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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경식, 김상봉 지음 / 돌베개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하고 꼭 만나 뵙고 싶은 서경식, 김상봉 선생의 대담을 묶어서 <돌베게>란 곳에서 출판한 책이다. 서경식, 김상봉 선생에 대해서는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지만 <돌베게>란 출판사가 지금까지 내온 책의 면면을 살펴보니 인문/사회 분야에서 좋은 책들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컨데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나 <백범일지>, <전태일 평전>,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책들을 출판하고 있었다. 사실 인문/사회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좋은 책들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는 점에서 국내 독자의 한 명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글쓴이가 책의 초안을 완성한 후 여러군데 출판사를 접촉하면서 출판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 관행이 되어 있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편집자의 주도적 노력으로 서경식, 김상봉 선생을 서로 만나도록 권유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책으로 출판한 점은 굉장히 놀랍다. 특히 일반적인 <대담>류의 책의 경우 그냥 주례사처럼 서로 덕담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의 경우 두 분의 탁월함이 그대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날이 선 의견 대립을 하는 등 내용이 꽉 찬 책이다.
이 책에서는 5.18, 씨알, 유대인 문제, 교육, 교양, 예술 등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해 서경식, 김상봉 선생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 본인의 경우 어느 한 분의 의견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각 사안마다 어떨 때는 서경식 선생을, 어떨 때는 김상봉 선생의 의견을 따르게 되었다. 이렇게 이 책을 통해 각 사안에 대해 두 분의 의견을 들어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는데 특히 2장 <역사와의 만남>에서 의견 대립이 굉장히 격하게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는 특히 '타인의 고통'에 대해 논의하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사실 본인의 경우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어차피 내 자신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운다는 명분으로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 하였다. 그런데 이 책에서 김상봉, 서경식 선생의 대화를 들으면서 나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김상봉 선생은 "타인의 고통이 지니는 타자성을 보존하면서도 그 단절을 어떻게 무관심이 아닌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저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배우려는 자세, 우선 이 두 가지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p.106)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이런 통찰력이야말로 김상봉 선생의 탁월함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다보면 서경식 선생과 김상봉 선생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서경식 선생은 한국의 현실을 일본보다 긍정적으로 보지만 과연 밝은 미래가 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이에 비해 김상봉 선생은 한국의 현실을 굉장히 부조리한 상태로 부정적으로 보면서도 "씨알"을 강조하면서 좀 더 밝은 역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 현실 인식과 미래 전망이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대담이 성공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일반적인 '대담'류와 달리 서로 좋은 이야기만 주제와 상관없이 계속되지 않고 서로의 견해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각각의 견해에 대해 좀 더 넓은 시각과 생각하는 힘을 길려주는 책이다. 특히 '대담'류를 훌륭한 책으로 묶어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돌베게 출판사와 편집자에 대해서는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이 책이 두 분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으면 조금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으니 먼저 서경식, 김상봉 선생의 다른 저서를 읽고 맨 마지막에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