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언어 - 판타지, SF 그리고 글쓰기에 관하여
어슐러 K. 르 귄 지음, 조호근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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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이기보다는 나중에 이 소설이 어떻게 쓰여졌나에 대한 회고담이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 자체도 훌륭한 중편 소설이지만,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그 글을 썼고, 그 안의 캐릭터들을 어떻게 창조해냈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빼앗긴 자들』 읽으면서, 에이이오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분위기가 고조되다 진압되는 과정을 묘사한 장면을 보면서 너무 탁월하다고 생각했었다. 오래전 나도 그런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르 귄도 한 때는 데모꾼였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1960년대 반핵시위와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 조직에 앞장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 리뷰를 써야 하는데, 며칠이나 더 걸릴지 모르겠다. ㅋ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은 처음에는 순수하게 자유와 꿈을 추구하며 시작했으나, 결국 부분적으로 그런 설교단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작품이다. SF 작가들은 이런 유혹을 아주 강렬하게 느낀다. 다른 소설가들에 비해 개념(ideas)을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며, 개념에 의해 다듬어지거나 개념 자체를 내포한 은유를 사용하며, 따라서 항상 개념과 의견을 혼동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 P280

내가 "작은 녹색 인간들 The Little Green Men"을 처음 쓴 것은 ... 1년간 런던에 체류하던 와중인 1968년 겨울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60년대 내내 비폭력 시위를 조직하는 일을 돕고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핵무기 실험 반대 시위였고, 나중에는 베트남전 속행 반대 시위가 되었다. 무력하고 어리석고 완고한 사람이 된 기분으로, 열 명이나 스무 명이나 백 명의 다른 무력하고 어리석고 완고한 사람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올더 가를 거닌 적이 몇 번이나 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쨌든 시위는 평화적이었고, 나는 거기 참여하며 내 작품과 완벽하게 유리된 방식으로 내 도덕 및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수 있었다. - P281

류보프도 셀버도 단순히 ‘위풍당당한 미덕‘(Virtue Triumphant) 그 자체인 인물은 아니다. ... 그러나 데이비드슨은 복잡하지 않은 인물은 아니지만 순수하다. 그는 순수한 악이다. 그리고 나는 의식적으로는 순수하게 악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내 무의식은 의견이 다르다. 무의식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데이비드슨 사령관(Captain Davidson; 대위)이라는 인물을 창조해 냈다. 그를 부인할 생각은 없다. ...

미국의 베트남 개입은 이제 옛일이 되었다. ... 이야기 속의 훈계조가 이제 또렷이 드러나 보인다. 후회가 되기는 하지만 이 또한 부인할 생각은 없다. 작품을 살아남거나 스러지게 만드는 요소는 결국 모든 특정한 분개와 항변 속에 숨은 내밀한 갈망이다. 분노와 절망 속에서 정의나 재치나 우아함이나 자유를 향해 아무리 머뭇거리는 손을 뻗어봤자 변명은 될 수 없다. - P282

가상의 외계인을 홀로 창조해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세노이 족을 묘사하고 있었을 뿐인 것이다. 잘 찾아보면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인물은 데이비드슨 대위뿐이 아니다. 서로를 살해하지 않는 조용한 부족도 그 안에 존재한다. 사실 무의식 안에는 꽤나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 듯싶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따라서 부인하는) 것들도,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따라서 부인하는) 것들도.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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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과학
샌드라 하딩 지음, 이재경, 이박혜경 옮김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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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0. 2023년 연말의 득템


연말, 곧 한 해의 끝이 시작되었다. 약속들이 잡힌다. 약속이 퇴근 시간에 바투 잡히지 않으면 지하철역 너댓 개의 거리는 걸어간다. 12월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하고 있는 올 연말은 더 걸을 만하다. 걸음은 빠른 편이다. 시간이 남는다. 어디서 삐댈까? 고민하며 속도를 늦춰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오. 그런데 헌책방이다. 큰 기대 없이 들어간다.


앗! 그런데... 대물을 낚았다!
짜~잔~



알라딘 중고시장에서도 고가로 거래되는 샌드라 하딩의 <페미니즘과 과학>이다. 2002년에 출판되었다 절판된, 정가가 1만2천원인 책.
서가에서 책을 뽑아 고이 사장님께 드렸더니, 대뜸 "5천원만 주세요."
대박! 땡큐 사장님~
사실 저 짧은 시간 동안 마음 속에서는 사장님께서 알라딘 중고가격 검색하시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ㅋㅋ
이 날 밤 나는 그날 있었던 마음 쓰이는 일과 다음날 해야 할 일을 다 잊고, 코알라가 되었다.


