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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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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is everything. 음식의 언어-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 2015. 4.

 

 

치과의사는 환자의 치아 상태에 살아온 삶의 이력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성악가는 목소리에서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느낀다고 한다. 사회학을 전공한 나는 사용하는 언어에서 계급성을 읽는다. 택시 기사는 룸 미러에 비친 얼굴에 그 사람의 성정(性情)이 보인다고 한다. 대부분은 의 결과인 선입관과 편견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 십 년의 경험 속에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사람을 분석하고 수용한다. 새끼 손톱만한 장기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계신 어느 의대 교수님은 그 장기가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맥락에서 음식의 언어-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음식의 언어를 인류학의 텍스트로 적절하게 활용한다. 이 책에는 음식 언어의 어원 뿐 아니라, 레시피까지 실려 있다.

  

누구나 인정하듯, 음식만큼 계급적인 것도 없다.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는 사회학적 텍스트로 음식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음식을 가지고 젊은 루저의 이야기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잘 풀어나간다.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세 사람 신용카드도 만들 능력이 안 되는 작가 아닌 작가 백수지, 한때 보험 왕이었으나, 불미스러운 일로 세종 시로 내려온 보험세일즈맨 구대영, 낮에는 공무원, 휴일에는 강남 오렌지로 변신하는 사무관 의 음식 스타일은 각자의 계급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케비어, 송로버섯, 푸아그라로 식감을 즐기는 사무관과 달리, 백수지와 구대영에게 음식은 영혼을 치유하는 소울 푸드다. 사무관은 음식의 양보다 질을, 백수지와 구대영은 질보다 양을 중시한다. 그들은 고독한 식사 보다 왁자지껄 떠들면서 함께 나누는 한끼 식사를 더 사랑한다. 여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 다만 음식의 권력성과 용법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음식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계급의 취향이다 음식의 언어가 우리의 욕구와 열망을 반명한다.”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한 사촌 동생에게 스테이크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연락했더니, 자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쉐프에게 배운 요리 실력이라고 자랑했다. 어디서 요리 강습을 들었냐고 묻자, 유투브에 요리 과정이 올라와 있어서 수시로 따라서 요리 한다고 한다. 동영상을 보면서 스테이크 굽는 것을 따라했는데, 살짝 비슷한 요리가 나온다. 그 이후로 새로운 요리에 도전할 때는 항상 유투브를 참조한다. 국적을 뛰어넘어 사람과 함께 음식도 넘나들면서, 과거보다 더 빠르게 음식의 언어도 국적을 떠돌아 공존하면서 동화와 융합의 과정을 거친다. 500단어 영어로도 소통이 가능한 세계화 속에 살아가면서, 순백의 모국어로 민족성을 지키겠다는 것은 권력의 작동일 수 있다. 우리가 지키려는 순수 한글이 과연 순수한 것인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음식을 설명하는 보통명사의 어원을 살펴보는 과정은 새로운 상식을 넘어 새로운 통찰을 가져온다. 토마토() 소스()가 중국어에 어원을 두고 있을 농후한 가능성 / 달콤한 가루반죽이라는 의미의 메커룬, 마카롱, 마카로니 / 소금과 얼음을 섞은 소르베, 셔벗, 시럽 / 칠면조와 터키의 관련성을 살펴볼 때, 음식의 언어는 문명화와 지구화의 상호연관성을 생각하게 한다. 음식은 이민의 역사이고, 메뉴판은 식탁에 펼쳐진 세계지도이다. 낯선 도시를 여행하기 전에 그 지역의 맛 집 블로그를 검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관광지의 그저 그런 맛이 아니라, 직접 먹어본 블로거의 추천 식당은 실패할 확률이 매우 낮다. 새로 문을 연 레스토랑은 자신들이 개발한 소스를 전시하고 판매하기도 한다. 의식주의 가 그렇듯 또한 차별화된 삶을 드러내는 중요한 변인이다.

