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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ㅣ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문명의 배꼽, 그리스』박경철 지음, 리더스북, 2013. 1.
카잔차키스에 의해 탄생한 『그리스 인 조르바』는 안소니 퀸 주연의 영화로 재탄생했고, 이윤기 선생님의 탁월한 문학적 성취로 번역을 통해서 우리에게 소개되었다. 에게 해에 발을 담그는 것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온전히 주체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고, 그 세계의 주인으로 자유롭게 살다간 남자, 니체의 위버멘쉬와 영원회귀가 구체적으로 현현하였다. 이성 보다는 본능으로, 감각 보다는 직관으로으로, 삶은 오로지 자유를 통한 욕망의 실현에 있다. 대비되는 두 인물이 중첩되면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이끈다. 한 인물에 새겨진 운명을 사랑하고, 인생을 놀이로 살다간 사람들. 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키스, 한국인 이윤기.
인간으로의 회귀를 위한 랜드마크
착륙하기 전 기내 창으로 보이는 에게 해의 작은 섬들은 상상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아테네 공항 밖으로 보이는 언덕들, 그리스 뮤지션들의 음악, 흔하게 사용되는 대리석, 자기만의 향과 맛을 가진 하우스 와인, 파르테논 신전에 걸 터 앉아 바람맞이를 하는 동안 내가 정말 그리스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연중 온난습윤, 고온건조의 기후 조건은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인간은 무엇인지를 성찰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었으리라. 그리스는 인간으로의 회귀를 위한 랜드 마크로 자연적 · 문화적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인생의 중간 지점에서 삶의 방식을 회의하고, 자신만의 삶을 가꾸기 위한 시간으로 그리스를 여행할 수 있는 순례자는 生의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다. 아마도 그리스 여행 이전과 이후의 삶은 비약하여 전혀 다른 질을 가져올 것이다. 살아가는 세속적인 선택의 순간에 그 여행의 한 장면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시골 의사에서, 경제 전문가, 토크 콘서트의 MC로, 반듯한 품성과 바른 생각으로 전 국민의 멘토가 된 박경철의 그리스 여행은 아마추어인양 겸손하게 기술되어 있으나, 그 내용과 성찰의 자세는 여행 서적이 아닌 역사 철학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여전히 인생은 구태의연하게 여행에 비유될 만큼, 우리의 삶의 과정은 여행에서 만나는 예측불허의 사건, 생사를 가르는 듯 한 결정의 순간이 지배한다. “삶은 좌절이나 권태가 아닌 고독한 투쟁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숙명 지워진 존재가 아닌 온전히 실존하는 내가 된다(97쪽). 인류가 가장 많은 철학적 선취를 했던 시공간으로의 여행은 매 발 자욱 마다,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내면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관문 코린토스에서 시작된 여행은 네메아, 올림피아의 성소, 아르고스, 스파르타의 유적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리스와 스파르타를 비교 설명하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의견은 존중한다. 문명의 흥망성쇠라는 지점에서 과거의 그리스와 현재의 그리스를 동일하게 바라보는 것에도 불편한 마음이 든다. 요즘 들려오는 유럽 금융 위기의 퇴락한 그리스를 2,500년 전 그리스와 동일하게 바라볼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 그리스의 부패와 재정 위기를 보면서 역사의 흥망성쇠로 바라보는 것은, 지금의 한국과 고구려를 동일한 ‘국가’ 개념으로 보면서, 역사를 상상으로 채워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유, 관용, 인권, 직접 민주주의의 산실, 철학과 삶을 일치하고 자기 배려의 윤리가 가능했던 그리스는 인류의 자산이고, 우리에게 실현 가능한 ‘좋은 삶, 선한 삶’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바다가 연결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에서 먹는 문어와 우리나라 동해의 문어 맛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기술한 읽다 보니, 내게도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자숙문어, 돌문어, 왜문어인지, 어디에서 삶아서 어떤 소스를 찍어 먹는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맛도 있겠으나, 그리스 바닷가 노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먹는 문어 맛을 어디에 비교하겠는가? 이 지점에서 아테네 바닷가에서의 내가 경험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깊은 푸른빛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겠다고 조르는 아이들, 수영복이 준비 되지 않았던 우리 일행 누구도 함께 수영해줄 방법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아이들의 이모할아버지가 낯선 이국의 바닷가에서 속옷 바람으로 아이들과 수영을 해주었다. 연세 많은 그리스 할머니들도 함께 수영을 했다. 그들 또한 수영복을 입지 않았다. 옷을 벗기 위해서 팔을 빼는 것도 어려운 할머니들을 위해서 이국의 낯선 남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해가 기우는 바닷가의 그 광경은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장면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노인들의 수영 장면은 어떤 육감적인 느낌도 끼어들지 않는다. 역사보다 더 깊은 인간들의 삶이 느껴진다.
고착된 홈 패인 공간에서 살짝 비켜나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하는 여행
여행은 일상과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고착된 홈 패인 공간에서 살짝 비켜나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한다. 저자도 인용한 카잔차키스의 이야기는 그리스 순례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한다. 이 긴 여행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열정의 불씨를 꺼뜨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급습할 때 여행은 다시 살아갈 정신의 아편이 되어 준다.
“평생 동안 내가 간직했던 가장 큰 욕망들 가운데 하나는 여행이어서 - 미지의 나라들을 보고 만지며, 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지구를 돌면서 새로운 땅과 바다와 사람들을 보고 굶주린 듯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천천히 오랫동안 시선을 던진 다음에 눈을 감고는 그 풍요함이 저마다 조용히, 아니면 태풍처럼 내 마음속에서 침전하다가 마친내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고운체로 걸러지게 하고, 모든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본체를 짜내고 싶었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읽으면서 삶은 그저 혼돈이 아니라, 혼돈 속의 절정이라는 조금 이질적인 생각을 받아들이게 된다. 행복이 어떤 사건 또는 사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듯, 인생의 절정 또한 지속적인 균형이 아니라, “순간적인 평정”이리라. 이 혼란스러운, 지독하게 세속적인 삶을 끌어안는 것이 우리의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박경철의 여행은 아직 계속될 모양이다. 앞으로 아홉 권의 연작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펠로폰네소스 편이 두 권 남아 있고, 아티가 편이 네권, 테살로니키 편이 한권, 마그나 그라이키아 편이 두권 이어진다고 하니, 독자인 우리는 그가 여행지에서 보내온 편지를 우정 어린 마음으로 받게 될 것이다. 언젠가 그 자리에서 누군가에 띄울 연서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