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2
메리 셸리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품은 훌륭하나 번역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액자식 구성에, 세 명의 화자(월튼 선장, 프랑켄슈타인, 피조물)라 소설 작법(화법 전환)에 능숙하지 않은 번역자의 한계가 많이 보였다. 이 작품이 1818년도 번역본이고, 메리 셸리가 1931년 공을 들여 1부 도입부를 수정했다 해도 구성과 화법이 아닌 문체였단 걸 감안하면 초반 내용 전개가 덜그럭거리는 건 번역의 문제 같아 안타까웠다(가장 중요한 도입부인데 독서 승차감이 좋지 않다니ㅜ) 그래서 <프랑켄슈타인> 이 버전은 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시대가 좋아?져서 번역본이 꽤 많아졌으니 개정을 기다리는 독자가 얼마나 될지는...

 

 

 

 

 

 

 

 

 


메리 셸리가 여성인 관계로 페미니즘 문학으로 해석하는 노력이 많이 보이는데, 글쎄... 굳이 여성작가로서 해석해 나가기 보다 당시를 산 한 작가가 시대를 소설 속에 녹여낸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소위 여성주의 문학이라 표방하는 작품도 아닌데 페미니즘 해석을 하려 드는 것은, 작품을 오히려 가두는 과도한 비평주의 시각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성작가가, 그 시대에 과학소설을! 할 게 아니라, 만 20세에 이렇게 진지한 인간탐구가 엿보이는 작품을 썼다는 것에 놀라야 할 것이다. 과학은 작가가 이 소설을 표현해내기 위한 도구적 소재로 보는 편이... 과학을 남성의 전유물로 보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메리 셀리는 그것을 공격하기 위해 빅터라는 남성이 피조물을 창조하게 했고 결국 파멸을 블라블라~~ 이런 식이면 또 끝도 없는 논쟁이... 생각해보라. 남성 작가가 이 글을 썼다면 빅터-피조물의 상황과 그 주제에 대해 우리는 더 집중했을 것이다. 메리 셸리가 처음에 익명으로 이 글을 발표한 것도 어쩌면 그런 편견을 피하려 한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비평계에선 이미 그렇게도 보고 있다. 어쨌거나 최대한의 종합적 고찰을 담보한 결과들을 도출하길 바란다.

1818년에 발표된 이후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작품 속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빅터와 피조물을 통해) 인간의 로고스와 파토스의 스며듦과 결합 - 행위와 복수를 통해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닮은 쌍둥이가 된다. 괴물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으로 혼동할 만도...
(피조물을 통해) 인간의 태초성과 변화 - 자연을 만나고 언어를 익히며 인간 사회에 안정적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모습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괴물의 탄생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까지도!
(여성, 피조물을 통해)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양산되는 소수자들에 대한 우리의 통념 고찰 - 페미니즘 주요 관점이 여기 해당될 테지?
이었다.
최근에 본 대니 보일 연출 <프랑켄슈타인>은 이러한 나의 불만을 불식시킬 만큼 멋지게 재해석했다. 내가 위에서 말한 인간의 태초성과 변화 부분은 특히나. 대니 보일은 공포성과 페미니즘 해석 경향성을 덜어내고 메리 셸리 이 작품의 가장 골조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주제의식을 가장 잘 표현해냈다. 내가 죽기 전에 이보다 더 훌륭한 해석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연극이라는 장르 효과도 한몫했다. 거장은 장르 불문하고 멋진 창조를 보여주는구나, 또다시 절감! 대니 보일 씨, 언제나 팬입니다~

<프랑켄슈타인> 이 책은 작품 외에도 좋은 모범 하나를 더 담고 있다. 다른 출판사에도 수록이 되어 있는지 모르겠는데, 메리 셸리가 익명으로 발표했다가 1831년도에 정식 출간하며 쓴 저자 서문이 그것이다. 짧지만 `글쓰기란 무엇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서문 중 몇 문장을 밑줄긋기로 남긴다.

(한가롭지 않아 원래 200자 평만 쓸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또 길어졌군... 흠)

 

ㅡAgalma

 

 

 

...여가이면 소일거리로 `이야기를 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즐거웠던 일은 허공에 성을 짓는 것, 즉 백일몽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을 쫓아가다 보면, 주제에 따라 이어지는 일련의 상상 속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곤 했다. 그렇게 꿈꾼 상상들이 내가 쓴 글보다 더 환상적이고 그럴듯했다. 글 쓸 때 나는 거의 모방자에 가까웠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온전히 그대로 옮겨 적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모방했던 것이다. 내가 썼던 글은 적어도 다른 한 사람 ㅡ 내 어린 시절의 단짝 친구ㅡ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떠올린 상상들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 누구를 위해 생각해낸 것이 아니었다. 내게 그 상상들은 내가 속이 상할 때는 도피처였고 한가로울 때는 더없이 큰 즐거움이었다.

