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인
김영숙 지음 / 문학여행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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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동시대인』 김영숙, 소설집, 문학여행 2025. 12. 31.  


열한 편의 단편 모음집 <동시대인>의 9개 서사는 소설,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를 명징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소설 중 <그래비티>, <그래비티: 첫 해외 출장>과 <어느 가족>, <어느 가족: 고흐의 방>은 두 개의 서사가 짝을 이루고 있다.) 한 호흡으로 쓰인 듯, 이야기를 이끄는 작가만의 필력으로 감정이 과하지 않고, 전달력이 뛰어나다. 1.2 배속으로 리듬을 타면서 달리는 서사에 동반 탑승하면 책날개를 펼치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읽기를 멈추고 못한다. 형용을 절제하고, 리얼리티를 살린 건조한 문체가 만들어내는 추동력 덕분이다. 주인공이 처한 이질적인 각각의 현실이 어느 순간 동시대성으로 수렴함을 깨닫는다. 


중력 자기장에 거주하는 사람들 – 그래비티의 자기장으로 


<동시대인>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여전히 일상의 항상성으로 돌아오는 ‘지금 그리고 여기’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당면한 문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사건의 불운한 시작과 불행한 결말에는 욕망이 자리한다. 욕망으로 시작하고, 욕망으로 망가진다. 나에서 시작한 가족은 분리불안을 낳고, 그들의 성패가 나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한다. 


자본주의 욕망의 꽃은 ‘정상 가족’이다. 구조주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에 따르면 근대화된 자아는 전통과 관습에 의해 결정되었던 많은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변화한다. 구조(제도)는 인간 행위의 틀이며 반복적인 실천으로 지속된다. 개인은 의도적이고 의미 있는 행위로 구조를 재생산하지만, 변화시킬 수도 있다. 구조와 행위의 상호작용으로 자아가 구성된다. 


근대적 자아를 규정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핵가족이다. 자본과 가족이 나의 총합이다. “모든 사회 문제는 가족 문제”라는 말이 있듯이 자본주의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분리가 어렵다. 부모, 아들, 딸로 구성된 가족을 만들고 싶고, 가족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 전 생애를 쏟았지만, 아직도 결핍인 정상 가족 로망은 불행하게도 타나토스에 맞서는 생(生)의 의지이기도 하다. 


의식하지 못했던 중력의 끌어당김이 느껴지는 순간에 직면한 주인공들은 궤도를 벗어나고 싶지만, 중력의 힘으로 머리는 하늘을 향해도 여전히 밝은 땅을 딛고 서게 된다. DNA를 공유하는 혈육은 생명의 생존 조건이다. 타인이면서 동시에 자신이다. 분리되었으나, 운명을 공유하는 자본주의 경제 공동체의 자타불이의 존재다. 자식과 가족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우리를 붙잡는다. 자본주의에서 육화되어 버린 욕망의 다른 이름이 가족이다. 


장기수 진태영 노인 이야기를 다룬 마지막 소설 <전주행 고속버스>와 수미상관을 이루는 표제작 <동시대인>은 이 소설집 전체를 아우른다.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이지만, 우로보로스의 띠처럼 무기수 진 노인과 ‘내’가 보낸 1989년 부강 산업에서의 시간은 이후에도 나에게는 현재 진형으로 이어진다. 학생을 도구화하고, 말더듬이 동생을 수단화하는 <동시대인>의 학원 강사, 돈과 학벌은 인격과 상관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동물의 왕국’ 골프장의 캐디의 <굿샷을 외치다>, 지방 요양원에 있는 부모를 면회 가서 알게 된 카페 여사장이 도화선이 되어 중력 밖으로 도약해 보려는 중년 남성 현의 <그래비티>, 미국 유학을 마치고 와서도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하는 아들, 그래도 가족 안에서 마지막 보루는 서로의 배우자의 <우산> 되기, 대학교수의 부당한 자리싸움을 못 본 척하며 노모 간병을 명분으로 정신 승리하는 <진눈깨비>의 여교수 혜선 모두 우리와 ‘동시대인’이다. 


