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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사회 구조와 실천의 결합으로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도시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2014. 3.

 

정기용 건축 작품집 -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2011. 7.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640229

 

 

 

정기용 선생님의 건축 작품집을 다시 읽는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섬세한 안내서다. 곳곳에 선생님의 삶의 미학에 심취한다. 다큐 ,말하는 건축>에서 선생님의 건축적 사유에 공감하면서, 그의 철학이 담긴 풍부한 도면과 사진을 다시 본다. 주변과의 조화 속에서 튀지 않고, 사연을 만들어가는 건축물을 구현해 나가는 그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 오영욱 지음, 페이퍼스토리, 2012. 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583480

 

 

 

 

다시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를 읽고 본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의 흔적에서 상상을 길어 올리고, 추억을 사랑하는 한 청춘의 이야기다. 발터 벤야민식의 관찰하는 시선은 이전의 건축과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간은 시간의 흔적에 관한 모자이크다. 엔틱이라는 미명 아래 새것도 낡은 것으로 탈바꿈하여 상품화는 것에 대한 그의 이야기라든가, 서태지가 소유한 건물에서 건축주의 미학이 살아나지 않는 점에 대한 생각에 공감하며 잔잔하게 펼쳐볼 수 있다.

 

반란의 도시를 펼치며...

 

나이를 먹나 보다. 사람과 사람의 경계, 공간 지리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싹튼다. 물리적 공간은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청춘의 시절에는 시간이 삶의 지표였다. 시간의 효율성으로 삶은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였다. 풍요와 비옥함의 생성이 시간으로 이루어진다면, 공간은 고정되어 있는 정지된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시간이 중첩되고, 추억이 켜켜이 쌓여서 한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공간에 오랫동안 천착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리적 공간이 사회적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리적 공간을 가득 채운 시간의 궤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축 관련 서적 사이에서 읽기 시작한 신간 도서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는 자본이 지배하면서 도시 주변부로 밀려난 99%도시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두 책이 연성(軟性)이라면, 반란의 도시는 경성(硬性)으로 도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반란을 다루고 있다. 하비가 차용하여 사용하는도시에 대한 권리는 생태주의자 르페브르가 구상한 개념이다. 그는 도시가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계급적 예속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착취와 지배의 중심이자, 동시에 구성원에게 진정한 공통 이익을 고취시키고 변혁을 창출하는 장소로서 양면성을 지닌다고 하였다. 도시는 단순히 행위자들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회 구조와 실천 행위의 결합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특정한 사회 질서와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적 공간이다(이성민, 2013, 한국교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 장세룡(2006)의 글 재인용).

 

 

도시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자본으로 흡수된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이질성의 차이의 공간인) ‘헤테로토피아(자본이 만들어내는 합리화의 공간인) ‘이소토피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변증법적 공간 창출이 도시의 권리를 되찾는 최선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장 우선의 신자유주의는 도시를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한다. 엘리트가 추구하는 입장이 보편성을 획득하여 도시 정책을 정당화한다. 쇼핑몰, 멀티플렉스, 대형매장, 패스트푸드점, 수제품 시장, 부티크 문화(43)가 도시를 가득 채운다. 지대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저소득층과 증간소득 세대는 도시 중심부에서 내몰렸고, 이로 이해 계급 격차는 더욱 벌어졌으며, 아무 특권도 누리지 못하는 주민의 복리에 악영향을 미쳤다(66). 급속한 도시화를 이끈 추동력은 자본이었다.

 

재력이 풍부하고 신용이 높은 사람이 부동산을 매수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는 그보다 소득이 낮고 위험이 높은 계층이 부동산을 매수하고, 맨 마지막으로 수입과 자산이 없는 계층도 부동산 매수에 뛰어든다. 이들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한 부동산 전매를 통해 이득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일은 버블이 터질 때까지 계속된다. 금융기관은 수수료 수입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버블을 최대한 오래 유지해야 하는 강력한 유인이 되는 셈이다(94).

 

저자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이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화과정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논증 자료로 활용한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에게 삼성 공화국이 낯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가 계급은 국가기구는 뿐 아니라 일반 주민을 지배한다. 이런 지배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도시 형성 과정은 정치투쟁, 사회투쟁,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주요한 장소다(122).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산발적인 대항 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도시 공간은 정치 활동과 저항의 중요한 장소로 기능한다(205). 투쟁의 방식으로 머레이 북친이 주장하는 연합주의와 엘리너 오스트롬이 내세우는 다극적 거버넌스는 수용할 만하다. 국가를 대신하는 지자체 회의의 연합 네트워크는 지자체가 공개적 회의의 장에서 시민기구가 되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다. 단 하비가 진단한 것처럼 이 또한 - 하트와 네그리가 주장한 공동체처럼 국가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한계를 갖는다. “공동체에 가입하지 않은 개인에게 가해질 억압(256)”을 경시하기 때문이다.

