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icaru > 어느 겸손한 수학자의 학문과 인생에 대한 생각....
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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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은 건 대학 2학년 때이다. 사회학 개론 수업에서 레포트로 주어진 책이었기 때문에 사실은 억지춘향으로 읽었었다. 그 땐 학문이 도저히 즐거워질 리가 없던 시절이었다.(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래서 약간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렇다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이나마 얻을 수 있을까' 하는 흑심(?)을 품고 읽었었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다시 꺼내 펼쳐든 이 책엔 다음과 같은 부분에 밑줄이 팍팍 그어져 있다. '인간은 1백 40억개나 되는 뇌세포 중에서 보통 10퍼센트만 사용한다......' 같은. 당시엔 기억하고 외우는 학문의 방법적인 측면에서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그러던 이즈음의 어느 늦은 밤에,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수학 <정석>의 저자 홍성대가 가요무대의 명엠씨 김동건이 진행하는 토크쇼에 나와 이야기하는 걸 보게 된다. 홍성대 님의 수학 정석의 인기는, 막말로 지금까지 팔린 <정석> 쌓아 놓으면 에베레스트산을 120번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가난했던 홍성대는 대학 재학 시절 등록금과 용돈 마련을 위해 수학 과외 지도를 했었고, 지금의 <정석>은 그때 당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가 만든 과외 지도 교본이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언젠가 읽었던 일본의 어느 수학자가 학문을 하는 기쁨에 대해 써 놓은 책을 읽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학문을 하는 기쁨이 어떠했다고 했는지 다시 한번 그 수학자의 겸손한 일담을 회상하고자 학문의 즐거움을 찾아 읽었다.

다시 읽어보니, 이제는 지난 시절에 읽던 내용과는 또다른 측면에서 행간이 읽히기 시작했 다. 다 읽고 나서 책상 앞에 앉아 그냥 가만히 오래도록 생각했다.

이즈음 나는 밤에 잠을 자다가 한번 깨면, 다시 잠들기까지 수만가지 생각을 하는데 그 중에 대다수가 회사 일 생각이다. 뭐 엄청난 업무를 한다고 이러는가. 스스로에게 반문한다.언제부터인지 나는 이렇게 회사일 때문에 조바심 쳐대는 버릇이 생겼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끈기를 발휘하는 일, 느긋하게 기회를 기다리는 일과는 너무나 멀어져버린 일상을 뒤돌아본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심각하리만큼 중심을 읽어버리게 되는 날이 몇 번인가 또 찾아올 것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때마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씨의 이 책을 펼쳐 들게 될 것 같은데 .....

그러나 딱 한가지 이 책에서 거슬렸던 것 4장 <자기 발견> 부분을 보면, 하버드에서 공부한 그가 미국의 학풍이 다양성을 중요시한 다고 목소리 높여 칭찬하는 부분이 있다. 다양성까지는 좋은데...좀 거슬린다...... 미국과 일본의 학풍을 비교하고, 자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견지를 취다하보니, 조금은 친미론적인 글이 되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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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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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J라는 친구가 생각났다.과학고에 진학했고,2학년 때 KAIST에 입학했다고 들었다.그 친구와 나는 같은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에 집에 같이 갈 일이 제법 있었는데,그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깜짝 놀라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나는 생각해' 라고 뜬금없이 이야기하길래 '뭘?' 하고 물은적이 있다.그 녀석,싱긋 웃더니 '고로 나는 존재해' 이러는게 아닌가! 나는 머쓱해져서 할 말을 잃었다.그 녀석은 늘 뭔가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씨도 그 녀석과 많이 닮았다.언제나 끊임없이 노력했던 점이나,수학문제를 붙들고 1시간이건 하루종일이든 집중했던 점이 닮아 있었다.
역시나 천재는 타고난다기보다는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성과물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다. 나 역시도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다.그래서인지 나는 늘 노력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좋다.그들의 얘기를 듣거나 읽고나면,다시금 힘을 내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그들이 해냈다면 나 역시도 언제나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니까.

