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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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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현상을 통한 2013년 한국 현실에 대한 재고(再考) 『일베의 사상』

 

박가분 지음, 오월의 봄, 2013. 11.

 

청춘이 꽃피고 시대적 아픔이 오롯이 내 아픔이 되었던 오래 전 어느 봄날, 공지영의 소설을 만났다. 이십대의 작가는 시대의 정서와 경험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소설로 옮겼다. 오랜 시간 그녀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했다. 신념을 다지는 쉬운 소설, 어렵지 않은 소설이 존중되지 못했던 날들, 그녀는 세월을 잉태한 채, 여전히 소설가로 남아 있다. 그 시절에는 잠시 핫하게 떠오르다 사라지는 작가 중 한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공지영은 여전히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며 꾸준히 작품을 써왔다. 기대 이상의 반응이었다. 작품보다 사적 삶이,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는 SNS가 주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접하기 쉽고 이해가 빠른 ‘한국’ ‘현대’ 소설에 누가, 얼마나 경의를 표하겠는가 싶지만, 그녀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도 저평가 되는 작가 중 한사람이다. “공지영은 그냥 싫다.”는 독자를 꽤 여럿 알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냥”이다. 오랫동안 그녀의 작품을 읽지 않고, ‘그녀’가 싫다고 한다. 이유 없이 그냥 싫다면, 싫어하는 자신의 무의식을 살펴볼 일이다.

 

공지영의 신간『높고 푸른 사다리』를 오래 기다렸다. 한겨레에 연재되는 소설을 띄엄띄엄 읽으며, (2013년을 누구보다 처참한 심정으로 지냈을 것 같은) 공지영 작가를 살게 하는 힘이 이 소설일 것으로 미루어 짐작했다. 신문에서 보는 그녀의 글이 한권의 근사한 책으로 묶이자마자 사전 예약까지 해두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의 중단 없이 읽혔다. 작가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도대체, 왜?” 2012 대선을 거치면서 매 순간 자답하게 하는 자문이었다. 채널이 막힌 2013년 터널을 지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년은 각자의 생각은 자유라는 방식으로, 세상의 부도덕과 몰상식을 보수화라는 용어로 정당화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7470

 

  

지난 5월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 시크릿 전효성의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는 언급이 네티즌의 도마 위에 올랐다. 버스커버스커의 김형태는 “허니지 형들 차트 종범”이라고 트윗하면서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그들에 대한 거센 비난은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때까지는 왜 ‘민주화’나 ‘종범’이라는 단어가 네티즌의 집중 포화를 받아야 하는 까닭을 몰랐다. (민주화 : =ㅁㅈㅎ, 일베 게시글에 대한 반대, 비추천을 의미, 더 나아가 진보적인 주장에 공감하거나 보수파나 자신들의 정치적 농담을 용인하지 못하는 게시판의 분위기를 지칭하는 말. 모든 부정적인 뉘앙스를 함축하는 말(22쪽), 종범 : 야구선수 이종범의 이름. 존재감이 없다는 듯으로 사용한다(25쪽)). 모르기 때문에 분노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단지 세대 간의 차이이거나, 논의할 가치조차 없는 잠깐의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일베’가 공공연하게 유통되고, 일베 유저에 새롭게 자리하고 있는 우파의 논리, 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 넘길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때를 맞춰 출판된 책 『일베의 사상』은 이 현상이 우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고 믿었던 나와 같은 ‘기성’ 세대에게 충분히 읽을 가치가 필요한 책이다. 저자 박.가.분. 그가 보는 세계는 분명 나와 다르다. 이십대 청춘 박가분은 일베의 용법으로 그들의 논리를 맹목적으로 비난하지 않고 현상을 객관적으로 기술한다. 암중모색. 대안 없어 보이는 2013년 한국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희망을 품고 치열하게 진단과 분석을 제시한다. 서로 다른 생각이 하나의 단어를 다른 의미로 소비하고 있다면,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일베의 역사, 문화, 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 2013년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베에서 가공되는 정치적 담론을 기성 논객 몇몇의 근엄한 꾸짖음으로 야단치거나 무시하는 것으로는 끝낼 수 없는 것은 그들의 영향력이 막대할 뿐 아니라,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디시인사이드에서 출발한 일간베스트, 일베는 콘텐츠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포지션을 바꾸기 시작한다. 엘리트와 대중의 경계를 넘나든다. 진보 좌파와 짝을 이루던 민족주의는 이제 애국보수와 짝 지워진다. 인터넷의 민주화는 일베의 형제애가 된다. “일베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서로에게 말을 놓으며 툭툭 내뱉는 것이 원칙이다. 일베 유저들은 이런 문화에서 집에 온 것 같은 친근감을 느낀다. 일베는 서로에 대해 수고로운 감정노동을 하지 않아도, 인터넷의 진보주의자들처럼 서로에 대해 가식적인 가면을 쓰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편한 공간이다(125쪽).” 공격적이고 우상 파괴적인 스타일, 감성과 논리, 정치적. 학문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을 뒤섞어가며, 상대의 허점을 명쾌하게 논파하는(77쪽) 강준만식 글쓰기와 인터넷 글쓰기는 형식에 공통점이 있다. 하이퍼텍스트적 글쓰기와 짤방은 같은 방식으로 유통된다.

