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과 서 - 동양인과 서양인은 왜 사고방식이 다를까 - EBS 다큐멘터리
EBS 동과서 제작팀.김명진 지음 / 예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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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라는 책을 한 번쯤은 읽어 보았거나 제목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내 기억엔 얇은 양장본으로 얼마 안되는 책 속에서 동서양의 생각의 차이를 잘 보여주어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이와 비슷한 주제로 방송되었던 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사실 워낙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가 선구자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시 이 책을 읽어서 얻을 만한 것이 있을 것인가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를 과학적으로 최초로 규명한 연구 저작물인 <생각의 지도>보다 한 걸음 나아가 여러 비교문화 연구의 결과에 사회적, 철학적 의의를 담아 내용을 확장시키는 노력을 하였다. 즉, 동양과 서양 문화 차이를 나타내는 실험 결과가 동양의 기(氣)와 장(場)의 사고와 서양의 분석적, 이성적 사고의 차이와 관계가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서양인은 우주가 텅 빈 허공이라고 생각한데 비해 동양인은 우주는 기(氣)로 가득차 있다고 보았으며 그 결과 조수 간만의 차나 만유인력을 좀 더 일찍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동양인들은 모양보다는 재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비해 서양인들은 재질보다는 모양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밝힐 수 있었으며 사물들이 독립된 개채라고 믿는 서양에서는 당연히 각 개체의 속성을 대표하는 '명사'가 언어의 중심을 이루는데 비해 사물들이 서로 연결되었다고 믿는 동양에서는 다양한 사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표현하는 '동사'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서양인은 어떤 현상의 원인이 사물의 내부에 존재하는 속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동양인은 사물을 둘러싼 상황 떄문이라고 생각하며 동양인들은 사람의 감정 상태를 해석할 때에도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맥락을 고려하지만, 서양인들은 그것을 개인의 내적 본성에서 찾으려고 한다. 또한 동양인은 말의 표면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목소리의 톤이나 이야기의 맥락 등의 정보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고맥락적 커뮤니케이션(high-context comunication)'을 하는데 비해 서양인은 맥락보다는 말하는 내용의 의미 자체에 집중하는 '저맥락적 커뮤니케이션(low-context communication)'을 한다.

 

 이와 같이 많은 실험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문화의 차이를 단순히 밝히는 것에서 벗어나 이를 사회적,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비교했다는 점이 이 책이 <생각의 지도>와 다른 점이다. 또한 이후 봇물처럼 이어진 많은 흥미로운 실험들을 소개하고 있는 점 역시 차별화되는 점이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얻을 것이 있을까라고 고민했던 나의 걱정은 기우임이 드러났으며 <생각의 지도>를 읽고 난 다음 이 책을 읽는다면 동 서양 문화의 차이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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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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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만약에 만화가 <최규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만화책은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약 일주일 전에 최규석 만화가를 만났을 때 최규석 만화가는 많은 인터뷰나 기사 등에서 '만화에 대한 선입견'(예컨대 유치하다든지 비교육적이라든지)을 먼저 언급하지 않고는 인터뷰나 기사를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점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 점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만화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인권'을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다른 책에 비해 읽어야 될 우선 순위가 뒤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좋은 책을 많이 출판하는 창비 출판사와 이 만화책을 기획한 국가인권위원회와 이 곳에 참여한 8명의 만화가의 노력으로 어른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도 만화를 통해 쉽게 '인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이 만화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먼저 손문상 만화가는 신문에 나오는 만평 형식으로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만화를 그렸고 이애림 만화가는 <그는>이라는 제목의 만화로 성소수자인 동성애자에 대한 만화를, 장차현실 만화가는 <여배우 은혜>라는 만화로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 아이가 영화 여배우가 되어 의젓해지는 딸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홍윤표 만화가는 <이상한 나라의 홍대리>라는 제목의 만화로 차별이 만연화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오영진 만화가는 <새대가리>라는 만화로 서열화된 공교육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정훈이 만화가는 <해리포터와 호구왔다 마법학교>를 통해 돈만 밝히는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유승하 만화가는 <축복>이란 만화로 임신한 미혼녀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최규석 만화가는 <창>이란 만화로 군대 인권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 중 <그는>이란 만화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대다수는 동성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 사실 동성애가 최초로 금기시 된 것은 성경을 통해서인데 역사적으로 보면 동성애를 통해 욕구를 해소하게 되면 출산율이 감소하게 되어 인구=국력인 상황에서 국가 및 민족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결국 꼭 이성애를 해야 될 당위성을 찾기는 힘든 것이다. 그저 동성애에 대해서는 단순히 '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왜 하면 안되는가?'에 대해서는 그저 '징그럽다'는 생각 정도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동성애가 나쁜 것이라는 당위성을 찾기 힘든 이상 동성애자 역시 이성애자와 같이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함은 명백하고 이를 이 만화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새대가리><해리포터와 호구왔다 마법학교>는 서열화된 교육의 문제점을 잘 그리고 있다. 특히 <새대가리>는 검은 종이에 빨간색 바탕색을 기본으로하여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A~C 등급 인간으로 나뉘어 차별받고 자신의 꿈(여기서는 '날개'로 표현된다.)을 부모님과 사회로부터 지키기 위한 주인공의 눈물겨운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인상 깊은 것은 주인공이 기르던 새장에서 새를 구해줬지만 다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새장으로 돌아온 새들을 보며 주인공이 "미쳤냐 왜 여길 다시 왔냐. 그렇게 살아라 주는대로 감사하며…"라고 독백하는 모습이었다. 자유를 갈망하지 않고 먹을 것만 주면 감사하는 것은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와 달리 '자유'도 갈망한다. 물론 사람마다 먹을 것이 우선인지 자유가 우선인지는 다르지만 말이다….
 