산초(돈키호테의 그 산초)가 말한 대로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앞서 존재했던 무언가와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 힌두교도들은 세상을 코끼리가 떠받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그 코끼리는 거북이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발명이 무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혼돈에서 창조된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물질은 처음부터 있어야 한다. 발명은 어둡고 형체가 없는 재료에 형체를 부여할 수 있지만 재료 그 자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발견과 발명에 관한 한, 심지어 그것이 상상력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콜럼버스와 그의 달걀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발명은 대상의 잠재력을 포착하는 능력과 그 대상에서 연상되는 아이디어를 빚어 형상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궐 2015-03-07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직 못 읽었는데, 언젠가는 <드라큘라>와 함께 원서로 도전해보고 싶어요. 물론 시간은 열 배가 걸리겠죠.ㅋ

AgalmA 2015-03-07 13:08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완벽한 <프랑켄슈타인>을 봤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싶은 저로선 돌궐님 입장이 부러운데요ㅎ 원서까지?! 저는 다른 번역본 마저 언제 보게 될 지 알 수 없네요; 책 사령관이 빨리빨리 도촉중이라;

돌궐 2015-03-07 14:40   좋아요 1 | URL
그저 희망할 뿐 언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이제 겨우 리딩레벨 5~6점대 책 읽는 수준인데 프랑켄슈타인은 10점이 넘어가요. 읽다가 사리 나올 겁니다. 실력을 좀더 쌓은 다음에 읽으려구요.ㅎㅎ
찾아봤는데 12.4 라네요.

AgalmA 2015-03-07 15:50   좋아요 0 | URL
프랑켄슈타인이 리딩레벨이 그리 높은가요@@ 번역물로 본 걸 운이 좋다고 해야 되나요ㅎ 괴테 <파우스트>는 한 30레벨 나오겠네요; 파우스트도 읽을 타이밍을 놓쳐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있는데;

만병통치약 2015-03-0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슈타인이 여성작가였네요. 이래서 어릴때 명작을 읽어야 되나 회의가 듭니다. 어릴때 아동용으로 읽고 ˝읽었다는˝ 착각에 빠져 제대로 읽지 않네요 ^^;;;; 우리 선생님들은 이 책을 19세기의 암울한 상황을 보여준다고 하더군요.

AgalmA 2015-03-08 01:34   좋아요 0 | URL
셸리라는 성 때문에 아마 남성으로 생각하셨을 듯. 그녀의 남편 퍼시 비쉬 셸리가 유명한 시인이였으니까요.
어렸을 때 명작 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요; 기억이 안나요-_-; 그래서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정말 헷갈릴 때가 많아요... <적과 흑> <좁은 문> 그런 작품...단 한 문장도 안 남아 있다는ㅜ...어렸을 때부터 독서일기를 썼더라면 좋았을걸 많이 아쉬운 일...
19세기 후반에 마르크스가 혁명하자 할 정도였으니 서민들의 삶이 이만저만 했겠습니까마는, 다윈의 진화론, 프로이트 심리학 등 학문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다이나믹했던 거 같아요.

cyrus 2015-03-07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프랑켄슈타인>이 1818년 판본을 개정해서 나온 1831년 판본, 이렇게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문학동네의 <프랑켄슈타인>도 1818년 판본을 번역한 것이라고 책 정보 공유하는 페이스북 그룹에 본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1831년 판본을 주 텍스트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저는 황금가지 출판사의 <프랑켄슈타인>을 가지고 있는데 초판 서문과 1831년 서문을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AgalmA 2015-03-07 23:53   좋아요 0 | URL
오, cyrus님, 도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읽은 문예출판사 판본도 1818년 판본이더군요. 서문도 앞에는 남편 셸리 시인의 것, 뒤에는 메리 셸리의 것 이렇게요. 황금가지가 1831년도 번역본이면 비교해보기 좋겠군요

에르고숨 2015-03-07 2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본 영화로는 그냥 `공포`였는데 문학으로 접한 작품은 웬걸, `우울`이더군요. 저는 황금가지 판으로 읽었는데 저자 서문이 31년, 17년 것이 다 실려 있어요. 발췌문만 보아도 황금가지 판과 꽤 다르네요. 3별은 `덜그럭`거리는 번역 때문이지요? 흙, 위로를- 대니 보일 연출 연극을 보셨다니 부럽습니다.

AgalmA 2015-03-08 01:5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영화나 어린이용 공포물로 접한 작품들이 실제 원작으로 접하면 대개 우울의 정조가 강하더군요. 작가가 1831년 정식 출간 시 1818년 판본의 문체만 거의 수정했다고 밝혔으니 이 화법 전환의 덜그럭거림은 명확히 번역의 문제라고 봅니다.
아, 대니 보일 연극 좋았어요. 전 컴버배치-피조물 버전(분장도 분장이지만, 생김이나 몸짓 싱크로율이 완벽!)봤는데, 진심 멋지더라능! 음...대니 보일 <프랑켄슈타인> 자막까지 어둠의 경로로 돌아다니고 있다고는 합니다...(쿨럭;)
 

 

1.  소 · 통 · 이 · 란 ·  ·  ·  · 없 · 다

 

입을 여는 순간 '상대'는 사라진다. 오로지 자신에 취한 입들.   

그에 따라오는 코멘트에 답할 수밖에 없는 我 비련이여.

소통이란 너와 나 대화의 조율을 통한 긍정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의 간극과 침묵을 수긍하는 평행에서 실현된다.  

입을 여는 나와 너의 추함을 견디는 것 자체가 삶이다.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을 사랑에 올인시키는 통속 또한 인간의 환상에 지나지 않다

내 발화에 즉각 발생할 어떠한 부정도, 긍정도 나는 말릴 생각도, 수도 없다

자신의 환상에 이렇게 끝없는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생물체가 또 있을까.

생존은 부차적인 문제로 보인다.

