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에서 춤추다 - 언어, 여자, 장소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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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들의 모음이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르 귄의 사유는 깊고 넓고 따뜻하다. 여름에 읽은 책인데, 한 해가 저물어갈 때쯤에야 리뷰를 쓴다. 지난 주말에 바로 쓰고 싶었는데 김장 담그느라 못 썼고, 주중에도 일(과 월드컵) 때문에 잠시도 짬을 내기 힘들었다. 리뷰를 하기 전에 다시 빠르게 넘기며 초점을 잡는데 또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특히 1986년에 발표한 세 글 - <브린 모어 대학 졸업식 축사>, <여자/야생>, <캐리어백 픽션 이론> -이 돋보인다. 원래 두 주제에 초점을 맞춘 하나의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마음을 바꿔 주제별로 두 개의 리뷰를 작성해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것은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첫 번째 리뷰는 르 귄의 캐리어백 픽션 이론에 관한 것이다. 이 책에는 소설판 장바구니론”(292~301)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1.

이 책의 발행일이 2021910일로 되어 있는데, 내가 해러웨이의 트러블과 함께하기를 읽고 리뷰(https://blog.aladin.co.kr/eroica/12900997)를 쓴 것이 그보다 열흘 남짓 빠른 829일였다. 처음 읽은 해러웨이의 책이었고, 그 책에서 르 귄의 이름을 처음 알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내가 몰랐다고 별볼일없는 사람이 아니다. BTS 팬들은 그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고, 우리 말로도 그녀의 여러 작품이 번역된 유명한 SF 작가였는데, 그때 난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해러웨이는 트러블과 함께하기2(73~81)에서 르 귄의 이 글을 라투르, 마굴리스, 스탕제르 등의 논의와, 그리고 신의 트릭(God’s trick)”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엮어낸다. 그때는 아직 이 책이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음경 이야기(prick tale)”라는 유머를 질식시키는 극악무도한 번역 때문에 이 글의 원문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년 반 동안 (스탕제르는 엄두를 못 냈지만,) 라투르, 마굴리스, 르 귄의 글들을 짬짬이 읽어 왔다. 해러웨이가 르 귄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 것이다. 처음에는 해러웨이를 이해하기 위해 르 귄을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르 귄은 (이런 비교가 참 속물스럽지만) 어쩌면 해러웨이보다 더 훌륭한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든다.

  

르 귄의 캐리어백 픽션 이론에 관한 독보적인 이 짧은 글(한글로는 10페이지, 영어로는 6페이지)을 내가 몇 번이나 읽었을까? 열 번은 조금 안 될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에 넘어갔던 한 구절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3기니라는 제목으로 완성될 책을 계획하고 있었을 때 공책에 용어사전(Glossary)”이라는 제목을 썼다. 당시 울프는 색다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신의 새로운 계획에 따라 영어를 재창조할 생각을 했다. 이 용어 사전 항목 중에 영웅주의는 보툴리즘(botulism)”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울프의 사전에서 영웅은 보틀(bottle)”이다. (bottle)이 영웅이라니, 혹독한 재평가다. 나는 이제 그 병을 영웅으로 제시하려 한다"(294).


이것은 무슨 말일까? 그 분야에 무지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은 들어봤다. 읽은 것은 없다. 그런데 그녀가 영웅담(heroism)을 보툴리즘으로, 영웅을 병으로 재정의하려고 하였다니. 출처가 어디인지, 맥락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르 귄의 이 책은 출처에 대해서 보통 미주를 달아 놓았는데, 유독 이 구절에 대해서는 아무런 실마리가 없었다. 버지니아 울프와 보툴리즘을 구글링한 끝에 Virginia Woolf’s Reading Notebooks(1983)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내가 종종 이용하지만 장서가 그리 대단치 않다고 여겨온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이 책의 53쪽에서 르 귄이 언급한 부분을 찾아냈다(https://blog.aladin.co.kr/eroica/14114280). 그런데 내용이 별 것 없다.

 

Soldier = Gutsgruzzler. Heroism = Botulism. a Hero = Bottle” (Virginia Woolf's Reading Notebooks, p. 253)

 

울프가 자신만의 노트에 남긴 이 짧막한 생각의 파편을 보았을 때, 르 귄은 궁금했을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그리고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짧지만 빛나는 위대함으로 가득찬 이 글을 써낸 것이다.

 



2.

르 귄은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사회계약론자들 홉스, 로크, 루소 등 처럼 채집사회에서 수렵사회로 넘어가는 일종의 자연상태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농업이나 문명이 시작되기 전의 시대, 일주일에 15시간 정도 일하면 충분히 생활을 꾸릴 수 있던 시절이다. 여자들은 아기를 보며 야생귀리를 까던 시절, 아기도 없고 노래나 별 다른 기술도 없던 남자들은 심심해서 나가서 매머드 사냥을 한다. 남자들은 상아와 고기만 갖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수렵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까지 갖고 돌아온다. “액션으로 가득찬 영웅담. 이제 아이를 보며 야생귀리 까는 이야기는 목숨을 걸고 매머드를 찔러 죽이고 마침내 전리품을 짊어지고 귀환하는 액션 히어로 이야기와 비교가 될 수 없다.