 

 

우리는 청소년 희망 직업 1순위에 쉐프가 앞자리를 다투는 시대를 살고 있다. 미디어의 위력이기도 하고, 동일한 인스턴트식품에 대한 반대급부의 취향투쟁의 측면이기도 할 것이다. 피라미드 성공 구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는 선택일 수도 있다. 여기서 비켜갈 수 없는 고민은 늘 존재한다. 직업군인을 꿈꾸면서 전쟁을 떠올리지 않고, 교육자를 꿈꾸면서 학부모, 학생과의 갈등 상황에 내몰리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경우는 참 드물다. 명이 있으면 암이 있기 마련이다. 요리사가 되는 길은 좀 순탄할거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쉐프는 요리 하나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평생을 건다. 팟 케스트에서 강레오 쉐프가 이제부터 정말 요리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말한다. 이 십 여 년을 요리로 살아온 쉐프가 초심으로 돌아가 음식다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준비해야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요리의 전문성이 놀랍다. 전주 돌솥 밥의 명인께서 이제는 예전 비빔밥 맛을 낼 수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푸성귀가 신선하고 맛있어서 원재료만 가지고도 맛을 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채소가 맛이 없어서 비빔밥도 예전 맛이 아니라고 한다. 강레오 쉐프가 직접 재배한 채소를 가지고 요리를 하겠다는 것이 그러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입맛은 그 사람의 교양을 말해준다.‘

 

 

음식을 즐기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태생에서부터 경험으로 이어지는 선천적, 후천적 모든 총합이 음식 취향으로 굳어진다. 나는 블라인드 메뉴를 내놓는 식당에 가본 경험도 적고, 복잡하고 고급스런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것을 즐기지도 못한다. 현지 식당의 청결상태를 매번 의심하는 결벽도 심하다. 인도에서 빵을 먹고, 한국에서 커리를 먹는다. 태국에서 역시 빵을 먹고, 한국에서 팟타이를 먹는다. 중국에서도 빵을 먹고, 한국에서 중화요리를 먹는다. 세계의 요리를 사랑하지만, 한국에서 먹을 때만 안심이 된다. 와인에 대한 상식은 <신의 물방울>을 통해 얻은 상식이 전부다. 값비싼 상품으로 둔갑한 음식에 대한 믿음도 없다. 십 수 년 전부터 육식의 종말을 꿈꾸며, 편식하는 유사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맛 집에 대한 믿음도 없다. 가짜가 진짜인 듯 현란하게 포장된 요리를 숱하게 봐온 까닭이다.

 

 

미맹을 만드는 시대

 

 

시대의 탓도 있다. 어느 시대 불행하지 않았던 적이 있을까 싶지만, 반 토막 난 연금, 복지 없는 사회, 저 출산 고령화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지금, 나는 미각을 느끼며 살 자신이 없다. 얼마 전, 다음 달 월세를 못 내고 자포자기한 다섯 명의 가족 중 마흔하나 아들이 네 명을 목 졸라 죽이고, 자살했다. 체념 상태에서 반항의 흔적은 없다. 삼백 여명의 학생이 제대로 된 구조를 받지 못하고 바다에서 세상을 등졌다. 왜 죽었는지, 누구의 책임인지 명확한 것 하나 없이 속절없이 일 년이 흘렀다.

 

치유의 힘

 

그럼에도 나는 음식이 갖는 치유의 힘을 믿는다. 봉준호의 <괴물>에서 경계선 장애를 갖고 있는 아빠는 딸의 밥을 챙긴다. 사라진 딸을 위해서도 밥을 짓는다. 딸이 죽고 고아 소년을 데려다가 그가 해주는 것은 따뜻한 고봉밥 한 그릇이다. 밥 먹었는지를 묻는 말 한마디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 향기>에서, 자살하려고 산에 오르던 남자는 체리 열매를 맛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오기가미 나오코의 <카모메 식당>, <안경>의 음식은 떠도는 인간을 아우르는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 세월 호 유가족 중 한 분은 인터뷰 중에 누군가 입 안에 떠 넣어준 죽 한 숟가락의 힘에 감사를 표현한다. 자식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물 한 모금 넘기는 것이 죄스러웠는데, 누군가 따뜻한 죽 한 숟가락을 입에 넣어주었을 때,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한 공기가 되어 주고, 음식으로 환대의 공간을 만들어 연대를 구성하는 것. 그것보다 가치 있는 삶이 있을까 싶다.

 

 *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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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1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버튼이 하나 뿐이라서 아쉽네요 한 100개는 드리고 싶은 글.^^.

더불어숲 2015-05-19 08:58   좋아요 1 | URL
`극찬`, `과찬`입니다. 고맙습니다.^^
읽어주는 것도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인데, 같은 책을 읽고 어깨 토닥이듯 힘을 실어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