학문을 배우는 목적은 '지혜' 를 얻기 위해서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공감이 가는 말이다.단순한 지식의 습득과는 다른 어떤 것을 배우고,익히기 위해 우리는 학문을 배운다.그 속에서 우리는 뭔지모를 희열을 느끼게 되고 소심심고(素心深考)를 중요시하는 작가의 겸손한 마음또한 충분히 배울점이었다.소박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깊이 생각하라는 말.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열려있는 사고를 할 것.

무엇보다 저자에게서 본받을 점은 수많은 욕망들을 직접 실천으로 옮긴 결단성과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했다는 사실이다.누구든지 그러한 마음을 품기는 쉽다.하기가 어려울 뿐이다.저자는 기한없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매진할 수 있다는 것.나로서는 무척이나 어렵고 고된 선택이 아닐 수 없다.역시나 성공한 사람들에게선 '끈기와 집념' 이란 말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건 친구와의 만남을 서술한 부분이다.그들과 허물없이 지내긴 하지만 절대로 주체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다.우리는 흔히 이 부분을 간과하기 쉬운데,친구따라 강남가지 않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작가는 새삼 깨우쳐 주고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열악한 환경에,그것도 뒤늦게 시작한 공부에서 배움이란 기쁨을 발견한 사람.일본인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그에게 작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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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력도장이 결성된 게 벌써 2년 반입니다(2004년 6월).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시작하여 지금껏 30권의 책을 함께 읽었고,
당원도 차곡차곡 늘어왔더랬습니다.
그런데 한 바퀴를 돈 지금 가슴아픈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복돌이님 -> 서재 탈퇴.
하얀마녀님 -> 장기 은둔중. 추천도서 선정인 활동도 안 함.

그 외에도 느림님, 비발님, 쏘울키친님, 연보라빛 우주님, 이파리님, 지우개님, 판다님 등도 활동이 뜸한 편이라
다시 추천인 순번을 돌릴 경우 호응도가 얼마나 높을지 살짝 불안합니다.
하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차력도장의 향방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모두 한 마디씩 의견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차력도장을 지금처럼 계속 운영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 개편할 것인지,
혹은 역사의 저편으로 물러날 것인지 등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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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12-19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먼저 말문을 열어도 될까요? 개인적으로 전 차력도장이 어떤 식으로든 계속 운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력도장이 있었기에 저의 편협한 독서력에 윤기가 돌 수 있었어요. <표절> <맞벌이의 함정> <제5도살장> <신기생뎐> <눈먼 자들의 도시> <생사불명 야샤르> <남쪽으로 튀어>와 같은 책은 차력도장이 아니었다면 알지도 못했거나 읽을 작정조차 하지 않았을 책이지만, 안 읽었다면 장미를 모르는 나라 사람처럼 불행했을 거에요.

아영엄마 2006-12-19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선정도서의 반도 못 읽은(리뷰 쓴 거는 그거보다 더 적은) 회원이라 발언하기도 참 민망하네요. 저도 차력도장 덕분에 새로운 책들을 접하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기도 하는지라 나름 소중하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암튼 서재활동에도 침체기가 있듯이 차력도장도 침체기를 맞은 것 같아요. 현재 활동이 없으신 분들은 잠정회원으로 도서추천 순서에서는 일단 빼놓으심이 어떨지... - 뜬금없이... 관리하시느라 힘드시죠? (__)

마노아 2006-12-19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들어온지 얼마 안 되어서 뭐라 말씀 드리기가 더 조심스럽지만, 차력도장을 발견하고 참 반가웠어요. 아직 참여도가 저조하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거야요~ 그니까 차력도장이 계속 존속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아영엄마님 의견에 동조해요^^

ceylontea 2006-12-19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거의 활동을 안해서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역사의 저편은 아니었으면 합니다..