 

 

 

 

『죽음의 선고』의 방 안에서 그와 그녀는 다가가면서 멀어지는 무한함이 된다. 조르주 바타유가 사망했을 때 모리스 블랑쇼는 「우정」이라는 글에서 "우리가 한 모든 말들은 단 하나를 긍정하는 데로 나아간다. 즉 모든 것이 지워져야 한다는 것. 우리 안에 있으면서 모든 기억을 거부하는 어떤 것이 이미 따라가고 있는 이 움직임에, 지워져 가는 이 움직임에 주목함으로써만 우리가 충실한 자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워짐으로써만 남을 수 있는 사태, 그것이 나다.

NADA(스페인어 : 無)

 

그녀는 하나의 생각처럼 자유롭게 내 앞에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있었으나 이 세상에서 내가 여전히 그녀를 만나는 것은 그녀가 나의 생각이기 때문일 뿐이었다.

 

 

​- 모리스 블랑쇼『죽음의 선고』 

 

 

 

 

 

2.   3 · 월 · 이 ·  ·  ·  · 온 · 다

 

2012년 2월에 나는 소 · 통 · 이 · 란 ·  ·  ·  · 없 · 다고 생각했다. 그 이전에도 그랬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3월이 왔다. 머리카락이 길어졌다 짧아졌고, 여러 해가 바뀌고, 그래서 소통은 어찌 되었더라,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오늘은 ​데라야마 슈지의 詩를 다시 찾아 읽으며 사라지려는 자의 기억을 본다.

「하라다 요시오의 노래」는  데라야마 슈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육필 원고다. 그는 3월에 죽었다. 수많은 그, 그녀가 3월에 죽었다. 4월에도 죽었다. 5월에는 더많이 죽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내일은 2015년의 3월이 시작된다.  사라진 그들은 더더 말이 없고 아름답고 나만 혼자 남은 기분, 유감이다. 유감이다. 유감이다.

 

 

 

 

 

 

 

 

 

 

하라다 요시오의 노래

 

세상에는 두 가지 인간이 있다

묘를 파는 사람과 묻히는 사람
누가 말했는지 잊었지만 그런 영화의 대사가 있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빙긋이 웃었다.
하라다 요시오는 ‘묘를 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묘를 판다는 건 이미지로는 어둡다. 허무하다.
그러나 노동임에는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웃통을 벗어젖힌 가슴에 땀이 배어나고,
맨발로 묘를 팔 때의 하라다는 제법 섹시하다.
그럴 때 하라다는 어떤 노래를 부를까?

 

땅끝까지 자고 다닌 남자.
잠이 깨면 그곳은 ‘슬픈 열대’다.

 

게으름과 성실, 지골로와 무정부주의자,
일꾼과 가난뱅이 시인, …다양한 대립을 하나의
인격 안에서 대립한 채 방치해 둘 때, 하라다는 배우가 된다.
정체를 감춘 ‘군중 속의 한 얼굴’.
그러나 감출 수 없는 살아 있는 하라다를 나는 사랑한다.
존 포드의 ‘남자의 적’ ‘끝없는 항로’ ‘분노의 포도’와 같은,
기막힌 남자의 영화를 연출하는 것은
하라다밖에 없지 않을까.

 

하라다를 위해 쓴 시가 있다
하라다가 콘서트에서 불러준 노래다.

 

이제는 노래하지 마,
그 노래는
이제 잊어줘
가을바람에

 

그래도 때로는 생각난다
같은 날 형무소를 나온 녀석
지금은 어쩌고 있을까
여동생을 찾아가고는 뚝

 

‘사과 가르기’를 좋아했다
언제나 혼자서 노래했다
그러다가 나도 외웠다
아직 보지 못한 즈가루를
동경하며
동경하며

 

이제는 노래하지 마
그 노래는
이제 잊어줘
그런 녀석

 

하라다의 ‘사과 가르기’는 절품이다. 세상에는 역시 두 가지 인간이 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그 시를 쓰는 사람.

 

그런데 나는 몸이 망가져 도박만 하고 있다
어차피 ‘묻히는 자’에게는 앞이 보인다
바닥 모르게 한없이 밝은 기분이지만
일주일에 닷새는 병상에서, 나머지 이틀에 할 수 있는 일은
선물할 꽃을 생각하는 정도다.
들으러 갈 수는 없지만, 정말로 유감이다,
유감이다, 유감이다
 

 

 

 

 

 

'분열'은 그의 형편없는 기억력이 궁색하게 숨기는 어떤 재난의 이름이다.

 

잠과 죽음을 서로 연결해 주는 것은, 둘 다 손님들에게 1인실만 갖춰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 율리 체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3.   더 · 멀 · 리 · · · · 가 · 줘

오 늘 은  잠 과  죽 음 을  분 간 할  수  없 을  정 도 로  내 내  졸 렸 고,  가 끔  살 아 있 다 는  신 호 로  농 담 을  했 다.  이  정 도 면  이  하 루 도  괜 찮 은  거  아 닌 가 요 ?  블 랑 쇼 씨 ?   슈 지 씨 ? 