 

르 귄은 이들의 영웅담에 들어 있는 때리고 찌르고 두들길 길고 단단한 도구”, “그 멋진 크고 길고 단단한 물건잎사귀, 박껍데기, 조개껍데기, 그물, 가방, 멜빵, 자루, , , 상자, 용기, 담는 것, 그릇같은 물건을 담을 용기”, 무엇인가를 담는 물건을 의미하는 병을 반정립시킨다(294-295). 막대기, , 창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그릇이나 병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이야기, 곧 뉴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담는 도구는 단검이나 도끼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이것이 인류학자 엘리자베스 피셔가 인간진화의 캐리어백 이론이라고 부른 것이고, 울프가 남긴 실마리를 르 귄이 재탄생 시킨 것이다.

 

르 귄은 제국주의적인 본성과 통제불가능한 충동을 다스리기 위해 법을 만드는 영웅들의 액션 스토리의 특징을 세 요소로 정리한다(298-299). 1) 한 시점에서 출발해서 그 후의 다른 시점의 목표에 도달하는 시간의 화살의 서사, 2) 갈등 중심의 전개, 3) 남자 영웅(he)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없다고 보는 관점이다.

 

르 귄은 이 셋 모두에 반대한다. 첫째, 처음, 중간, 끝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리(48~49, 73)는 마치 시작 이전과 끝 이후에는 아무 이야기도 없는 것처럼 가정하지만, 실제로는 그 시작 이전에는 전편들(prequels)이, 끝 이후에는 속편들(sequels)이 존재한다. 이 시간의 화살에 우로보로스의 형상이 반정립된다. 둘째, 중요한 것은 관계이고, 갈등은 그것의 한 종류일 뿐이므로 모든 관계를 갈등으로 환원할 수 없다. 셋째, 소설에는 영웅이 아니라 사람들(people)이 있어야 한다.

 

르 귄은 소설을 시간의 화살이나 승리라는 결과를 갈등 끝에 쟁취하는 전투가 아니라, 자루나 가방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한다.

 

책은 말을 담는다. 말은 사물을 담는다. 의미를 품는다. 소설은 약보따리이며 그 속에 담긴 것들은 서로와, 그리고 우리와 특별하고 강력한 관계를 맺고 있다... 가방 속에 집어넣으면 영웅도 토끼처럼 보이고, 감자처럼 보일 것이다. 바로 그래서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소설 속에는 영웅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다”(299).

 

뾰족한 것으로 찔러 죽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로서의 소설이라는 르 귄의 관점은 SF의 재정의로 이어진다. 기술과 과학은 누군가를 지배하는 무기가 아니라, 문화의 장바구니로 다시 정의하게 되면, SF는 리얼리즘보다 덜 신화적인 장르로서 기묘한 리얼리즘이지만, 기묘한 현실이다”(301). 우리의 세상은 거대한 자루이고, 그 안에는 여러 존재들의 관계가 맺어졌다 풀려난다. 이 세상은 새로 태어날 것들의 자궁이며, 이전에 있던 것들의 무덤이며, 남자뿐만 아니라, 야생귀리를 잔뜩 따서 담고 그 씨앗을 뿌리는 이들, 그 와중에 포대기로 업은 아이들에게 불러주는 노래와 아이들의 농담이 다 들어 있다. 이 얼마나 기꺼이 잠겨 쉬고 싶은 편안하고 따뜻한 목욕물인가?


3.

이렇게 르 귄은 영웅이 길고 단단한 막대기를 휘두르는 영웅담(heroism)을 무언가를 담는 그릇의 보툴리즘(botulism)으로 대체한다.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울프의 노트에 나온 뜻모를 수수께끼를 이렇게 풀어내다니, 스핑크스의 퀴즈를 풀어낸 오이디푸스보다 위대한 인간, 더 닮고 싶은 인간 아닌가?

 

르 귄은 같은 해에 작성된 <브린 모어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언어, 힘의 언어인 아버지말(father tongue)과 학교에 들어가기 전 배웠던 어머니말(mother tongue)을 대조시키면서, 후자는 그냥 의사소통이 아니라 관계와 관계 맺기의 언어”, “언제나 침묵 언저리에 있고, 자주 노래 가장자리에 있는 언어, ... 이야기들을 전하는 언어로 정의한다. 이 언어의 힘은 쪼개는 데 있지 않고 묶는 데 있으며, 거리를 벌리는 데 있지 않고 통합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263~264).

 

나는 이 문장들에서 어떤 경이를 느낀다. 그 경이를 아버지말에 오염된 나의 무딘 언어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그저 내 배꼽을 만져볼 뿐. 인간이라면, 곧 배꼽을 갖고 있다면, 어머니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미 들어 왔던 말이고, 이미 할 줄 아는 말이기도 하다. 어머니말을 쓰는 비중을 늘리고, 그 말이 적합한 상황에서 그 말을 쓰고, 가끔은 아버지말을 어머니말로 번역도 하고, 번역 와중에 아버지말이 놓친 것들에 대해 어머니말로 실컷 이야기해야 하겠다.