 

일베의 용어는 낯설고 여성, 전라도, 게이에 대한 비하의 의미를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의외로 일베의 모태인 디시인사이드가 친노 성향의 진보적 색채가 강했던 사이트다. “효순/미선 추모 시위, 노무현 대통령 당선, 탄핵 반대시위에 이르기까지 주된 정치적 국면 때마다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의 여론을 표출하는 진앙지(97-98쪽)였지만, 이제 김대중 대통령의 입관식에서 오열하는 이희호 여사 사진을 홍어 택배 왔다는 짤방으로 유통하면서 특정 지역과 인물을 비하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한 사람의 신상을 털어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은 희화화하고,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의 죽음은 추모로 이어진다.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일베문화가 사회의 배설물이 되어 일베유저를 익명의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이십대에게 희망이 있는가?

 

아쉽게도 『일베의 사상』은 극우에서 양산되는 일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에서 멈춘다. 기성세대와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 때문으로 극으로 돌아섰다고 보는 것은 기계적 해석처럼 보인다. 경쟁과 배제 속에서 성장한 아픈 청춘, 저성장 사회의 88만원 세대, 저출산 고령화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갈 이들의 무기가 인터넷 공간인지 모르겠다. 핸드폰, 골방, 일용할 양식만 주어지면 무노동 무임금도 좋고, 루저가 되는 것도 두렵지 않을 수 있다. 시대와 삶을 성찰하는 것이 고루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어려운 사태에 내몰려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무거운 책임감만 주어진 것이 기성세대들의 탓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젊음에는 젊음의 값어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꼰대의 방식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 박가분의 신간을 읽어야 하는 것은 - 일베에서 양산하는 깨알 같은 재미와 웃음에는 웃어넘길 수 없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경멸, 정치 성향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상처를 다독이고 공감하며 힐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바르고 선한 삶을 사는 것은 위로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위로만으로 희망을 현실에 가져올 수는 없다.

 

『일베의 사상』이 다행스러운 것은 저자가 이십대 새파란 청춘이라는 점이다. 나에게 공지영이 있었듯이, 젊은 그대들에게는 박가분 같이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평론가가 있다. 누구보다 일베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고, 경멸이 아닌 이해로 싸움을 걸 줄 아는 유머를 잃지 않은 청춘의 평론가다. 서로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정의를 세울 수는 없다. 냉소는 환멸을 양산할 뿐이다. 기성의 언어가 꼰대의 설교로 들리고, (언어는 사유의 집이라서) 소통할 수 없는 언어 세계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기대할 것은 청춘 간의 소통과 싸움이 만들고 지켜가는 사회적 책무와 투쟁이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기대하지 않은 영화였다. 발칙한 젊은 잉여들의 1년간 유럽 여행기. 그 정도의 정보가 다였다. 파리, 로마, 이스탄불, 런던을 간접 여행하려는 가벼운 마음으로 객석 한자리를 차지했다. 러닝타임 초반 십분까지 잉여로 보였던 그들은 나머지 1시간 40분 여분 동안 잉여 개념을 확실하게 전복시켰다. 자칭 잉여인간 호재, 하비, 현학, 휘가 80만원과 카메라 한 대로 시작한 유럽의 히치하이킹은 이십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진정한 유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각자 특별했지만, 그 특별함을 생산적으로 만들어가는 상보적 관계와 호재의 리더십은 생산과 놀이를 분리하지 않는 니체적 삶을 제대로 보여준다. 미래는 막막하지만, 일상과 단절하고 예측할 수 없는 주사위 놀이를 시작하는 그들을 보면서 ‘일베’와 대척점에 있는 놀이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상이 관념적이라면 놀이는 삶이다. 이렇게 양극단의 삶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놀라운 잉여들은『일베의 사상』을 읽으며 막혔던 심장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5298

 

 

 앞으로의 국가는 당위와 명분으로 정보를 통제하고 사람을 억압하는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다. 이상적인 국가의 형태가 제각각일지라도 약자는 국가에 기대어 삶을 살아간다. 국가를 통해서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면 대안적 공간을 만들고 연결망을 구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혐오, 환멸로 억압된 욕망을 표출하는 것으로 우리가 살고 싶은 자유로운 삶을 만들어갈 수 없다. 국가가 약자의 삶을 위태롭게 할 때, 대항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존재기반이 위태로운 소수자들이다. 열등감을 열등감으로 대하는 한 사회적 약자는 벼랑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자기 연민을 덜어내고, 상처투성이의 유머를 거두고 냉혹한 현실을 차가운 이성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베의 성장 과정을 충실히 분석해야 한다. 때가 되면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거두어야 한다. 『일베의 사상』은 일베 현상의 원인을 알고 대응책을 만들기 위한 필독 입문서에 이름을 올릴만한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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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트 -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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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0.1% 슈퍼 클래스를 통해서 본 국가 없는 자본주의 현실과 전망

 

『플루토크라트-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열린책들, 2013. 10.