2. <사이보그 선언>(1985)과 <상황적 지식들>(1988)의 징검다리

술이 깬 다음에야 책을 찬찬히 읽기 시작한다. 일단 해러웨이 나오는 부분만 살펴봤다.
4장 "생물학과 사회과학의 남성중심주의"와 6장 "페미니스트 경험론에서 페미니스트 입장론적 인식론까지"는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의 4장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1981)에 대한 논평이다. 6장은 해러웨이보다 훨씬 더 명확한 어휘와 논리로 맑스주의를 비판한다. 더 찬찬히 봐야 하겠지만 일단 말장난하지 않고 진지해서 마음에 든다.  


제일 재미있는 것은 7장 "다른 '타자들'과 정체성의 분열"인데,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1985,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의 8장)에 대한 매우 진지한 논평이다. 일반 독자라면 딱히 눈치채지 못했을 해러웨이의 변화가 지목되고, 해러웨이와 자신의 일치점과 차이점에 대한 고찰이 인상적이다. 해러웨이는 하딩의 이 논평에 응답하며, "상황적 지식들"(1988)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의 9장으로 실려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3. 밑줄을 긋다가


절판되서 못 구하게 된 이 책은 그야말로 페미니스트 고전이라 칭할 만하다. 책을 다 살펴본 것은 아니어서 번역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해러웨이 번역은 워낙 어려우니 너무 극악무도하지 않으면 이해해주고 넘어가도 된다. 어쨌든 이 책은 내게 너무 귀하다. 나보다 더 진지하게 페미니즘과 과학, 해러웨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완전 새 책인데, 괜히 줄 그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이미 몇 개의 표시를 한 다음에야 들었다. 아뿔싸!) 

   


도나 해러웨이는 인본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설명에서 근본적인 세 가지 경계들이 현대 사회 경험 속에서 깨져 버렸다고 지적한다. 첫째,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는 완전히 깨어졌다. 놀이공원으로 보내지지는 않았다 해도 독특성의 마지막 교두보는 오염되었다 - 언어, 도구 사용, 사회 행동, 정신적 사건, 어느 것도 인간과 동물의 분리를 진정으로 확실하게 이루어 내지 않는다." 둘째, 현대의 기계들이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정신과 육체, 자생적인 것과 외적으로 고안된 것 사이의 차이와, 유기체들과 기계들에 적용되곤 하던 다른 많은 구분들을 완전히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의 기계들은 불온하게도 살아 있고, 우리 자신은 자력으로 움직일 힘이 놀라울 정도로 없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 경계의 실패의 부분집합은 물리적인 것과 비물리적인 것 사이의 구분의 부정확성의 증대이다(Haraway 1985, 68-70). - P250

그러나 ‘인간‘이라는 인본주의적 가공물은 동물이나 기계와는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것으로, 혹은 물리적인 것들과 비물리적인 것들이라는 구분 가능한 요소들로 - 이러한 것들이 물질과 정신인지, 몸과 영혼인지, 신경물리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인지, 내분비학적인 것들과 문화적인 것들인지 -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본질화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의 계, 특 ‘여성‘을 본질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다. 페미니스트 경험론 및 입장론의 정당화 전략들이 호소력을 갖는 사회 경험을 한 ‘여성‘은 없고 대신에, 여성들이 있다. 즉 멕시코계 미국 여성들과 라틴계 미국 여성들, 흑인, 백인, 한국 전자 공장에서 일하는 ‘해외의‘ 여성들과 카리브의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있다. - P250

‘유색인 여성들‘이라는 개념 속에서 해러웨이는 그것이 되살려 내는 많은 미국 페미니즘 이론이나 인본주의 담론들 속에서처럼 - 통합의 정치학으로 본성화되거나 본질화된 정체성보다는 ‘대항 의식(oppositional consciousness)‘과 연대의 정치학에서 나온 정체성과 세계에 대한 관점을 본다. - P250

