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평점 :
문학을 읽는다는 것, 삶을 산다는 것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책읽은수요일, 2016. 1.
테리 이글턴은 마르크스주의 ‘문학 이론가’이자 ‘정치 평론가’다. 저자의 강의실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느낌이다. 저자 자신이 수술대에서 메스를 가하듯, 놀라운 작품 분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리한 감식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 책은 - 원제 “문학을 어떻게 읽은 것인가?”가 말해주듯이 - 문학을 읽는 방법론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서 문학을 읽는 것과 삶을 사는 것, 모두 목적 없이도 의미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책은 문학 작품을 함께 읽는 기쁨을 준다. 영문학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난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권이 달라도, 세계의 고전이라 불리는 책을 함께 나누고, 이름만 알고 있는 책은 도전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모든 텍스트를 순진하게 읽는 사람들에게 책 읽기의 전략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저자는 “분석이 즐거움의 적이라는 신화(8쪽)를 무너뜨리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목적이 없이도 의미 있을 수 있는 일
문학은 삶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문학을 읽는 것과 삶을 사는 것, 모두, 목적이 없이도 의미 있을 수 있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문학만을 문학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 어떤 글이든 문학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메뉴판과 설명서조차 문학적으로 쓰일 수 있고, 읽을 수 있다. “책만 보면, 언제 공부할래?”와 같이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표현이 있다.
십대 내내 나의 문학을 읽는 시간은 학교 공부가 끝난 다음에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거였고, 공부가 미진한데 소설을 읽는 일은 매번 죄의식을 불러 왔다. 아마 그런 죄의식이 삼십대까지 지배했던 듯도 하다. 직장생활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전공 서적 외에 다른 책을 읽는 일은 매번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불편한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목적 없는 무사무욕적인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압박이 컸다. 문학 읽기의 죄의식과 함께, 십대 내내 숨 죽여 읽었던 책들이 오롯이 떠오른다. 삼중당 문고판의 한국 중단편 소설, 범우사에서 나온 세계 고전 소설, 학교 앞에서 책 외판원에게 할부로 구입했던 세계 고전 단편 선과 같은 것들이다.
학력고사가 끝난 이후에는 음악을 귀에 걸고, 문학을 읽으며 겨울밤을 밝혔다. 그 시간 안에서 세계의 시공간이 압축되는 경험을 했다. 고전 문학 속에서는 5분 동안 스쳐 가는 감정도 하나의 세계를 구성할 수 있음을 배웠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물리적 시간에 갇힌 생애사가 인생이 아니라, 한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만들 수 있음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책은 크게 다섯 장으로 구성된다. 도입부, 인물, 서사, 해석, 가치가 그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읽기가 인간의 삶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 명확하게 밝혀 둔다.
“문학은 인간이 삶의 목적에 휘둘리지 않게 해주고, 삶을 더 잘 즐기도록 돕는다.”
훌륭한 작품은 훌륭한 그릇부터 구축한다. 문학의 형식과 무관하게 내용만을 읽는 독자들이 있지만, 글의 형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이해하는 일, 즉 분석을 통해서 문학 작품을 더 잘 읽고, 이해할 수 있다. “형식”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요소에 대한 주의 깊은 독서(17쪽)를 해야 한다. 내용이 이야기되는 방식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문학 작품은 내용만을 담보하지 않는다. 내용에만 국한하는 것은 순진한 독서 행위다.
* 인물
감정이입만으로 인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인물과 분리하는 소격 효과없이 독자는 인물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 일정 정도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캐릭터는 원래 한 개인의 특징이었는데, 지금은 개인 그 자체를 의미한다. 우리를 구분해주는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91쪽)하다. 저자는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세익스피어 『오셀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T. S. 엘리엇의 『황무지』를 인용하여 인물의 유형은 개성을 보존하며 더 넓은 배경을 부여(108쪽)함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의 특별함은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물 각자의 고유함이다. 더 이상 분절될 수 없는 개체로서 개인(in-dividual)은 배경과 분리될 수 없다.
* 서사
플롯은 서사의 일부일 뿐, 그 자체로 서사가 될 수 없다. 역으로 서사에 플롯이 생략된다면, 이야기는 추동력을 상실한다. 최근 가까이 지내는 분의 단편 소설을 피드백한 일이 있다. 평소에도 군더더기를 싫어하고, 직선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작가는 소설에서도 같은 모습을 유지했다. 정보로만 이어지는 글은 마치 트리트먼트나 개요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묘사로 가득한 글을 읽는 것도 힘들지만, 기록되어야 할 것들이 생략된 글이 오히려 더 피로하다. 저자는 『고도를 기다리며』, 『구월에는 삼십 일이 있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처럼 플롯 없는 서사(217쪽)도 있다고 한다. “목적이 없어도 의미 있는 인생”처럼 서사도 플롯 없이 항해할 수 있는지는 작가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 해석
세상은 온갖 기호로 가득하다. 기호는 해석을 요구하고, 주체에 따라서 그 의미는 다의적이다. 문학 역시 해석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생산한다. 작품에는 기표에 상응하는 기의가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문학 작품의 의미는 독자의 수준에 따라 변주될 것이다. 원래 예술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므로.
모든 문학 작품은 출생 시에 고아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성장해가면서 우리의 부모가 우리의 인생을 통제하지 않게 되듯이, 시인은 자신의 작품이 어떤 상황에서 읽힐 것인지 또는 그 작품을 독자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결정할 수 없습니다(222쪽).
문학작품 해석의 다의성은 필연이다. 허구에 실제를 구사한 문학의 모호함이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모호한 표현을 하게 되고, 독자는 능력만큼 다양한 해석을 한다. 내용뿐 아니라, 문학이 형식 또한 해석을 요구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반 페이지를 훌쩍 넘는 하나의 문장, 육십 페이지로 이어지는 『율리시스』의 마지막 문장과 같은 경우, 문장의 형식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형식에 대한 해석이 요구되는 까닭을 “불투명하고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삶(235쪽)”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 가치
문학의 탁월함은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문학비평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또한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위대한 작품으로 남는다. 문학 작품은 유기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의미를 산출하기도 하고, 점진적으로 나아가면서 다양한 해석을 축적(339쪽)”하기도 한다. 예술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른 문화의 예술을 이해하려면 그 문화권의 수학자들이 만든 법칙을 이해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 필요(346쪽)하다. 즐거움이 문학 작품의 가치가 경탄에 있지도 않다. 경탄하지만 읽지 않는 책도 있고, 경탄하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읽는 책이 있다.
니체 “슬로 리딩(느린 독서)”
예술의 힘은 무한 창조에 있다. 제한된 색을 가지고 무수한 그림을 그리고, 정해진 음표 안에서 무한의 음악을 생산한다. 몇 가지 기호인 문자 안에서 문학은 끝없이 변주된다. 같은 단어조차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때때로 나이가 주는 선물이 있다. 삶이 뚜렷한 목적 없이도 흘러간다는 것, 삶은 예기치 않은 일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래서 삶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는 걸 알게 된다. 이제 나에게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이거나, 게으른 자의 소일거리가 아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 행과 행 사이의 의미를 헤아리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진 나이가 되었다. 늙는다는 것은 (M. Foucault가 『주체의 해석학』에서 강조하듯) 세상적인 성공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장비를 마련하는 과정일 것이다. 니체의 ‘느린 독서’는 자기인식을 넘어 자기배려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 책 또한 그런 독서가 필요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