 

보수든 진보든 다양한 이유로 자신들만의 공유재화를 실천하고 있지만,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리만의 리그라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문화인들의 마을, 정치적 공동 행동을 추구하는 코뮌에 가서 느끼는 점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외부 세계와 이질적인 사람들에 대한 배척일 때가 더러 있었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의 긴축정책으로 줄어든 공공재를 확대하기 위한 투쟁이 요구된다.

 

도시의 공기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계급 전쟁이 존재한다. 내가 속한 계급, 부자계급은 이 전쟁을 먼저 시작했고, 지금 한창 이기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유일한 문제는 언제 민중이 반격을 가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한 (102) 워런 버핏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도시의 공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소외되어 있는 99%의 연합 이외의 방법은 없다. 이 지점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99%가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이다. 불평등을 허용하고 재생산하는 정치권력의 불평등에 대한 점령 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확한 답은 (하비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확한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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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사회 구조와 실천의 결합으로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도시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2014. 3.

 

정기용 건축 작품집 -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정기용 지음, 현실문화, 2011. 7.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640229    

 

 

 

정기용 선생님의 건축 작품집을 다시 읽는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섬세한 안내서다. 곳곳에 선생님의 삶의 미학에 심취한다. 다큐 ,말하는 건축>에서 선생님의 건축적 사유에 공감하면서, 그의 철학이 담긴 풍부한 도면과 사진을 다시 본다. 주변과의 조화 속에서 튀지 않고, 사연을 만들어가는 건축물을 구현해 나가는 그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 흔적과 상상, 건축가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 오영욱 지음, 페이퍼스토리, 2012. 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583480

 

 

 

 

다시 오기사의 서울 이야기를 읽고 본다. 그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의 흔적에서 상상을 길어 올리고, 추억을 사랑하는 한 청춘의 이야기다. 발터 벤야민식의 관찰하는 시선은 이전의 건축과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공간은 시간의 흔적에 관한 모자이크다. 엔틱이라는 미명 아래 새것도 낡은 것으로 탈바꿈하여 상품화는 것에 대한 그의 이야기라든가, 서태지가 소유한 건물에서 건축주의 미학이 살아나지 않는 점에 대한 생각에 공감하며 잔잔하게 펼쳐볼 수 있다.

 

반란의 도시를 펼치며...

 

나이를 먹나 보다. 사람과 사람의 경계, 공간 지리학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싹튼다. 물리적 공간은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청춘의 시절에는 시간이 삶의 지표였다. 시간의 효율성으로 삶은 의미를 갖는 것처럼 보였다. 풍요와 비옥함의 생성이 시간으로 이루어진다면, 공간은 고정되어 있는 정지된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시간이 중첩되고, 추억이 켜켜이 쌓여서 한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공간에 오랫동안 천착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리적 공간이 사회적 공간으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리적 공간을 가득 채운 시간의 궤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축 관련 서적 사이에서 읽기 시작한 신간 도서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는 자본이 지배하면서 도시 주변부로 밀려난 99%도시에 대한 권리를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두 책이 연성(軟性)이라면, 반란의 도시는 경성(硬性)으로 도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반란을 다루고 있다. 하비가 차용하여 사용하는도시에 대한 권리는 생태주의자 르페브르가 구상한 개념이다. 그는 도시가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계급적 예속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착취와 지배의 중심이자, 동시에 구성원에게 진정한 공통 이익을 고취시키고 변혁을 창출하는 장소로서 양면성을 지닌다고 하였다. 도시는 단순히 행위자들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회 구조와 실천 행위의 결합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특정한 사회 질서와 이념을 구현하는 사회적 공간이다(이성민, 2013, 한국교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 장세룡(2006)의 글 재인용).

 

 

도시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자본으로 흡수된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이질성의 차이의 공간인) ‘헤테로토피아(자본이 만들어내는 합리화의 공간인) ‘이소토피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변증법적 공간 창출이 도시의 권리를 되찾는 최선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장 우선의 신자유주의는 도시를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한다. 엘리트가 추구하는 입장이 보편성을 획득하여 도시 정책을 정당화한다. 쇼핑몰, 멀티플렉스, 대형매장, 패스트푸드점, 수제품 시장, 부티크 문화(43)가 도시를 가득 채운다. 지대 수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저소득층과 증간소득 세대는 도시 중심부에서 내몰렸고, 이로 이해 계급 격차는 더욱 벌어졌으며, 아무 특권도 누리지 못하는 주민의 복리에 악영향을 미쳤다(66). 급속한 도시화를 이끈 추동력은 자본이었다.