나아가, 그녀는 서구의 페미니스트들이 기대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대상 관계 이론들, 그리고 여성을 남성적 섹슈얼리티의 희생물로 보는 급진적 페미니즘 속에 우리 시대에 적절한 정치학과 인식론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있다고 본다. 이 세 가지 분석들 모두 자아 본래의 통일로 복귀하는 것이 ... 바람직하다는 가정에 의존하고 있다. 해러웨이는 이렇게 계속 주장한다. 우리의 ‘분열된 정체성들(fractured identities)", 말하자면 흑인 페미니스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레스비언 페미니스트 등을 포용함으로써 생겼던 설명상의 이점을 보라. 본성화되고, 본질화되고, 특유의 ‘인간적인‘ 것들이라는 가공물에 대한, 그리고 이러한 가공물에게 행해진 왜곡, 전도, 착취, 억압에 대한 우리의 반대 속에서 정치적 인식론적 연대를 구하면 왜 안 되는가? 페미니즘 관점의 영원한 당파성을 인식함으로써 열려진 새로운 가능성들을 탐구하면 왜 안 되는가?

- P251

해러웨이의 주장은 서구 인본주의의 기본적인 금기들을 광적으로 훼손하고서 나온 지식 주장들만을 정당화하는 인식론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페미니즘 입장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대항 의식‘을 가진 - 정확히 서구 과학의 정신적 동력이었던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를 갈망하는 것에 대한 반대 - 정치적 투쟁에서 나온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다. ... - P251

이러한 페미니즘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론에 대해서, 우리는 근대 과학의 정당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흔히 제기되는 인식론의 가정들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가정들에서 시작해야 한다. ‘지식 주체‘가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원은 우리의 비본질적이고, 비본성적이고, 조각난 정체성들과 ‘본래의 통일성‘에로의 복귀의 망상에 대한 거부이다. 그러나 지식 주체들은 분리되었지만 세계는 하나가 될 수 있다. 본질적인 이분법들로 구성되어 있는 밖의 ‘하나의‘ 세계에 대한 가정에, 설명을 통해서 이것을 다시 연결시키는 것이 과학의 일인데, 대조적으로 대항 의식의 종류만큼 상호 관련되고 부드럽게 연결된 많은 현실들이 있다.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를 말하려는 목표를 포기함으로써, 대신에 우리는 페미니즘 연구가 가지고 있는 영원한 당파성을 포용하는 것이다. - P252

해러웨이는 페미니스트 입장론 전략(feminist standpoint strategy)과는 분명히 반대로 설명을 전개하지만, 나는 그 설명이 입장론 전략의 두 가지 주요 요소들을 유익하게 통합시킨다고 생각한다. 첫째, "누가 이야기를 가졌는가(who‘s got one)"에 대해서 입장론적 인식론보다 해러웨이의 개념이 인종과 젠더 지배의 상호 관련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둘 다 대항 의식의 형성에 의존하고 있다. 둘째, 많은 주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대조적으로 페미니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입장론적 접근들처럼 매우 정치적이다.(각주 42. ... 해러웨이는 그녀가 탐구하는 페미니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도덕주의와 전위 정치학을 피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며, 특정한 종류의 도덕주의를 포용하는 것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 그것이 많은 ‘부모격의‘ 담론과 불일치를 보이는 것도 역시 여기서이다. - P252

내가 보기에, 해러웨이의 분석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의 인식론적 가정들 안에 너무 갇혀 있기 때문에 약해진다. 이것은 사실상 정치경제학에 대해서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그녀의 노골적인 가정 속에서 알 수 있다. 그녀는 원리상 발달심리학은 역사 제도의 규칙성과 기저의 인과적 경향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또한, 우리가 처음으로 급여를 받았을 때나, 여성이라면 처음 성인으로 사회적 이익을 위해 성적 호의를 교환하기 시작할 때라야, 우리는 독특한 사회적 인간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본다. - P25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러웨이의 공헌을 포함하여) 페미니즘적 포스트모더니즘이 단지 ‘죽은 것들의 역사‘, 즉 ‘남성‘, ‘그의 문화‘, ‘그의 지식‘ 그리고 그의 본성화되고 본질화된 ‘여성‘ - 인본주의 과학이 만들고 근대적 형태로 유지하는 데 분명한 역할을 했던 그 개념들-의 역사 그 이상의 것들을 탐구하는 데에 풍부한 개념적 도구들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강력한 내부 긴장을 발생시킨다. 즉 입장론적 인식론들은 포스트모던주의 인식론들이 위험한 거짓 이야기라고 여기는, 우리 자신과 세계에 관한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를 말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입장론적 인식론이 당파적이긴 하지만 ‘덜 거짓된‘ 이야기들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모더니스트 조상들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을까?

