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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이원화된 세계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 『투게더』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현암사, 2013. 3.
사탕 속에 감추어진 몸에 좋은 쓴 약
운명처럼 내게 도달한 『투게더』는 가벼움과 녹녹함으로 대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물론 책 제목이 주는 편안함이 있고, 독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로 읽기 좋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사탕처럼 달달해 보이지만, 몸에 좋은 쓴 약이 코팅되어 있다. 읽고 나면 되새김해야 할 주제가 명확한 이 책은 런던정경대학교 사회학 교수인 리처드 세넷의 3부작 기획의 두 번째 책에 해당한다. “손으로 생각한다.”는 장인 정신에 이어 협력은 천성이 아니라 실기(實技)임을 논증한다. 변증법적 대화가 목표를 공유하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면, 리처드 세넷이 강조하는 ‘대화적 대화’는 다름 속에서 오해를 이해의 방식으로 수용하는 단계의 협력이다. 그는 “뒤르켐의 연대, 베버의 윤리와 소명의식,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능력, 부르디외의 실천이성(9쪽)”을 ‘협력’(together)으로 새롭게(쉽게) 변주한다.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유기체적 분업체계
뒤르켐은 사회분업체계를 민주주의의 바탕으로 보았으나, 실제에서 보면 민주주의에 위배된다. 유기체적 노동분업구조가 효율적이라는 관점에서 기능론은 사회 구성원은 각자의 능력에 합당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머리를 담당한 사람이 지력(知力)을 사용하여 구상을 하면, 팔과 다리를 담당한 사람은 실행을 한다. 사회를 이분화하는 분업 체계는 자연스럽게 위계를 형성하여 계급, 지위, 권력을 계층화한다. 팔과 다리 역할을 하는 노동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기계적인 일, 플라톤이 언급한 노예적인 일을 하게 된다. 노예적인 활동이 사회를 위해 유용할지라도 노예는 매우 한정된 기술을 사용할 뿐, 자율적인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자기가 하는 일의 충분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다.
집단의 지적 성장과 사회적 유용성
근대의 노동자 역시 성장의 경험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플라톤의 관점에서 구상하는 철학자, 실행하는 노예를 누가 담당할 것인지는 ‘천성’에 달려 있다. 문제는 이 천성이 사회구조 속에서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이 왜곡되고, 노동자가 소외를 경험한다면, 인간으로서 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천성은 타고나는 것만은 아니다. 반복되는 좋은 습관은 취향이 되고, 취향은 제2의 천성이 된다. 타고난 조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 영혼과 육체, 흥미와 도야, 경험과 사고, 놀이와 학습, 노동과 여가의 이원화를 극복하고 - 개인의 세계의 통합 과정에서 성장해야 한다. 누가, 어떤 일을 담당하더라도 지성의 존엄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력을 쓰는 것과 유용한 일이 통합될 때 성장과 사회적 유용성을 담보할 수 있다. 단지 기계적인 효율성을 높인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월등이 많을 수밖에 없다.
『투게더』는 집단의 ‘생각하는 손’이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관점에서, 협력이 형성되는 과정, 오늘날 협력이 약해진 까닭,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선천적으로 인간 삶의 기예였던 협력이 생존을 위해 요구되었음을 에릭슨과 프로이드 이론으로 설명하고, 어떻게 협력이 삶의 기술로써 활용되었는지 역사적 사례를 분석한다. 어린 아이는 협력을 통해서 자유를 얻는다. “따로 서기 전에 함께 서는 법을 배운다(38쪽). 사회적 존재인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협력은 사회화의 선결 조건이다.
생존의 방식이었던 협력은 산업사회의 불평등이 확산되면서 약화되기 시작한다. 유년기 사회화 기관인 학교에서부터 협력이 사라지고, 삶의 근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함께 생활하는 이들과의 협력과 소통 부재의 자리를 SNS를 통한 피상적인 (보여주는) 관계가 차지한다. 이 과정에서 일과 놀이, 동료와 친구,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가 분리되면서 구상하는 사람과 실행하는 사람이 이원화된다. 노예적 삶에는 “손으로 생각”하는 노동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명령하는 사람과 복종하는 사람이 나뉘면서 작업장은 무례해지고 협력과 신뢰는 약해진다.
비슷한 사람과의 연대인 부족주의는 “협력의 검은 천사”이고, 또 다른 의미의 인종주의다. 불평등이 증가할수록, 계층이 분화할수록 사람들은 남보다 높이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서 더 이상 협력하지 않는다. 학교든 직장이든 어디에서나 사일로 효과(silo effect)가 나타난다. 조직 내에서 유용한 정보와 자료가 서랍과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어도 절대 공유하지 않는다. 왜소해진 인간관계로 인해 조직의 풍토는 척박해진다. 다변화하는 복잡한 사회일수록 협력이 필수임에도 불구하고 협력하는 기술은 사라진다.
자족적인 실행으로서의 협력의 방식
『투게더』는 고프만의 “자족적인 실행”으로써 의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롤랑 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보여주듯 언어가 관계 속에서 어떻게 끊임없이 변주되는지를 떠오르게 한다. 반복을 통해서 상호작용으로 자리한 의례는 행위의 이면을 보게 한다. 악수는 단순한 신체 접촉을 넘어선 의미를 함유하고, 음식은 영양분이 아니라, 사랑이기도 하다. 출근길 부부가 주고받는 “사랑해”는 “잘 다녀오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연극처럼 시간, 공간,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배역을 요구된다.
리처드는 사회학이 실천적 학문임을 이 책에서 명백하게 드러낸다. 협력을 하나의 기술로서 일관되게 탐구하는 그의 자세는 독자를 배려한 글쓰기 방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관찰하지 않는 사람은 이야기를 잘할 수 없다.”(39쪽) 협력을 위해서는 타인의 이야기에 감정을 이입해야 한다. 이것은 상대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단계를 넘어서고, 공동의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변증법적 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이는 대화를 통해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비록 공동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더라도 서로 다른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각자의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대화적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대화적 대화는 오해도 서로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필요하다.
아비투스와 망딸리떼는 리처드 세넷에게 ‘체화’로 구현된다. 음악가의 악기, 노동자의 연장은 사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일부다. 협력을 체화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한 가지 스포츠에 능숙해지거나 수준급의 연주 실력을 갖추거나 혹은 장롱을 만드는 데 숙달되려면 1만 시간을 수련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대략 네 시간씩 5, 6년은 수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시간만 채운다고 해서 반드시 유능한 축구선수나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래 재능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다면, 장기간 노력하여 연습하면 안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322쪽)
자기다운 삶을 지켜나가기 위한 고민을 시작하며
“19세기 역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는가 근대를 ”잔혹한 단순화의 시대“(442쪽)이라고 했듯, 푸코는 근대에 기획된 인간의 얼굴이 조만간 모래밭에서 파도에 쓸려 내려갈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 이후 인간의 삶이 얼마나 ‘인간다움’을 겸비했는지 모를 일이다. 다만 이원화된 사회에서 지력(地力)을 사용하는 노동자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기 삶의 주체로서 나다움, 나답게 사는 일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이에게 선물이 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