 

재력이 풍부하고 신용이 높은 사람이 부동산을 매수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는 그보다 소득이 낮고 위험이 높은 계층이 부동산을 매수하고, 맨 마지막으로 수입과 자산이 없는 계층도 부동산 매수에 뛰어든다. 이들은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한 부동산 전매를 통해 이득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일은 버블이 터질 때까지 계속된다. 금융기관은 수수료 수입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버블을 최대한 오래 유지해야 하는 강력한 유인이 되는 셈이다(94).

 

저자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이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화과정을 재생산하는 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논증 자료로 활용한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중국 등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에게 삼성 공화국이 낯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가 계급은 국가기구는 뿐 아니라 일반 주민을 지배한다. 이런 지배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도시 형성 과정은 정치투쟁, 사회투쟁,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주요한 장소다(122).

 

도시에 대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산발적인 대항 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도시 공간은 정치 활동과 저항의 중요한 장소로 기능한다(205). 투쟁의 방식으로 머레이 북친이 주장하는 연합주의와 엘리너 오스트롬이 내세우는 다극적 거버넌스는 수용할 만하다. 국가를 대신하는 지자체 회의의 연합 네트워크는 지자체가 공개적 회의의 장에서 시민기구가 되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다. 단 하비가 진단한 것처럼 이 또한 - 하트와 네그리가 주장한 공동체처럼 국가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한계를 갖는다. “공동체에 가입하지 않은 개인에게 가해질 억압(256)”을 경시하기 때문이다.

 

보수든 진보든 다양한 이유로 자신들만의 공유재화를 실천하고 있지만,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우리만의 리그라는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문화인들의 마을, 정치적 공동 행동을 추구하는 코뮌에 가서 느끼는 점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외부 세계와 이질적인 사람들에 대한 배척일 때가 더러 있었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의 긴축정책으로 줄어든 공공재를 확대하기 위한 투쟁이 요구된다.

 

도시의 공기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계급 전쟁이 존재한다. 내가 속한 계급, 부자계급은 이 전쟁을 먼저 시작했고, 지금 한창 이기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유일한 문제는 언제 민중이 반격을 가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한 (102) 워런 버핏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도시의 공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소외되어 있는 99%의 연합 이외의 방법은 없다. 이 지점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것은 어떻게 99%가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이다. 불평등을 허용하고 재생산하는 정치권력의 불평등에 대한 점령 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확한 답은 (하비가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확한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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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체포하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시인을 체포하라 -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촘촘하게 역사 읽기, 현재의 나침반 『시인을 체포하라』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 12.

 

미시사학자 로버트 단턴의 18세기, 파리로의 초대는 시종일관 흥미진지하다. 예측불허의 상황이라든지, 반전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다. ‘시인 체포’라는 사건이 이미 일어난 지점에서, ‘왜’ 혁명을 선동하지 않은 자들을 향하여 노골적인 공권력이 행사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촘촘하게 분석해나가기 때문이다.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처럼 낭만적인 시대의 예술적 만남도 아니고, 리처드 커티스의 <어바웃 타임> (About Time, 2013)처럼 가상현실도 아니지만, 시종일관 독자를 붙잡는 힘이 이 책에 있다. 하나의 지점을 향하여 올곧게 나아가는 집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잠시 나선형으로 후퇴하면서,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여 의제 설정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진실은 보도되지 않았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왜곡된다. 사적인 삶으로 침잠하는 순간, 정치는 우리의 삶의 전혀 무관한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2014년 한국은 공중파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서 ‘뉴스에 관심 두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지식인의 양심처럼 떠돌기 시작한다. 잠시의 움츠림은 힐링일 수도 있고, 패배자들 간의 다독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포복으로 숨을 죽인 가운데에서도 바른 삶,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소극적인 저항이 필요하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독서나 교양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재가 침묵을 요구할 때, 역사는 현실을 읽는 나침반이 되어 준다. 연대기 순으로 기록하는 편년체나 군주 중심으로 기술하는 기전체는 역사적 사실의 인과 관계를 드러내주기는 하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파도를 만들었던 민중의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로서 역사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사건과 사건 속에 감추어져 있는 변인들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단순히 과거의 아니라, 현재로 호출되어 새로운 의미망을 형성해야 하고, 새롭게 읽고 해석하는 관점과 문장력을 겸비한 사학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까닭이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고,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구전(口傳)되는 이야기의 힘은 놀랍다. 전(前)세대는 후(後)세대에게 이야기 방식으로 축적된 자산을 전수했다. 전달의 과정에서 이야기는 풍부해지고, 약간의 간극 속에서 의미는 심도가 깊어졌다. 여기에 기억력의 한계를 이겨내는 장치가 바로 음악이다. 시(詩)처럼 만들어진 이야기가 음악과 만나면 암송은 더 쉬워져서 더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시를 강력하게 단속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인을 체포하라』는 프랑스 혁명 직전인 18세기 중엽, 14인 체포 사건을 문화사가 로버트 단턴이 연구한 결과물이다. 당시 “시인을 체포하라”는 왕명이 내려지자, 경찰의 14명을 추출하여 바스티유 감옥에 감금한다. 물론 14명은 대부분 법률가와 성직자였으나, 시를 유통한 민중의 절반 미만의 사람만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당시 문맹률이 50%가 넘었음에도 어떻게 민중들은 정보를 유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기록보다는 기억과 암송으로 인류의 유산을 지켜왔던 시대가 훨씬 더 길었다.

