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소년』 (The Kid With A Bike, 2011)

감독 : 장-피에르 다르덴 , 뤽 다르덴, 출연 : 세실 드 프랑스, 토마 도레, 제레미 레니에,

 

시릴과 아만다 이야기

 

열두 살 생일을 바로 앞둔 시릴은 읽어버린 자전거를 찾기 위해 아동보호소를 뛰쳐나온다. 아이의 아빠는 자전거를 팔고 소년을 버렸다. 우격다짐 몸싸움 끝에 아버지와 추억이 있는 자전거를 쟁취해 온다. 시릴은 자전거를 아버지의 사랑과 동일시한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소년, 아들을 짐스러워하는 아버지, 둘의 재회가 쉽지 않다. 물리적인 만남 끝에서도 두 사람은 마음을 합하지 못한다. 서로 가야할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믿는 소년은 길을 가는 부자(父子)를 린치하고 돈을 갈취한다.

 

그 과정에서 소년은 아무 조건 없이 물질적 지원과 심리적 지지를 아끼지 않는 한 여성, 아만다를 만난다. 미용실을 운영하며 혼자 사는 아만다는 소년의 요청을 받아들여 위탁모가 되어 계산하지 않는 사랑을 선물한다. 그녀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소년을 잡아주는 구심점이다. 소년이 엇나가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내면의 갈등 없이 소년을 구원한다. 이 점이 『자전거 탄 소년』을 ‘아이의 성장과 어른의 사회적 책무성에 관한 영화’로 만든다. 그녀의 선택은 즉각적이고 준엄하다. 아만다의 사랑으로 관계 윤리와 책임이 소년에게 전이되면서 치유를 경험한다.

 

평범한 플롯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은 바로 감독 다르덴 형제에게 있다. 장-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은 1990년대 세계 아트하우스 영화를 대표하는 벨기에 감독이다. 이 영화 이전에 칸 영화제에서 이미 네 편의 영화로 황금종려상 ('로제타' '더 차일드'), 각본상 ('로나의 침묵'), 여우주연상('로제타'), 남우주연상('아들')을 수상했다. 노동자의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한 다큐멘터리를 수십 편 만들었던 감독들에 대한 칸영화제의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과 다른 방식을 차용한 이 영화로 칸 심사 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러닝타임 87분, 핸드 헬드 카메라에 비전문배우를 앞세우고, 음향 이외에 음악은 사용하지 않던 엄격한 리얼리스트 형제는 이전 영화와는 달리 멜로 장르의 특징을 일부 차용하여 <자전거를 탄 소년>을 연출했다. 영화 초입부터 들려주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유명 배우인 세실 드 프랑스를 주연으로 발탁한 점이 그들의 기존 영화와 다른 점이다.

 

그러나 다르덴 형제에게 영화는 여전히 삶의 우위에 있지 않다. 그들은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 같은 캐릭터의 변화를 조심스럽게 보여주는 진정한 리얼리스트다. 피해왔던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그들의 영화에는 여전히 사회적 문제의식과 ‘희망’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소외된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제도적 모순이 개인의 의지와 만나는 한계상황에서 놓여있는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설명해야 할 부분을 생략함으로써 관객에게 복잡한 마음을 선물하는 독특한 화법 또한 변함없다.

 

드와넬, 무쉐뜨, 그리고 시릴

 

도덕과 윤리에 잡히지 않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또 다른 작품이 있다.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누적된 슬픔의 깊이와 함량을 느낄 수 있는 리얼리즘 영화들이다.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1959)에서 드와넬이 살아가는 삶이 그렇다. 그의 일상은 지독한 정신적 ․ 육체적인 구타로 이루어져 있다. 드와넬은 일상화된 폭력 앞에서 무표정하게 응대할 뿐이다. 카메라는 주관을 배제한 채 한 아이의 생활을 쫓는다. 브레송의 <무쉐뜨>(1967)에서 어린 소녀가 선택하는 저항은 자기학대에 가깝다. 소녀는 자신을 구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한다. ‘자살’을 ‘악’으로 규정짓는 근본 기독교의 기계론적 접근에서 어긋나는 지점을 형성하며, 다시 자기표적을 겨냥하듯 기독교로 회귀하여 순교한다. 모두 보편화된 어린 아이의 모습과 상반된 채, 세상과 불화한다.