 

진정한 진보와 플루토크라트

 

『플루토크라트』는 전 세계 최상층에 속하는 0.1%의 신흥 갑부에 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세계 경제의 변화 양상을 파악한다. 언론인이자 산업전문가인 저자 크리스티아 프릴랜드는 시장 경제와 플르토크라트의 성장을 파악하기 위해서 정치적 · 경제적 접근 방식을 함께 차용한다. 글로벌 슈퍼 엘리트의 일상을 아는 것이 - 진보와 빈곤이 결합한 - “거대한 스핑크스”의 모습을 보는 일이라면 독자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진정한 진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될 것이다.

 

자선 & 불평등, affluent(부유한) & rich(부자)

 

우리가 『플루토크라트』에 접근하면서 살펴보아야 할 몇 가지 용어가 있다. 플루토크라트(Plutocrat)는 부를 의미하는 희랍어 Pluto와 권력 kratos의 합성어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자선이다. 유의해야 할 점은 그들이 자선을 베푼다고 해서 불평등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자산 보유 상위 0.1%는 “고귀하고 따뜻한 사람”을 전제할 수 있지만, 불평등에 대한 개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계급 투쟁 없이 현 상태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일이다. 'affluent(부유한)’와 ‘rich(부자)’ 역시 이미지에서 큰 차이가 있다. 부자라는 말은 은연중에 물질적인 풍족함과 속물근성을 함의한다. 문화, 교육, 사회관계 자본을 함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자는 부자라는 호칭을 싫어한다.

 

“해외의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을 똑같이 할 수 있다.”

 

세계인의 삶이 평균 곡선의 정상 분포를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중간에 높고 완만하게 분포한 사람들은 평등한 세계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전반적으로 공유한다. 스마트 월드는 누구나 원하는 음악과 영화를 다운 받아 보고, 정보에 손쉽게 접근하며, 저가의 질 좋은 상품을 손쉽고 값싸게 구매한다. 산업 혁명과 근대화 이후 다수의 사람들이 정치적, 법적, 형식적 평등을 누리게 되었고, 기술혁명과 근대화는 전 시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경제 성장을 이끌어 내면서 사회 계약 자체를 바꿔 놓았다.

 

국적 없는 슈퍼 클래스, 그들만의 리그

 

아무리 우리의 일상이 표준화되었다고 해도, 계급 진입 장벽을 간과할 수는 없다. 여전히 뛰어 넘을 수 없는 계급 특수성이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남보다 빠른 도전,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금 주어진다. 국가에 대한 생각을 기준으로 과거와 오늘날 부자의 성격이 확연히 달라진다. 과거의 부자와 오늘의 부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경계가 국가관이다. 신흥 갑부에게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삼성 회장 이건희와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가지는 공통분모 보다 빌게이츠와 여러 면에서 훨씬 더 많은 유사성을 갖는다. 그들은 더 이상 과거의 부자가 아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토대로 유희를 즐기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슈퍼 엘리트는 노력과 성공을 기폭제로 자신이 누리는 지위의 부가가치를 높여간다. 발명을 통해서 부를 창출하고, 명문대학의 높은 장벽을 넘어 서며,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일을 한다. 부, 권력, 성공은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마라톤에서 땀으로 얻어진다. 성공한 이들에게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이고, 시차 적응의 과정이다. 일주일에 나흘 밤을 집을 떠나 잠을 자는 신분을 상징하는 배지를 단 자본의 고아들(93쪽), 날아다니는 계급이며 아이디어 귀족(113쪽)이다.

 

플루토크라트의 또 하나의 공통된 특징은 비즈니스와 자선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세계주의적 관점에서 빈곤 문제와 가난한 나라를 염려하고, 자신들이 단지 이기적인 목표만을 쫒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97쪽). 해외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자국의 동포들을 위해 동시에 기부를 하고자 하는 이들의 이중 초점은 오늘날 플루토크라트들의 다양한 노력들 속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124쪽).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의 비즈니스와 자선 사업을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미국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삼성경제연구소의 자료가 국가에서 내놓은 자료 보다 더 신빙성이 있다는 중론이 형성되어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과거 국가가 해야 하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재정과 정보를 가지고 국가의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보건, 교육, 공공 기관 매수, 심지어 지배 이데올로기와 담론 형성까지 플루토크라트의 지배를 받는다. 세율을 높여야 한다는 워렌 버핏의 주장은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해주는 것이다. “계급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을 도발한 쪽은 나의 계급, 즉 부자 계급이며, 우리는 승리를 거두고 있다.(131쪽에서 재인용)”는 버핏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복지와 자선을 통해서 그가 지키고 싶은 것은 부자 계급의 권력이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입법자”

 

물화된 권력을 갖지 못했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창조적 그룹이 있다. 공학자, 경제학자, 물리학자, 시인을 포함하는 지식인 계급이다. 슈퍼갑부는 슈퍼스타, 엘리트 변호사, 요리 슈퍼스타, 패션 디자이너 훌륭한 바리스타와 기수에게 지불해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다. 슈퍼스타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서 규모의 경제를 갖는 것과 슈퍼엘리트를 위하 고가 전략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은 프리미엄을 극대화하면서 가장 높이 올라간다. 슈퍼스타는 세계화와 기술 혁명으로 글로벌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슈퍼스타의 성공은 슈퍼갑부의 지갑을 늘려줬고, 동료들도 큰 파이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시네마토그라프와 함께 글로벌 슈퍼스타로 등극한 찰리 채플린, 컴퓨터 괴짜들의 성공, 최고의 승리자 자리를 금융가들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슈퍼스타다. 모든 사람에게 슈퍼스타가 될 수 있는 자격은 허락되었으나, 실제로는 이미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승자독식 구조를 취하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은 자는 샴페인을 맛볼 자격이 없다.”

