마굴리스가 현미경을 통해 겨우 살펴볼 수 있는 세포 안의 물질들에서 시작한다면(https://blog.aladin.co.kr/eroica/13739842), 러브록은 달에서 망원경을 통해 본 지구의 모습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18, 35, 47, 144 247, 286). 이처럼 두 거장 간의 마이크로와 매크로의 대화가 가이아 가설을 구성하게 된다.  



가이아는 대기, 해양, 지표면의 암석 등과 밀접하게 결합된 모든 생물체들로 구성되는 초생명체(superorganism)”(17-18), “지구의 생물권, 대기권, 대양, 그리고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복합적인 실체”(51-52),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위하여 스스로 적당한 물리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피드백 장치나 사이버네틱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거대한 총합체”(52, 256). “능동적 조절시스템”(75, 123, 159), “각 부분들이 갖는 가능의 합보다 훨씬 커다란 능력과 속성을 지닌 복잡한 협조 체제의 네트워크”(78) 등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가이아의 주요한 세 가지 속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248~249).

 

1)     가이아는 지상의(terrestrial) 모든 생물들에게 적합하도록 주위 환경 조건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2)     가이아는 중요성이 서로 다른 부분들로 이뤄져 있다곧 핵심부에는 꼭 필요한(vital) 기관들이, 주변부에는 소모성(expendable)이거나 있어서 좋을 수는 있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redundant) 기관들이 있다.

3)     가이아가 나쁜 방향으로의 변화를 감지하면, 사이버네틱스의 원리에 따라 반응한다.

 

이 중 1) 3)은 가이아가 생물의 번성에 적합하도록 행성의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 일종의 능동적 조절 체계로 기능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특히, 1)의 논리는 러브록이 가이아를 지구 생태계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를 지니고, 이를 위해 의식적으로 개입하는 실체로 규정하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비판을 유발하였다. 2)의 규정은 이 책 뒷부분에서 러브록이 전개하는 논의의 기반을 이루는 것으로 가이아 안에서 인간의 기능, 중요성, 의미, 역할에 관한 것이다.

 

2. 가이아는 존재하는가?

러브록은 지구가 자기조절적 체계라는 생각을 “1965년 어느 날 오후 갑자기떠올렸고(25), 1967년에 가설로 확립했고(49), 1970년대 초 가이아라는 이름을 골딩으로부터 선사받았으며, 그 후 몇 편의 논문들을 발표하고, 1974년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해서 1979년에 초판을 출판하였다. 여러 사람의 관심을 받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 과학계는 이 가설에 대해 냉대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1994년부터 지구에 대한 전체론적(holistic) 접근방식이 부상하면서이제 이 이론은 과학계의 승인을 기다리는 후보 이론이 되었다”(16).

 

우리가 오감을 통해 직접적으로 감각할 수 없는 것의 존재를 상정할 때에는 그것이 존재할 때에야 비로소 존재가 설명될 수 있는 감각할 수 있는 다른 대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의 관념도 이렇게 탄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러브록이 가이아의 존재를 상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왜 가이아라는 개념이 필요했을까? 45억년 전 지구가 생겼고, 이 곳에 생명체가 등장한 것은 35억년 전이다. 이후 태양이 방사하는 열에너지의 양, 지구 표면의 형태, 대기권의 화학적 조성은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기후는 거의 변화가 없이 평균 기온 섭씨 10~20도를 유지해 왔다(49-50, 71). 지구의 대기에 산소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억년 전쯤인데, 이는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기존의 생물들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었지만, 생물들은 그 변화에 적응하여 이 살인적인 침입자를 유쾌한 친구로바꿀 수 있었고, 대기 중 산소가 차츰 증가하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21%에서 더 올라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84-85, 216-217). 생물은 바다에서 처음 탄생하였고, 이는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6% 이하임을 뜻하는데, 그 이후 차츰 감소해서 수억년 동안 오늘날과 같은 3.4%를 유지하였다(178~188). 기후, 대기 중 산소의 비중, 바닷물의 염도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는 점은 과학적 설명이 필요한 사항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무언가의 개입이 없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존재할 수 없는 화학적 비평형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지구의 비평형 상태의 항상성(homeostasis)은 오늘날 생물의 번성에 적합한 조건을 이루는데, 러브록은 그 이유를 가이아의 존재에서 찾고 있다(52, 128, 282-285).

 

그렇다면 이 가이아 가설이 도전한 기존의 관점 또는 우리의 상식이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 관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과학적 지식이라는 측면을 살펴보자.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대기, 바닷물의 농도, 평균 기온을 모든 생물이 번성할 수 있는 이상적이면서도 정상적인 조건이라고 가정하는데, 지구에 이 조건이 어느 순간 갖춰진 다음에야 비로소 생물이 등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최초에 지구가 생겼을 때뿐만 아니라, 그후 바다가 생기고, 그 바다에서 생물이 처음 생겼을 때에 지구의 조건은 오늘날과 완전히 달랐다. 생물이 점차 번성하면서 산소도 늘어나고, 바닷물의 염분 농도도 줄어들었다. 곧 생물이 존재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출현한 시기와 비슷한 삶의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이는 생명활동이 배제된 채, 지구가 생명의 존재를 준비했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생물들이 대기, 해양, 암석 등과 함께 삶에 적합한 조건들을 능동적으로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생명체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이 비평형 상태가 잠시 존재하고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지속되어 왔다는 것은 생명체가 대기, 해양, 암석 등과 함께 복잡한 피드백 루프들을 작동시켜 항상성을 유지하는 능동적 조절체계처럼 작동해왔음을 뜻하는 것이다.

 

3. 가이아는 의도와 지능을 갖고 있는가?