씨름만 안 해도 살 것 같은 청소년기를 보내고, 이제는 SNS에서 가출한 청소년을 유인하거나, 교통사고를 유도해 보험금을 타내고 있는 <생일날>의 승우,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 ‘나’와 나와 함께 문제를 끌어안고 가는 청소년들의 나이트메어(nightmare) <한여름 밤의 꿈>이 있다. 여기에 더해서 아들을 위해 이혼을 선택하는 지독한 모성이 존재하는 <어느 가족>은 가정폭력에 대한 부부의 동상이몽으로 전개되지만, 진실은 사실 기저에 숨겨 있다. 누구에게나, 어느 집에나 아무도 모르는 구렁이 한 마리가 꽈리를 틀고 있다.  


“누군가 보지 않으면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은 가족”


<동시대인>은 독자를 복잡한 심경으로 이끈다. 가령 이 소설집의 딸과 엄마는 절대 여성 연대를 이루지 못한다. 잉마르 베리만의 <가을 소나타>의 엄마와 딸처럼 원망과 애증,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엄마 세대와 다른 인격을 딸 세대와의 세대 간 단절 앞에서 무능력한 동시대인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동시대인>이 처한 현실은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타자화할 수 없는 우리 자신, 가족, 주변인의 얼굴이 오버랩하기 때문이다. 


가족은 동물의 왕국이며, 자본주의의 축소판이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인 범죄 집단이다. 노후를 아들에게 저당 잡힌 부모, 가족 밖에서 가해자인 아빠보다 피해자인 엄마를 냉소하는 잘난 딸들, 동생에게 폭력을 사주하는 형, 평생 가정 내에서 성폭력을 당했는데, 팔십이 넘고, 치매에 걸려서도, 요양병원에서 남편의 (성) 폭력 앞에 무기력한 팔십 대 여성, ‘자식’이라는 중력의 자기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부모, 그들의 삶을 시궁창에 처박는 자식들, 그럼에도 배우자보다도 ‘아들’을 최상위 정점에 두는 모성은 - 봉준호의 <마더>만큼은 아니더라도 - 충분히 애잔하고 잔혹하다. 


한국의 시공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고 싶다면, 뉴스가 아니라, 문학과 영화를 읽어야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군상에 현미경을 들이댄 작품은 우리는 주체와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최선의 참조물이다. 감독 잉마르 베리만의 말처럼 “타인이 지옥이라면 고독보다는 함께 있는 지옥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동시대인』은 두 가지 아쉬움이 남긴다. 


하나. 이 정도의 소설집이라면 동료 작가와 평론가를 추천사와 작가 후기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저자의 첫 번째 장편 소설 『반듯한 세영 씨』를 읽고, 페미니즘 범주에 천착하는 작가일 줄만 알았다. 세대 간의 갈등, 자본주의가 낳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폐해, 청(소)년의 생존과 아노미 현상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전방위적으로 다루는 작가임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 소설집 전체 편집의 아쉬움이 있다. 열한 편 이야기가 살짝 흩어져 있는 느낌이다. 각각의 주제, 또는 소재를 가족, 직장, 청소년 등 영역으로 나누었다면 각 주제가 갖는 문제의식을 심도 있게 천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소설집임은 분명하다. 






소이 역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자유롭고 싶어하는 한 여인에 불과했다. 현은 자기가 현실이라는 중력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결국 또 다른 현실, 더 무거운 중력의 자장 안에 들어가 있음을 깨달았다. 자유는 내 속에서 내가 찾아나가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빌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 P89

영혼 불멸을 굴뚝같이 믿고 싶지만, 난 이미 쇠락해가는 육체와 함께 영혼도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걸 몸소 경험했다. 꼭 싸르트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식이 허락하지 않는 걸 믿기엔 우린 지나칠 정도로 이미 현대 과학의 자식이다. 남는 건 추억뿐이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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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보지 못한 국민들
함윤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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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보지 못한 국민들함윤호, 인물과사상, 2025. 11.

 

강연장의 초대 강사로 함윤호,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소탈해 보이지 않는 외모(??) 탓에 다가가기 어려운 첫인상과 달리, 작정하고 사용하는 지방색 가득한 사투리는 그를 줌인(Zoom in)으로 당겨왔다. 3대에 걸친 그의 임실 관촌에서의 유년 서사는 관계의 시대, 말 품격이라는 강의 주제와 멀찍이 떨어져 있을 법도 한데, 전혀 - 겉돌지 않았다.