 

신흥 시장에서 일어나는 혁명에 잘 적응한 사람은 경제적 프리미엄을 얻는다. “적절한 기술과 인맥,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충분한 용기를 가진 사람은 혁명의 파도타기가 쉽고 흥미롭다(244쪽). 기술 혁신을 둘러싼 비즈니스 경쟁의 승자들은 성공을 자신의 능력으로 귀인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감은 성공의 필요충분이 될 수 없다. 자신감은 “적절한 능력, 올바른 태도, 적절한 사회적 지위”와 결합되었을 때 최상의 결과를 선취할 수 있다. 누구에게 부가 돌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역할은 정부의 몫이고,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플루토크라트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들에 대하여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비참함에 무관심하고,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에 유감과 분노를 느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사람들보다 높은 데 있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더욱 극심하고, 죽음의 슬픔이 더욱 클 것이라고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애덤 스미스, 『도덕론』

 

18세기 애덤 스미스의 글은 현대인의 삶을 설명하는데 인용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수십억을 버는 연예인, 수백억 자산가, 스포츠 스타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낼 때가 더러 있다. 드라마 한편으로 수십억을 버는 젊은 연예인이 사적 삶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강한 동정, 수백억 자산가가 집보다 호텔에서 더 많은 밤을 보내거나 형제의 난을 일으키면 평범한 사람만 못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며 위로 받기도 한다. 명문대학에 들어가도 연구실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염려하는 것에 대하여 남다른 혜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우리는 여전히 경제적인 윤택한 삶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진보의 의미를 재고하며

 

『플루토크라트』는 산업혁명 이후 미국, 유럽, 중국, 개발 도상국가를 넘나들며 시간과 공간을 종회무진 확장해가지만, 방대한 자료를 통해서 하나의 주제로 관통하는 힘은 약하다. 저자가 그동안 경제 전문지에 기고했던 글이 하나의 책으로 엮이면서 나타나는 필연적 핸디캡으로 추측된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부자들에 관한 이야기’나 부자들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니라, 플루토크라트의 삶을 통한 자본주의의 현실과 전망이라면, 현상에 대한 문화 기술을 넘어 서서 고민을 공유하고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플루토크라트들이 공존을 통해서 함께 생존을 모색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면 베네치아 귀족의 사례를 짧게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을 읽는 내내 ‘강도 귀족들’의 삶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 다만 새롭지 않다는 것을 당연하게 인정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서 고민할 뿐이다. 이 사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수용하고 용인한 실체가 바로 세계와 내 지역의 양극화를 허용하는 전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고민하게 된다. (진보를 발전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오인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부연을 첨가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진보의 의미를 재고(再考)하는 일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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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추락 - 프로이트, 비판적 평전
미셸 옹프레 지음, 전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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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니체적 관점에서 프로이트를 바로 보기 『우상의 추락』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 지음, 전혜영 옮김, 2013. 10. 글항아리

 

자신의 젊은 날을 추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잊혀지지 않는 열등감의 화인(火印)일수도 있고, 가장 아름다운 한 시절의 유적(遺蹟)일 수도 있다. 스무 살, 내게 주어진 시공간은 낯선 설레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기들과 함께 읽기 시작했던 철세(『철학에세이』), 껍데기(『껍데기를 벗고서』)로 시작했던 학습 모임은 세 계절을 보내고 겨울방학이 되자 마르크스, 포이에르 바흐 원전으로 넘어 가기 시작했다. 동기들은 어느새 사회과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데도 나는 여전히 문학의 세계에 머물면서 공지영의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강석경의 『숲속의 방』,『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김남주 시인의 시에 빠져 있었다. 학습 모임에 들고 갈 발제문을 작성해야 하는데, 낱낱의 글자만 읽고 있을 쁜 텍스트가 함의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다. 소모임에서 발제문을 읽고 발표했을 때 모임에 나를 추천한 선배 얼굴에 맺히는 당혹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추운 겨울에도 얼굴이 후끈거렸다. 지적 허영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수치심은 낮은 자존감으로 나타났다. 한학기 내내 먼지 가득한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사회과학만을 읽었던 것 같다. 대학에 다니는 오빠의 책을 훔쳐보는 초등학생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시간들이다.