진/우맘 2006-12-20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의견에 강력동의.
관리하기 힘들죠? 흑흑....미안요.
근데, 차력도장 아니었음 둘리도, 내나라도, 아침꽃도, 강철도......기타등등 모든 책을, 어찌 만났겠어요?
차력도장 선정 도서중 별점이 네 개 이하로 내려간 건 하나도 없다우. 아니, 대개가 다섯 개에 덤을 얹어주고 싶을 지경이죠. 그리고 읽고 나선 어쩜 그리 배부른지....^^
차력도장 식구들이 모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서 선정한 책이라 그런가봐요.
접지 말자~~~~ 그리고 우리가 비실비실이나마 계속 터닦아 놓고 기다려야 복돌성님도 마녀님도 돌아올 자리가 생기죠.^^

로드무비 2006-12-22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좋은 책들이 많이 소개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존속 이유가 될 듯.
선정도서 좀더 열심히 읽고 서평도 올려야지요.^^

차력도장 2006-12-22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흑백티비 님의 의견을 옮겨 둡니다.

흑백TV

내년에는 좀 더 많은 분들을 뵐 수 있었으면 좋겠고,지금과는 또다른 방식의 재미있는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이를테면,선정도서를 중심으로 리뷰가 아닌 댓글형식으로 감상평을 남긴다든지,쟁점이 있으면 그걸 중심으로 댓글공방(?)을 펼치는 것도 재미가 있지 싶네요.

http://www.aladdin.co.kr/blog/mypaper/1023738


sooninara 2006-12-22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정도서를 중심으로 리뷰가 아닌 댓글형식으로 감상평을 남긴다든지,쟁점이 있으면 그걸 중심으로 댓글공방(?)을 펼치는 것도 재미가 있지 싶네요.좀 더 신선한 아이디어를,회원님들이 내어주시리라 기대해 봅니다.*^^
라고 흑백TV님이 말씀하셧네요. 저도 찬성입니다.
마지막주 금요일밤 11시..이런식으로 시간을 정해서 댓글토론이나 수다방을 하는것도 좋을듯..책이야기도 하고 수다도 떨고..
 
 전출처 : 파란여우 > 나는 나의 깃발을 흔들뿐이다. 개인 만세!
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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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상향은 어느 누구에게도 착취당하지 않는 자급자족의 생활이야” 반국가주의자 우에하라 이치로는 네 명의 가족을 데리고 도쿄를 떠난다. 그가 가는 곳은 오키나와에서도 더 남쪽인 이리오모테섬. 1권에서 지로는 수학여행경비 문제와 국민연금 납부 문제로 국가기관과 불화를 겪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엄마는 왜 아버지 같은 사람과 결혼했을까’, ‘어리다는 건 여러모로 억울하다’고 속으로 혼자 마음의 병을 앓는다. 아키라 아저씨가 주고 간 시계를 귀에 대고 초침소리를 들으며 소년은 어른의 세계를 엿듣는다. 이제 얼렁뚱땅 갑자기 살게 된 남쪽나라에서 지로의 성장은 가속도로 쭉쭉 뻗어 나간다. 하지만 이 걱정 많은 소년의 성장통은 2권에서 완전히 졸업한다. 염소우리를 만들고, 페인트칠을 하고 많은 방문객을 맞이하느라 감상에 빠져 사춘기를 향연 할 공간이 없다. 예상 시나리오대로 몰상식한 아버지의 기행은 남쪽 섬에서 이야기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곧 이어 궁색하지만 행복한 남쪽살림에 국가권력의 폭력은 해일처럼 들이닥친다. 공무원과 아버지의 대결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화해의 기운이 전혀 없는 평행선의 다툼이다. 이번에는 국민연금과 수학여행경비 차원이 아니라 생존권과 핫라인으로 연결된 짜릿한 절규의 현장이다. 리조트 재개발과 개인의 삶의 보장이라는 큰 테마다. 다시 말해서 “날씨 좋은 날에는 논밭을 갈고, 비 오는 날에는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본디 인간이 지녀야 할 모습”-(127쪽)을 파괴하는 괴물의 습격이다. 청경우독(晴耕雨讀)은 개인의 이상주의이며 적자생존(適者生存)은 정글의 법칙이다. 정글을 관리하는 국가라는 괴물은 국가에 반(反)하는 정체를 해체하고 제거하는 이념을 갖고 있다.


