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 -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제임스 러브록 지음, 홍욱희 옮김 / 갈라파고스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0.

오늘날 외면할 수 없는 기후위기와 인류세 논의를 살펴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개념이 가이아(Gaia)”. 특히, 신기후체제에 관한 라투르의 후기 저작들은 약간의 변용을 거치긴 했지만, 바로 이 가이아 개념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이아라는 이름 자체는 윌리엄 골딩이 작명한 것이지만, 이 가설의 저작권은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 1919~2022)과 진화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1938~2011)가 공동으로 갖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러블록이라고 읽는데 왜러브록으로 표기할까? “마구리스라고 안 하고 마굴리스라고 표기하면서? “마구리스가 구린 것처럼 러브록이란 표기도 구림). 러브록은 작년(2022)에 자신의 103세 생일에 영면하였다. 장수하셨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유명을 달리한 거장들이 참 많다. 러브록, 라투르, 그리고 마이크 데이비스… (내가 존경하는 맑스주의자 데이비스에 대해 추모 서평을 쓰고 싶은데 쓸 수 있을까? 당분간은 못 쓸 듯…)


린 마굴리스와 제임스 러브록 - 가이아 여신상 앞에서


1. 가이아

가이아 가설의 공동저작권자이긴 하지만, 러브록과 마굴리스의 출발점은 정반대다. 마굴리스가 현미경을 통해 겨우 살펴볼 수 있는 세포 안의 물질들에서 시작한다면(https://blog.aladin.co.kr/eroica/13739842), 러브록은 달에서 망원경을 통해 본 지구의 모습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18, 35, 47, 144 247, 286). 이처럼 두 거장 간의 마이크로와 매크로의 대화가 가이아 가설을 구성하게 된다.  



가이아는 대기, 해양, 지표면의 암석 등과 밀접하게 결합된 모든 생물체들로 구성되는 초생명체(superorganism)”(17-18), “지구의 생물권, 대기권, 대양, 그리고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복합적인 실체”(51-52),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위하여 스스로 적당한 물리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피드백 장치나 사이버네틱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거대한 총합체”(52, 256). “능동적 조절시스템”(75, 123, 159), “각 부분들이 갖는 가능의 합보다 훨씬 커다란 능력과 속성을 지닌 복잡한 협조 체제의 네트워크”(78) 등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가이아의 주요한 세 가지 속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248~249).

 

1)     가이아는 지상의(terrestrial) 모든 생물들에게 적합하도록 주위 환경 조건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2)     가이아는 중요성이 서로 다른 부분들로 이뤄져 있다곧 핵심부에는 꼭 필요한(vital) 기관들이, 주변부에는 소모성(expendable)이거나 있어서 좋을 수는 있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redundant) 기관들이 있다.

3)     가이아가 나쁜 방향으로의 변화를 감지하면, 사이버네틱스의 원리에 따라 반응한다.

 

이 중 1) 3)은 가이아가 생물의 번성에 적합하도록 행성의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 일종의 능동적 조절 체계로 기능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특히, 1)의 논리는 러브록이 가이아를 지구 생태계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를 지니고, 이를 위해 의식적으로 개입하는 실체로 규정하고 있다는 과학자들의 비판을 유발하였다. 2)의 규정은 이 책 뒷부분에서 러브록이 전개하는 논의의 기반을 이루는 것으로 가이아 안에서 인간의 기능, 중요성, 의미, 역할에 관한 것이다.

 

2. 가이아는 존재하는가?

러브록은 지구가 자기조절적 체계라는 생각을 “1965년 어느 날 오후 갑자기떠올렸고(25), 1967년에 가설로 확립했고(49), 1970년대 초 가이아라는 이름을 골딩으로부터 선사받았으며, 그 후 몇 편의 논문들을 발표하고, 1974년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해서 1979년에 초판을 출판하였다. 여러 사람의 관심을 받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 과학계는 이 가설에 대해 냉대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1994년부터 지구에 대한 전체론적(holistic) 접근방식이 부상하면서이제 이 이론은 과학계의 승인을 기다리는 후보 이론이 되었다”(16).