4.

해러웨이는 트러블과 함께하기2(73~81)두번째 밀레니엄의 겸손한 목격자, 여성인간 앙코마우스를 만나다6(448~453)에서 이 캐리어백 픽션 이론을 발판삼아 아버지말과 어머니말을 넘나들며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방식을 보여준다. 철학적인 배경지식이 없다면, STS에 관심이 딱히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해러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데리다나 라투르가 아니라 르 귄에서 시작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해러웨이를 전공하거나 번역하는 이라면, 르 귄을 꼭 읽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황당한 창조적 오역들을 피할 수 있겠다 싶다.

 

5. 딴 얘기 하나, 김장

일주일 전 김장을 했다. 전날 장보다 감기가 걸렸다. 오전부터 시작한 김장 노동은 자정이 가까워졌는데도 끝나지 않았다. 쪽파를 까면서 내 엄지와 검지는 팟물이 들어 흑록색으로 바뀌었다. 입은 계속 투덜댔지만 손은 쉬지 않았다. 씻고, 까고, 채썰고, 자르고, 나르고, 버무리고, 설거지하는 것이 무한반복되었다. 허리가 휘도록 일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했다. 일어나거나 앉을 때마다 아이구구구하는 소리가 계속 저절로 나왔다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이런 게 야생귀리를 따고 까는 일이겠구나. ^^ 그러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마음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김장이 엄청난 노동이지만이 노동은 착취당하는 노동이 아니다. 가격으로 수량화되는 '교환가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김치라는 사용가치의 생산을 위한곧 나의 재생산을 위한 노동은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 구분되지 않는다온전히 나를 위한 노동이다새벽이 되어서야 끝난 김장 끝에 김치냉장고에서는 김치가 익고 있다.



허리는 이제 다 나았지만, 감기는 아직 안 나았고, 터진 엄지손톱 양쪽 끝 살들도 그대로다. 액션 영웅담인 월드컵을 보는 시간도 16강전 진출로 연장되었다. 배꼽 있는 인간에게 이 액션 히어로물은 오락물일 뿐이다. 반면 끊임없이 내가 씻고 채우고 비우고 날랐던 김장매트, “다라이”, 김냉 저장용기, 김치 냉장고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삶의 일부였다


이제는 김장하시기에는 기력이 없으신 어머니와 김장에 별 흥미를 못 느끼는 동생들에게 갖다 주니 좋아 한다. 나의 노동의 산물인 김치가 플라스틱 박스에 담겨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값을 매길 수 없는(priceless) 선물이 된다. 별로 재미없지만 배꼽달린 사람의 삶은 이런 것이다. 어머니말에 별 재주가 없는 나는 이렇게밖에 못 쓰지만, 르 귄은 다를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젊은 르 귄들이 유려한 어머니말로 유치한 파워레인저 이야기들을 가방 속 토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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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ginia Woolf's Reading Notebooks (Hardcover)
Brenda R. Silver / Princeton Univ Pr / 198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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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브레인스토밍의 흔적이 담겨 있는 총 67권의 공책에 필기한 내용을 브렌다 실버가 정리해서 1983년에 펴낸 책이다. 


운 좋게 도서관 보존창고에 이 책이 있었고, 도서관 시스템이 전자정보화되기 전에 입수한 책인지 표지 뒷면에는 대출기록카드가 꽂혀 있는데, 이전에 빌려간 이가 아무도 없는지 깨끗하다. 2022년 11월의 나를 위해, 아마도 오직 나를 위해, 아무도 찾는 이 없었을 이 책을 오랫동안 고이 보관해준 도서관에게 고맙다. 내가 찾고 있는 구절에 대해서 아무런 페이지 정보가 없어서 어제 저녁부터 한참을 뒤적이며 찾다 드디어 발견! 


버지니아 울프 전공자가 아니라면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이 책을 찾아본 이유가 있지. ㅎㅎㅎ



창작을 위한 사유에는 단어를 재정의하고자 하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


군인을 Gutsgruzzler로 대체하는데, 이 단어는 뭐라고 옮겨야 하나? 

내장폭식자? 순대러버? 

영웅담(heroism)은 병 이야기(botulism)로, 영웅(hero)은 병(bottle)으로 재정의된다.

그러나 울프는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남겨놓지 않았다. 



르 귄도 이 페이지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보툴리즘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준다. 

