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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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식 선생의 책을 읽다보면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단어는 우리에게는 낮선 단어이기 때문에 서경식 선생의 책을 읽다보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디아스포라(Diaspora)>의 뜻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이산(散)을 뜻하는 그리스어'이자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가르키는 말'이지만 현재에는 광범위하게 '이산의 백성'을 가르키는 소문자(diaspora)로 쓰인다고 한다. 이를 이해해야 서경식 선생 저술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아이덴티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서경식 선생은 프롤르그에서 '이 책은 한 사람의 디아스포라가 런던, 잘츠부르크, 카셀, 광주 등을 여행하면서 각각의 장소에서 접한 사회적 양상과 예술작품을 테마로 현대의 디아스포라적 삶의 유래와 의의를 탐색하려고 한 시도'(p.15)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디아스포라적 삶의 유래와 의의'를 찾게 되는데 특히 대표적 디아스포라인 유대인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다만 이런 점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대한 글쓴이의 비판을 약하게 만드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 중에서는 김지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눈에 띈다. 즉 1970년대 한국 민주화투쟁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민족/민중문학론(대표적으로 김지하와 백낙청)이 파시즘과 정서 및 이론을 공유하여 국수주의/파시즘적 사상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p.72~73) 또한 한국의 민중신학이 '선민사상'을 공유해 일종의 자기중심주의, 나르시시즘에 전도되어 있다는 우려도 서경식 선생은 하고 있다. 이런 점은 분명 일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한민족을 '성배의 민족'이라 주장하는 김지하 시인의 글은 정말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런 주장은 결국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과 과거 나치하 독일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데니스 강이라는 코리언 디아스포라의 퍼포먼스에 대한 이야기(p.228)가 있는데 이를 볼수록 "모든 예술은 쓰레기다."라는 생각이 더욱 더 견고해진다. 사실 이런 퍼포먼스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알겠지만 굳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그저 관심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생각만이 들고 오히려 혐오감이 들 뿐이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디아스포라(diaspora)>의 뜻을 알고 서경식 선생이 왜 이렇게 이 단어에 목을 매는지 알게되었지만 사진과 그림이 글과 어울리는 위치에 있지 않은 점이나 중간에 2군데나 파본이 있는 점은 이 책의 편집과 인쇄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서경식 선생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디아스포라(diaspora)>의 아이덴티티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책이니 만큼 일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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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한 과학
토머스 루이스 외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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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위한 과학>이라… 솔직히 말하면 조금 외설적인 제목 아닌가? 맨 처음 '뇌과학' 관련 서적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드렸을때 이 책이 들어간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물론 '사랑''뇌과학'이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책 제목으로 유추해 보건데 이 책은 뇌과학으로 자연과학에 분류되기 보다는 사랑으로 철학에 분류되어야 되는 책 같아 보인다. 실제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의 경우 이 책은 '철학'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수많은 '사랑' 서적 중에 이 책이 꽂혀 있다는 것은 다행인가 불행인가? 이제 우리가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사랑'마저도 '과학'에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철학으로 분류했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서의 무사안일을 탓해야 할까? 이 책의 출판사면서 국내에서 독보적인 자연과학 출판사인 <사이언스북스>는 과연 이 책이 자연과학이 아니라 철학으로 분류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어찌보면 나에게도 역시 다행이자 불행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연인간의 사랑'에 대한 책이 절대 아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뇌과학'에 할애되어 있으며 사랑 중에서도 '어머니와 자식간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혹시 다른 의도로 이 책을 펼쳐든 사람이 괜히 신경질 내면서 이 책을 집어던질 모습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그려진다. 바로 이런 상상이 신피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 또한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뇌과학 지식이다.