2권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아버지의 노동이며,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열두 살 소년의 쾌속이다. 지로는 비가 새는 지붕조차 최악은 아니라고 자위하며, 전학 첫날 ‘이 섬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다섯 명의 학생과 한가한 수업진도, 선생님들의 양심적인 자세에 도쿄태생은 한 시간 반을 걸어서 통학하는 열의를 보인다. 소년은 소녀를 만나고, 새로운 인식을 만나고 새로운 하늘과 바다를 품는다. 그러나 지로가 만난 아버지의 전투가 1권에서 사상의 문제였다면 2권은 좀 더 세분화된다. ‘개발/환경/주민의 생존권/국가정책/자본가의 이익/전통보존과 말살/구시대와 현대의 충돌’ 이라는 복잡한 다차원 방정식을 푸는 문제다. 이 문제를 복잡하게 보는 시각은 많은 사유의 밤을 고뇌하며 보낸다. 하지만 세상만물의 이치를 하나의 원으로 보는 시각은 고민이 필요 없다. 답은 늘 하나로 준비되었다. 언제나 기회주의자들만이 사색의 밤이 긴 법. 단순하게 개인의 삶을 종교로 모시는 아버지는 ‘국가는 내 삶에 침입할 자격이 없다’로 저항한다. 명료한 답은 후련하다. 하지만 당신은 불온하다는 평을 매사 호쾌한 아버지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테러리스트야 말로 명예로운 이름”-(193쪽), “나는 나의 깃발을 흔들 뿐이다”-(196쪽)에서 아버지는 국가라는 공동체에 참여 하고 안하고는 개인의 선택에 따른 자유행위임을 강조한다. 한가한 남쪽바닷가에서 자급자족의 삶으로 일가를 이루고 사는 꿈을 지닌 아버지. 국가가 겨눈 창끝은 개인이 소망하는 최소한의 터전조차 허락하지 않고 그들의 낙원으로부터 끄집어내어 팽개친다. 강제로 국민을 국가에 편입시키고 굴복을 강요하는 체제가 빚어낸 그 많은 인류사의 비극을 이 책에서는 보이지 않는 희망의 이상향으로 끌어낸다. 그것은 파이파티로마의 땅이다.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이나 이어도에 대한 측면공유가 여기에 있다.


중간에 누나의 급작스런 방문과 섬에 대한 애착, 아버지에 대한 관대함의 발견은 1권에서 보여준 것과 극적인 대비라 독자는 다소 시니컬하다. “나도 화염병 한 번쯤 던져보고 싶은데”-(245쪽)라는 대목에서는 누나가 보여준 도쿄에서의 행동이 오버랩 된다. 누나의 놀라운 반전은 그저 덩달아 놀랄 수밖에! 그럼 뭘 기대했단 말인가. 정말, 허풍선이 이치로가 야스쿠니에 불을 질러주기를 기대한다면 소설이 소설을 넘는 오버가 되고 만다. 그런 건 김진명의『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근육질로 연기를 하는 실베스터 스텔론의『람보』시리즈에서나 기대하자. 그런 점에서 오쿠다 히데오의 교묘한 종결처리방법인 ‘파이파티로마’는 진부하지만 적절했다. “힘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것을 끝까지 허락하지 않은 영혼이 지금도 저 먼 남쪽에서 바람을 보내오고 있습니다.”-(310쪽)  “그러나 지금 그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이상은 어디로 사라졌는가”-(314쪽) 오쿠다 히데오가 쓴 명랑가족 우에하라 이치로씨의 가족사는 정직한 정신으로 저항했던 과거의 물음을 현대의 무대위에 디지털로 올려 놓았다. 국가는 왜 개인에게 적이 되어야 하는가의 현실적 물음이 2권의 주제다. 개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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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허풍선이 이치로씨, 나도 국민을 관두고 싶어요.
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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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책표지는 그의 문체처럼 ‘딱’ 떨어진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한 컷으로 보여주는 표지의 강렬한 시선은 국민연금을 의무적으로 납부하지 않기 위해서 기꺼이 국민을 포기하겠다는 우에하라 이치로의 도발, 그 자체다. 사실, 이 남자는 도발적이라기보다 위험하고 불안정한 인물이다. 태어날 때부터 ‘의무와 권리’장전에 등록되는 일을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국가/국민을 분리하는 발상부터 보라. 공무원을 두고 ‘체제에 빌붙어 사는 개’라고 단정하는 대목에서는 벌써 ‘빨간 조짐’이 보인다.