그게 뭔지는 다음 리뷰에 써주마. ㅋ

이 노트북에 있는 몇몇 스케치들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완성된 저작에 나름대로 녹아 들어가게 된다. B.1절에는 새로운 단어들에 대한 탐색이 있는데, 여기에서 그녀는 "페미니스트"를 다른 말로 바꾸려고 한다. 이는 『3기니』에서 작가가 반전 투쟁을 통해 남성과 여성 간에 새로운 단결이 탄생했음을 축하하면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태우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때에도 그녀는 "폭군, 독재자"라는 단어들도 똑같이 시효가 소멸되었다고 할 수 없음을 한탄한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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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위기 그리고 새로운 전망
낸시 프레이저 지음, 김성준 옮김 / 책세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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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가 끝났다.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총 열아홉 번 중 열여섯 번의 중간선거에서 대통령 소속 정당은 하원에서 최소 5석 이상의 감소를 보였다고 한다. 하원 의석이 감소하지 않았던 가장 최근의 예외가 2002년 조지 W.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라니, 벌써 20년 전이다. 이번 선거 역시 민주당이 하원에서 과반을 잃었으므로 예외는 아니었다(20221120일 현재 공화당은 과반인 218석을 확보하였고, 민주당은 212석으로 이전보다 9석 감소한 상태다). 그러나 상원에서는 과반을 유지하게 되었으므로 나름 선전했다’, “졌잘싸등의 평이 나온다. 여기에는 펜실베니아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민주당의 존 페터맨(John Fetterman)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그는 트럼프 바람이 거세게 불었던 러스트벨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펜실베니아의 색깔을 빨간 색에서 파란 색으로 바꿔놓았다. 그가 공화당의 붉은 물결(red wave)”, 트럼프 아들이 트위터로 바라마지 않았던 피목욕(bloodbath)”을 막아낸 것이다. 그의 상대는 트럼프의 후원을 받는 닥터 오즈(Dr. Oz)였는데, 그 역시 건강의학 토크쇼로 전국적 유명세를 누리는 셀럽 의사이다. 페터맨은 펜실베니아 부지사로 재임하면서 트럼프가 펜실베니아의 선거부정을 치졸하게 물고 늘어질 때도 물러서지 않고, 조사를 통해 발견한 부정투표 사례 네 건이 다 트럼프를 찍은 것임을 밝혀내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시간당 15달러의 최저임금, 전국민건강보험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그는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이면서 샌더스가 자신의 지지자이기도 하다. 어쨌든 트럼프의 기세를 한풀꺾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공헌이 매우 크다. 공화당에서도 트럼프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듯한데, 과연 다음 미국 대선에서 또 그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현실이 앞으로 어떻게 돌아갈지는 미지수이지만, 작금의 미국 정치의 전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문을 접고 이 책을 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1. 진보적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블록의 성장과 몰락, 그리고 그 이후

헤게모니란 지배계급이 자신의 세계관을 사회 전체의 상식으로 상정함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과정을 가리키는 그람시의 개념이다. ... 헤게모니 블록이란 지배계급이 모은 이질적인 사회 세력들의 연합이며, 지배계급은 이 연합을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확고히 한다.”(16)

 

이 얇은 책에서 프레이저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분배와 인정에 관한 자신의 이론과 접속시켜 현재 미국의 정치 현실을 진단한다. 20세기 중반 이후 자본주의 헤게모니는 사회 경제구조(분배)와 사회적 지위 질서(인정)의 두 측면에서 옳음(right)과 정의(justice)를 결합하였는데, 이 분배와 인정의 연계(nexus)가 그 헤게모니의 규범적 토대를 구성한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이러한 일반적 이론화는 현재적 비판대상인 신자유주의에 대한 인식전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녀는 신자유주의가 하나의 전체적 세계관이 아니라, 여러 인정 프로젝트들과 조응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경제 프로젝트라는 점을 깨달았으며, 최소한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진보주의와 견고하게 연결되어왔다는 사실이 비로소 보였다고 한다(56-57). 진보적 신자유주의약탈적이고 금권정치적인 경제 프로그램을 자유주의적·능력주의적 인정 정치와 결합했다”(18).

 

프레이저는 하이에크와 프리드먼 등이 고안하고 레이건이 실행한 신자유주의 우파 근본주의버전은 뉴딜적 사고방식과 신좌파를 계승한 사회운동이 상식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에서는 헤게모니가 될 수 없었지만, 클린턴을 비롯한 신민주당(New Democrats)은 미국 경제의 골드만삭스화와 진보적인 인정 정치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헤게모니 블록을 구성해냈다고 주장한다. 성소수자 인권, 탈인종주의, 다문화주의, 페미니즘, 환경주의 등에 동원되는 능력주의’, ‘다양성’, ‘역량강화등의 담론이 바로 진보적 인정의 핵심적 정서를 이루는데, 이제 이 해방을 향한 비경제적 열망들이 경제적 양극화를 초래하는 신자유주의를 쌔끈하게 포장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진보적 신자유주의라는 위험한 동맹에 카리스마와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을 제공하였다(20-22). 


이들은 자신의 선배격인 뉴딜 연합의 기존 헤게모니 블록을 해체하면서 새로운 헤게모니 블록을 구성한다. 곧 오랫동안 민주당을 지지하였던 조직 노동자, 이민자, 흑인, 거대 산업자본 일부를 대신해서 기업가, 은행주, 교외 거주자, ‘상징 노동자’, 신사회운동, 라틴계 미국인, 청년 세대들을 새로운 헤게모니 블록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 빌 클린턴은 다양성, 다문화주의, 여성인권을 외치면서 금융화(골드만삭스화)의 길을 성공적으로 개척하였다(22-23).