 일반적으로 사랑과 같은 인간의 감정을 해석하는 길에는 크게 2가지 길이 있다. 바로 경험주의인상주의인데 글쓴이는 "경험주의는 척박하고 불완전한 반면 인상주의적 가설은 자유분방한 결론을 피할 수 없으며 인간의 감정을 연구할 때는 과학적인 증거와 직관을 신중하게 조화시켜야만 가장 정확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공허한 환원주의와 허황된 미신이라는 두 개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증거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는 동시에 입증되지 않은 것들과 입증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우호적인 자세도 견지해야 한다"(p.23)라고 강조한다. 이런 관점은 나에게 굉장히 새롭다. 기존에는 마음이란 과학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의식이 강했는데 1990년대에 들어서 뇌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본인이 요새 공부 중인 생물학을 기본으로 하는 '통섭'에서는 강력한 환원주의를 바탕으로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용'을 강조하는 견해를 만나게 되니 기존에 내가 가졌던 시각이 얼마나 편협하였는가를 깨닫게 된다. 물론 이왕 이렇게 된 것이니 생물학으로 모든 것을 해석해 보는 시도도 나쁘지 않겠지만 글쓴이의 지적은 꼭 마음 한 구석에 담아 놓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분석에 관한 2가지 조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p.240) 크게 프루이트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심리학적> 그룹과 새롭게 등장한 <생물학적> 그룹이 그것인데 이에 대해 글쓴이는 빛을 입자와 파동으로 단순히 분류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인간의 정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심리학적 측면과 생물학적 측면으로 구분하는 간편하고 매력적인 이원론을 초월한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여전히 글쓴이는 기존의 프루이트 이론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고 허공에 성을 지었다는 비유로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p.325) 이제 실질적으로 프루이트는 시대는 끝나고 <포스트 프루이트의 시대>가 바햐흐로 도래한 듯 하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은 것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첨예한 의견 대립이 일어나는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이야기다.(p.318) 이에 대해 글쓴이는 강력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는데 특히 켄터키의 한 의료 관리 조직에 있는 한 의사는 금전적 이익을 위해 환자의 생명에 필요했던 수술을 거부함으로써 그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적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였는데 이는 결국 건강 유지 기구(HMO)와 의료 관리가 가입자들이 내는 돈보다 적은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으로 이는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려는 우리 나라에서도 반드시 의논되어야 하는 반작용일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사랑을 위한 과학>이라는 조금 수상한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뇌과학 입문 서적으로 균형잡힌 시각에서 쓰인 좋은 책이다. 다만 이 책에 포함된 그림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번역을 이와 관계없는 '미학' 전공자가 했기 때문에 단어의 선택면에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점은 굉장히 아쉽다. (이를 보면 과연 <사이언스북스> 편집자 또한 이 책을 뇌과학 서적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사랑 서적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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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경식, 김상봉 지음 / 돌베개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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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하고 꼭 만나 뵙고 싶은 서경식, 김상봉 선생의 대담을 묶어서 <돌베게>란 곳에서 출판한 책이다. 서경식, 김상봉 선생에 대해서는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지만 <돌베게>란 출판사가 지금까지 내온 책의 면면을 살펴보니 인문/사회 분야에서 좋은 책들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컨데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나 <백범일지>, <전태일 평전>,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책들을 출판하고 있었다. 사실 인문/사회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좋은 책들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는 점에서 국내 독자의 한 명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글쓴이가 책의 초안을 완성한 후 여러군데 출판사를 접촉하면서 출판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 관행이 되어 있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편집자의 주도적 노력으로 서경식, 김상봉 선생을 서로 만나도록 권유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책으로 출판한 점은 굉장히 놀랍다. 특히 일반적인 <대담>류의 책의 경우 그냥 주례사처럼 서로 덕담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의 경우 두 분의 탁월함이 그대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날이 선 의견 대립을 하는 등 내용이 꽉 찬 책이다.

 이 책에서는 5.18, 씨알, 유대인 문제, 교육, 교양, 예술 등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해 서경식, 김상봉 선생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 본인의 경우 어느 한 분의 의견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각 사안마다 어떨 때는 서경식 선생을, 어떨 때는 김상봉 선생의 의견을 따르게 되었다. 이렇게 이 책을 통해 각 사안에 대해 두 분의 의견을 들어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는데 특히 2장 <역사와의 만남>에서 의견 대립이 굉장히 격하게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는 특히 '타인의 고통'에 대해 논의하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사실 본인의 경우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어차피 내 자신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운다는 명분으로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 하였다. 그런데 이 책에서 김상봉, 서경식 선생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김상봉 선생은 "타인의 고통이 지니는 타자성을 보존하면서도 그 단절을 어떻게 무관심이 아닌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저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배우려는 자세, 우선 이 두 가지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p.106)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이런 통찰력이야말로 김상봉 선생의 탁월함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보면 서경식 선생과 김상봉 선생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서경식 선생은 한국의 현실을 일본보다 긍정적으로 보지만 과연 밝은 미래가 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이에 비해 김상봉 선생은 한국의 현실을 굉장히 부조리한 상태로 부정적으로 보면서도 "씨알"을 강조하면서 좀 더 밝은 역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 현실 인식과 미래 전망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대담이 성공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일반적인 '대담'류와 달리 서로 좋은 이야기만 주제와 상관없이 계속되지 않고 서로의 견해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각각의 견해에 대해 좀 더 넓은 시각과 생각하는 힘을 길려주는 책이다. 특히 '대담'류를  훌륭한 책으로 묶어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돌베게 출판사와 편집자에 대해서는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이 책이 두 분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으면 조금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으니 먼저 서경식, 김상봉 선생의 다른 저서를 읽고 맨 마지막에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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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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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이 이렇게 유명한 책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 책과 같이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하는 책이 그 '질'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른 경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빌려보기 위해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검색하니 예약자가 많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네이버 오늘의 책]에도 선정된 적이 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빌렸는데 외국에서 1985년에 출판되어 이미 20년이 넘은 책이지 않은가? 특히 하루가 멀게 발전하는 <뇌과학> 분야에서 20년 전 책이면 너무 오래되어서 캐캐묵은 냄새가 나는 책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단점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장점에 의해 충분히 상쇄되었다. 기존의 <뇌과학> 서적과 달리 다양하면서도 흥미있는 사례 위주로 구성되어서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시켜주며 결정적으로 이 책에서는 글쓴이 올리버 색스(Oliver Sacks)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자폐증이나 다양한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귀찮다 혹은 불편한 감정을 가지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글쓴이는 실제 다양한 예를 통해 그들도 '인간'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가지 예 중에서 <대통령의 연설>이라는 글이 기억에 남는다. 이 글에서는 언어상실증 환자들의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크게 웃는 것을 소개하고 있는데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진실인가 아닌가를 이해하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그 때문에 대통령의 연설에 속지 않으며 현란하고 괴상한 말장난과 거짓, 불성실을 간파하고 크게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p.162) 결국 우리 정상인들은 마음속 어딘가에 속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잘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어서 극심한 혼란 상태와 중압 때문에 진정한 정체성을 얻지 못하는 슈퍼 튜렛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p.240) 그들은 진정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충동과 싸워야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 '개체'다운 존재로서 살고 싶다는 의지력을 바탕으로 '경이'롭게 대부분 그 싸움에서 승리한다. 즉, 싸움을 겁내지 않는 용맹스런 건강이야말로 항상 승리를 거머쥐는 승리자라고 글쓴이는 말한다. 이를 보면 병마와 끊임없는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후배가 생각난다. 오늘도 메일이 왔는데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나는 후배의 고통을 모르는데 어떤 말을 한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힘내라'는 말 뿐…. 오직 싸움을 겁내지 않는 용맹스러운 건강으로 고통을 이겨내기를 기도할 뿐이다.