 

<자전거를 탄 소년>이 다행스러운 점은 드와넬과 무쉐뜨에게 없는 평화가 시릴에게 주어졌다는 점이다. 소년은 궁지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호의로 가득 한 든든한 보호자가 있고, 주변인에게 속죄의 여지가 있다. 소외된 자들에게 카메라 시선을 견지하며 윤리를 성찰하는 감독들의 내공은 이 영화를 통해서 구원과 희망으로 조용히 다가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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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배우 : 장 뒤자르댕, 베레니스 비조

 

올해 2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아티스트>는 전 세계, 전 세대를 아우르며 관객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젊은 층은 새로움을 발견했고, 중장년층은 어렸을 때 감동을 주었던 고전 영화의 재현을 경험한다. 진 켈리 주연의 <사랑은 비를 타고>(1952)와 같은 뮤지컬 영화를 다시 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화면비율 4:3의 이 흑백영화는 영화 기술의 정수에 도달했다고 평가하는 21세기를 잠시 잊게 만든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댄스, 음악은 1920~30년대 헐리웃 영화 전성기에 제작된 영화처럼 느껴진다. 전혀 새롭지 않은 플롯과 연출에서 사람들은 ‘과거’라는 달콤한 마술을 경험한다. 반대로 고전 영화에 친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는 과거가 ‘새로움’으로 다가서면서 즐거운 꿈의 세계를 선사한다.

 

<아티스트>는 무성영화 시대에서 유성영화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헐리웃을 배경으로 한다. 무성영화계 최고 스타였던 한 남자의 흥망성쇠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성 영화 시대에 최고의 흥행 가도를 달리던 배우 조지 발렌타인(장 뒤자르댕)은 흑백 영화의 쇠퇴와 함께 부와 명예도 전락한다. 기존 영화 제작 방식을 고수하며 지키려했던 조지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점점 침울한 상황으로 내몰린다. 그를 흠모하며 배우로 성장하고 있는 신출내기 페피 밀러(베레니스 비조)는 조지의 몰락과는 반대로 신예로 떠오르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그녀는 조지의 수호천사가 되어 그의 재기를 돕는다. 페피는 파산으로 극한의 선택을 하려는 조지 곁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함께한다.

 

무성 영화 형식을 취한 <아티스트>는 소란한 일상을 잠시 잊게 한다. 음악과 댄스는 대사가 주는 피로함을 시선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2012년 아카데미는 <아티스트>의 해라고 해야 할 것이다. 64회 칸영화제에서 <트리 오브 라이프>에 황금종려상을 양보했지만, <아티스트>는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의상상, 작곡상, 음악상을 수상했다. 장 뒤자르댕은 <머니볼>의 브래드 피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게리 올드먼, <디센던트>의 조지 클루니와 같은 경쟁자를 누르고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프랑스에서만 알려졌던 배우 장 뒤자르댕의 수상에 대한 이의는 별로 없는 듯하다.

 

유성영화를 연기해온 배우가 무성 영화의 연기로 몸을 언어화하는 것은 힘겨운 작업이다. 장 뒤자르댕은 원맨쇼 코미디를 연기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던 경험은 무성 영화 시기에 최고의 스타 조지를 연기하는데 필요충분조건이 되었다. 감정을 체화하여 다양한 몸짓과 표정을 만들어냄으로써 무성영화의 답답함을 완벽하게 해소했다. 그는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방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장 뒤자르댕과 베레니스 비조는 현장에 흐르는 음악에 맞춰 감정을 조절하고, 표정과 눈짓으로 대사를 대신했다.

 

거의 무성 영화에 가깝게 제작된 이 영화는 음악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감독과 영화 음악가 루도빅 바우스는 고전 헐리웃 작품들을 감상했다. 음악이 대사와 음향 없는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방식과 친숙해지기 위해서다. 대사가 없는 상태에서 자막까지 최소화하고 이야기를 펼쳐가는 테크닉에 있어서 음악이 무척 중요하다. ‘페니 프롬 헤븐’과 ‘주빌레 스톰프’와 같은 몇몇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화를 위해 새로 작곡되었다. 압권은 영화의 마지막 2분 동안 펼쳐지는 음악에 맞춰 두 배우가 추는 탭댄스다.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은 흑백 무성 영화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이 장면을 얼굴과 몸을 한눈에 보여주는 롱 쇼트로 촬영했다. 조지와 페피가 유성 영화를 찍으며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이 장면을 위해서 다섯 달 동안이나 탭 댄스를 연습했고, 장면을 촬영하는데도 열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찍었다고 한다.