 

시인(詩人)은 단독자일 수 없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투박한 구어에 시적 형태와 운율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내용 또한 단순한 분노의 표출에서 정치적 신념으로 깊어졌을 것이다. 파리 정부가 14인을 체포해서 처형했다고 해서 지은이를 색출해서 제거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는 불리는 과정에서 계속 변주되고 있었다. 이 사건은 “집단 창작의 한 사례였다. 최초의 시는 다른 여러 시와 합쳐지거나 그 속 포함되고 한데 어우러져, 시적 자극의 장을 만들어냈다.(18쪽)” 다만 당시 사람들은 떠도는 시(詩)의 의미를 알고 있었고, 자신의 분노, 신념, 소망을 슬쩍 시에 섞어 넣었을 것이다. 대중에 관한 다음의 묘사가 시를 쓴 ‘글쓴이’에 대한 정확한 지명이 될 것이다.

 

【대중이라는 분】(153쪽)

 

그것은 규정할 수 없는 하나의 합성체다. 어던 화가가 그 진정한 특색을 모두 갖춘 모습으로 대중이라는 분을 그려내고자 한다면, 그는 아마도 이렇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농부의〕 긴 머리칼, 〔신사의〕레이스로 장식된 코트, 〔성직자의〕모자를 머리에 쓰고, 〔귀족의〕검을 차고, 〔노동자의〕짧은 망토를 입고, 〔귀족의〕빨간 힐을 신고, 손에는 〔의사의〕문장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장교의〕견장을 차고, 왼편 단춧구멍에는 십자가를 꽂고, 오른팔에는 〔수도사의〕망토를 들고 있다. 당신은 이분이 차림새만큼이나 멋진 이성적 판단을 할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셸 푸코(M. Foucault)와 위르겐 하버마스(J. Habermas)의 접점에서

 

모든 권력자는 여론이 형성하는 담론을 규제하기 위해서 언론을 장악하여 적극 활용했다. 물자체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발화하는 순간 사건이 만들어진다. 푸코는 여론을 권력과의 관계로, 하버마스는 합리적 의사소통 과정으로 파악한다. 푸코는 미시 권력이 어떻게 개인을 통제하고 관리하게 되었는지의 역사적 과정을 탐색하였다는 점에서 담론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통찰을 제공한다. 니체 『도덕의 계보학』의 연구 방법을 차용한 푸코의 『지식의 계보학』은 시대를 지배하는 담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고고학자의 탐사처럼 치밀하게 파헤친다. 다만 수동적으로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능동성을 간과하였다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푸코는 죽기 직전까지 『성의 역사 3』에서 미학적으로 삶을 형성하는 자기 테크놀로지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하버마스는 합리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다. 근대적 기획이었던 계몽주의가 실패했다는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토론할 수 있는 인간의 수용 능력을 토대로 공론장 개념으로 이론을 정립한다. 이성적이고 비평적인 의사소통 잠재력과 이성이 하버마스 이론 체계의 핵심이다. 로버트 단턴은 푸코와 하버마스의 중간 지점에서 자신의 연구 방법을 설정한다.