 결국 이 책은 비록 오래되기는 하였으나 다양한 사례 위주로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글쓴이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싶다. 다만 너무 두껍기도 하고 삽화도 썩 맘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조금 크기를 늘리고 두께를 줄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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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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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 our fate be a warning for you.(우리의 운명을 당신들을 위한 경고로 삼아라.)
이 글귀는 루블린 근교의 마이다네크 수용소에 있는 영묘(墓)에 쓰여져 있는 글귀이다. 이 글귀는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 쁘리모 레비가 했던 경고이기도 하면서 이 책을 통해 서경식 선생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경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서경식 선생이 이 경고가 얼마나 한국과 일본 국민에게 전달되었는지는 미지수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소문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이 책은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고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회의를 품게 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들게 된다"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이미 정신적으로 '완전'하다고 자부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잇는 책이라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이 책을 덮고 나서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내 마음은 평온하고 그저 담담할 뿐이다.

 다만 이 책 때문에 오늘 공부는 공 쳤다는 것은 고백해야겠다. 오늘은 월요일이기도 했고 점심을 먹고 나니 졸리기도 해서 잠시 잠을 쫓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 나의 최악이 선택이 되고 말았는데 앉은 자리에서 2시간 30분만에 정독을 하고 한동안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결국 법전을 펴기는 했지만 이 책 생각이 계속 나서 공부는 잠시 접고 이렇게 서평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독서량이 늘어남에 따라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책은 거의 없었는데 이 책은 한 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이런 마력은 식음을 전폐하고 밤 새도록 읽었던 영웅문 이후 오랜만이었다.)

 이 책은 쁘리모 레비라는 인물의 흔적을 찾아 이탈리아를 방문한 서경식 선생님이 그의 흔적을 만나면서 떠오르는 다양한 생각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쁘리모 레비(Primo Levi)는 과연 누구인가? 그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였으며 <이것이 인간인가> 등의 저서를 통해 20세기라는 잔혹한 정치 폭력의 시대를 증언하였으나 1987년에 자살하고 말았다. 이렇게 쁘리모 레비라는 인간을 보고 있으면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이 "대체 왜 자살했을까?"이다. 그는 최악의 고난이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이 상황을 살아서 증언하기 위해 끝까지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렇게 삶에 대한 의지가 넘쳤던 그가 갑작스레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이 책의 맨 앞에도 나와 있듯이 '그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p.5)라고 서경식 선생은 말하고 있다. 결국 그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고난에 대한 인간성의 승리나 구제의 서사, 오딧세우스의 개선에 대한 서사등으로 단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자살함으로써 냉혈이나 잔혹은 지금도 세계를 덮고 있다(p.271)고 서경식 선생은 담담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쁘리모 레비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듯하다. 비록 일본에 비해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이른바 '역사가 논쟁'이 등장했으며 이로써 쁘리모 레비는 독일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조차 사라지자 자살이라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경고는 전달되는 것'일까? 하지만 다행히 국내에서 쁘리모 레비의 대표작인 <이것이 인간인가><주기율표>가 뒤늦게 나마 번역된 점은 약간의 희망의 불빛을 보게 해준다. 과연 인간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존재인지는 이렇게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가 잊혀지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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