우 · 리 · 는 ·  ·  ·  · 그 · 렇 · 게 ·  ·  평 · 행 · 하 · 게 ·  ·  ·  ·  서 · 로 · 에 · 게 ·  ·  점점 ·  ·  멀 · 어 · 지 · 면 · 서  ·  ·  ·  · 가 · 까 · 워 · 지 · 고 ·  ·  있 · 다 · 고 ·  ·  ·  · 더더  ·  · 다 · 가 · 가 · 고 ·  · 더더 ·  · 멀 · 어 · 지 · 고 ·  ·  싶 · 어 · 진 · 다 · 고 ·  ·  3 · 월 · 이 · 면 ·  ·  좀더 ·  ·  가 · 능 · 할 · 까  ·  ·  ·  · 이 · 것 · 은  ·   ·    ·  환 · 상 · 을 ·  ·  위 · 해 · 서 · 인 · 가 ·  ·  ·  실 · 재 · 를 ·  ·  위 · 해 · 서 · 인 · 가 ·  ·  ·  · 

 

 

 

ㅡAgalma

 

 

 

 

 

 

 

 


댓글(7)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병통치약 2015-02-28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감성이라니 4월도 기대하겠습니다. / 요즘만큼 소통 소통하던 시대가 또 있었을까요?

AgalmA 2015-03-01 00:52   좋아요 0 | URL
으헉, 4월...또 금방이겠죠? 그러게요. 소통, 소통...저도 알라딘 와서 참 많이 외쳐댄 거 같은데, 왜 자꾸 한밤중의 숲속에 있는 기분이 드나 모르겠어요. 현실에서든, 어디든.
만병통치약님의 세상사 책 이야기가 내일도 있으려니 하며 또 잠을 청해야 겠네요ㅎ?
좋은 밤, 좋은 꿈 꾸세요.

수이 2015-03-01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정확히 딱 제 마음_ 그러고 보면 아갈마님께는 번번이 마음을 들켜버려요. 정확히는 아니 이건 내 마음이 아니라 아갈마님 마음이잖아! 근데 왜 내 마음을 들켜버렸다고 아뿔싸! 하는 걸까요_

AgalmA 2015-03-02 00:23   좋아요 0 | URL
같은 시대를 고민하고 살아가는 사람 마음이 대개 그런가 봅니다...한국의 특수성이란 거도 있고요. 저도 이웃분들 글 보며 그런 생각 종종 하니까요~_~

AgalmA 2015-03-02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월 3일 사망한 조르주 페렉을 깜빡한 게 아쉽다...굳이 선택한 건 아니었겠지만, 치열한 배치로 유명한 그다운 날짜 아닌가...3월3일... 그의 첫소설 <사물들>(1965)을 다시 읽어보기로 하다. 절판된 세계사 버전과 펭귄클래식은 무엇이 다를까. 옮긴이도 다르고, 시대도 많이 달라졌으니 번역의 정서도 달라졌을 것이다. 첫 책이 <인생사용법>이 아니라 어찌나 고마운지ㅎ;;

에르고숨 2015-03-02 13:05   좋아요 1 | URL
ㅋㅋㅋ<인생사용법>은 좀 길...죠? 봄과, 댓글에서 페렉을 언급해주시니 3월에는 저도 <인생사용법>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집니다.
이성과 감성이 팽팽하게 아름다운 글. 오. 감동이. `살아있다는 신호로 농담을` 이런 표현은 훔치고 싶을 정도로 막 좋습니다, 아갈마 님.

AgalmA 2015-03-02 16:27   좋아요 0 | URL
네, 도전 마구 부탁드립니다ㅎㅎ 페렉을 같이 읽는 친구를 아직 가져보지 못해서요.
전 인생사용법 몇번째 시도했지만 다 읽지 못해 매번 다시 시작요^^;;;
에르고숨님 자주 뵈니 좋아요. 봄볕같은 친구세요 :)
넉넉히 주신 과찬은 냠냠 할께요. 흐
 
안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1
미겔 데 우나무노 지음, 조민현 옮김 / 민음사 / 200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빅토르 고티의 서문 中 

(p17) 엄밀한 의미에서의 철학적인 사고는 신학 속에 파묻혀 수도원에서 잠자고 있었다. 에로티시즘과 형이상학은 동시에 발전한다. 종교는 전투적이며, 형이상학은 에로틱하고 관능적이다.

 인간을 전투적이고 호전적이게 만드는 것이 종교성이거나 아니면 인간을 종교적이게 만드는 것이 전투성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에게 별 중요하지 않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형이상학적 본능이다. 결국 이 원죄가 인간을 관능적이게 만들었고, 이브처럼 선악을 알려는 열망인 형이상학적 본능을 일깨운 것 또한 바로 이 관능성이다. 그 후에 전투성의 관능성에서 탄생한 종교의 형이상학, 즉 신비주의가 나타난다.

 크세노폰이 『회상』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누었던 저 아테네의 창녀 테오도타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진리를 탄생시키는 산파술을 개발한 소크라테스의 진리 탐구 방법에 열광하여 그에게 자신의 중매쟁이가 되어 남자 사냥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리스어 교수인 우나무노 선생님에 따르면 테오도타의 남자는 사냥의 동반자인 신테라테스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처럼 흥미롭고 교육적인 정보는 그에게 빚진 것이다.) 창녀 테오도타와 산파술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매우 흥미로운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철학이 상당 부분에서 매춘업이며 매춘업 역시 철학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두 직업 사이의 내적인 연관성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이 소설의 주제는 꽤나 일찍 나오는데 그것은 우나무노의 성마른 특질에서 비롯된 듯하다. 

빅토르 고티에게 서문을 맡겨 놓고 곧바로 뒤에다 고티의 서문이 맘에 안 든다고 투덜대는 서문을 다는 거 보고는ㅋㅋ

『안개』의 주제는 바로 아래 34페이지에 직접적으로 나온다.