 

푸코에 따르면 담론은 특정의 제도적이고 물질적인 실천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재생산될 수 있다. 푸코의 담론이론은 담론이 순수한 언어 내적인 것도, 언어외적인 것도 아닌 의미생산체계로 보아 담론적인 것과 교육, 법제도, 감옥같은 비담론적인 것의 복합적인 관계에서 산출되는 효과를 사고할 수 있게 한다. 더 나아가 푸코의 관점은 담론을 자율적인 사회실천으로 보기 때문에 존재와 의식이라는 철학적 구분 속에서 사회적 의식을 사회적 존재의 반영 또는 표현으로 보는 관점과 대립된다. 푸코에 따르면 담론 실천은 일종의 독자적인 사회적 실천이기 때문에 비담론적 실천과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비담론적 실천은 담론구성체의 규칙성에 영향을 줌으로써 특정한 담론이 출현하게 되는 조건들에 관계하고 그것의 기능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담론 형성과 대화를 통한 수용가능성은 의사소통 참여자의 참여적 태도로부터 규정된다. 객관주의적 의미의 관찰자의 시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버마스는 근대사회에서 공공영역의 발전을 화용론적 합의를 지향하는 탈억압적 의사소통 공간으로 규정하였다. 공공영역이란 "쟁점이 토론되고 의견이 형성되는 공공 토론의 장"이며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로버트 단턴은 그러한 공공영역의 출현이 18세기였다고 본다.

 

촘촘하게 역사 읽기

 

역사와 관련한 역설은 항상 존재한다. 국가가 역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역사주의와 국가주의가 보수의 무기가 되어서는 안된다.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김연아 선수를 겨냥해서 만들어진 “김연아 당신은 대한민국입니다.”는 개인의 삶을 국가로 환원하는 심각한 해프닝을 연출했다. 역사를 바로 읽는다는 것은 거대담론 속에 묻혀서 드러나지 않는 잔가지를 들추고 빈틈을 메워서 새로 쓰는 작업이다. 열린 해석과 가능한 상상을 통해서 역사는 이야기를 품고 무한대로 펼쳐질 수 있다. 푸코가 염려했듯이 의사소통과 관련한 역설도 존재한다. 올바르지 못한 정보가 사실처럼 유통되면서 ‘합리적인’ 의사소통 체계가 무너지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 정보화, 세계화 속에서 우리가 지금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시인을 체포하라』 는 그 역설에 대한 고민을 제공한다.

 

우리는 정보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닌 ‘정보기술의 발전과 확산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 어떤 정보화 사회로 나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의 차원이 아니라 정치의 차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보사회가 가져오는 편익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동시에 더욱 민주적이고 더욱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최근 정보사회에 따른 새로운 움직임들은 희망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노동자 정보화 사업단이 발족하여, 정보통신운동과 노동운동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으며 통신이용자와 노동자의 연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정보사회에서 ‘기계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불평등의 구조에 대한 도전은 많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를 통해서 현재의 정보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시를 추적하는 일에 공권력을 동원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그 시대의 의사 소통망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단초를 제공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절반 넘는 시대의 소통방식을 알아볼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단선적이지 않았을 인과 관계를 그려내는 일, 사건의 원인과 영향, 우연과 필연 사이의 결정 인자일 수도 있는 사건을 밝혀내는 연구를 통해서 현대 사회 의사소통의 문제점과 대안을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한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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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서울의 일상
류신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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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탈주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류신, 민음사, 2014. 1.

 

<응답하라 1994>는 hot하고 cool한 1994년 서울을 현재 시점으로 호명하였고, 케이블 방영이었음에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서울에 출처를 두지 않고, 이방인으로 서울에 진입한 이들의 시점과 카메라 뷰포인트를 일치시켜 낯선 서울의 일상을 추억에서 현재로 불러오는데 성공했다. 정주민에게 포착되지 않던 사물과 사건은 이방인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서울과 드라마 상황을 중첩하면서 각각의 서울을 구성했다. 시청자 각자의 체험과 동떨어져 있는 시공간을 재구성한 것에 불과했다면, 그러한 반응을 끌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신간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으면서 서울과의 개인적인 접점을 생각했다. 섬세하지 못했지만, 풍부한 느낌으로 기억되는 시절이었다. 지방 출신인 나의 사소한 어투와 취향이 서울 친구들 사이에서 얘깃거리가 될 만큼 그 시절 나는 서울의 타자였다. 호남선 열차를 타고 처음 가보았던 영등포의 밤과 새벽, 잠실 주공 아파트의 산책로였던 석촌 호수에 롯데월드가 들어서면서 주변의 변화되는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서울 역사의 일부다. 늘어선 쇼 윈도우 속에서 서울은 반짝 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삼설 코엑스 쇼핑몰은 그 자체로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이해할 수 있는 범례였다.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저자 류신은 소설가 박태원에 의해 탄생한 ‘구보’와 벤야민의 산책자적 시선을 차용하여 2013년 서울을 산책한다. 객관적인 사실에 의존하기 보다는 저자가 경험한 서울 속에서 여전히 차고 넘치는 자본주의 속성을 섬세하게 호출한다. 구보와 벤야민을 향한 헌정과도 같은 이 책은 다른 시공간 속에서 벤야민, 구보, 류신 세 사람이 함께 산책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동 속도와 시선을 낮추면서 서울은 맨얼굴의 실체를 드러낸다. 도시 거주자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도시 산책자의 눈에 게스탈트적으로 한꺼번에 속살을 드러낸다.