승계 과학 프로젝트들을 포기하는 문제는 페미니즘 이론이나 페미니즘 정치학이 가부장제 이론 및 정치학에 대해 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 P253

... 만일 인본주의를 곡해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우리 서구 수혜자들이 - 많은 페미니즘 사상가들도 이러한 수혜자들이다 - 분열된 자아의 대항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 종의 대다수 성원들을 위한, 단지 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당파적인 과학의 이론화에 참여하겠다면, 우리에게는 우리들 대부분이 품어 왔던 것보다 더 강고한 연대의 정치학이 필요하다.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우리가 이익을 얻고 있는 구조적 인종 차별주의를 제거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투쟁해야만 한다. 입장론적 이론가들이 지적하듯이, 대항 의식은 "모두가 참여하게 된 사회 관계의 표면 아래를 보는 과학"만이 아니라, "그러한 관계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으로부터만 자라날 수 있는 교육"이 있어야 얻을 수 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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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8 16: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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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8 16: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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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2024-02-07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구해보고 싶었는데 부럽네요 ;;;

2024-02-08 0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9 0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9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9 23: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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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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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짧은 서평을 써야지 다짐하고 앉았다. 다 읽는 데 한 달 좀더 걸린 것 같다. 중간쯤 읽을 때에 가끔 가는 꽤 큰 전통시장에서 송이버섯 구경을 하면서 높은 가격에 입맛만 다시기도 했다. 갓이 핀 송이는 더 쌌지만, 그 가격도 내게는 벅차 포기했다. 만약 그때 송이버섯을 살 여유가 있었다면 좀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ㅋ 처음엔 재미있게 읽었는데, 나중엔 계속 똑같은 이야기 같아서 지겨웠다. 소위 포스트휴먼 인류학도 그저 그렇다.


1. 주변자본주의에서의 구제 축적

애나 칭은 송이버섯 채집현장에서의 참여관찰과 심층면접에 기반해서 버섯 채집인, 구매자, 중개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자연 존재들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자 하는 인류학적 방법을 성실하게 실행한다.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 모두에 대하여 귀기울여 듣기와 알아차리기의 기술을 실행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그녀가 머리속에 갖고 있는 패치(patch) 자본주의의 밑그림에 기반하여 일종의 스토리텔링으로 재현한다. 패치는 어떤 장소에 자리잡고 있는 얽힘의 배치(assemblage, 56~61)이고, 이 배치들은 상품사슬에 의해 연결된다. 상품사슬의 각 마디에서는 일종의 번역이 이뤄진다. 여기에서 번역은 라투르가 정화의 대립항으로 쓰는 번역과는 조금 다르다. 상품사슬의 상류에서 번역은 야생의 노동과 자연이 자본증식 과정에 투입되어 조율되는 과정을 가리키기도 하고, 하류에서는 상품이 선물로 바뀌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칭은 상류의 번역을 구제(salvage)”라는 말로 포착하고자 하는데, 그 의도는 어느 정도 짐작은 하겠는데, salvage구제로 옮기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딱히 대안이 생각나지는 않는다. 이 송이버섯이 채집되어 구매인에게 넘겨지는 구제 축적의 장소는 자본주의의 내부인지 외부인지가 애매하므로, 주변자본주의(pericapitalism)라는 그녀만의 용어로 불리운다. 칭은 그곳에 단일경작 플랜테이션 농장의 임금노동의 규율과 확장가능성(scalability)과는 대비되는 채집인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 있다고 해석한다. 이 자유는 그 순간 그 장소에 존재하지만, 상품사슬에 편입되면서 송이버섯이란 비인간 존재도 소외를 겪는다.


2. 교란과 오염으로 함께 만드는 다종의 세계 만들기

미국, 중국, 일본 등의 송이버섯 숲의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교란과 오염을 자연과 송이버섯에 해가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미국식 이해가 오히려 그것이 송이버섯 키우기에 도움이 된다고 이해되는 일본식의 이해와 대조된다. 중국 윈난성에서는 이것이 절충적인 방식으로 실행된다. 같은 윈난성에서도 티벳 채집인이 한족 구매자에게 버섯을 판매하는 과정에는 열띤 흥정이 존재하지만, 채집인과 구매자가 모두 이족인 마을에서는 신뢰와 장기적 관계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흥정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분의 이야기는 해러웨이와 카옌의 관계 같은 것, 곧 마굴리스의 이론을 발전시킨 공동발생 이야기의 연장이다. 서로 다른 종들이 얽히면서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고전파 정치경제학과 집단유전학의 개체주의적 전제가 비판된다.