 

 

(p34) 주님, 매일 매일의 무수한 사물들을 저에게 주옵소서. 인간은 심한 고통이나 큰 기쁨에는 굴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고통과 기쁨은 사소한 사건들로 구성된 거대한 안개 속에 감추어진 채 닥치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안개 같은 것. 인생은 구름 같이 모호한 것이다.■

 

 

내가 본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아우구스토의 현학적 철학이 어떻게 사랑과 현실을 재단하고 비극을 자초하는가이다.

자주 느끼지만 사랑과 찌질함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 같다. 철학과 현실의 관계처럼.

요즘 헤겔을 읽고 있는데, 그동안 풍문으로 들었던 것과 매우 판이했다. 정-반-합도 도식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입문서나 해설서의 2차 터널로 우회하지 말고 번역의 1차 터널만 감수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또다시 했다.

....안개 속을 헤쳐 해를 건지려는 헤겔.

오, 철학이여.

 

ㅡAgalma

 

 

 

 

 

 

(p25~26) 우산을 케이스 안에 있을 때는 잘 접힌 채 맵시있고 우아한데, 펼치면 미워 보인다.

  아우구스토는 생각했다. '인간이 사물을 이용한다는 것, 즉 그것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다. 사물의 가장 숭고한 기능은 단지 그것을 바라볼 때에 있다. 먹기 전의 오렌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러한 문제는 우리 모두가 천국에서 진지하게 신을 명상하고 신 안에서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바뀔 것이다. 여기 이 가련한 인생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신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신을 이용하는 데 급급하여 우산을 펴듯 신을 펴서 모든 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려고 할 뿐이다.'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는 바지를 걷어 올리려고 몸을 굽혔다. 그리고 마침내 우산을 펴고,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오른쪽으로 아니면 왼쪽으로?' 왜냐하면 아우구스토는 보행자가 아니라 인생을 산책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p122) "인생이야말로 유일한 인생의 스승이야. 그보다 나은 교육은 없어. 오직 살면서 사는 법을 배우는 거야. 인간은 각자 새로운 인생 수업을 다시 받아야 해……"

"그렇다면 많은 세대가 수세기에 걸쳐서 남겨놓은 유산은 어떻게 되지요?"

"유산이 있다면 환영과 환멸, 그 두 가지밖에 없어. 그 두 가지는 우리가 조금 전에 만난 곳에서만 발견되지. 성당에서만 말이야. 확신하건대 자네를 그곳으로 데려간 것은 큰 환영 아니면 큰 환멸일세."

"두 가지 다지요."

"그래그래, 둘 다지. 왜냐하면 환영과 희망은 환멸과 추억을 낳고, 환멸과 추억은 또한 환영과 희망을 낳지. 친애하는 아우구스토, 과학은 현실이고 현재야. 이제 나는 결코 현재에서는 살 수 없어. 나로 말미암아 희생된 내 가련한 아폴로도로ㅡ이 말을 할 때 그는 목이 메었다ㅡ죽은 이후로, 그러니까 자살한 이후로 내겐 어떤 현재도 없어. 어떤 과학도 어떤 현실도 내겐 아무런 가치가 없어. 난 그 애를 기억하면서 또는 기다리면서 살 수밖에 없네. 그래서 모든 환영과 환멸의 집에 머물러 있는 걸세. 성당에 말이야!"

"그렇다면, 지금 신앙이 있으시단 말인가요?"

"난들 알 수 있나!"

"그럼 없으시다는 건가요?"

"내겐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기도를 하는 것은 알고 있지. 그런데 내가 무엇을 기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해 질 무렵 묵주기도를 드리러 성당에 모이는 사람들이 몇 명 있지.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몰라, 그들 역시 나를 모르지.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내적인 교감을 바탕으로 연대감을 느끼고 있어. 지금은 돼먹지 못한 인간들에게 천재들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하네."■

 

 

 

(p276) "희극에서는 자신을 왕이라고 믿는 자가 그 역을 맡게 되지."

"그런데 자넨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자네 기분을 풀어주려는 거야. 게다가 아까 말한 것처럼 만일 우리 얘기를 듣고 있는 숨어 있는 소셜가가 그것을 재생하기 위해 기록해 두었다면, 소셜의 독자는 비록 한순간일지라도 자신의 실체를 의심하게 되어 우리와 같이 자신이 단지 소셜적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게 되지."

"그것은 어째서지?"

"그를 위해 내기 위해서지."

"그래, 나는 예술의 가장 구원적인 요소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 기분 전환하고 고통을 잊기 위해서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지……"

"아니야, 예술의 가장 구원자적인 요소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하는 데 있어."

"존재한다는 것이 뭔데?"

"자, 보라고. 이제 너는 치료가 되는 중이야. 너를 삼키기 시작하고 있어. 이런 질문이 그걸 증명하는 거야. '사느냐 죽느냐……!'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인물 중 하나인 햄릿이 한 말이지."

"그런데, 빅토르. '사느냐 죽느냐.'라는 말은 내게 항상 엄숙한 공허로 보일 뿐이야."

"문장은 심오하면 심오할수록 더욱 공허한 법이지."

"바닥이 없는 우물보다 더 심오한 것은 없어. 자네가 보기에 가장 진실한 것은 뭐지?"

"음…… 음…… 데카르트의 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니야. 그것은 단지 이런 말이야. A는 A와 동일하다."

"하지만 그 말은 아무것도 아닌데!"