 

입체적 공간은 삶의 토대이고 결정자이기 때문에, 존재 방식을 읽어내는 확실한 단서를 제공한다. 미신 대신 과학이, 신(神)이 사라진 자리에 물신(物神)이 서울을 주관한다. 경제적 축적과 행복을 동일시하는 21세기 서울에서 소비 욕망은 그 자체로 삶의 목적이다. 소비를 위해서 일하고, 쉬고, 축적한다. 소비를 위해서 개발하고 부수고 교체하다. 소비는 무사무욕적일수록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에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하는 것은 소비 능력이다. 서울은 자본주의 환등으로 넘쳐 난다.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감싸고 있는 사물들이다. 함성호의 시 “패션은 육체다”처럼 패션은 사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개인의 자아다. “모든 패션은 살아 있는 육체를 무기체의 세계와 결합시킨다. 무기체의 성적 매력에 빠져드는 행위인 페티시즘은 패션을 위한 실수적 신경계다(발터 벤야민) (117쪽).

 

얼마 전 8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인사동 카페에서 주인 언니의 하소연을 들었던 적이 있다. 대학생이었던 손님이 어느덧 중년의 사회인이 되는 세월 동안 느티나무처럼 그 자리를 지켰던 주인 언니는 - 이름만 대면 알만한 - 수많은 문화 예술들의 누나이자 언니였다. 그날 밤도 처음 만난 방송국에서 일하는 한 팀과 내 일행은 오래된 지인처럼 서울의 역사를 논했고, 함께 연주를 들으며 술을 마셨다. 연배를 달리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가 기억하는 한 시대의 서울을 퍼즐처럼 맞추어갔다. 모든 잠든 시간에 서울의 한 카페는 영화 같은 시간들이 추억의 유적을 만들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잊지 않고 찾아오는 그들의 사랑이 돈 없는 언니의 소중한 자산이다. 조만간 언니는 삶을 일궈낸 터전인 인사동을 떠나야 할 판이다. 치솟는 땅값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대기업 따님들이 야금야금 인사동 가게를 하나둘 사들이기 시작한지 오래되어 월세, 전세로 운영하는 가게 주인은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라 한다. 자본의 환등 성으로 정신적 자산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월세를 못 내는 언니를 위해서 많게는 몇 십년, 짧게는 수년의 인연을 가진 손님들이 공연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한때 스무살이었던 학생이 중년의 신사가 되어 카페의 명맥을 잊는 실날 같은 생명을 불어 넣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인사동 카페를 생각했다. 류신이 걸으며 만난 서울의 문학과 예술 탓이리라. 벤야민의 수집가적 정신이 구보를 거쳐 류신으로 이어진다. 이 책을 쓰는 내내 행복했을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읽히는 책이다. 저자의 스타일리쉬한 글쓰기 또한 한몫하는 책이다. 연구자와 대중작가 사이에서 접점을 찾고자 하는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소설처럼 읽히는 재미있는 문학 평론(문화 비평)”을 쓰고 싶었다.”는 저자는“창작과 비평을 합체”하는데 일정 정도의 성과를 만들었다. 단순한 소회에 젖지 않기 위해서 문학 작품들을 재인용하는 장치를 사용한다. 문화 비평가로서 둘 사이의 경계에서 시도하는 글쓰기 방식이다. 곽재구, 김소연, 남진우, 무라카미 하루키, 김영하, 심보선, 함민복, 파묵, 배수아 등 이름을 열거하기도 벅찬 수많은 작품들이 류신에 의해서 재해석된다. 문학 작품은 서울을 해석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서울을 통해서 의미 있는 비평작업의 주체이기도 하다. 류신의 해석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읽히지 않는다. 각자의 눈을 통해서 간주관성을 획득한다. 의미는 작자의 경험에서 접점을 찾아간다.

 

내게는 “하루 걸어서 하루를 산다.”는 걷기의 달인 이모, 이모부가 있다. “속된 도시” 서울을 탈주할 수 없는 벗들이 너무도 많다. 거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해법을 찾아볼 수 있는 작은 저항을 류신에게서 발견한다. 이 책 하나로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에 함께 걷는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 물신 지배의 서울 비판만을 위해서 이 책을 쓰지 않았다. 21세기 서울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탐색에 목적을 둔다. 사랑의 가치는 성패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랑이 없다면 이 도시는 삭막할 것이다.(258쪽) 사랑으로 은유된 이 가치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는 우리 각자의 몫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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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2014-03-06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삼설 코렉스 쇼핑몰은 삼성 코엑스의 오타인가요?