 

그날 이후 Marx는 이십대의 내 시간 안에 머물며 영혼을 건드렸고, 삼십대 초반 수년 동안 공부한 정신분석 모임은 Freud를 통해 내 안에 빙산을 이루고 있는 무의식을 성찰하게 했다. Freud에서 Jung으로 넘어가고, 다시 Adler나 Erikson으로 이어지는 상담심리를 통해서 남의 상처가 아닌 내 상처를 먼저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한다. 성찰하고 언어화하는 순간 반은 치유받는다는 믿음이 내게 있다. 언어화된 상처는 이미 상처가 아니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내 시공간의 지평을 넓혀주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늙지 않고 성장하는 것, “소유하는 소비가 아니라 경험하는 소비”(선대인 선생님의 말씀)를 했던 지난 시간이 만들어준 선물이다. 지금 나의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위로를 주는 친구는 Nietzsche다. 니체는 내 삶을 긍정하고 긍정하게 무한 변주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주었다. 이들의 어깨에서 올라타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다.

 

미셸 옹프레의 『우상의 추락』은 내가 보낸 젊은 날들을 회상하게 하는 서사에서 비롯되었다. 방대한 자료에서 주장의 근거를 찾아내는 성실함도 놀랍지만, Freud와의 인연을 자신의 성장에서 끌어내는 문학적 필력 또한 대단하다. 그 또한 프로이트처럼 사적 경험에서 출발한 운명적 만남이 프로이트를 우상에서 추락하는 과정으로 나아갔음을 독자에게 고백한다. 저술을 하게 된 이유를 밝힘으로써 방대한 분량의 저서임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시작할 수 있는 시작점을 만들어 준다. “그 당시 헌책방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 세 권 있었는데, 바로 니체의 『적그리스도』,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프로이트의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7쪽)”라는 저자는 무지를 자각하고 지식에 열정을 쏟아야 하는 자신의 숙명을 자각한다. 기독교가 더 이상 숙명이 아니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넘어야 할 지평이며, 도덕성과 무관한 성욕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은 우상을 전설로 기억하지 않고, 친구로 만든다. 그에게 “니체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였고, 그 마음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변함이 없다.” 친구는 친구를 비판할 수 있고, 친구를 따라가고, 때론 뛰어 넘으면서 우정을 나눈다. 우상을 박제된 영웅으로 가슴에 새기기를 거부하는 사람만이 가장 완전한 형태의 사랑과 존경, ‘우정’을 나눌 수 있다. 그런 관계일 때 비판은 설득력을 갖는다. 프로이트를 비판하기 위해서 미셸 옹프레는 정신분석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엽서 열장을 제시한다.

 

1.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혼자서 발견했다.

2. 말실수, 갑자기 떠오른 단어, 망각된 고유명사, 어떤 대상을 왜곡하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정신병리학적 현상이다.

3. 꿈은 해석이 가능하다.

4. 정신분석학은 임상 징후를 관찰하여 객관적으로 분석한 과학이다.

5. 실질적인 치료와 환자의 정신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고 정신병리학이 진단한 병을 낫게 해주는 방법을 발견했다.

6. 정신분석을 통해 억압된 기제를 의식화함으로써 병적 징후를 없앨 수 있다.

7.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8. 정신분석의 거부는 그 주체에게 신경증이 있다는 단서이다.

9. 정신분석학은 일종의 해방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10. 계몽주의 철학의 난해한 비평적 이성이 지속되는 상황을 구체화하였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프로이트 이론은 철저히 그 개인의 사적 경험에 바탕을 둔, 개인적인 삶이 반영된 것임을 증명하려고 한다. 프로이트의 삶, 사상, 치료에 의문을 제기하며 출발한 책이다. 처음부터 주장을 직구로 던져서 독자로 하여금 길잡이의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프로이트 자신이 경험한 개별 사례들을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오류를 사료 속에서 찾아내고, “선악의 경지를 넘어 니체의 관점에서” 프로이트를 분석하고자 한다. 그가 제시하는 반론의 엽서는 다음과 같다.

 

1. 프로이트는 수많은 책 - 특히 쇼펜하우어와 니체 철학 - 을 정독하여 무의식에 대한 가설을 제기하였다.

2. 정신병리학의 증상을 리비도에 의한 욕망의 억제로만 분석할 수 없다.

3. 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꿈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리비도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4. 정신분석학은 문학에 적용된 심리학과 관계가 깊다.

5. 분석에 의지한 테라피 효과는 마법에 가까운 효과에 의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6. 욕망의 의식화로 병을 치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7.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8. 마법에 대한 생각을 거부한다고 해서 자신의 운명을 마법사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9. 해방이라는 이름 아래 정신분석학은 심리주의가 말하는 금기 사항들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10. 역사적으로 계몽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에 이성주의에 입각한 철학을 부정한 새로운 형태의 철학, 이른바 반(反)철학을 내세웠다.

