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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인
김영숙 지음 / 문학여행 / 2025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동시대인』 김영숙, 소설집, 문학여행 2025. 12. 31.
열한 편의 단편 모음집 <동시대인>의 9개 서사는 소설,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를 명징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소설 중 <그래비티>, <그래비티: 첫 해외 출장>과 <어느 가족>, <어느 가족: 고흐의 방>은 두 개의 서사가 짝을 이루고 있다.) 한 호흡으로 쓰인 듯, 이야기를 이끄는 작가만의 필력으로 감정이 과하지 않고, 전달력이 뛰어나다. 1.2 배속으로 리듬을 타면서 달리는 서사에 동반 탑승하면 책날개를 펼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읽기를 멈추고 못한다. 형용을 절제하고, 리얼리티를 살린 건조한 문체가 만들어내는 추동력 덕분이다. 주인공이 처한 이질적인 각각의 현실이 어느 순간 동시대성으로 수렴함을 깨닫는다.
중력 자기장에 거주하는 사람들 – 그래비티의 자기장으로
<동시대인>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여전히 일상의 항상성으로 돌아오는 ‘지금 그리고 여기’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사건의 불운한 시작과 불행한 결말에는 욕망이 자리한다. 욕망으로 시작하고, 욕망으로 망가진다. 나에서 시작한 가족은 분리불안을 낳고, 그들의 성패가 나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한다.
자본주의 욕망의 꽃은 ‘정상 가족’이다. 구조주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에 따르면 근대화된 자아는 전통과 관습에 의해 결정되었던 많은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변화한다. 구조(제도)는 인간 행위의 틀이며 반복적인 실천으로 지속된다. 개인은 의도적이고 의미 있는 행위로 구조를 재생산하지만, 변화시킬 수도 있다. 구조와 행위의 상호작용으로 자아가 구성된다.
근대적 자아를 규정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핵가족이다. 자본과 가족이 나의 총합이다. “모든 사회 문제는 가족 문제”라는 말이 있듯이 자본주의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분리가 어렵다. 부모, 아들, 딸로 구성된 가족을 만들고 싶고, 가족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 전 생애를 쏟았지만, 아직도 결핍인 정상 가족 로망은 불행하게도 타나토스에 맞서는 생(生)의 의지이기도 하다.
의식하지 못했던 중력의 끌어당김이 느껴지는 순간에 직면한 주인공들은 궤도를 벗어나고 싶지만, 중력의 힘으로 머리는 하늘을 향해도 여전히 밝은 땅을 딛고 서게 된다. DNA를 공유하는 혈육은 생명의 생존 조건이다. 타인이면서 동시에 자신이다. 분리되었으나, 운명을 공유하는 자본주의 경제 공동체의 자타불이의 존재다. 자식과 가족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우리를 붙잡는다. 자본주의에서 육화되어 버린 욕망의 다른 이름이 가족이다.
장기수 진태영 노인 이야기를 다룬 마지막 소설 <전주행 고속버스>와 수미상관을 이루는 표제작 <동시대인>은 이 소설집 전체를 아우른다.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이지만, 우로보로스의 띠처럼 무기수 진 노인과 ‘내’가 보낸 1989년 부강 산업에서의 시간은 이후에도 나에게는 현재 진형으로 이어진다. 학생을 도구화하고, 말더듬이 동생을 수단화하는 <동시대인>의 학원 강사, 돈과 학벌은 인격과 상관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동물의 왕국’ 골프장의 캐디의 <굿샷을 외치다>, 지방 요양원에 있는 부모를 면회 가서 알게 된 카페 여사장이 도화선이 되어 중력 밖으로 도약해 보려는 중년 남성 현의 <그래비티>, 미국 유학을 마치고 와서도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하는 아들, 그래도 가족 안에서 마지막 보루는 서로의 배우자의 <우산> 되기, 대학교수의 부당한 자리싸움을 못 본 척하며 노모 간병을 명분으로 정신 승리하는 <진눈깨비>의 여교수 혜선 모두 우리와 ‘동시대인’이다.
