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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추락 - 프로이트, 비판적 평전
미셸 옹프레 지음, 전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니체적 관점에서 프로이트를 바로 보기 『우상의 추락』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 지음, 전혜영 옮김, 2013. 10. 글항아리

 

자신의 젊은 날을 추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잊혀지지 않는 열등감의 화인(火印)일수도 있고, 가장 아름다운 한 시절의 유적(遺蹟)일 수도 있다. 스무 살, 내게 주어진 시공간은 낯선 설레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기들과 함께 읽기 시작했던 철세(『철학에세이』), 껍데기(『껍데기를 벗고서』)로 시작했던 학습 모임은 세 계절을 보내고 겨울방학이 되자 마르크스, 포이에르 바흐 원전으로 넘어 가기 시작했다. 동기들은 어느새 사회과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데도 나는 여전히 문학의 세계에 머물면서 공지영의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강석경의 『숲속의 방』,『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김남주 시인의 시에 빠져 있었다. 학습 모임에 들고 갈 발제문을 작성해야 하는데, 낱낱의 글자만 읽고 있을 쁜 텍스트가 함의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다. 소모임에서 발제문을 읽고 발표했을 때 모임에 나를 추천한 선배 얼굴에 맺히는 당혹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추운 겨울에도 얼굴이 후끈거렸다. 지적 허영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수치심은 낮은 자존감으로 나타났다. 한학기 내내 먼지 가득한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사회과학만을 읽었던 것 같다. 대학에 다니는 오빠의 책을 훔쳐보는 초등학생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시간들이다.

 

그날 이후 Marx는 이십대의 내 시간 안에 머물며 영혼을 건드렸고, 삼십대 초반 수년 동안 공부한 정신분석 모임은 Freud를 통해 내 안에 빙산을 이루고 있는 무의식을 성찰하게 했다. Freud에서 Jung으로 넘어가고, 다시 Adler나 Erikson으로 이어지는 상담심리를 통해서 남의 상처가 아닌 내 상처를 먼저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한다. 성찰하고 언어화하는 순간 반은 치유받는다는 믿음이 내게 있다. 언어화된 상처는 이미 상처가 아니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내 시공간의 지평을 넓혀주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늙지 않고 성장하는 것, “소유하는 소비가 아니라 경험하는 소비”(선대인 선생님의 말씀)를 했던 지난 시간이 만들어준 선물이다. 지금 나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위로를 주는 친구는 Nietzsche다. 니체는 내 삶을 긍정하고 긍정하게 무한 변주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주었다. 이들의 어깨에서 올라타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다.

 

미셸 옹프레의 『우상의 추락』은 내가 보낸 젊은 날들을 회상하게 하는 서사에서 비롯되었다. 방대한 자료에서 주장의 근거를 찾아내는 성실함도 놀랍지만, Freud와의 인연을 자신의 성장에서 끌어내는 문학적 필력 또한 대단하다. 그 또한 프로이트처럼 사적 경험에서 출발한 운명적 만남이 프로이트를 우상에서 추락하는 과정으로 나아갔음을 독자에게 고백한다. 저술을 하게 된 이유를 밝힘으로써 방대한 분량의 저서임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시작할 수 있는 시작점을 만들어 준다. “그 당시 헌책방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 세 권 있었는데, 바로 니체의 『적그리스도』,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프로이트의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7쪽)”라는 저자는 무지를 자각하고 지식에 열정을 쏟아야 하는 자신의 숙명을 자각한다. 기독교가 더 이상 숙명이 아니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넘어야 할 지평이며, 도덕성과 무관한 성욕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은 우상을 전설로 기억하지 않고, 친구로 만든다. 그에게 “니체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였고, 그 마음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변함이 없다.” 친구는 친구를 비판할 수 있고, 친구를 따라가고, 때론 뛰어 넘으면서 우정을 나눈다. 우상을 박제된 영웅으로 가슴에 새기기를 거부하는 사람만이 가장 완전한 형태의 사랑과 존경, ‘우정’을 나눌 수 있다. 그런 관계일 때 비판은 설득력을 갖는다. 프로이트를 비판하기 위해서 미셸 옹프레는 정신분석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엽서 열장을 제시한다.

 

1.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혼자서 발견했다.

2. 말실수, 갑자기 떠오른 단어, 망각된 고유명사, 어떤 대상을 왜곡하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정신병리학적 현상이다.

3. 꿈은 해석이 가능하다.

4. 정신분석학은 임상 징후를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한 과학이다.

5. 실질적인 치료와 환자의 정신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고 정신병리학이 진단한 병을 낫게 해주는 방법을 발견했다.

6. 정신분석을 통해 억압된 기제를 의식화함으로써 병적 징후를 없앨 수 있다.

7.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8. 정신분석의 거부는 그 주체에게 신경증이 있다는 단서이다.

9. 정신분석학은 일종의 해방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10. 계몽주의 철학의 난해한 비평적 이성이 지속되는 상황을 구체화하였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프로이트 이론은 철저히 그 개인의 사적 경험에 바탕을 둔, 개인적인 삶이 반영된 것임을 증명하려고 한다. 프로이트의 삶, 사상, 치료에 의문을 제기하며 출발한 책이다. 처음부터 주장을 직구로 던져서 독자로 하여금 길잡이의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프로이트 자신이 경험한 개별 사례들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사료 속에서 찾아내고, “선악의 경지를 넘어 니체의 관점에서” 프로이트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가 제시하는 반론의 엽서는 다음과 같다.