 

누구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자유롭게 연구하고 성과를 만들 수는 없다. 각자 고민하는 문제가 씨앗이 되어 발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나서 싹을 틔운다. 프로이트 역시 아버지와의 관계, 배다른 형 필립과 어머니의 관계에 대한 의심, 형에 대한 강한 질투심, 처제와의 오랜 세월 한집에서의 거주, ‘일요일의 아이’라고 부르며 아꼈던 딸 소피의 죽음, 세 딸과의 관계가 정신분석학을 집대성하는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세대를 잇는 이성 간이 성교만을 정상적으로 바라보고 그 외 모든 것들을 변태성욕으로 보았던 프로이트는 좋은 아내, 엄마가 여성의 역할이는 믿음 또한 도처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자신의 잠정적인 주장,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욕망이 하는 말, 소원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론 완성”에 프로이트가 집착했다는 것을 수용할 만하다. 미셸 옹프레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 독자라 할지라도 거의 칠백 쪽에 달하는 분량의 논증은 사료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과학 보다는 문학에 가까웠다는 점,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의 심리를 이해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워낙 자료를 치밀하게 추적하기 때문에 덤으로 얻을 수 있는 호기심 어린 에피소드들도 수록되어 있다. 존 휴스턴 감독이 <프로이트 : 그의 은밀한 열정>이라는 영화를 찍기로 계획하고 사르트르가 시나리오 작업에 동참했던 것, 안나 프로이트가 마리린 먼로와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만났고, 먼로가 보유한 재산의 1/4와 죽고 난 후 지불될 저작권료가 안나 프로이트 재단 설립에 쓰였고, 지금까지도 런던에 있는 프로이트 재단의 계좌로 들어가 있다.(304쪽) 프로이트와 기독교를 병치하여 분석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샤르코와 프로이트의 만남을 예수와 세례 요한의 만남(671쪽)”으로 비유하고, 프로이트 전기 작가를 “예수의 삶을 신화처럼 우상화시킨 기독교인들이 썼던 방법을 적용해 프로이트를 역사적인 모델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치료하는 의식은 말로 죄인들의 죄를 씻어주는 방식과 비슷하다. 말이라는 것은 일종의 내면을 드러내는 고백, 고해와 같은 기능을 담당한다(673쪽).” 기독교의 고해 성사와 프로이트 카우치에서의 내담자가 쏟아내는 고백을 같은 것으로 분석한다.

 

다만 “프로이트의 픽션”이라는 극단으로 밀어가기에는 정신분석학의 임상적 효과와 인류 역사에 끼친 공헌이 지대하다. 프로이트를 인정하거나 부정하거나 그를 통하지 않고 21세기 철학, 심리학, 정신병리학을 논할 수 없다. 적어도 중세 이후 금기였던 성(性)을 응시하고, 담론화하여 해방시키는데 프로이트가 획기적인 이론으로 정신분석학을 확립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담배가 몸의 일부나 다름없었던” 프로이트가 구강기에 머물러 있는 인격이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개인적 서사에 대한 변명을 위해서 정신분석학이 필요했다고 추정할 근거도 없다. 미셸 옹프레 역시 프로이트를 사형대로 보내기 위해서 이 책을 저술하지 않았다. 그는 구시대의 철학 체계를 반박하는 일이 철학자를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 『우상의 추락』은 니체적 관점에서 저자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프로이트를 딛고 올라서려는 결연한 의지가 만들어낸 수작으로써, 인간 프로이트에 접근하고 싶은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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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판적 책 읽기를 위한 훌륭한 텍스트
    from 二乙과 無生의 마음풍경 2013-12-15 00:13 
    이 책은 정신분석을 제대로 파고 들어갔다. <꿈의 해석>을 읽었던 삼십 몇 년 전으로 돌아가본다. 프로이트가 쓴 책이 워낙 유명세라서 읽어두면 살이 되고 피가 되리라는 충동적 읽기였다. 그러다가 2/3를 읽다 말았다. 어째서 이 책이 그토록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점점 자라나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게 되어서였다. 우리에게 있던 <꿈의 해몽>보다 못하다는 판단이 들었는데, 해석이 동양의 풀이와는 너무 달라서였다.
 
 
비로그인 2013-11-18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 글입니다..
제가 쓴 우상의 추락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더불어숲 2013-11-1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고 감사합니다.
자극이 별로 없는 서재에 '흔적'이 남았으니, 더 분발해야겠어요.
흔적님 리뷰는 제게 늘 채찍입니다. 오늘은 당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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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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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가 묻고, 표창원이 답하다.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공범들의 도시』 표창원·지승호 지음, 김영사, 2013. 10.

 

민주적 기본 질서가 무너진 정치 상황은 개인의 삶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고, 저출산 고령화는 아직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각자가 일상에서 누리는 평온함은 한동안 계속될 것처럼 느껴진다.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은 증거 인멸, 기밀 유출, 수사팀 징계로 이어지면서 진실에서 멀어지고 있다. NLL 포기 발언과 관련한 대화록은 국제 사회에서 전무후무하게 전문이 공개되었고, 종국에는 실종되기에 이르렀다. “덕 본 것이 없다.”, “의혹 살 일 없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으로 이 사건들은 매듭지어질듯하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의 종북 발언 사태는 헌정 이래 초유의 정당해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 값을 떠받치고 있는 정부 정책이 전세 값 폭등과 월세 붐으로 이어져도 사람들은 다시 아파트 값이 오를 것이라는 희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삶은 지속되는 모양이다. 외부적 조건에서 비켜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평온함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개인의 삶과 구조적 조건이 무관하지 않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를 가로 막는 이분법적 논리

 