더불어숲 2014-03-06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타입니다.ㅠㅠ; 꼼꼼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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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2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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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서 작품과 만나다.

『명작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유홍준 지음, 눌와, 2013. 11.

 


 

십대 시절, 용돈의 십 할을 책 구입에 사용했다. 밥벌이를 시작한 이후에도 책을 사서 모으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권의 책을 다시 읽을 여유 없이 새 책이 쌓여갔다. 책을 살 때는 분명 다시 이 책을 펼쳐들 날이 여러 번 있으리라는 기대했지만, 언제나 눈은 신간에 꽂혔다. 책을 끌어 모으는 것은 지적 허영의 한 측면이기도 했지만, 작가의 지적 생산에 대한 독자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단돈 만원에 일기장을 공개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다보면 책값이란 세속적인 계산에 의해서 합리적일 뿐, 그 가치는 누구도 매길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책’이라는 물화(物化)된 지성에 대한 경도되었던 한 시절의 소회다.

 

책에 대한 사랑이 유난했던 그 시절 ‘유홍준’ 선생님은 인기 없던 우리의 관공서 ‘문화재’를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와 친근한 해설을 곁들여 주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학술적인 저술을 대중을 위한 글쓰기로 형식을 바뀌면서 천상(!!)의 미학에 머물던 한국의 미술품이 지상에 발을 디뎠고 답사여행이 순식간에 파급되었다. 나 또한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끼고 남도를 여행하는 학생 중 한명이었다. 정약용의 유배지를 서성였고, 해남, 강진 남도 답사 일번지에서 나와 비슷한 여행자들을 여럿 만나기도 하면서 선생님의 글쓰기 속도를 터덕거리며 따라갔다. 점점 발이 움직이지 않고, 눈으로 읽고 보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선생님의 저서를 읽다 보면 생각이 멈추고 망연해지는 순간만큼은 여전하다.

 

유홍준 선생님은 작품과 나 사이의 거대한 창문이다. 유일하게 언어의 힘에 기대어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나와 같은 고전 작품 문외한들에게 유홍준 선생님은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망원경이자 현미경이다. 이번 저서에게 선생님은 - 작품의 기본 정보를 제공하여 -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만, 이미 작품 선택 자체가 개입인지라,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 늘 그의 작품 보는 법을 모방하였듯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의 작품 보는 안목에 기대어 감상할 수밖에 없다.

 

그가 취사선택한 옛 그림과 글씨 49점, 그에 곁들여지는 100여점의 도판은 사람과 작품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명작순례』는 작품보다 작가의 삶에 더 가까이 위치하기 때문에 작가의 삶과 작품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풍죽도>를 통해서 대나무처럼 꼿꼿한 자신을 표현한 것 같은 탄은 이정의, “능숙한 필치와 간일한 묘사로 재료상의 제약을 모두 극복(68쪽)”한 겸재 정선, 함께 어울릴 벗이 없이 고독했기 때문에 그림이 관념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현재 심사정, 그중에서도 능호관 이인상이 <수하한담도>에 그림을 그린 연유를 써 넣은 것에서 작품 너머의 것을 이해하게 된다. “내 친구 임매는 내 그림을 애써 받고도 그의 너그러운 성품 때문에 다른 이가 가져가도 상관하지 않아 내 그림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이 그림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임매가 내 소심함을 비웃을 것을 무릅쓰고 이를 (임매에게 주는 그림이라고) 쓴다.(79쪽)” 진심을 전하면서 유머를 잃지 않는 능호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표암 강세황이 자화상에 쓴 찬문의 유머 감각은 요즘 대세인 드라마 <별에서 온 남자>의 천송이에 버금간다. “가슴에는 만 권의 책을 간직하였고 / 필력은 오악(五嶽)을 흔들만하지만 / 세상 사람들이야 어찌 알리오, 나 혼자 즐기는 것임을”이라는 글 속에서 유머가 차고 넘쳤을 강세황이 현현하는 느낌이다. 그런 성품을 지녔기에 제자 단원과의 망년지우(忘年之友)가 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단원과 사귄 것은 전후하여 모두 세 번 변하였다. 처음에는 단원이 어려서 내 문하에 다닐 때 그의 재능을 칭찬하기도 했고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치지도 했다. 중간에는 관청에 같이 있으면서 아침저녁으로 함께 거쳐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예술계에 있으면서 지기(知己)다운 느낌을 가졌다.(101쪽)”고 한다.