 

<아티스트>는 단순히 과거로만의 회귀가 아니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음악을 예상하는 순간에 음향으로 반전을 끌어오기도 하고, 배우의 입이 클로즈업 된 상태인데 자막이 깔리지 않기도 한다. 기대와 어긋나는 엇박의 리듬이 관객의 집중을 유도한다. <아티스트>는 1920년대의 스타일을 그대로 복원하지 않음으로써 21세기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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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마지막 인사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진검 승부,

 

<부러진 화살>(2011), 감독 : 정지영, 출연 : 안성기 박원상

 

 

<부러진 화살>은 2007년 ‘석궁 테러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는 억울하게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하자, 1년 6개월에 걸쳐 여러 정부 부처에 수많은 진정서를 내고, 1인 시위를 했다.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그가 마지막으로 기댔던 곳이 사법부였으나, 교수 지위 확인 재판에서 상식 밖의 재판으로 패소하였다. 제도권을 불신하고 재판 결과에 불복하여 담당판사였던 박홍우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하면서 김명호 교수는 ‘석궁 교수’라고 불명예를 짊어졌다. 그는 현재 4년 형기를 마치고 지난 1월 출소했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극화했고, 사법부의 재판 결과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뜨거운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있다.

 

 

영화는 노동 전문 변호사인 박준이 김경호 교수의 항소심을 변호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캐릭터의 이름과 성격이 살짝 바뀌고, 영화적 구성을 위해서 몇몇 가상 인물이 삽입되었지만, 재판 속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기소 과정, 재판 내용은 당시의 사실 보도 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사건의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공방을 다루고 있으므로, <의뢰인>과 같은 법정 장르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법정의 규칙과 논리보다는 실제 일어난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부러진 화살>은 5억이라는 저예산으로 제작되어 2012년 흥행가도의 첫 주자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남부군>, <하얀 전쟁>의 정지영 감독이 1998년 <까>라는 영화 이후, 13년만에 연출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현재 개봉 당시 보다 두 배 이상의 상영관으로 확대되면서 헐리웃 영화들에 대적하고 있다. 이는 오로지 관객의 입소문과 영화 자체의 힘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묘사하는데 코미디만한 것이 없다. <부러진 화살>의 강점은 사건 자체의 무거움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사자인 김경호 교수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주어진 장애들을 하나하나 뛰어넘거나 한계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법정에서 현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상식 밖의 사건 앞에서 마땅히 느껴야 할 분노는 유머가 대신한다. “유머는 가장 큰 슬픔에서 나온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주연, 조연 모두 코미디 캐릭터를 변주해서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비장함이 상쇄되고, 그것이 이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하다.

 

코미디 설정으로 새롭게 구성된 캐릭터들은 김경호 교수가 피고이고 피해자일 뿐, 범죄자이거나 가해자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억울한 피고인 김경호 교수는 변호사를 선임하고서도, 스스로 재판을 준비하는 데, 그 과정이 관객을 숙연하게 만든다. 이는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도전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보수 꼴통’이라고 자처하는 김경호 교수를 통해서 진정한 보수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원칙을 가지고 신념을 실천한다면, 한국의 보수를 꼴통이라고 하는 이유는 원칙도, 철학도 모두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점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나 고발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적’ 아쉬움이 남는다. <부러진 화살>은 팔구십년대 영화의 클래식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임권택 감독의 백한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를 보면서, 감독의 전작들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불편한 느낌을 발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부러진 화살>의 클래식한 우직한 느낌은 촌스러운 영화 용법으로, 영화의 젊은 감각과 방식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도식적인 관계 구성은 과거 영화로 회귀한 듯 답답한 느낌을 준다. 노장의 손길과 뚝심이 느껴지지만, 그 클래식함은 21세기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지는 못했다.

 

 

다만 관객들이 이 형식적 취약성을 보지 않거나, 볼 수 없는 것은 영화의 진정성이 압도하기 때문이다. 저예산으로 홍보도 약했고, 상영관 수도 적었으나, 이것이 이렇게 개봉관을 늘려가면서 흥행에 성공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시대를 비판하고 대안을 찾고자 하는 시민들의 바람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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