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과학
토머스 루이스 외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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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위한 과학>이라… 솔직히 말하면 조금 외설적인 제목 아닌가? 맨 처음 '뇌과학' 관련 서적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드렸을때 이 책이 들어간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물론 '사랑''뇌과학'이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책 제목으로 유추해 보건데 이 책은 뇌과학으로 자연과학에 분류되기 보다는 사랑으로 철학에 분류되어야 되는 책 같아 보인다. 실제로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의 경우 이 책은 '철학'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수많은 '사랑' 서적 중에 이 책이 꽂혀 있다는 것은 다행인가 불행인가? 이제 우리가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사랑'마저도 '과학'에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철학으로 분류했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서의 무사안일을 탓해야 할까? 이 책의 출판사면서 국내에서 독보적인 자연과학 출판사인 <사이언스북스>는 과연 이 책이 자연과학이 아니라 철학으로 분류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어찌보면 나에게도 역시 다행이자 불행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연인간의 사랑'에 대한 책이 절대 아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뇌과학'에 할애되어 있으며 사랑 중에서도 '어머니와 자식간의 애정'에 대한 이야기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혹시 다른 의도로 이 책을 펼쳐든 사람이 괜히 신경질 내면서 이 책을 집어던질 모습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그려진다. 바로 이런 상상이 신피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 또한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뇌과학 지식이다.

 일반적으로 사랑과 같은 인간의 감정을 해석하는 길에는 크게 2가지 길이 있다. 바로 경험주의인상주의인데 글쓴이는 "경험주의는 척박하고 불완전한 반면 인상주의적 가설은 자유분방한 결론을 피할 수 없으며 인간의 감정을 연구할 때는 과학적인 증거와 직관을 신중하게 조화시켜야만 가장 정확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공허한 환원주의와 허황된 미신이라는 두 개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증거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는 동시에 입증되지 않은 것들과 입증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우호적인 자세도 견지해야 한다"(p.23)라고 강조한다. 이런 관점은 나에게 굉장히 새롭다. 기존에는 마음이란 과학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의식이 강했는데 1990년대에 들어서 뇌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본인이 요새 공부 중인 생물학을 기본으로 하는 '통섭'에서는 강력한 환원주의를 바탕으로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용'을 강조하는 견해를 만나게 되니 기존에 내가 가졌던 시각이 얼마나 편협하였는가를 깨닫게 된다. 물론 이왕 이렇게 된 것이니 생물학으로 모든 것을 해석해 보는 시도도 나쁘지 않겠지만 글쓴이의 지적은 꼭 마음 한 구석에 담아 놓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분석에 관한 2가지 조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p.240) 크게 프루이트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심리학적> 그룹과 새롭게 등장한 <생물학적> 그룹이 그것인데 이에 대해 글쓴이는 빛을 입자와 파동으로 단순히 분류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인간의 정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심리학적 측면과 생물학적 측면으로 구분하는 간편하고 매력적인 이원론을 초월한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만 여전히 글쓴이는 기존의 프루이트 이론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고 허공에 성을 지었다는 비유로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p.325) 이제 실질적으로 프루이트는 시대는 끝나고 <포스트 프루이트의 시대>가 바햐흐로 도래한 듯 하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은 것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첨예한 의견 대립이 일어나는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이야기다.(p.318) 이에 대해 글쓴이는 강력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는데 특히 켄터키의 한 의료 관리 조직에 있는 한 의사는 금전적 이익을 위해 환자의 생명에 필요했던 수술을 거부함으로써 그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적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였는데 이는 결국 건강 유지 기구(HMO)와 의료 관리가 가입자들이 내는 돈보다 적은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으로 이는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려는 우리 나라에서도 반드시 의논되어야 하는 반작용일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사랑을 위한 과학>이라는 조금 수상한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뇌과학 입문 서적으로 균형잡힌 시각에서 쓰인 좋은 책이다. 다만 이 책에 포함된 그림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번역을 이와 관계없는 '미학' 전공자가 했기 때문에 단어의 선택면에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점은 굉장히 아쉽다. (이를 보면 과연 <사이언스북스> 편집자 또한 이 책을 뇌과학 서적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사랑 서적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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