 

1. 프로이트는 수많은 책 - 특히 쇼펜하우어와 니체 철학 - 을 정독하여 무의식에 대한 가설을 제기하였다.

2. 정신병리학의 증상을 리비도에 의한 욕망의 억제로만 분석할 수 없다.

3. 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꿈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리비도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4. 정신분석학은 문학에 적용된 심리학과 관계가 깊다.

5. 분석에 의지한 테라피 효과는 마법에 가까운 효과에 의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6. 욕망의 의식화로 병을 치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7.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8. 마법에 대한 생각을 거부한다고 해서 자신의 운명을 마법사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9. 해방이라는 이름 아래 정신분석학은 심리주의가 말하는 금기 사항들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10. 역사적으로 계몽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에 이성주의에 입각한 철학을 부정한 새로운 형태의 철학, 이른바 반(反)철학을 내세웠다.

 

누구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자유롭게 연구하고 성과를 만들 수는 없다. 각자 고민하는 문제가 씨앗이 되어 발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나서 싹을 틔운다. 프로이트 역시 아버지와의 관계, 배다른 형 필립과 어머니의 관계에 대한 의심, 형에 대한 강한 질투심, 처제와의 오랜 세월 한집에서의 거주, ‘일요일의 아이’라고 부르며 아꼈던 딸 소피의 죽음, 세 딸과의 관계가 정신분석학을 집대성하는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대를 잇는 이성 간이 성교만을 정상적으로 바라보고 그 외 모든 것들을 변태성욕으로 보았던 프로이트는 좋은 아내, 엄마가 여성의 역할이는 믿음 또한 도처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자신의 잠정적인 주장,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욕망이 하는 말, 소원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 완성”에 프로이트가 집착했다는 것을 수용할 만하다. 미셸 옹프레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 독자라 할지라도 거의 칠백 쪽에 달하는 분량의 논증은 사료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과학 보다는 문학에 가까웠다는 점,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의 심리를 이해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워낙 자료를 치밀하게 추적하기 때문에 덤으로 얻을 수 있는 호기심 어린 에피소드들도 수록되어 있다. 존 휴스턴 감독이 <프로이트 : 그의 은밀한 열정>이라는 영화를 찍기로 계획하고 사르트르가 시나리오 작업에 동참했던 것, 안나 프로이트가 마리린 먼로와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만났고, 먼로가 보유한 재산의 1/4와 죽고 난 후 지불될 저작권료가 안나 프로이트 재단 설립에 쓰였고, 지금까지도 런던에 있는 프로이트 재단의 계좌로 들어가 있다.(304쪽) 프로이트와 기독교를 병치하여 분석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샤르코와 프로이트의 만남을 예수와 세례 요한의 만남(671쪽)”으로 비유하고, 프로이트 전기 작가를 “예수의 삶을 신화처럼 우상화시킨 기독교인들이 썼던 방법을 적용해 프로이트를 역사적인 모델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치료하는 의식은 말로 죄인들의 죄를 씻어주는 방식과 비슷하다. 말이라는 것은 일종의 내면을 드러내는 고백, 고해와 같은 기능을 담당한다(673쪽).” 기독교의 고해 성사와 프로이트 카우치에서의 내담자가 쏟아내는 고백을 같은 것으로 분석한다.

 

다만 “프로이트의 픽션”이라는 극단으로 밀어가기에는 정신분석학의 임상적 효과와 인류 역사에 끼친 공헌이 지대하다. 프로이트를 인정하거나 부정하거나 그를 통하지 않고 21세기 철학, 심리학, 정신병리학을 논할 수 없다. 적어도 중세 이후 금기였던 성(性)을 응시하고, 담론화하여 해방시키는데 프로이트가 획기적인 이론으로 정신분석학을 확립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담배가 몸의 일부나 다름없었던” 프로이트가 구강기에 머물러 있는 인격이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개인적 서사에 대한 변명을 위해서 정신분석학이 필요했다고 추정할 근거도 없다. 미셸 옹프레 역시 프로이트를 사형대로 보내기 위해서 이 책을 저술하지 않았다. 그는 구시대의 철학 체계를 반박하는 일이 철학자를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 『우상의 추락』은 니체적 관점에서 저자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프로이트를 딛고 올라서려는 결연한 의지가 만들어낸 수작으로써, 인간 프로이트에 접근하고 싶은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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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판적 책 읽기를 위한 훌륭한 텍스트
    from 二乙과 無生의 마음풍경 2013-12-15 00:13 
    이 책은 정신분석을 제대로 파고 들어갔다. <꿈의 해석>을 읽었던 삼십 몇 년 전으로 돌아가본다. 프로이트가 쓴 책이 워낙 유명세라서 읽어두면 살이 되고 피가 되리라는 충동적 읽기였다. 그러다가 2/3를 읽다 말았다. 어째서 이 책이 그토록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점점 자라나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게 되어서였다. 우리에게 있던 <꿈의 해몽>보다 못하다는 판단이 들었는데, 해석이 동양의 풀이와는 너무 달라서였다.
 
 
비로그인 2013-11-1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 글입니다..
제가 쓴 우상의 추락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더불어숲 2013-11-1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고 감사합니다.
자극이 별로 없는 서재에 '흔적'이 남았으니, 더 분발해야겠어요.
흔적님 리뷰는 제게 늘 채찍입니다. 오늘은 당근??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