"그렇기 때문에 가장 진실한 것이야. 왜냐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지. 그러나 너는 데카르트의 저 헛소리를 그렇게까지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그렇고말고……!"

"좋아. 그걸 말한 사람이 데카르트였나?"

"그렇지!"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야. 왜냐하면 데카르트는 단지 허구적 존재로 역사에 의해서 만들어졌어. 그렇기 때문에…… 그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러면 누가 그 말을 했어?"

"아무도 그 말을 한 적이 없지. 그것은 그 자체로써 말해졌던 거야."

"그렇다면 존재하고 사고했던 것이 생각 그 자체였단 말이야?"

"물론이지! 생각해 봐. 그건 존재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

"그렇구나!"

"그러니 아우구스토, 생각을 하지 마.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만일 계속 생각하게 되면……."

"그러면?"

"너를 삼켜버려!"

"말하자면 자살하란 말이지……?"

"거기까진 끼어들고 싶지 않아. 잘 있어!"

빅토르는 골똘히 생각 속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아우구스토를 남겨둔 채 나가버렸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메이카의 열풍 문지 푸른 문학
리처드 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첫 문단을 읽는 순간, 나는 사랑에 빠질 것을 예감했다.

  

 

 

(p7) 서인도제도에서 노예해방이 얻은 결실 중 하나는 수많은 폐허다. 폐허는 아직도 남아 있는 집에 딸려 있는 경우도 있고, 거기서 돌멩이를 던지면 닿을 곳에 있는 경우도 있다. 노예들이 살던 곳, 사탕수수를 압착하여 즙을 내던 곳, 그 사탕수수즙을 끓이던 곳은 모두 폐허가 되었고,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드는 저택들도 대부분 폐허가 되었다. 지진과 화재와 폭풍우, 그리고 극성스러운 식물들이 저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재빨리 해치웠다. ■

 

  

  폐허를 사랑하는 내 취향에 흡족할만한 시작이었고, 침착한 내레이션 화자를 통한 군더더기 없는 서술은 더욱 신뢰감을 주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작가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듯 여러 마술들을 펼치기 시작한다. 작가 리처드 휴스(1900~1976)가 방랑과 유랑 속에서 체험했을 법한 에피소드들이 소설 속에서 매력적으로 재탄생한다. 참고로 휴스의 어머니는 자메이카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바닷가 만에서 에밀리가 체험한 지진, 모든 걸 평등하게 만드는 허리케인의 광경, 깨어진 채광창으로 차례로 뛰어 들어온 살쾡이 12마리가 저녁 식탁을 어지럽히며 절망적으로 울부짖는 사냥감을 쫓는 광경, 말과 노새가 함께 묶여 우스꽝스러운 행보가 되는 사륜마차, 병아리 한 마리가 전갈을 밟고 쓰러져 죽어버리는 모습, 이상한 한숨을 쉬는 거북이……이 놀랄만한 묘사들이 초반 50페이지 속에 들어있다. 이쯤에서 나는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작가는 나를 비웃듯 선장의 편지와 함께 추리소설과 모험의 세계로 방향키를 바꾼다. 폐허에서 갑자기 펼쳐진 바다!  에드거 앨런 포 + 세르반테스 + 허만 멜빌이라고 하면 당신은 어떤 식일 거 같은가. 이 조합은 기묘하고 재미난 상황들로 끝나지 않는다. 작가의 촌철살인 철학들이 해적선처럼 기습한다.

 

 

 

 

 

(p66)    철학적으로 말하면 출발하는 항구의 배는 도착하는 항구의 배와 똑같다. 두 배는 존재하는 시간과 장소가 다르지만, 실재의 정도는 다르지 않다. ‘따라서영국에서 날아올 첫번째 편지는 이미 쓰인 거나 마찬가지다……아직 읽을 수 없을 뿐이다. 아이들을 보는 것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같은 논법을 노년과 죽음에 적용하려 해도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p131)   아이들과 그들을 새로 맡아서 돌보게 된 어른들의 관계에는 한 가지 단계가 있다. 처음 알게 된 뒤부터 처음 꾸지람을 받을 때까지의 단계다. 이 단계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에덴동산에서의 원초적 순진무구함뿐이다. 일단 꾸지람이 가해지면 이 단계는 절대로 다시 회복될 수 없다.

 

(p150)   그녀는 하느님에 대해 항상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하느님의 정체성 문제는 그녀 자신의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여겨졌을 뿐 여전히 애매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녀 자신이 하느님이 아닐까? 그녀가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일까? 하지만 애를 쓰면 쓸수록 그것은 그녀의 손에 잡히지 않고 교묘히 빠져나갔다. (자기가 하느님인지 아닌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그렇게 중요한 점이 생각나지 않다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래서 그녀는 그 문제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아마 나중에 다시 생각날 것이다.

 

(p172)    로라의 내면은 정말로 전혀 달랐다. 그것은 말로는 거의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하고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것이었다. 올챙이에 비유하면, 다리는 점점 자라고 있지만 아가미는 아직 떨어지지 않는 상태였다. 거의 네 살이 다 되었으니 어린이인 건 확실했다. 어린이는 인간이다(‘인간이라는 낱말에 넓은 의미를 허락한다면). 하지만 로라는 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아기는 물론 인간이 아니다……아기는 동물이다. 그리고 고양이나 물고기나 뱀처럼 아주 오래되고 세분된 문화를 갖고 있다. 아기는 이들과 같은 종류지만, 훨씬 복잡하고 원기왕성하다. 아기들은 결국 하등 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발달한 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기들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말과 범주로 작동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것을 인간의 마음이 갖고 있는 말과 범주로 바꿀 수는 없다.