3. 잠복되어 있는 공유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중심에서건 아니면 안팎의 경계가 불확실한 주변자본주의에서건 불안정성과 불확정성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칭은 이 제도화된 소외의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얽힘의 일시적 순간들에서 잠복해 있는 공유지(latent commons)”의 가능성을 탐색한다(450~452). 꼭 있으라는 보장도, 꼭 더 좋으라는 보장도, 구원의 보장도 없지만 이 잠재적 공유지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 모두가 함께 여기에서 만들어가는 희망의 과정이다.  


큰 꿈은 꾸지 말되 포기는 하지 말자. 뭐 이런 이야기 같다. 일상 속의 작은 희망, 그래그거 중요한 거다. 에효


4. Anti-ending??

연구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는 글들은 보통 결론 대신 결론에 대신하여같은 이름의 결말부로 끝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런데 이 책처럼 마지막 장 직전 챕터인 20장의 제목이 “Anti-ending”인 글은 처음 본다. 이 책은 끝맺기를 거부한다(503). 나는 대체로 열린 결말로 끝나는 서사구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글도, 영화도. 왠지 저자가 내지 못하는 결론을 독자, 청중, 관객에게 미룬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도 그래서 끝부분이 좀 실망스러울 뻔했다. 마지막 부분에 인용한 글이 르 귄의 「소설의 운반 가방 이론」(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 https://blog.aladin.co.kr/eroica/14149146#Comment_14149146)이 아니었다면, 분명 이 책의 독서경험은 나의 고정관념을 강화시켰을 것이다.


르 귄의 캐리어백 픽션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정형으로 제시한 시작, 중간, 끝이 있는 이야기에 반대하며, 오우로보로스가 상징하는 원환의 이야기를 긍정한다. 칭이 이 책의 마지막에서 인용한 르 귄의 스토리는 실뜨기가 되어 해러웨이의 손으로 넘어간다. 해러웨이의 『트러블과 함께 하기』 제2장을 보라. 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책은 끝나지만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계속된다. 포스트휴먼 인류학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너무 지루해져서 별 네 개 줄까 하다가 르 귄 이야기로 끝나서 별 다섯 개다.


역자는 매우 훌륭한 번역을 하셨지만, 칭이 인용한 르 귄의 이 글 맨 앞 부분을 오역했다. 『세상 끝에서 춤추다』(이수현 역, 황금가지) 297쪽이니 찾아보시기를…. 번역에 관해서 한 마디만 하고 마치겠다. 정말 훌륭한 번역이다. 아무나 이렇게 유려하게 못한다. 그러나 putting-out내놓기로 번역하면 안 된다. Putting-out system(영어판 pp. 114~115, 한글판 214)은 보통 선대제(先貸制)로 번역한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비롯하여 경제사 책에 산업혁명 이전의 자본주의 관계의 등장을 이야기할 때 빈번히 나오는 개념이다. “주변자본주의의 구제축적 이야기를 하려면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인본주의적 개념화라고 깔보기 전에 말이다. 짜잘한 이의제기들을 더할 수 있지만, 역자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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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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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송이버섯, 그리고 그 너머의 다종의 세계만들기에 관한 인류학적 스토리텔링이다. 번역도 훌륭하고, 역자 해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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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망각의 책 문학사상 세계문학 13
밀란 쿤데라 지음 / 문학사상사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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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편지들> 중에서...


르 귄은 <세상 끝에서 춤추다>에 실려 있는 "캘리포니아를 차가운 곳으로 보는 비유클리드적 관점"(1982)에서 쿤데라의 이 구절을 인용한다. 그리고 이 말을 필립 로스의 쿤데라 인터뷰, "The Most Original Book of the Season: Philip Roth Interveiws Milan Kundera"(Nov. 30th., 1980)와 연결시킨다. 



흔히 사람들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는 따위로 외쳐대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미래란 다만 아무의 관심도 끌지 않는 무심한 공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는 생명이 넘쳐 우리를 못살게 굴고 도발하고 모욕하고 우리가 과거를 다시 고쳐 쓰고 다시 칠하게끔 우리를 유혹한다. 우리는 과거를 고칠 수 있게 되기 위해서 미래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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