 

진보적 신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분배)와 진보적 인정을 결합했다면, 옆집에서는 반동적 신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분배)와 반동적 인정 정치를 결합하면서, 종족민족주의, 반이민, 친기독교적인 지위질서의 수호를 내세웠다. 따라서 양자의 차이는 분배가 아니라 인정의 차원에 있었다”(24). 클린턴이 NAFTA, 중국의 WTO 가입, 글래스스티걸법의 폐지로 본격화된 은행의 탈규제 등으로 세계화와 금융화를 선도하는 동안 미국의 오랜 산업도시들은 역풍을 제대로 맞게 되었고, 이들은 지지정당을 상실한 채 방치되었다.

 

트럼프의 등장 이전까지 겉보기에만 치열한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은 사실 두 버전의 신자유주의의 대립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다문화주의와 종족 민족주의(ethnonationalism) 사이에서는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을 고르든 금융화와 탈산업화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었다. ... 노동자계급과 중산계급의 생활수준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세력은 없었다”(26).

 

기성정치 세력은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고 금융화로 빚에 시달리다 집을 압류당한 이 노동자 가족들을 외면하였다. 2015~16년의 대통령선거는 진보적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 상실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오른쪽에서는 트럼프가, 왼쪽에서는 샌더스가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상식의 개요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샌더스와 트럼프 모두 신자유주의적 분배 정치를 맹비난했다. 그러나 둘의 인정 정치는 선명하게 달랐다. 샌더스가 보편주의와 평등주의에 방점을 찍어 조작된 경제(rigged economy)’를 고발했다면, 트럼프는 똑같은 문구를 채택하면서도 거기에 민족주의적이고 보호주의적인 색채를 입혔다”(30). 

배제의 언어와 포용의 언어가 부딪혔다. 프레이저는 이들이 대변하고자 한 집단, 또는 상상적 헤게모니 블록을 각각 반동적 포퓰리즘진보적 표퓰리즘으로 명명한다(32). 이제 프레이저답게 깔끔한 인정(포용/배제)과 분배(신자유주의/포퓰리즘)의 양축을 가진 2X2 테이블이 완성된다.

 

분배

인정

신자유주의

포퓰리즘

포용

진보적 신자유주의

(클린턴, 오바마, 펠로시?)

진보적 포퓰리즘

(샌더스, 페터맨?)

배제

반동적 신자유주의

(레이건, 부시 부자)

초반동적 신자유주의

(대통령 트럼프)                    

 

 

반동적 포퓰리즘

(후보 트럼프)


샌더스의 도전은 민주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좌절되었지만,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을 가뿐히 제압함으로써, 진보적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명확히 했다. 당선 후 트럼프는 후보 시절 공약했던 포퓰리즘적 분배 정치를 폐기하면서 한층 더 강력해지고 사악해진 반동적 인정 정치에 몰두하기 시작했다”(33). 반동적 포퓰리즘이 초반동적 신자유주의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어디 트럼프뿐이겠는가? 그의 뒤를 따랐던 브라질의 보우소나루도, 또 나름의 개성(?)을 지닌 채 지정학적 특수성을 활용하면서 위기 심화와 국격 저하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의 굥도 마찬가지임을 우리는 확인하고 있다.] 프레이저는 그람시를 인용하며 트럼프의 반동적 포퓰리즘은 진보적 신자유주의헤게모니의 붕괴 후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시대의 병적 증상일 뿐이라고 일축한다(39).

 

2. 반트럼프 진영에 대한 우려와 대항 헤게모니의 형성

프레이저는 친클린턴 진영이 바라는 진보적 신자유주의의 복원은 결코 대안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는 인정에 의한 분배의 잠식 the eclipse of redistribution by recognition”(55)에 지나지 않는다. 반트럼프 진영에서는 인종과 계급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사고하는 좌파의 낡은 경향이 등장하고 있는데, 프레이저는 이에 대해 크게 우려한다. 실용적으로 생각하면 먼저 하나에 집중하려는 경향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전에 해온 방식대로 분배를 포기하고 인정을 택할 경우, 이는 다시 트럼프를 만들어냈던 조건들을 다시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더 위험한 새로운 트럼프들의 등장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곧 반인종주의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LGBTQ+, 환경운동 등도 다양성, 능력주의, 역량강화(empowerment) 등 신자유주의와 선택적 친화성을 가진 수사들을 동원하면서 분배 문제를 뒷전으로 미루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에는 해방적 외양을 부여하고, 트럼프 진영에는 저 라떼나 홀짝거리면서 잘난 척하는 것들에 대한 적대심만을 높이는 역할을 할 뿐이다(20-22, 41-42, 64).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프레이저는 우선 두 가지 분리 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취약한 여성, 이민자, 유색인종을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 다양성, 역량강화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시켜야 하고, 둘째, 경제적으로 버림받은 러스트 벨트, 남부, 농촌 노동계급의 트럼프 지지자들을 인종주의와 종족민족주의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를 경원시하는 이 두 지지자 그룹이 함께 지지할 수 있는 대항 헤게모니 블록을 건설해야 한다. 이들은 모두 동일한 조작된 경제(rigged economy)’의 다른 곳에 위치한 희생자들이고, 이들이 함께 해야만 이 근원적 현실, 곧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금융화의 자본주의의 현재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40, 46-48).