범죄 가해자와 피해자에 우파와 좌파가 따로 없듯이 진실을 보려는 것과 이념은 별개의 문제임에도 이분법적 논리가 민주주의를 가로 막고 있다. 진실에 접근하려는 개개인의 노력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보수화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 6.25 전쟁 이후 출생한 baby boomer가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구조와 지역감정이 팽배한 상황은 진보가 추구하는 소중한 이념들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나온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선산이 전북에 있다는 이유로, 국정원 사태의 진실을 말하는 권은희 수사과장은 전남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건의 본질은 희석된다. 출신 지역이 그 사람의 실체적 이미지를 형성한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의 검열 속에서 진실에 닿으려는 노력은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언론을 통해서 취사선택되고 프레임이 짜진다. 언론이 호불호에 따라서 실체적 이미지를 획득한다. 공중파 3사가 제 역할을 못하는 사이에 그나마 볼만한 뉴스는 종합편성 JTBC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오간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가 프레임 시간대를 장악하고, 볼만한 드라마는 케이블 TV에서 간간히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다. 스마트해지고, 채널 선택 폭은 상상 이상으로 많아졌으나, 사람의 의식과 언론 민주화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직도 지식인이 분노할 수 있고, 정치인이 국회에서 소리 내어 세상에 쓴 소리를 할 수 있다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2013 대선 스타로 등장한 ‘표창원’ 전 경찰대학 교수는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에 비켜나 진실 앞에 침묵하기를 거부하는 ‘양심’으로 온전히 우리 앞에 존재를 드러냈다. 인터뷰어 지승호가 “지난번 선거를 통해 얻은 선물”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표창원은 “보수의 품격, 사회의 품격, 경찰의 품격”을 갖춘 표창원은 좌우를 가로질러 ‘진실’에 접근하려는 지식인이며 실천가다. 극우꼴통은 있어서 품격을 갖춘 보수를 만나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진정한 보수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전작(前作)들이 그러했듯 표창원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한숨을 곁들인 공감과 지지를 불러 일으킨다. 시민의 눈과 귀가 막혔고, 발언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용을 쓰고 일어서야 할 때임을 확신에 찬 음성으로 이야기는 듯하다. 『공범들의 도시』는 지난 대선 이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다양한 사건을 복기하고 차가운 분노와 뜨거운 희망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 지향점을 설정한다. 이 책은 “용기 있는 소수와 정직한 다수가 연합하고 협력”해야 할 때임을 절절히 느끼게 한다.

 

범죄를 유통하는 방식

 

표창원 교수는 범죄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낱낱이 분석한다. 범죄는 우리와 무관한 하나의 사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범죄가 도처에 널려 있음에도 우리는 범죄에서 무관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갇혀 있다. 연쇄살인은 우리 사회 어두운 고리이고, 사법 시스템은 과학수사를 파괴한다. 범죄를 막아야 하는 경찰들은 거대 국가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 범죄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 유통에 공모하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명확한 근거를 저자는 철저히 분석한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살인의 추억>마지막 장면에서 영화 문법을 위배하면서까지 형사 역으로 분한 송강호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게 한다. 감독은 범인이 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범인이 관객석에 앉아서 화면의 형사와 눈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우리가 이 사건을 잊지 않았음을 인식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분명 범인은 아주 평범한 시민의 얼굴로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언급했듯이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행은 국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졌다.

 

안철수 열풍에 대하여

 

이 책에서 표창원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보여준 태도에 대한 유효한 언급을 한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심정적 불쾌감’과 안철수에 대한 불신의 기저에 어떤 사건이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던 내게는 참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지승호 인터뷰어의 질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안철수 후보에게 세 가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셨잖아요. ”문재인 후보 측과의 단일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왜 중도 사퇴를 했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왜 선거 당일 축국했으며 그 계획은 언제 세워진 것이었는지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노원 병이라는 선거구 특성에 비추어, 자신이 노희찬 전 의원이 표방하는 ‘진보’ 정치인인지, 그래서 그를 대표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노 전 의원을 지지하지 않은 노원병 주민들의 보수적 기대와 열망에 부응하겠다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355쪽)

 

이에 대한 안철수는 “문제인 후보가 더 적임자”라고 생각했고, 선거 당일 출국은 “잘못이었다, 인정한다, 사과한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리라고 생각”했다고 했으며, (노회찬의 뜻을 이어받아서) “노원 주민의 염원을 모두 받아서 새로운 정치를 펴는 시금석”을 삼겠다고 답했다. 안철수의 답에 100% 수긍을 하는 것은 아니나, 사태를 분석하고 신뢰 구축을 위해서 현문(賢問)을 던질 수 있는 표창원이 놀랍기만 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다. 인구학적으로, 지리적으로 한국사회는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다. 우리의 침묵과 무관심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돌부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나에게 유리한 사람이 아닌 품격을 갖춘 사람, 이미지가 아니라 조금 더 실체에 근접한 판단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일에서부터 미래의 많은 것들이 결정될 것이다. 마르틴 니묄러의 시(詩)가 그것을 잘 대변하고 있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유태인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처음 천주교도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기독교도였으니까.