항상성과 능동적 조절이 작동했다면, 가이아가 그야말로 대지의 여신처럼 의도와 지능을 갖고 있다는 말인가? 가이아 가설에 대한 과학자들의 비판은 이 점에 집중되었다. 이 책 앞에 실려 있는 2000년에 다시 쓴 서문(15-16)에서는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려고 했던 의도가 과학자들의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이 비판에 대해 러브록이 방어를 제대로 못한 것 같다는 인상이 든다. (물론 내가 러브록의 다른 책들을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이러한 오해에 대한 교정은 마굴리스의 『공생자 행성』(210~220)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구는 인간의 의식과 같은 것은 없지만 생리적으로 조절되는고유감각 체계(proprioceptive system)을 갖고 있고, 이것이 사이버네틱스 원리가 작동하게끔 하는 스위치가 된다는 것이다. 공 능동성과 의식은 다른 것이다.

 

사이버네틱스 원리를 구성하는 복잡한 음의 피드백 루프들(negative feedback loops)이 하나하나 규명될 때마다 가이아 가설은 이론의 지위에 더욱 가깝게 다가설 것이고, 현재의 지구시스템 과학은 이 가설에서 이론으로의 도정을 걷고 있는 학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4. 가이아와 인간

마굴리스와 러브록의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 참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에서 살펴본대로 지구는 자신의 항상성 유지에 더 중요한 부분과 덜 중요한 부분을 갖고 있다. 러브록이 보기에 지역적으로 제일 중요한 현장은 지상에서는 열대우림이며, 해양에서는 대륙붕이다. 생명체 중에서는 인간보다는 바다나 습지에 사는 미생물들이 항상성 유지에 더 결정적인 역할을 유지한다. 이 지점에 가이아 가설의 두번째 비판 대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멀게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본 프로타고라스의 관점, 가깝게는 사물의 가치를 그 사물의 인간적 유용함으로 판단하는 근대 공리주의(utilitarianism)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인간은 이런 방식의 사고에 젖어 있다.

 

인간중심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은 좋다.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먼저, 그 하찮은 인간 따위가 만들어낸 환경 오염(79-80, 84, 216, 238)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심지어 핵실험이나 방사능 폐기물도 그리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62-63). 또 러브록은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도, 그리고 그 저작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환경운동도 싫어한다(27-28, 10-11, 281). ? 비과학적이면서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말 잘하는 운동권 싫어하는 이과 천재 같은 느낌이다. 그가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지 않았기 때문일까? 올해 후쿠시마 방사능 폐기물이 바다로 방류되면 이제 해산물을 과연 먹을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나는 비과학적인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러브록이 인간이 유발하는 환경오염을 가이아가 다 해결해줄 것이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분명히 그 위험을 경고한다. 이 점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고,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 같다.

 

가이아 가설은 우리 행성의 안정된 상태는 인간을 매우 민주적인 실체인 자신의 부분, 또는 그 안에서의 파트너로 포함하고 있음을 암시한다”(282, 번역수정)

 

러브록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해서 어떤 생물들은 의식적 사고, 지각 능력, 인식적 예지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284). 이러한 지능은 통상 살아 있는 생물의 속성이다. (물론 지능에는 여러 단계가 있을 수 있다는 러브록의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생물뿐만 아니라 AI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가이아도?

 

이에 대해 러브록은 가설 수준의 추론을 제시한다. 지금과 같은 복잡한 방식으로 여러 정보를 수집, 저장,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인 인간이 어쩌면 가이아의 신경계와 두뇌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284~285). 이는 곧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이 단지 우리들의 것만 이 아니라 우리가 가이아와 함께 공유하는 것임을 뜻한다(287). 러브록은 에필로그의 끝부분에서 인간이 사실은 우리 자신들보다 훨씬 더 커다란 실체, 곧 가이아의 역동적 부분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제안한다(287).

 

5. 가이아와 에이와(Eywa)


책을 읽기 시작한 다음에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 물의 길>을 보았다. 그리고 복습삼아 전편도 제대로 보았다. 따라서 책을 읽는 내내 <아바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판도라 행성의 여신 에이와는 아마 가이아에서 나왔을 것 같다. 모든 생명체들을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시스템의 부분으로 보는 나비족(Na’vi)의 모습은 에필로그의 말미에서 러브록이 그리는 인간에 대한 희망과 동일하다. 나비족이 에이와의 부분이면서 그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도 가이아에 길들여질 수 있으리라(287).




흥미롭게도 러브록은 인간이 이러한 역할을 다할 수 없다면, 그 역할을 할 다른 후보로 우리보다 훨씬 더 커다란 두뇌를 가진 거대한 해양성 표유류들 가운데 하나인 고래를 꼽는다(287-290). <아바타: 물의 길>에서 지구에 온 인간이 자신의 노화방지에 특효인 고래 뇌의 기름을 얻기 위해 고래를 살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전 나비족의 단결투쟁뿐만 아니라, 보통은 행성 생명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에이와의 분노를 유발한다



인간 너머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 그리고 인식을 너머 교감한다는 것은 필멸의 존재인 나뿐만 아니라, 유적 존재인 인간 자체의 재정의를 수반한다. 다르게 보이면,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기온이 널뛰기하는 올겨울 특히 의미있는 독서였다. 쉽게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더 큰 살아있는 것의 부분이며, 그 안에서 다른 살아있는 것들과 공생하는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가이아란 바로 이러한 부분적 연결들의 총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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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교양 도서라서 그런지 직역보다는 의역이 많다. 도움이 되는 역주도 있지만, 역자의 개입이 좀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역자는 러브록이 가설(hypothesis)”이라고 쓴 것을 자꾸 이론으로 번역하는데, 이것은 분명 오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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