 

프레이저는 이 새로운 대항 헤게모니 블록의 유력한 후보로 진보적 포퓰리즘을 꼽고 있는데, 진보적 포퓰리즘이 새로운 상식을 구성하는 대항 헤게모니가 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금융 자본주의에서의 계급과 지위 문제가 공유하는 공통의 뿌리를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적 포퓰리즘 블록은 금융 자본주의 체제를 하나의 통합된 사회 전체로 이해하면서 여성과 이민자, 유색인, 성소수자가 경험하고 있는 피해를 우익 포퓰리즘에 가까운 노동계급이 경험하고 있는 피해와 연결해야만 한다(46)”.

 

3. 자본주의의 새로운 지도 그리기

이 힘든 작업을 해내는 것이 정치인들이나 현장 활동가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올해 75세인 프레이저는 맑스와 폴라니를 결합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밑그림을 제시한다. 그녀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단지 경제체제가 아니라 그보다 큰 제도화된 사회질서(48)

 

제도화된 사회질서로서 현행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에 불가결한 비경제적 배경 조건의 집합까지도 포괄한다. 이를테면 경제적 생산에 필요한 임금 노동의 공급을 보장해주는 무임금의 사회적 재생산노동도 그러한 조건의 집합에 포함된다. 축적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질서와 예측 가능성, 인프라를 공급하는 공적 권력의 조직된 장치들(, 치안, 규제기관, 운영 역량)도 그 예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삶을 시탱할 수 있는 거주 가능한 지구를 비롯해 재화 생산에 필요한 필수적인 에너지와 원재료를 제공하는 자연과 우리의 신진대사 간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상대적으로 지속 가능한 조직들도 마찬가지다”(48).

 

여기에서 간략히 요약된 그녀의 아이디어는 올해(2022) 출판된 카니발 자본주의로 결실을 맺은 것 같다.

 

4. 이론적 전유

프레이저는 논쟁과 대화를 즐기는 올해 75(1947년생)의 철학자이다. 푸코, 하버마스, 버틀러, 호네트 등 쟁쟁한 철학자들을 비판하고, 그 대상이 살아 있는 경우는 함께 논쟁하면서, 그 비판과 논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이론적 자양분을 자기화하면서 새로운 작업들의 내실을 다져나간다. 이 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 책은 단지 오늘날의 미국의 정치 현실에 대한 정치평론에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한 99%를 위한 페미니즘: 선언(2019), 멀리는 호네트와의 논쟁, 분배냐, 인정이냐(2003)와 후속 논쟁을 정리한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서(2008)의 현재적 귀결이자, 카니발 자본주의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책이다. 카니발 자본주의의 내용이 자못 궁금하다.

 

5. 다시 미국 정치 얘기...

며칠 전 뉴스는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였던 낸시 펠로시가 의장직에서 내려오면서 차기 지도부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한 연설을 보도하였다. “이제 새로운 세대를 위한 시간이 왔다.”




2007년 하원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여성의 유리천장 깨기신화의 주인공이면서 트럼프 탄핵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그녀가 기꺼이 자리를 비켜준 새로운 세대는 누가 될까? 미국 대통령 개인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낮은 반면, 페터맨 같은 민주당 내 좌익 또는 민주당을 선거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 같다. 이들이 프레이저가 바라는 진보적 포퓰리즘의 흐름에 기여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다.

 

그러다가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한숨만 나온다. 21세기 들어서 미국의 좌파가 부러웠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하지만 그 전에도 미국에는 내가 모르는 수많은 이들의 헌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도 유의미한 저항의 흐름을 꿈꾸고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불평등 감소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미력하나마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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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_목격자@제2의_천년.여성인간ⓒ_앙코마우스TM를_만나다 - 페미니즘과 기술과학 아우또노미아총서 14
다나 J. 해러웨이 지음, 민경숙 옮김 / 갈무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해러웨이의 스트래선에 대한 의존은 여전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분적 연결들>이 아니라, 90년대 초반의 저작들이 인용된다. 


figuration과 figure(50~)를 둘 다 "비유"로 번역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자는 "형상화"로 후자는 "형상" 또는 "인물"로 옮겼어야 옳을 것 같다. 물론 이 한국말들이 다 커버하지 못하는 뜻이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비유"보다는 낫다. "비유"로 옮겨서는 안 되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푸코의 "생명정치"를 해러웨이가 자기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부분은 오랜 궁금증을 조금 풀어주었다. Sarah Franklin의 "생명 그 자체(life itself)"라는 개념이 푸코의 "생명정치"와 해러웨이의 "technobiopolitics"를 매개하는 것 같은데, 프랭클린은 누구인가? 처음 봤다. 


참고문헌에는 르 귄의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이 있는데, 색인에는 르 귄 이름이 없어서 어디에서 어떤 맥락으로 인용되는지 한참 찾았다. 6장의 450쪽 각주 30번(영어판 미주 14번)에 나온다. 나중에라도 다시 보게 되면 잘 봐야지...