 

자기 서사를 가진 사람, 불운한 상황을 열심히 헤엄쳐왔지만, 불행하지 않았던 (쏟아질 것 같은 왕방울 눈을 가진) 핸섬가이 함윤호는 강연 시작 후, 이십 분이 지나지 않아서 방청객의 친구, 선후배, 다정한 이웃이 되어 있었다. KBS 전주 <패트롤 전북>에서 그가 만나온 국가가 보지 못한 국민들, 장애인, 조직 안팎의 비정규직, 산재 피해자와 함께 한 이십 년의 시간의 힘인 듯하다.

 

우연히 그가 쓴 책을 만났다. 국가가 보지 못한 국민들


.., 동명이인인지 싶어서 책날개를 펼쳐보니, 역시, 그가 맞다. 반가웠다. 바로 카페에 들어가 한자리에서 책을 열고, 마지막 페이지를 닫았다. 낯설지 않은 지역 현안에 대한 그의 적극적 취재기를 읽다 보면 멈춤이 쉽지 않다. 마음은 시종일관 주춤거렸지만, 말글이라서 어렵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지역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거버넌스, 사회적 시스템의 필요성에 적극 동의한다. 사회 그늘을 먼저 보는 사람, 빛보다 그림자에 시선이 가는 사람, 기자 함윤호의 발견으로 나의 하루는 다소 반듯해진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세상 경계를 강자와 약자, 가진 자와 소외된 자의 이분법으로 선명한 선을 긋는 듯해서 살짝 불편했지만, 읽다 보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희미한 지점에서 좌우를 바라보는 - 그가 태생적으로, 자라온 환경에서 갖게 된 아비투수인 제2의 천성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 대안과 해법의 신중함을 발견하게 된다. “달리는 기차에 중도는 없다지만, 함윤호의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는 성찰적 자세와 섬세한 태도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18쪽/ 단순한 시혜적인 복지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 개인의 고통을 사회가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동체의 의미일 것이다.

42쪽/ 오늘 만난 장애인들은 모두 같은 말을 했다. "우리는 특별한 혜택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비장애인과 같은 권리를 누리고 싶을 뿐입니다."
이동권이란 단순히 길 위에서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우리는 이 기본권이 모두에게 공평하게주어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

304쪽/ 지역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언제나 ‘중앙정부가 해줘야 한다‘는 당위로 말문을 연다. 그게 익숙하다. 요구하고 또 요구한다. 그러나 (강준만) 교수님은 이렇게 되묻는다. "우리는 정말 요구했는가?" 표를 줄 땐 정당을 보고, 그 당이 공천한 후보면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이 지지해왔다. 지역 현안이나 정책은 뒷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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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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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작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상.

∎ 경험의 공유와 기억을 현재와 미래로 살아내기 
∎ 단정한 문장과 심연으로 가라앉는 깊은 사유 
∎ 타자의 고통을 내 몸으로 앓아내는 체현된 절망의 통증
 - “희망을 버리고 힘을 내는” 우리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필코 살아내는 ‘삶’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 유기체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 스미는 연민과 사랑


체계바라처럼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 황.정.은.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 『일기』를 읽고, 4년만 다시 숨 고르며 그녀의 공개 일기를 읽는다. 
12월 3일 계엄 이후, 탄핵까지의 시간이 일기에 담겨 있다. 

‘작지만 큰 일기’ 『작은 일기』


개인의 경험이라면 작지만, 
집단 경험과 연대가 함께 한 시간의 기록은 ‘큰 일기’다. 
줌파 라히리의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처럼,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탄핵 이후에도 '안도감'과 ‘기쁨’은 현재 우리 마음을 담지 못한다.
일상에 집중하며 살 수 없었음을 매일 아침, 다시 확인한다.
계엄 – 산불 – 싱크홀 – 파면으로 이어진 겨울과 봄 사이
국가 폭력으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위안은 사치다. 
우리는 욕망을 중립으로 포장한 이들에 대한 자괴감까지 포함하여
공권력이 시민을 향했던 시간 동안 가져야 했던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오랫동안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주말 청송, 울진, 삼척 피해 지역을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광범위한 상흔이 전후 회복이 요원한 상태로,
여전히 화재가 진행 중인 느낌이었다. 
31명이 생명을 잃고, 50여 명이 부상을 당했던 2025. 산불.
흑백영화 한 장면 같은 잿빛 산림 위로 푸른 하늘이 낯설게 처연하다.