 

우리가 오감을 통해 직접적으로 감각할 수 없는 것의 존재를 상정할 때에는 그것이 존재할 때에야 비로소 존재가 설명될 수 있는 감각할 수 있는 다른 대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의 관념도 이렇게 탄생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러브록이 가이아의 존재를 상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왜 가이아라는 개념이 필요했을까? 45억년 전 지구가 생겼고, 이 곳에 생명체가 등장한 것은 35억년 전이다. 이후 태양이 방사하는 열에너지의 양, 지구 표면의 형태, 대기권의 화학적 조성은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기후는 거의 변화가 없이 평균 기온 섭씨 10~20도를 유지해 왔다(49-50, 71). 지구의 대기에 산소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억년 전쯤인데, 이는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기존의 생물들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었지만, 생물들은 그 변화에 적응하여 이 살인적인 침입자를 유쾌한 친구로바꿀 수 있었고, 대기 중 산소가 차츰 증가하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21%에서 더 올라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84-85, 216-217). 생물은 바다에서 처음 탄생하였고, 이는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6% 이하임을 뜻하는데, 그 이후 차츰 감소해서 수억년 동안 오늘날과 같은 3.4%를 유지하였다(178~188). 기후, 대기 중 산소의 비중, 바닷물의 염도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는 점은 과학적 설명이 필요한 사항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무언가의 개입이 없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존재할 수 없는 화학적 비평형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지구의 비평형 상태의 항상성(homeostasis)은 오늘날 생물의 번성에 적합한 조건을 이루는데, 러브록은 그 이유를 가이아의 존재에서 찾고 있다(52, 128, 282-285).

 

그렇다면 이 가이아 가설이 도전한 기존의 관점 또는 우리의 상식이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 관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과학적 지식이라는 측면을 살펴보자.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익숙한 대기, 바닷물의 농도, 평균 기온을 모든 생물이 번성할 수 있는 이상적이면서도 정상적인 조건이라고 가정하는데, 지구에 이 조건이 어느 순간 갖춰진 다음에야 비로소 생물이 등장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최초에 지구가 생겼을 때뿐만 아니라, 그후 바다가 생기고, 그 바다에서 생물이 처음 생겼을 때에 지구의 조건은 오늘날과 완전히 달랐다. 생물이 점차 번성하면서 산소도 늘어나고, 바닷물의 염분 농도도 줄어들었다. 곧 생물이 존재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인간이 출현한 시기와 비슷한 삶의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이는 생명활동이 배제된 채, 지구가 생명의 존재를 준비했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생물들이 대기, 해양, 암석 등과 함께 삶에 적합한 조건들을 능동적으로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생명체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이 비평형 상태가 잠시 존재하고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지속되어 왔다는 것은 생명체가 대기, 해양, 암석 등과 함께 복잡한 피드백 루프들을 작동시켜 항상성을 유지하는 능동적 조절체계처럼 작동해왔음을 뜻하는 것이다.

 

3. 가이아는 의도와 지능을 갖고 있는가?

항상성과 능동적 조절이 작동했다면, 가이아가 그야말로 대지의 여신처럼 의도와 지능을 갖고 있다는 말인가? 가이아 가설에 대한 과학자들의 비판은 이 점에 집중되었다. 이 책 앞에 실려 있는 2000년에 다시 쓴 서문(15-16)에서는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려고 했던 의도가 과학자들의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이 비판에 대해 러브록이 방어를 제대로 못한 것 같다는 인상이 든다. (물론 내가 러브록의 다른 책들을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이러한 오해에 대한 교정은 마굴리스의 『공생자 행성』(210~220)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구는 인간의 의식과 같은 것은 없지만 생리적으로 조절되는고유감각 체계(proprioceptive system)을 갖고 있고, 이것이 사이버네틱스 원리가 작동하게끔 하는 스위치가 된다는 것이다. 공 능동성과 의식은 다른 것이다.

 

사이버네틱스 원리를 구성하는 복잡한 음의 피드백 루프들(negative feedback loops)이 하나하나 규명될 때마다 가이아 가설은 이론의 지위에 더욱 가깝게 다가설 것이고, 현재의 지구시스템 과학은 이 가설에서 이론으로의 도정을 걷고 있는 학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4. 가이아와 인간

마굴리스와 러브록의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 참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에서 살펴본대로 지구는 자신의 항상성 유지에 더 중요한 부분과 덜 중요한 부분을 갖고 있다. 러브록이 보기에 지역적으로 제일 중요한 현장은 지상에서는 열대우림이며, 해양에서는 대륙붕이다. 생명체 중에서는 인간보다는 바다나 습지에 사는 미생물들이 항상성 유지에 더 결정적인 역할을 유지한다. 이 지점에 가이아 가설의 두번째 비판 대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멀게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본 프로타고라스의 관점, 가깝게는 사물의 가치를 그 사물의 인간적 유용함으로 판단하는 근대 공리주의(utilitarianism)이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인간은 이런 방식의 사고에 젖어 있다.