 

그들이 처음 나에게 왔을 때,

나를 위하여 발언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는 “파도를 치게 하는 것은 바람인데, 나는 파도만 보았다.”는 독백과 같은 주제를 내뱉는다. 영화 관람 이후 한동안 그 대사를 마음 한편에 두고 지내며, 과연 내가 보는 이 표상의 기저에는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국사회가 드러내는 현실을 움직이는 바람은 무엇이고, 어떤 관계에서 발생했는지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여 그 이치를 드러내는 것이 현실문제의 해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범죄는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파도’일 것이다. 파도와 같은 범죄의 높낮이 속에서 바람을 읽어내는 사람, 프로파일러. “보수주의자이며 범죄 심리 전문가인 표창원과 진보적이고 대중적인 성향의 지식인 지승호의 대화”를 통해서 대중이 어떻게 범죄와 공모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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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에세이 -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강한 신념도 유쾌한 유머가 될 수 있다.

『인기 없는 에세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2013. 8.

 

인기 없음이란?

 

오래 전 박지원의 『열하 일기』를 읽으며 통곡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이 재해석한『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웃음과 우정으로 노마드하는 연암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검색해 보니 십 년 만에 새 옷을 입은 책을 보니 더없이 반갑다.) 시대적 조건이 확연하게 다른 이백 여 년을 건너 뛰어 연암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식에 감동하며 절로 눈물이 흘렀다. 유머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고수하며 진정한 호모 쿵푸스로 살아간 그가 온몸으로 절절하게 느껴졌다. 연암과 나, 둘 사이를 중매한 고미숙 선생님 모두 한반도라는 토양과 한글 속에서 성장한 교집합이 있었다는 어설픈 이유를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969242

 

새삼 연암 때문에 울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 것은 버트란트 러셀의 『인기 없는 에세이』다. 러셀은 60 여 년의 간격을 두고, 나와 전혀 다른 지리적 공간에 살았고, 경험 철학으로 세상을 해석했다는 점에서도 사상에서 거리 두기가 충분한 철학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유쾌함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핫한 신념 & 쿨한 반성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러셀의 책이 계속해서 출판되는 것은 문제 의식에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신간 『인기 없는 에세이』 진정한 ‘인기 없음’이 왜 역설인지를 보여준다.

 

연암에 대한 사적 에피소드만큼, 러셀을 만난 오래된 기억 또한 또렷하게 남아 있다. 따뜻했으나 축축했던 벤쿠버 겨울 챕터 서점. 유치원 영어 실력으로 근근이 어학원을 드나들던 짧은 시기에도 책이 고팠다. 지금처럼 전자책이 있었다면, 한국어 책에 대한 헛헛함은 덜했을텐데, 나의 짐 가방은 온통 기초 영어 책으로만 가득했다. 서점에서 얇은 책 한권을 사들고 (당시에는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스타벅스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었다. 이후 한국어로 읽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같은 책에서 러셀은 행복과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양 철학사』 한권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다들 알다시피 명성이란 변덕스러운 것(5쪽)”을 일찍이 깨달았던 러셀은 철학사의 주요 사상가들을 사회·정치적 배경과 연결 짓는다.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라니?

 

책을 구성하는 12개의 에피소드는 각각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서 순서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강점을 갖는 반면, 전체적인 구조에서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갖는다. 러셀이 지적 쓰레기라고 이름 붙인 철학은 지배 담론이 되어 국가의 공식 견해가 된 철학이다. 진정한 실재와 현상적 실재를 구분하여 진정한 실재를 오로지 논리로만 규정한 헤겔, 그가 마르크스 변증법적 유물론에 끼친 영향과 소련 독재 체제의 이론적 정당화가 그가 말하는 지적 쓰레기의 계보다. 러셀은 형이상학 철학에 관한 독한 비판을 피력한다. 성직자들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던 시절(162쪽)의 스콜라 철학이 대표적이다. 그는 “교조주의는 지적 사상이 아니라 권위를 견해의 근원으로 삼는다.”고 보고, 경험론은 행복을 바라는 사람을 위한 윤리적이기까지 한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경험론의 한계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에서 러셀의 편향적인 모습이 불편하기는 하다.

 

반전 운동가인 경험론 철학자 러셀은 군사적 자만이 낳은 국가적 자만심의 해악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국가에 의해 제공되는 교육은 교화를 전제하고 다수의 교사는 공무원으로서 명령을 수행한다. 불행은 늘 잘못된 믿음을 지나치게 확신하면서 시작된다. 우상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쓰레기의 계보에 비켜서 있는 철학이 해야 할 일이다. 러셀을 읽다 보니 - 예의 없는 것들과 싸움에서 예의를 지키며 이길 수 있는 해법이 없다면 - 조금은 경망스러워도 될 것 같다. “경망스러워 보이는 글이 있을지언정 원래의 목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지했다. 경망스럽게 쓴 까닭은 엄숙하고 오만한 자들을 상대로 더욱 엄숙하고 오만하게 싸워봤자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23쪽)”

 

예민한 사람은 주변을 불편하게 한다. 사려 깊게 사고하는 습관 없이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또 다른 대안이 있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한 품성이 쓰레기의 계보 속에서 보석 같은 철학을 발견하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인기 없는 에세이』는 진보한다는 것이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인간은 이타적(利他的) 이라는 도덕주의의 오류에서 조금 비켜서서 러셀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꽤 괜찮은 경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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