하림의 <별에게>를 들으며 『작은 일기』를 읽는다. 
사람의 악함과 약함을 생각한다. 
부당함을 겪고도 발화, 발설하지 못하는 존재를 떠올린다. 
삶과 죽음을 변주하는 책과 영화를 찾아본다.

신간 평가단, 오랜만이다. 



꾸준히 해오던 신간 평가단을 수년 전 멈춘 이유는 책이 흔해졌고,
책이 우리 삶보다 더 커지지 않는 것, 
글과 삶이 유리된 채 제법 잘 쓰인 매끈한 글들이 넘쳤기 때문이다. 
물론 단단한 내면과 올곧은 태도의 작가님 작품은 무조건 사야 한다. 
반복 읽기와 선물 소비를 멈추지는 않는다.
- 누군가 내어준 일기를 읽는 것만 한 - 선물이 없다.
좋은 글은 계속 생산하여 읽는 선순환 만들기.

'작은 일기'는 행간 사이, 단락 사이, 길고 깊은 한숨을 채우며 오래 읽게 된다. 
about time. ‘다시 읽음’으로 타임머신이 되어 시공초월의 경험을 한다. 
글은 여전히 힘이 세다. 
연대가 필요한 순간, 마법을 불러온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우리는 어디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환원될 수 없는 '모든 것'으로 트랜스포머하며, 
이 세계 어디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황정은 작가의 책은 한 번만 읽은 적은 없다. 
작가님은 내가 경험한 세계를 여러 번 다시 살게 한다.
복기해서 읽고, 필사와 메모를 반복하며 
경험의 핍진성을 믿는 황정은 작가의 세계로 들어가 내 세계를 오버랩한다. 
너와 내가 따로 있지 않다. 
고요함의 표피 속에서 나, 그녀,
물질로 환원하는 없는 환대와 연대를 만든다. 
다중이 만드는 오버 사운드로 얽히며 독서로 연대하는 집회장이 된다. 

행복할 때보다 고립, 고통, 억울함이 일기를 쓰게 한다. 
유년시절, 일기 읽기의 시작은 『안네의 일기』였다. 
게슈타포를 피해 은신한 안네가 겪는 시간이
현재형으로 내 삶과 하나가 되었다. 
이후 작가의 에세이 또한 ‘보여주기 위한 일기’임을 알게 되었고,
소설, 시와 다른 체감을 주는 애서가 되었다.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와 최현숙의 『작별 일기』를 다시 꺼내 읽는다. 
<작은 일기>의 목차를 앞뒤 이어 붙여 만든 한 문장을 만들어 본다. 

이 세계를 사랑하는, “너무 고마운 사람”과 함께 “알아보고 눈치채는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아침”을 맞이하자. 

삶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분절하며 흘러갈 것이다. 

그 추운 밤을 그 자리에서 보낸 사람들도 놀랍고, 그들에게 난방 버스며 음식이며, 바람 넘는 고개에서 버티는데 도움이 되는 물품들을 즉시 보낸 사람들도 놀랍다. 그건 나라에서 받은 것도 없어도 위기가 닥치면 들불같이 일어난다는 어느 민족의 성격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남의 곤경과 고립을 모르는 척 내버려두거나 차마 두고 갈 수 없는 마음이 아닐까. 남의 고통을 돌아보고, 서로 돌볼 줄 아는 마음들. - P57

오래전 어느 북토크 자리에서 "사람들의 악함은 약함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나는 한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라는 질문을 받고 엉뚱한 대답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질문도 자주 생각한다.
실은 몇해째하고 있다.
사람들의 악함을 마음에 들여 되짚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게도 그 싹이 무성하게 있으니까. 그런 것이 자신에겐 없을 거라고 믿는 얼굴 앞(65)에 서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내게는 그런 입장 역시 악함의 기반이 되는 약함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람들의 약함에 내가 얼마나 분노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약함은 어느 정도 그의 탓일까. 그리고 권력 가진 이들의 혼돈 그 자체인 악함도 약함에서 그 탓을 찾을 수 있을까.
- P64