 또한 <축복>이란 만화는 미혼 임신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나는 만화가와 달리 차라리 낙태를 합법화 시키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이 만화와 같이 미혼인 학생이 임신한 것이 과연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임신하게 되면 순식간에 약자가 되는 것이 바로 여성이고 이 만화에서는 태아 역시 '인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원치 않은 임신이라도 아기를 낳는 것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임신 여부 및 출산 여부는 여성의 선택 문제로 두는 것이 옳다고 보이며 그런 점에서 낙태를 합법화하는 것이 오히려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길이라고 본다.(물론 남성이 이를 악용하지 않도록 비용 부담 문제 등을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창>이란 만화가 기억에 남는다. 최규석 작가는 이 만화를 통해 "누가 봐도 잘못한 후임병이 있는 경우에도 때리지 않을 수 있느냐?"라는 것을 묻고 싶었다고 하였는데 이게 작가의 의도라면 좀 더 지면을 할애하여 후임병을 나쁜 사람으로 그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본인의 경우 역시 상병 달 때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맞았는데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단 한 번도 후임병을 때린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분명 몇 번 고비는 있었는데 나는 이등병, 일병 시절 맞으면서 절대 후임병을 때리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 결심을 다행히 지킬 수 있었다. 살펴보면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오히려 자기 자식에게 더 폭력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민감해질 수 있다면 군대에 만연한 폭언과 구타는 사라질 것이다.
 
 요즘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한도 축소되고 '인권'보다는 '경제 성장'(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한 경제 성장인지는 의문이지만)이 유일한 가치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권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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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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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시사in>의 작년 마지막 호 별책부록으로 주었던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 책> 중 만화 부문에 이 책이 있음을 알게 된 이후였다. 당시 이 만화책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의 찬사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출간일 후 1년 6개월이 지나야 도서 정가제(출판일 후 1년 6월 이내의 신간은 할인율 최대 10%, 적립률 최대 10%의 제한을 받는다.)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구입 리스트에 올려놓고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 이 책을 구입하고 읽게 되었는데 읽은 후 나도 모르게 “대단한데?”라는 혼잣말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의아했던 점은 책의 제목이 <100도씨>라는 점이었다. 물의 끓는 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의 제목이 <100도씨>가 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아래 대화에서도 알 수 있었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가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 십 년을 버텨내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이 책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만화로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너무 어렸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배운 현대사에서도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 기억이 없었다. 또한 물론 내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사실상 운동권은 이미 그 맥이 끊겨 민주 항쟁에 대해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다만 내 마음 한 구석에 6월 민주 항쟁이 남아 있던 것은 화학공학과 과방에 있던 이한열 열사의 피가 묻어 있는 과 깃발과 학생회관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 있던 이한열 열사의 사진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도 많은 학생들이 학생회관을 지나가지만 이한열 열사의 사진에 관심을 두는 사람을 찾기 힘들고 학생회관 옆에 있는 이한열 동산에서 남녀가 앉아 있어도 그 앞에 있는 비석을 읽어 보는 사람은 없으며 매년 6월에 중앙도서관 앞에서 하는 이한열 열사 추모식조차도 참석 인원이 적고 게다가 공부하는데 왜 시끄럽게 하냐는 불만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앞선 사람들의 피를 먹고 자란 민주주의의 혜택을 넘치게 누리고 있으면서 그들의 피와 땀을 잊어버리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1987년 6월엔 분명 사람은 “끓었었다“. 다만 꾸준히 <열>이 제공되지 않는 한 다시 물은 식게 마련이다. 그 결과가 이한열 열사가 누군지도 모르는 오늘의 모습이 아닐까? 예컨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서 박종철이 끝까지 보호하려고 했던 선배인 박종운은 2004년 4월에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국 수사 2단장으로서 고문치사사건을 축소 은폐하려고 했던 고문기술자 정형근 한나라당의원이 있던 당에서 말이다. 이렇게 한 번 끓었던 사람이 오히려 더 차갑게 식는 모습을 나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런 점에서 나는 100도씨가 끝이 아니라 계속 <열>(그게 우리의 관심이 될지 피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이 공급되지 않는 한 계속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고 본다.

