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our fate be a warning for you.(우리의 운명을 당신들을 위한 경고로 삼아라.) 이 글귀는 루블린 근교의 마이다네크 수용소에 있는 영묘(墓)에 쓰여져 있는 글귀이다. 이 글귀는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 쁘리모 레비가 했던 경고이기도 하면서 이 책을 통해 서경식 선생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경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서경식 선생이 이 경고가 얼마나 한국과 일본 국민에게 전달되었는지는 미지수이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소문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이 책은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고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회의를 품게 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들게 된다"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이미 정신적으로 '완전'하다고 자부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잇는 책이라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이 책을 덮고 나서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내 마음은 평온하고 그저 담담할 뿐이다. 다만 이 책 때문에 오늘 공부는 공 쳤다는 것은 고백해야겠다. 오늘은 월요일이기도 했고 점심을 먹고 나니 졸리기도 해서 잠시 잠을 쫓기 위해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 나의 최악이 선택이 되고 말았는데 앉은 자리에서 2시간 30분만에 정독을 하고 한동안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결국 법전을 펴기는 했지만 이 책 생각이 계속 나서 공부는 잠시 접고 이렇게 서평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독서량이 늘어남에 따라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책은 거의 없었는데 이 책은 한 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이런 마력은 식음을 전폐하고 밤 새도록 읽었던 영웅문 이후 오랜만이었다.) 이 책은 쁘리모 레비라는 인물의 흔적을 찾아 이탈리아를 방문한 서경식 선생님이 그의 흔적을 만나면서 떠오르는 다양한 생각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쁘리모 레비(Primo Levi)는 과연 누구인가? 그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였으며 <이것이 인간인가> 등의 저서를 통해 20세기라는 잔혹한 정치 폭력의 시대를 증언하였으나 1987년에 자살하고 말았다. 이렇게 쁘리모 레비라는 인간을 보고 있으면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이 "대체 왜 자살했을까?"이다. 그는 최악의 고난이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이 상황을 살아서 증언하기 위해 끝까지 목숨을 부지하였다. 그렇게 삶에 대한 의지가 넘쳤던 그가 갑작스레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이 책의 맨 앞에도 나와 있듯이 '그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p.5)라고 서경식 선생은 말하고 있다. 결국 그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고난에 대한 인간성의 승리나 구제의 서사, 오딧세우스의 개선에 대한 서사등으로 단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가 자살함으로써 냉혈이나 잔혹은 지금도 세계를 덮고 있다(p.271)고 서경식 선생은 담담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쁘리모 레비는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듯하다. 비록 일본에 비해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이른바 '역사가 논쟁'이 등장했으며 이로써 쁘리모 레비는 독일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조차 사라지자 자살이라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경고는 전달되는 것'일까? 하지만 다행히 국내에서 쁘리모 레비의 대표작인 <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가 뒤늦게 나마 번역된 점은 약간의 희망의 불빛을 보게 해준다. 과연 인간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존재인지는 이렇게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가 잊혀지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