 

모든 작품의 사연도 각별하고 훌륭하지만, 평소 좋아했던 화가에 더 오래 머물고 집중했다. 이때부터는 저자를 벗어난 읽는 자들 각자의 독법이 가능해진다. 아는 만큼 보이니 어쩔 수 없다. 대책 없이 돌출한 <취화선>의 오원 장승업이 매력적이고, 고국과 고향을 떠나 실향민의 심정으로 점을 찍는 김환기의 삶에서는 목울대가 뻐근해져서 한참을 창밖만 바라보기를 여러 번 했다. 예술의 용법과 용도는 다양하지만, 예술은 유한한 삶속에서 무한한 꿈을 꾸는 자들의 사유에 물질성이 부여된 것이기도 하다. 김환기의 삶과 작품이 그러하다. 오래전 내가 가르쳤던 제자의 이름이 ‘김환기’였다. 화가였던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자식에게 준 이름이었는데,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화가의 이름을 자식에게 붙여준 (뵌 적도 없는) 아버지의 마음이 충분히 느껴져서 그 아이 이름을 부를 때는 남다른 감흥에 젖기도 했다. 모더니스트 김환기의 우수에 찬 작품이 선연하다. 다산 정약용의 삶에 대해서도 새삼 다시 곱씹어 생각한다. “다산에게 유배란 강요된 안식년”이라는 의견에 대한 유홍준 선생님의 재해석에서는 말문이 막혔다. “그의 18년 귀양살이에는 비록 ‘강요된’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해도 감히 ‘안식년’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237쪽)”는 말씀에서 어떤 표현은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라는 생각에 한참 머물러야 했다.

 

“세상엔 한석봉을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추사를 아는 사람도 없다.(221쪽)” 여전히 우리는 아는 만큼 볼 것이며 사랑할 것이다. 남과 다르게 보고 해석하며 관계 맺을 것이다. 앞서 깨달은 분들에 기대어 앎을 확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낮은 지평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남자>의 도민수처럼 오백년을 사는 외계인이 아니고,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타임슬립할 수 없다면, 우리가 온전히 기댈 곳은 책을 통한 시간 여행이다.

 

다음 주에 이사를 해야 하는 내가 포기한 물건은 결국 책이다. 서재를 지금 사는 집에 그대로 두고 가기로 결정하면서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책꽂이를 잘 찍어서 새집 벽에 걸어야겠다는 것이다. 서가 사진이라도 있어야만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여가가 없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림 ‘책가도’를 보면서 옛사람들도 나와 같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나 보다. “정조는 화공에게 명하여 책가도를 그리게 하여 자리 뒤에 붙여두시고 업무가 복잡하여 여가가 없을 때는 이 그림을 보며 마음을 책과 노닐게 했다.(266쪽)”고 한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사랑한다. 나쁜 책도 도움이 되었다는 막심 고리끼처럼 한시절은 호불호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작순례』를 읽으면서 일상이 고고해지는 느낌이다. 예술작품을 보고 읽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번 생의 시간 여행은 이것으로 대신해야한다. 내 삶을 예술로 가꾸는 과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한다. 세네카, 푸코처럼 주체의 윤리로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들어야 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2013)은 시간이 되돌릴 수 있는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는다. 타임 슬립 없이도 충분한 행복을 누렸을 것 같은 현명한 아버지에게 아들이 묻는다. “그 능력으로 얻는 남보다 많은 시간 동안 아버지는 무엇을 했느냐?”고. 영문학 교수인 아버지는 남들이 세익스피어를 한번 읽을 때 나는 여러 번 읽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답한다. 재산을 탐하지도 않았고, 세상의 이치를 깨트리지도 않으면서 시간이 줄 수 있는 최고를 누렸던 것이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2075

 

고교 동창 P는 “음악을 귀에 걸고 사는” 아이였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면서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고, 우여곡절 끝에 S대학교에 입학했다. 대기업 직원이 된 그 아이가 여자 친구에게 했던 말, “한 달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영화 보고, 책 읽고, 음악 듣고, 여행하고 싶다.”였다. 언제든지 누릴 수 있는 자의 - 투정처럼 느껴졌다. 그 친구 지금 뇌졸중으로 쓰러져 뇌수술을 세 번 받고 투병중이다. 새털 같은 많은 날들이 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참 많다. 오늘의 행복은 오늘의 몫이다. 그 친구가 꿈꾸었던 시간을 이번 생에서 반드시, 여러 번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는 아이니까, 체리 향기 같은 시간이 그에게 허락될 것을 믿는다. 나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기 바라는 마음으로 『명작순례』를 다시 펼쳐 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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