 

최규석 만화가는 책을 덮고 나면 막연히 ‘아 소중한 민주주의’ ‘오오 위대한 민중’이란 감정이 아닌 단단한 생각들이 남길 바랬다고 하였지만 나 역시 앞선 사람들의 피를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이 정도 생각이 한계인 듯 하다. 다만 이 책을 통해 마음 한 구석에 끓기 위한 씨앗을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비록 단단한 생각들은 아니지만 만화가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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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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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 역시 '만화'에 대한 선입견에서 자유로운 편이 아니다. 어렸을 적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만화책이나 보고 니가 어린애냐?"라는 말씀이었다. 당시 부모님 말을 잘 듣던 '착한' 나로서는 중학교 입학 이후 만화책을 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런 선입견을 2차례에 걸쳐 깨드려 준 것이 바로 스포츠 만화인 <슬램덩크(Slam Dunk)>와 웹툰 들이었다. 첫 번째로 나에게 만화의 재미를 알려 준 것이 바로 슬램덩크였다. 당시 미친 듯이 농구에 빠져있던 나는 슬램덩크가 주는 농구의 재미에 열광했었다. 이 때 비로소 '만화'가 반드시 비현실적이라거나 비교육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어 두 번째로 만화의 을 알려준 것이 여러 웹툰들이었다. 맨 처음 만난 웹툰에 대한 관심은 <마린블루스>에서 시작하여 이후 강풀의 <26년>을 보고 난 만화가 비로소 '힘' 을 가질 수 있고 '메세지'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어 세 번째로 나에게 만화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려 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여전히 "만화=재미"라는 등가공식을 당연시 하던 나에게 이 책은 만화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방식만 그림으로 다를 뿐 안에 담긴 메세지는 다른 책과 다르지 않음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지고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단지 그림이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오히려 글보다 효과적이라 만화라는 형식을 사용했을 뿐 실제 주는 메세지는 글보다 더하면 더하지 결코 덜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만화책을 '본다'는 표현보다는 '읽는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싶다.

 

 예컨대 이 단편집에 두 번째로 실린 <자살 방조>라는 만화를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레 내 군 생활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작전행정병으로 과도한 업무와 구타에 시달리던 나에게 이 만화 속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의자'가 바로 나였다. 그리고 이 만화에서 주인공은 작전과장을 비롯한 간부였다. 오직 의자와 같이 사병을 비품으로 생각하고 제대로 씻기거나 재우지 않고 일을 시키는 모습이 묘하게 만화에 그대로 대입되었다. 특히 "넌 문을 잠그고 내무실로 가서 잠이 들지. 그리고 다음날 어제와 다름 없는 사무실을 보곤 밤 새 아무 일도 없었다고 믿는 건가?"라는 의자의 이야기는 군 생활에서 내가 간부에게 하고자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저녁 점호와 다음날 아침 점호에 변함없이 참석하는 병사를 보면서 정말 내무실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다고 믿는건가? 실제 점호 시간 이후 이어지는 폭언과 구타, 그리고 선임병 근무 대신 투입되어 한 숨도 눈을 붙이지 못해도 내가 뛰어난 작전병의 능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당직사령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아기공룡 둘리에 대한 오마쥬인 <공룡 둘리>를 읽으면서 나는 불청객 취급받는 둘리와 그 친구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공장에서 일하던 둘리는 프레스에 의해 손이 잘리지만 공장주는 "이 민증도 없는 새끼!! 사고 한 번 칠 줄 알았어!! 당장 나가!!"라고 오히려 윽박지르고 친구라고 믿었던 철수는 "오갈 데 없는 것들 데려다가 먹이고 재워줬더니… 친구!? 내가 니 친구냐?"라며 둘리는 폭행한다. 그리고 또치는 몸을 팔게 되고 마이콜은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고 도우너는 외계인 연구소에 의해 해부되게 된다. 특히 "어디에 있든 상관없잖아? 어차피 불청객들인데…"이라는 또치의 말은 우리 나라에서 '불청객' 취급받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말 다름이 아니다. 결국 당시 한번 빙하기가 와서 현실을 피할 수 있는 잠에 빠지기를 원하는 둘리의 모습…. 과연 둘리는 다시 한 번 찾아온 빙하기 후 깨어났을 때 희망을 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선택>이란 만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2002년 월드컵을 위해 쫓겨나야 했던 철거민에 대한 만화인데… 사실 나 역시 만화 내의 건설소장이 하는 이야기에 어느 정도 동감을 하고 있다. "세 들어 살다 철거 된다니께 집 내놓으라는 것도 도둑놈 심보고… 그러구 지들이 저런다고 국가에서 날 받아 논 월드컵을 도로 물릴겨? 다아 빨갱이 새끼들이지…. 고생들을 안 해봐서 그려"라는 말 중 빨갱이니 고생을 덜 해서 그렇다는 말은 헛소리지만 앞에 두 문장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철거민에게 어떤 권리가 보장되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법적으로 세 들어 살다가 계약 기간이 다 되거나 주인이 이사 비용 및 잔여 기간 주거 비용을 지급하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정당하게' 세입자로 하여금 집에서 나가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할고 있다. 그렇다면 집까지 요구하는 것은 과한 요구 아닐까? 혹여 이런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낄 때에는 자신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뽑아 철거민 보호에 관한 법률을 통해 법적으로 보호 받는 것이 옳은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못 살고 못 배우는 사람들이 오히려 기득권 정당에 투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도 스스로 불러 온 것이 아닌가? 그들에게는 바로 나치 선전 장관이었던 괴벨스의 말이 인상 깊게 다가올 것이다.