우리 가족은 1992년에 살던 집을 경매로 빼앗긴 뒤 그 집 그 방에 들어갔다가 1995년 1월 어느 새벽에 다급히 짐을 꾸려 떠났다. 월세가 밀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직은 어디에도 말하거나 기록할 수 없는 그 일 때문에, 그 밤에 나는 몹시 겁을 먹었고 부당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슬펐다. - P68

가급적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이번 한번뿐이니까. 올 엣 원스.
삶의 목적과 의미를 ‘목격’에 두고 산 지 꽤 되었다. 태어나 보고 듣고 겪는다. 이걸 하러 나는 여기에 왔다. 아주 작은 무수한 입자들로 흩어져 있다가 어느 날 인간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세상에 출현해, 기적적으로 출아해, 세상을 겪고 세상의 때가 묻은 채 다시 입자로 돌아갈 것이다. 세상을 관통한, 그리고 세상이 관통한 더러운 경험체로서.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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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고전문학 에세이
김영숙 지음 / 파든(FARDEN)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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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의 변화를 실감했던 여름의 권태가 끝날 즈음, 가을과 함께 찾아온 철학자의 고전문학 에세이가 우리를 시간 여행자로 만든다. 아니 추억 여행자라고 해야 더 적합하겠다. 시공을 초월한 친구가 있다면 고전문학이라 답할 수밖에 없다. 세계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앎의 욕망, 자신을 조금 더 알고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철학이라면 고전을 다시 보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 될 것이다. 인간의 삶에 보편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나의 고통과 불안은 시간을 초월한 인간 존재의 필연임을 새삼 확인한다.


가을 휴가차 나흘 동안 강원도 차박 여행을 떠나면서 이 책을 배낭에 넣어 갔다. 비 내리는 강릉 해안가 카페에서 책을 펼친 오후, 이어지는 밝음이 사위어 가는 내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책에 다루는 열두 편의 작품을 복기하는 동안, 그 책을 읽고 있던 여러 명의 와 조우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저자가 작품 속에서 사이사이 풀어내는 사적 삶이 작품과 연결 고리가 되어 페이스츄리나 바움쿠헨처럼 다양한 서사와 서정 사이를 산책하게 된다.


SNSOTT, 쇼츠가 이끄는 대로 흘러가다 보면 시간은 순삭이고, 열패감 비슷한 정서가 마음에 스밀 때, 이 상황을 불어일으킨 것이 자본의 욕망인지, 주체의 선택인지 혼란스럽다. 그때 고전 리라이팅을 읽는다면 자신과 세계를 메타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얻게 된다. 철학자의 고전문학 에세이를 읽음으로써 성인이 추억 여행자가 된다면 십 대, 이십 대를 통과하는 독자는 시간 여행자로, ‘about time’의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 철학자의 고전문학 에세이는 청소년과 청춘들에게 일독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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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 세영 씨
김영숙 지음 / 문학여행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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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듯한 세영씨’가 가지는 힘, 한 단어로 표현하면 흡.입.력. 


책을 잡은 순간부터 읽기를 멈추지 못했다.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 제목만 닮은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전혀 다른 서사이듯, 61년생 <반듯한 세영씨>는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과 결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역설적이게 세영씨는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여성의 삶이기도 하다. 


독일 박사, 사회학을 전공한, 자기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관념과 현실의 괴리는 모든 여성의 삶에 존재한다. 82년생 김지영이 성장하는 동안 가정과 직장에서 겪었던 삶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변주하고 있다. 그녀에겐 세영씨와 같은 전세대가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니체적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반듯함이란, 사랑이란, 실수란,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동년배에겐 위로를, 다음 세대에게는 자기다운 선택을 해도 된다는 용기를 선물하는 책이다. 실수가 아닌 최고의 선물, 세영씨의 딸 수지, 두 모녀가 생물학적 관계를 떠나서 여성과 여성으로 연대할 근미래를 독자로서 간절히 바란다. 


책을 덮는 마지막 장에서, 다시 표지와 목차를 다시 살폈다. 열린 결말을 넘어서서 세영씨의 인생 2부가 다큐처럼 알고 싶어진다. stop motion이라니, 얼음처럼 쨍하다. 


자기답게 살아간 세영씨의 다음 선택이 궁금하고, 온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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