라투르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맑스에 대한 참조들도 눈에 띄는데, 이것 역시 나중에 제대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이제 짬은 그만 내고, 도망친 할 일로 다시 돌아가자. 에효~

아리스토텔레스의 "figures of discourse(담론의 비유?)"는 수사학상의 공간적 배열에 관한 것이다. figure는 기하학적인 동시에 수사학적이다. topics와 tropes는 둘 다 공간적 개념이다. "figure"는 프랑스어로 얼굴을 뜻하는데, 영어에서는 이야기의 윤곽이라는 개념의 뜻을 보유하고 있다. "To figure"는 세다, 계산하다를 의미하며, 또한 이야기 속에 끼다, 역할을 맡다 등을 의미한다. figure는 또한 그림그리기이다. figure는 graphic representation과 시각 형태 일반과 관련이 있으며, 이 사실은 시각적으로 포화된 기술과학 문화에서 적지 않은 중요성을 띠고 있다. figure는 반드시 재현적(representational)이거나 미메시스일 필요는 없지만 비유적(tropic)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figure는 문자적(literal)이거나 자기동일적(self-identical)여서는 안된다. - P55

Figures는 동일시와 확실성에 문제를 일으킬(trouble) 수 있는 자리바꿈(displacement)을 적어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Figurations는 그 안에 살 수 있는 수행적 이미지들이다. 말로 된 것이든 시각적인 것이든, figurations는 경합적인 세계들이 압축되어 있는 지도일 수 있다. 수학을 포함한 모든 언어는 figurative하다(비유적이다). 곧 비유들(tropes)로 이뤄진다. 곧 우리를 literal-mindedness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bump들로 구성된다. 나는 figuration이 모든 물질-기호론적 과정들의 비유적(tropic) 성질을 명백하고 불가피하게 만든다는 것을, 특히 기술과학에서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 P55

Figures는 언제나 해석적 실천을 조직하는 일종의 시간적 양상(temporal modality)을 동반한다. 나는 푸코(1978)의 생명권력 개념이 신체에 대한 관리행정(administration, 경영), 치료, 감시를 통해 그 살아있는 유기체의 힘을 담론적으로 구성하고, 증가시키고, 관리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푸코는 자위행위를 하는 어린이를 묘사함으로써 그의 이론적 개념에 형상(shape)을 부여한다. 이 아이는 맬더스적인 커플, 히스테리컬한 여자, 그리고 동성애자 변태의 형상들을 재생산한다. 이 생명정치적인 형상(인물)들의 시간성은 발전적(developmental)이다. 이들은 모두 건강, 퇴화, 그리고 생산 및 생식의 유기적 효율성 및 병리학의 드라마 등과 연관되어 있다. 발전적 시간은 기독교 리얼리즘 및 기술과학적 휴머니즘의 속성인 구원의 역사의 시간성의 합법적 계승자인 것이다. - P56

이와 유사하게 나의 사이보그 형상들(figures)은 내가 기술생명권력(technobiopower)이라고 부르는 돌연변이의 시간-공간 체제 내에 거주한다. - P57

수렵인 남자(Man the Hunter)가 전후의 보편적 인간 가족 속에서 기술, 언어, 혈연관계의 결속을 구체화하였다. 동일한 적응행동 속에서 기술과 기호학의 어버이인 -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어버이인 - 수렵인 남자는, 아름답고 기능적인 최초의 물건들을 만들었고 최초의 중요한 말들을 말하였다. 이 설명 속에서 수렵은 경쟁과 공격에 관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손-눈 협조 체제를 가진 활보하는 두 발의 原人들(protohumans)에게 가능했던 새로운 생존 전략에 관한 것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거대한 두뇌와 힘든 출생을 획득하게 된 이 존재들은, 짝들과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서로 간에 전리품을 공유하는 맥락 속에서, 협동, 언어, 기술, 여행욕구 등을 개발하였다. 물론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수렵가설에서는 수컷들이 인간 진화의 능동적인 추진력으로 간주되었으나, 그런 논리는 1970년대에는 지나치게 강요되지 않았다. - P449

1970년대에는 채집인 여자(Woman the Gatherer)가 전면에 부각되었고, 여성 오르가즘이나 아이에게 유용한 아빠를 여성이 선택하는 것 같은 몇몇 쓸모있는 가족 개혁들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아기 멜빵(baby slings), 뿌리와 견과류를 담는 가방(carrying bags), 성인들의 일상적인 가십, 아이들에게 말하기 등이 날렵하게 잘 빠진 발사체(elegant projectiles), 모험으로 가득찬 여행, 정치적 웅변, 위험에 맞서는 남성적 단결들로 이뤄지는 시초에 관한 드라마(originary drama)와 경쟁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각주 30에서 다른 페미니스트 저작들과 함께 Le Guin(1988)이 나옴.] - P450

회절 Diffraction - P63

... 나는 이 책을 <회절>Diffraction, 즉 린 랜돌프가 그린 분열된 인물(a split figure)의 그림으로 끝맺는다. 그 분열된 인물은 얇은 막을 통해 하나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데, 그 세계에서는 간섭패턴들 때문에 의미가 만들어지고 체험되는 방법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 P61