 결국 이 만화는 재미 보다는 메세지를 담은 책으로 '보는' 만화책이 아니라 '읽는' 만화책이라 할 수 있다. 기존에 만화책은 비교육적이라는 선입관에 빠져 있다면 이 책과 함께 새로운 만화를 만나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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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적평형 - 읽고 나면 세상이 달라져 보이는 매혹의 책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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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적 평형>이란 책 제목을 듣고 아마 화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dynamic equilibrium이 생각날 것이다. 특히 물리 화학에서 중요한 개념인 동적 평형은 겉으로 보기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이나 그 안에서는 활발한 여러 가지 활동이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의 글쓴이인 후쿠오카 신이치는 문학적인 감성과 철학적 메시지로 대중과 과학을 연결시키는 과학자로 유명한데   글쓴이는 <동적 평형>을 "끊임없이 흐르면서 정교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 끊임없이 파괴하고 항상 재구축하는 것 이것이 동적평형"이라고 정의하여 이 책의 제목으로 삼고 있다. 이렇게 글쓴이가 과학 언어를 제목으로 한 이유는 동적 평형 상태가 바로 '생물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 것 같다.
 
 우리는 때때로 겉으로 보기에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정지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자세히 살펴보면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이다. 특히 생물체의 경우 지금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세포간의 신호가 전달되면서 서로 상호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과거에는 기억을 저장하는 어떤 '물질'이 뇌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기억저장물질은 존재하지 않으며 뇌를 구성하는 신경 세포 간의 연결인 '시냅스'의 평형 상태로 기억이 저장될 것이라는 글쓴이의 주장이다.
 
 또한 한 가지 흥미로운 주장은 "왜 나이를 먹으면 시간이 빨리갈까?"에 대한 생물학적 대답이다. 이는 나이를 먹으면서 세포의 상호 작용이 적어지고 느려지면서 생체 시계가 느려지고 그 결과 우리가 느끼는 생체 시계의 시간과 현재 시간이 서로 달라지면서 나이를 먹으면 점점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칠 수 밖에 없었다. 경험적으로 알고 있으나 설명하기 난해했던 것을 생물학은 이처럼 쉽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한번쯤은 '스무디 킹'에서 연아가 선전하는 스무디를 먹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이른바 비타민이나 콜라겐 등의 '인핸서(enhancer)'를 첨부해서 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성분들은 대개 콜라겐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콜라겐이 피부 탄력에 중요한 단백질임에는 중요하나 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위에서 펩신에 의해 아미노산으로 전부 분해되고 말 것이다. 일반 생물학만 배워도 전부 아는 이것을 사람들은 쉽게 잊곤 한다. 이에 대해 글쓴이 역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글쓴이는 생명은 파괴나 무질서로 대표되는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앞서 자신을 파괴하고 재구축하는 순환 상태, 동적 평형을 유지하여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라고 결론 맺는다. 때때로 인문학적/철학적인 접근도 좋지만 이런 과학적 접근 방법 역시 삶에 대한 지혜를 주는 것 같다. 이와 같이 과학을 쉽게 대중에서 풀어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책을 통해 생물학과 만나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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