아기들이 인간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공정하게 말하면, 아기보다는 대부분의 원숭이가 더 인간적이다.

잠재의식 속에서는 아기가 동물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기가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할 때 왜 사람들은 항상 사마귀가 사람 비슷한 행동을 했을 때처럼 웃겠는가? 아기가 덜 발달한 인간일 뿐이라면, 그것은 조금도 우스꽝스럽지 않을 것이다. ■

 

  

  책을 덮을 땐, 데이비드 셀처 오멘을 읽고 난 뒤처럼 서늘하고 착잡한 뒷맛이 남았다. 그 책이 데미안악마를 섞어놓았듯이, 자메이카의 열풍각종 리뷰들의 수식처럼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들)’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이 작품은 1929년에 발표되었다. 즉 리처드 휴스는 양차 세계대전을 다 겪은 세대로서, 인간에 대한 깊은 물음으로 작품을 썼을 것이다. 죽기 전에 인간의 궁지’ 3부작(다락방의 여우(1961), 나무로 된 여자양치기(1973), 3권은 작가 사망으로 미완성)을 발표하려 했었다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리처드 휴스는 모든 상황에 처하는 인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제어불가능한 모순같은 아이性’를 통해 인간 본질에 대한 현상학을 보여주려 했다. 지진 이후 몰려오는 허리케인처럼 말이다.

  내가 홀로 있었던 9살의 산 속, 10살의 빈 바닷가에서의 경험은 정확히 에밀리의 지진과 같았으며, 나는 그 속에서 분명 신이라 불릴만한 그 무엇과의 접촉을 느꼈고, 그것은 아직도 끝나지 않는 지진이다. 이것은 장 그르니에가 - 의 매혹에서도 말한 바 있는 그것이다. 누구든 이런 경험은 평생 가져가야 하는 경험이며, 평생 함께 해야 하는 아이이다(童心이 아니다).  ‘아이性’은 다른 말로 '인간의 근원성'이기도 할 것이다. 이 물음을 실고 자메이카의 열풍』은 이곳에 85년 만에 도착했다.

 

 

 

ㅡAgalma 

 

 

 

 

 

 

 

 

 

 

 

 

 

 

 

 

 

 

 

 

 

 

 

 

 

 

 

 

 

 

 

 

 

 

 

 

 

 

 

 

 

 

 

번역에 대한 생각

파스칼 키냐르의 신비하고 난해한 울림들을 아름답게 풀어주던 송의경씨, 바슐라르 공기와 꿈에서의 정영란씨,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와 어빙 스톤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를 시처럼 전달해준 최승자 시인처럼, 리처드 휴스 자메이카의 열풍을 김석희씨가 번역한 것은 다행하고 아름다운 조합이었다. 작가가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건조하면서도 풍부한 사유의 매듭들을 김석희씨가 가감없이 보여 주려하는 것이 느껴진다.

모비딕(2011, 작가정신)을 김석희씨가 번역한 걸로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E-Book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 형식이 내겐 책읽기의 즐거움을 너무도 떨어뜨려서 E-Book 적극 활용자들이 부럽다는...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irdky 2015-01-3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걸 평등하게 만드는 허리케인이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정말 그렇군요. 아이성이라는 말의 뜻이 참 궁금하네요.

AgalmA 2015-02-02 05:12   좋아요 0 | URL
˝아이성˝은 제가 만든 말입니다. 어디서 누군가 비슷하게 말했을 수도, 지금도 말하고 있을거예요. 사람 생각이 참 비슷비슷하잖아요? 모두 정확히! 다르게!를 외치곤 있지만^^ sirdky님이 인상적이라 말씀해준 표현도 작가가 딱 그렇게 말하도록 표현해줘서 제가 그렇게 말한 거죠. 여기서 누가 더 정확하고, 뭐가 다르다고 해야할까요? 그럴 때 전 꼭 그렇게 갈라야하나 싶을 때가 있어요ㅎ 이미 모든 작가들은 모든 작가들에게서 태어나고 닮지 않았는가!
sirdky님도 책 여러가지 많이 보시니까 잘 아실 겁니다. 여러 책을 보다보니 어휘들이 하나둘 모이고 ˝아이성˝ 같은 자신만의 돋보기, 삼각자, 신발, 가방같은 살림살이, 도구 같은 게 생기죠. 저는 아직 언어여행중이니 어디에 어떻게 도착할 지 잘 몰라서 뭐라 확답을 드리기 어렵네요...지금은 ˝인간의 근원성˝ 정도로 지도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죠 :)

sirdky 2015-02-01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같은 생각이라도 표현이 다르니 정말 아이성이라는 생각도 어딘가에서 다르게 사용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ㅎㅎ책을 읽다가 비슷한 것이 나오면 Agalma님을 생각하겠습니다.
 

 

 

*

나는 깨알같은 글씨(7~8포인트)의『코스미코미케』(김운찬 역, 열린 책들 총 382페이지)로 읽었는데,

『코스미코미케』가 A5 판형이었던 걸 감안하면

최근작이 어떻게 이보다 더 작은 B6 판형에다 글자는 더 커지고(9~10포인트) 페이지수가 더 줄어든『우주만화』로 출판되는지 의문이다. 최근 번역 192 페이지는 더 경악스럽다.

