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만약에 만화가 <최규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만화책은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약 일주일 전에 최규석 만화가를 만났을 때 최규석 만화가는 많은 인터뷰나 기사 등에서 '만화에 대한 선입견'(예컨대 유치하다든지 비교육적이라든지)을 먼저 언급하지 않고는 인터뷰나 기사를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점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 점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만화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인권'을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다른 책에 비해 읽어야 될 우선 순위가 뒤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좋은 책을 많이 출판하는 창비 출판사와 이 만화책을 기획한 국가인권위원회와 이 곳에 참여한 8명의 만화가의 노력으로 어른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도 만화를 통해 쉽게 '인권'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이 만화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먼저 손문상 만화가는 신문에 나오는 만평 형식으로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만화를 그렸고 이애림 만화가는 <그는>이라는 제목의 만화로 성소수자인 동성애자에 대한 만화를, 장차현실 만화가는 <여배우 은혜>라는 만화로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 아이가 영화 여배우가 되어 의젓해지는 딸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홍윤표 만화가는 <이상한 나라의 홍대리>라는 제목의 만화로 차별이 만연화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오영진 만화가는 <새대가리>라는 만화로 서열화된 공교육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정훈이 만화가는 <해리포터와 호구왔다 마법학교>를 통해 돈만 밝히는 대학 교육의 문제점을, 유승하 만화가는 <축복>이란 만화로 임신한 미혼녀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최규석 만화가는 <창>이란 만화로 군대 인권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 중 <그는>이란 만화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대다수는 동성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다. 사실 동성애가 최초로 금기시 된 것은 성경을 통해서인데 역사적으로 보면 동성애를 통해 욕구를 해소하게 되면 출산율이 감소하게 되어 인구=국력인 상황에서 국가 및 민족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결국 꼭 이성애를 해야 될 당위성을 찾기는 힘든 것이다. 그저 동성애에 대해서는 단순히 '하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왜 하면 안되는가?'에 대해서는 그저 '징그럽다'는 생각 정도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동성애가 나쁜 것이라는 당위성을 찾기 힘든 이상 동성애자 역시 이성애자와 같이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함은 명백하고 이를 이 만화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새대가리>와 <해리포터와 호구왔다 마법학교>는 서열화된 교육의 문제점을 잘 그리고 있다. 특히 <새대가리>는 검은 종이에 빨간색 바탕색을 기본으로하여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A~C 등급 인간으로 나뉘어 차별받고 자신의 꿈(여기서는 '날개'로 표현된다.)을 부모님과 사회로부터 지키기 위한 주인공의 눈물겨운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인상 깊은 것은 주인공이 기르던 새장에서 새를 구해줬지만 다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새장으로 돌아온 새들을 보며 주인공이 "미쳤냐 왜 여길 다시 왔냐. 그렇게 살아라 주는대로 감사하며…"라고 독백하는 모습이었다. 자유를 갈망하지 않고 먹을 것만 주면 감사하는 것은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와 달리 '자유'도 갈망한다. 물론 사람마다 먹을 것이 우선인지 자유가 우선인지는 다르지만 말이다…. 또한 <축복>이란 만화는 미혼 임신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나는 만화가와 달리 차라리 낙태를 합법화 시키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한다. 이 만화와 같이 미혼인 학생이 임신한 것이 과연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임신하게 되면 순식간에 약자가 되는 것이 바로 여성이고 이 만화에서는 태아 역시 '인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원치 않은 임신이라도 아기를 낳는 것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임신 여부 및 출산 여부는 여성의 선택 문제로 두는 것이 옳다고 보이며 그런 점에서 낙태를 합법화하는 것이 오히려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길이라고 본다.(물론 남성이 이를 악용하지 않도록 비용 부담 문제 등을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창>이란 만화가 기억에 남는다. 최규석 작가는 이 만화를 통해 "누가 봐도 잘못한 후임병이 있는 경우에도 때리지 않을 수 있느냐?"라는 것을 묻고 싶었다고 하였는데 이게 작가의 의도라면 좀 더 지면을 할애하여 후임병을 나쁜 사람으로 그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본인의 경우 역시 상병 달 때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맞았는데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단 한 번도 후임병을 때린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분명 몇 번 고비는 있었는데 나는 이등병, 일병 시절 맞으면서 절대 후임병을 때리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 결심을 다행히 지킬 수 있었다. 살펴보면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오히려 자기 자식에게 더 폭력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민감해질 수 있다면 군대에 만연한 폭언과 구타는 사라질 것이다. 요즘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한도 축소되고 '인권'보다는 '경제 성장'(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한 경제 성장인지는 의문이지만)이 유일한 가치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권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