내가 발명한 의미론의 범주인 회절은 서양 철학 및 과학에서 너무나 일반적인 광학적 은유 및 도구를 이용한다. 반영성이 비판적 실천으로 추천되었으나, 나는 반영성이 반사처럼 동일한 것을 다른 곳으로 환치할 뿐이라고 의심하였다. 그리고 복제와 원본에 관한 근심과 믿을 만한 것과 정말로 실재하는 것에 관한 탐색 문제를 만든다고 생각하였다. 반영성은 기술과학의 지식 속에 있는 강한 객관성(strong objectivity)과 상황적 지식에 관해 사고할 때, 리얼리즘과 상대주의 사이에서의 잘못된 선택을 피하기에는 나쁜 전의(bad trope, 부적절한 비유)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기호적 장치들 사이에 차이를 낳는 것, 기술과학의 광선을 회절시켜 우리의 생명과 몸의 기록 필름 위에 보다 유망한 간섭패턴을 얻는 것이다. 회절은 세계 속에 차이를 낳으려는 노력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광학적 은유이다. - P63

린 랜돌프의 ... 그림은 다른 곳으로 치환된 동일한 것의 반사가 아닌 간섭패턴을 그리고 있다. 랜돌프는 페미니즘 해석에서나 기술과학 해석에서나 내가 속한 문화의 편협한 천년 말(the end of the millennium)을 전의로 표현할 수 있도록 강력한 비유(figure, 형상!)를 제공해주었다. 다시 말하자면 랜돌프의 여성은 천년 말이 빗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을 고려하기 위한 장치이다. 목적론에 탐닉했던 사람들이 막판에 그 이상 더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겟는가? - P64

회절 패턴은 상호작용, 간섭, 강화, 차이의 역사를 기록한다. 회절은 원본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질적 역사에 관한 것이다. 반사들과 달리, 회절들은 동일한 것을 다소 왜곡된 형태로 다른 곳으로 추방하지 않으며, 따라서 형이상학의 산업들을 발생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회절은 이 고통스러운 기독교 천년 말에 또 다른 종류의 비판적인 의식을 표현하는 은유일 수 있다. 동일함이라는 성스러운 이미지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만드는 데 몰두하는 은유일 수 있다. 회절은, 보다 정설적인 표명 뿐 아니라 신성하고 세속적인 기술과학적 설화들 속에서, 기독교 서사와 플라톤주의의 광학이 비스듬히 일그러진 것이다. 회절은 여러 중요한 의미들을 만드는 서술적·그래픽·심리학적·정신적·정치적 기술이다. - P503

<기만당한 여자들: 경계선 밖의 여성들에 대한 표현> 연작을 위해 그린 이 그림에 관해 랜돌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모든 여성의 삶 속에서 강력한 남성 비유에 관한 차단된 기억은, 변화가 일어나는 장소를 나타낸다. 연륜 및 정신적 변형에 따라 발생하는 추이들, 한 몸에 통합되어 있는 여러 자기들selves이, 두 개의 머리, 여분의 손가락, 중간 지대에 있는 형이상학적 공간 등등으로 표현된 이 중앙에 있는 인물로 구체화되어 있다. 회절은 미지의 세계라는 심연 앞에 놓여 있으며, 미래의 가장자리에 있는 한 장소에서 발생한다. 은하수에 있는 그 물질의 구조적 패턴은 목련 꽃에서도 반복될 수 있으나, 이런 생산은 아마도 텍사스 출신의 화가들에게는 특이한 시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문제가 되는 몸들을 창조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 P503

동시대의 여성들은 여성들의 현실을 SF세계 속에 놓음으로써, 다시 말하자면 간접 패턴으로 구성된 장소에 놓음으로써, 동일함이라는 성스러운 이미지와 다른 어떤 것으로 등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부적절하고, 기만적이며, 적합하지 않은, 마술적인 어떤 것, 즉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등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우리가 이것(즉,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어떤 것 - 역주), 즉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이것에 대해 능동적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 현실적이며(자연적이지 않으며), 삶의 불결함으로 인해 더럽혀진 이것에 대해 능동적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1993: 9). - P503

만약 당신이 쫓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종류의 세계와 세속적인 것이라면, 당신의 눈에는 질병과 치료가 실제로 동일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반영성보다는 여러 개의 차이 패턴을 생산하는 회절이 여기에서 요구되는 작업을 표현하는 데 더 유용ㅎ나 은유일지 모른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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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2022-10-17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한가해지시면 글 많이 올려주세욤

에로이카 2022-10-18 06:23   좋아요 0 | URL
네, 뚱이님. 감사합니다~
 
녹색 계급의 출현 - 스스로를 의식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브뤼노 라투르.니콜라이 슐츠 지음, 이규현 옮김, 김지윤 외 해설 / 이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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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르라는 물의 온도가 조금은 올라간 것 같다. 현재의 기후위기 안에서 형성 중인 녹색계급에 대한 수행적 글쓰기. 녹색계급은 어떻게 해야 긍지를 가진 변혁주체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브레인스토밍. 라투르 글 치고는 읽기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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