씨름만 안 해도 살 것 같은 청소년기를 보내고, 이제는 SNS에서 가출한 청소년을 유인하거나, 교통사고를 유도해 보험금을 타내고 있는 <생일날>의 승우,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 ‘나’와 나와 함께 문제를 끌어안고 가는 청소년들의 나이트메어(nightmare) <한여름 밤의 꿈>이 있다. 여기에 더해서 아들을 위해 이혼을 선택하는 지독한 모성이 존재하는 <어느 가족>은 가정폭력에 대한 부부의 동상이몽으로 전개되지만, 진실은 사실 기저에 숨겨 있다. 누구에게나, 어느 집에나 아무도 모르는 구렁이 한 마리가 꽈리를 틀고 있다.
“누군가 보지 않으면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은 가족”
<동시대인>은 독자를 복잡한 심경으로 이끈다. 가령 이 소설집의 딸과 엄마는 절대 여성 연대를 이루지 못한다. 잉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의 엄마와 딸처럼 원망과 애증,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엄마 세대와 다른 인격을 딸 세대와의 세대 간 단절 앞에서 무능력한 동시대인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동시대인>이 처한 현실은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타자화할 수 없는 우리 자신, 가족, 주변인의 얼굴이 오버랩하기 때문이다.
가족은 동물의 왕국이며, 자본주의의 축소판이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인 범죄 집단이다. 노후를 아들에게 저당 잡힌 부모, 가족 밖에서 가해자인 아빠보다 피해자인 엄마를 냉소하는 잘난 딸들, 동생에게 폭력을 사주하는 형, 평생 가정 내에서 성폭력을 당했는데, 팔십이 넘고, 치매에 걸려서도, 요양병원에서 남편의 (성) 폭력 앞에 무기력한 팔십 대 여성, ‘자식’이라는 중력의 자기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부모, 그들의 삶을 시궁창에 처박는 자식들, 그럼에도 배우자보다도 ‘아들’을 최상위 정점에 두는 모성은 - 봉준호의 <마더>만큼은 아니더라도 - 충분히 애잔하고 잔혹하다.
한국의 시공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고 싶다면, 뉴스가 아니라, 문학과 영화를 읽어야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군상에 현미경을 들이댄 작품은 우리는 주체와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최선의 참조물이다. 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말처럼 “타인이 지옥이라면 고독보다는 함께 있는 지옥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동시대인』은 두 가지 아쉬움이 남긴다.
하나. 이 정도의 소설집이라면 동료 작가와 평론가를 추천사와 작가 후기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저자의 첫 번째 장편 소설 『반듯한 세영 씨』를 읽고, 페미니즘 범주에 천착하는 작가일 줄만 알았다. 세대 간의 갈등, 자본주의가 낳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폐해, 청(소)년의 생존과 아노미 현상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전방위적으로 다루는 작가임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둘. 소설집 전체 편집의 아쉬움이 있다. 열한 편 이야기가 살짝 흩어져 있는 느낌이다. 각각의 주제, 또는 소재를 가족, 직장, 청소년 등 영역으로 나누었다면 각 주제가 갖는 문제의식을 심도 있게 천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소설집임은 분명하다.

소이 역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자유롭고 싶어하는 한 여인에 불과했다. 현은 자기가 현실이라는 중력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또 다른 현실, 더 무거운 중력의 자장 안에 들어가 있음을 깨달았다. 자유는 내 속에서 내가 찾아나가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빌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 P89
영혼 불멸을 굴뚝같이 믿고 싶지만, 난 이미 쇠락해가는 육체와 함께 영혼도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걸 몸소 경험했다. 꼭 싸르트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식이 허락하지 않는 걸 믿기엔 우린 지나칠 정도로 이미 현대 과학의 자식이다. 남는 건 추억뿐이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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