 

김운찬 역, 열린책들, 2009, 총 331페이지

B6, 128*188mm

 

 

 

 

 

 

 

 

 

 

 

 

이현경 역, 민음사, 2014, 총 192 페이지

규격외 변형

 

 

 

 

 

 

 

 

 

 

 

 

 

 

이탈로 칼비노 책을 원문으로 볼 능력이 안되니, 시장에 따라 재편되는 걸 그저 지켜보지만

최소한 칼비노 『우주만화』를 보려고 하는 독자는『코스미코미케』 또한 찾아봐야 될 거라는 점을 알린다.

나또한 『코스미코미케』 최초 번역물을 본 게 아니라고, 초판본엔 축소된 부분(조상 관련)이 더 있다는 소릴 책사냥꾼?에게서 들었다.

『코스미코미케』조차도 큰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밖에 없는 열악함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자꾸 조각조각나는 걸 우리 독자들은 알아야 할 것 같다.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생각나네ㅡㅜ....

 

현재 『코스미코미케』를 빌려볼 수 있는 서울권 도서관

-강서도서관, 도봉도서관, 고덕평생학습관, 마포평생아현분관, 송파도서관, 양천도서관, 남산도서관, 개포도서관

 

 

 

ㅡAgalma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5-01-2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왜 자꾸 이탈로를 이탈리라고 부르는 걸까...코스미코미케가 외우기 더 쉽다니...
이러는 와중에 이웃들도 다산을 다신으로, 소돔을 소동으로, 김태용을 김용태로 오타 대소동...

수이 2015-01-27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탈로 칼비노 원문으로 읽고 싶어서 이탈리아어 3개월 공부하다가 때려치운 기억이 납니다_ 아 부끄러워라, 그나저나 정말 원문으로 읽으면 어떨까요?

AgalmA 2015-01-27 14:08   좋아요 0 | URL
저도 불어공부 3개월쯤 하다 발음에서 완전 좌절요ㅜㅜ...프랑스어는 늘 배우고 싶은 언어라...스페인어랑 포르투칼어는 친숙하고 재밌던데, 이탈리아어는 전혀 접근을 안해봐서 정말 감을 못 잡겠어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이랑 기질도 비슷하니 왠지 문체에서도 그런 느낌 나지 않을까 홀로 망상에...ㅎ

수이 2015-01-28 10:02   좋아요 0 | URL
스페인어랑 이탈리아어랑 좀 비슷해서 스페인어 하셨으면 이탈리아어도 금세 배우실 수 있어요. 프랑스어는 전 좋던데 ㅋㅋ 발음 때문에 중도 포기하는 이들 많아요. 이탈리아 남자들이랑 한국 남자들이랑 비슷한 게 많은 거 같아요. 음 외모로는 어느 쪽이 우위라고 말하기는 좀...... :)

AgalmA 2015-01-28 10:24   좋아요 0 | URL
좋은 거랑 잘 하는 거랑 별개라는 거 언어 공부에서도 여실히 느꼈습니다ㅎ
요즘은 외모가 대부분 평준화되어서 ㅎ
그런데 이탈리아 얘기가 나와서 생각해보니 다빈치부터 해서 과학, 음악, 조각, 영화 온갖 예술장르의 백과사전 나라에서 알려진 대표작가가 에코 정도라는 게 이상해요. 칼비노는 마이너리그 스타라고 생각되고요.
그 문화분위기 답게 거의 모든 걸 통달한 작가의 능력이 세삼 이해가 되기도...
역시 종교문제인가...
그런데 야나님도 참 특이하시네요. 이탈리아어 공부해보려 했다는 사람은 처음 봐요.

수이 2015-01-28 21:48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에서 이탈리아어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제한되어 있어요. 제가 이탈리아 문화원까지 다녀왔는데요 Agalma님_ 문학 하는 이들은 거의 없고 다 성악하는 사람들 뿐이더라구요. 서강대에서 이탈리아어 가르치는 분들도 그냥 이탈로 칼비노 읽으려고 왔다고 하니까 대한민국에서 너 하나뿐이라고 하더라구요. 다 성악 쪽이지. 근데 제가 참 그때 궁금했던 건 말이죠. 아니 대한민국에서 성악하는 이들이 한둘도 아닌데 왜 이탈리아 문학은 그리 천대시하는걸까 그거였어요. 대한민국에서 이탈리아어 배우려면 성악하는 이들 제외하고는 거의 길이 막혔다고 봐도 괜찮을 거 같아요. 길의 폭과 길의 길이를 스스로 제한하는 대한민국_ 제가 3개월 동안 느낀 이탈리아어 학습도입니다. 이탈리아어 전공하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하구요.

우끼 2016-01-22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따라 Agalma 님 서재에 남겨진 칼비노의 말˝우리의 일시적인 사고 방식에 대해 우스꽝스러운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그 기호가 나는 부끄러웠습니다.˝가 너무 공감이 되어, 책을 읽고 싶어 찾다가 이 페이퍼를 열었습니다. ...저도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네요 ㅠㅠ 저 글귀가 어느 책에 나오나요?

AgalmA 2016-01-22 17:37   좋아요 1 | URL
칼비노의 그 문장은 제 인생에서 끝까지 가져갈 인생지침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늘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화두죠.
<코스미코미케>에서 만나실 겁니다^^
<우주만화>로 재출간된 책은 사놓고 아직 안 읽어봐서 이 문장이 있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