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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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 역시 '만화'에 대한 선입견에서 자유로운 편이 아니다. 어렸을 적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만화책이나 보고 니가 어린애냐?"라는 말씀이었다. 당시 부모님 말을 잘 듣던 '착한' 나로서는 중학교 입학 이후 만화책을 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런 선입견을 2차례에 걸쳐 깨드려 준 것이 바로 스포츠 만화인 <슬램덩크(Slam Dunk)>와 웹툰 들이었다. 첫 번째로 나에게 만화의 재미를 알려 준 것이 바로 슬램덩크였다. 당시 미친 듯이 농구에 빠져있던 나는 슬램덩크가 주는 농구의 재미에 열광했었다. 이 때 비로소 '만화'가 반드시 비현실적이라거나 비교육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어 두 번째로 만화의 을 알려준 것이 여러 웹툰들이었다. 맨 처음 만난 웹툰에 대한 관심은 <마린블루스>에서 시작하여 이후 강풀의 <26년>을 보고 난 만화가 비로소 '힘' 을 가질 수 있고 '메세지'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어 세 번째로 나에게 만화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려 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여전히 "만화=재미"라는 등가공식을 당연시 하던 나에게 이 책은 만화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방식만 그림으로 다를 뿐 안에 담긴 메세지는 다른 책과 다르지 않음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지고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단지 그림이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오히려 글보다 효과적이라 만화라는 형식을 사용했을 뿐 실제 주는 메세지는 글보다 더하면 더하지 결코 덜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만화책을 '본다'는 표현보다는 '읽는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싶다.

 

 예컨대 이 단편집에 두 번째로 실린 <자살 방조>라는 만화를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레 내 군 생활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작전행정병으로 과도한 업무와 구타에 시달리던 나에게 이 만화 속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의자'가 바로 나였다. 그리고 이 만화에서 주인공은 작전과장을 비롯한 간부였다. 오직 의자와 같이 사병을 비품으로 생각하고 제대로 씻기거나 재우지 않고 일을 시키는 모습이 묘하게 만화에 그대로 대입되었다. 특히 "넌 문을 잠그고 내무실로 가서 잠이 들지. 그리고 다음날 어제와 다름 없는 사무실을 보곤 밤 새 아무 일도 없었다고 믿는 건가?"라는 의자의 이야기는 군 생활에서 내가 간부에게 하고자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저녁 점호와 다음날 아침 점호에 변함없이 참석하는 병사를 보면서 정말 내무실에서 아무런 일이 없었다고 믿는건가? 실제 점호 시간 이후 이어지는 폭언과 구타, 그리고 선임병 근무 대신 투입되어 한 숨도 눈을 붙이지 못해도 내가 뛰어난 작전병의 능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당직사령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아기공룡 둘리에 대한 오마쥬인 <공룡 둘리>를 읽으면서 나는 불청객 취급받는 둘리와 그 친구들의 모습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공장에서 일하던 둘리는 프레스에 의해 손이 잘리지만 공장주는 "이 민증도 없는 새끼!! 사고 한 번 칠 줄 알았어!! 당장 나가!!"라고 오히려 윽박지르고 친구라고 믿었던 철수는 "오갈 데 없는 것들 데려다가 먹이고 재워줬더니… 친구!? 내가 니 친구냐?"라며 둘리는 폭행한다. 그리고 또치는 몸을 팔게 되고 마이콜은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고 도우너는 외계인 연구소에 의해 해부되게 된다. 특히 "어디에 있든 상관없잖아? 어차피 불청객들인데…"이라는 또치의 말은 우리 나라에서 '불청객' 취급받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말 다름이 아니다. 결국 당시 한번 빙하기가 와서 현실을 피할 수 있는 잠에 빠지기를 원하는 둘리의 모습…. 과연 둘리는 다시 한 번 찾아온 빙하기 후 깨어났을 때 희망을 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선택>이란 만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2002년 월드컵을 위해 쫓겨나야 했던 철거민에 대한 만화인데… 사실 나 역시 만화 내의 건설소장이 하는 이야기에 어느 정도 동감을 하고 있다. "세 들어 살다 철거 된다니께 집 내놓으라는 것도 도둑놈 심보고… 그러구 지들이 저런다고 국가에서 날 받아 논 월드컵을 도로 물릴겨? 다아 빨갱이 새끼들이지…. 고생들을 안 해봐서 그려"라는 말 중 빨갱이니 고생을 덜 해서 그렇다는 말은 헛소리지만 앞에 두 문장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철거민에게 어떤 권리가 보장되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법적으로 세 들어 살다가 계약 기간이 다 되거나 주인이 이사 비용 및 잔여 기간 주거 비용을 지급하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정당하게' 세입자로 하여금 집에서 나가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할고 있다. 그렇다면 집까지 요구하는 것은 과한 요구 아닐까? 혹여 이런 것이 불합리하다고 느낄 때에는 자신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뽑아 철거민 보호에 관한 법률을 통해 법적으로 보호 받는 것이 옳은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못 살고 못 배우는 사람들이 오히려 기득권 정당에 투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도 스스로 불러 온 것이 아닌가? 그들에게는 바로 나치 선전 장관이었던 괴벨스의 말이 인상 깊게 다가올 것이다.



 결국 이 만화는 재미 보다는 메세지를 담은 책으로 '보는' 만화책이 아니라 '읽는' 만화책이라 할 수 있다. 기존에 만화책은 비교육적이라는 선입관에 빠져 있다면 이 책과 함께 새로운 만화를 만나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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