 

인간중심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은 좋다.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먼저, 그 하찮은 인간 따위가 만들어낸 환경 오염(79-80, 84, 216, 238)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심지어 핵실험이나 방사능 폐기물도 그리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62-63). 또 러브록은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도, 그리고 그 저작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환경운동도 싫어한다(27-28, 10-11, 281). ? 비과학적이면서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말 잘하는 운동권 싫어하는 이과 천재 같은 느낌이다. 그가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지 않았기 때문일까? 올해 후쿠시마 방사능 폐기물이 바다로 방류되면 이제 해산물을 과연 먹을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나는 비과학적인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러브록이 인간이 유발하는 환경오염을 가이아가 다 해결해줄 것이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분명히 그 위험을 경고한다. 이 점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고,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 같다.

 

가이아 가설은 우리 행성의 안정된 상태는 인간을 매우 민주적인 실체인 자신의 부분, 또는 그 안에서의 파트너로 포함하고 있음을 암시한다”(282, 번역수정)

 

러브록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해서 어떤 생물들은 의식적 사고, 지각 능력, 인식적 예지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284). 이러한 지능은 통상 살아 있는 생물의 속성이다. (물론 지능에는 여러 단계가 있을 수 있다는 러브록의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생물뿐만 아니라 AI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가이아도?

 

이에 대해 러브록은 가설 수준의 추론을 제시한다. 지금과 같은 복잡한 방식으로 여러 정보를 수집, 저장,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인 인간이 어쩌면 가이아의 신경계와 두뇌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284~285). 이는 곧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이 단지 우리들의 것만 이 아니라 우리가 가이아와 함께 공유하는 것임을 뜻한다(287). 러브록은 에필로그의 끝부분에서 인간이 사실은 우리 자신들보다 훨씬 더 커다란 실체, 곧 가이아의 역동적 부분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제안한다(287).

 

5. 가이아와 에이와(Eywa)


책을 읽기 시작한 다음에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 물의 길>을 보았다. 그리고 복습삼아 전편도 제대로 보았다. 따라서 책을 읽는 내내 <아바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판도라 행성의 여신 에이와는 아마 가이아에서 나왔을 것 같다. 모든 생명체들을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시스템의 부분으로 보는 나비족(Na’vi)의 모습은 에필로그의 말미에서 러브록이 그리는 인간에 대한 희망과 동일하다. 나비족이 에이와의 부분이면서 그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도 가이아에 길들여질 수 있으리라(287).




흥미롭게도 러브록은 인간이 이러한 역할을 다할 수 없다면, 그 역할을 할 다른 후보로 우리보다 훨씬 더 커다란 두뇌를 가진 거대한 해양성 표유류들 가운데 하나인 고래를 꼽는다(287-290). <아바타: 물의 길>에서 지구에 온 인간이 자신의 노화방지에 특효인 고래 뇌의 기름을 얻기 위해 고래를 살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전 나비족의 단결투쟁뿐만 아니라, 보통은 행성 생명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에이와의 분노를 유발한다



인간 너머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 그리고 인식을 너머 교감한다는 것은 필멸의 존재인 나뿐만 아니라, 유적 존재인 인간 자체의 재정의를 수반한다. 다르게 보이면,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기온이 널뛰기하는 올겨울 특히 의미있는 독서였다. 쉽게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더 큰 살아있는 것의 부분이며, 그 안에서 다른 살아있는 것들과 공생하는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가이아란 바로 이러한 부분적 연결들의 총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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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교양 도서라서 그런지 직역보다는 의역이 많다. 도움이 되는 역주도 있지만, 역자의 개입이 좀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역자는 러브록이 가설(hypothesis)”이라고 쓴 것을 자꾸 이론으로 번역하는데, 이것은 분명 오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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