“나는 관청이 싫어”, “그렇다면 나는 국민을 관두겠어”, “학교에 다니기 싫으면 다니지 마라”, “콜라와 캔커피는 미국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아들의 담임이 가정방문을 하는 와중에 “학교 조회시간에 애국가 제창을 하기 싫으면 거부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이 수상쩍은 아버지의 직업은 ‘프리 라이터’다. 글이라고는 쓰는지 안 쓰는지 거실에서 콧구멍만 쑤시며 늘어져서 사는 무위도식의 가장이 도대체 왜 툭하면 ‘국가’의 존폐에 관한 주제를 물고 늘어지는 건가. ‘베스트셀러’를 내서 가족을 편안하게 만들겠다는 허풍쟁이. 자신의 가정경제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인물이 국가의 위악이 어쩌고 논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발칙하게 끝나는 간결한 문체에 마치 내 허파에 팽팽한 풍선이 턱하니 빵빵하게 차지한 것처럼 기가 찼다. 주어의 생략과 성장통이라는 소재를 배경으로 삼은 성장소설의 특징은 ‘교훈’의 출연이다. 주인공 아이에게 서정적인 감성으로 성장통이 접근했다면 오쿠다 히데오가 만든 성장통은 부르주아의 낭만에 빠질 여력을 주지 않는다. 얼마나 빡빡하게 구는지, 가난한 가정환경을 잠깐 훑는 것처럼 보여 주더니 곧장 학원폭력으로 뻗어간다. 하급생의 농구공을 강제로 뺏는 중학생 깡패 가쓰는 힘의 우월감을 과시하는 협박과 공갈의 상징인 무단정치를 상징한다. 고사리 주먹은 커서 '국가의 주먹'이 된다.(정치깡패, 관용깡패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가쓰=국가의 폭력, 무력하게 농구공을 뺏기는 나약한 준=국가 권력의 횡포 앞에 무너지는 개인의 무기력이다. 이 대입은 이 책의 뛰어난 장점이며 동시에 오버한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열두 살 아이의 복잡다단한 성장통이 국민으로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몰상식하고, 개똥같고, 수상쩍고, 난감한’ 아버지의 존재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성격은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주제가 크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아이가 주인공이므로 난감하다. 너무 오래 학원폭력을 대입한다 싶은 부분에서는 적절한 새인물이 툭 튀어 나왔다. 아키라 아저씨의 설정은 기존의 문학관에서 단골 출연한 예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예상 가능한 결말을 남기고 아키라 아저씨의 역할은 잠시 정지되었다. 이쯤 되면 결말도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사의 문화부 기자들이 쓴 미디어판의 평판은 한결같이 “대단히 흥미로운!”으로 귀결됨을 발견한다. 독자들, 특히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단어를 모두 동원한 듯 한 장편에 길들여지지 않았거나, 작가 김훈의 지적처럼 ‘복잡하고 생각을 깊게 요하는 글을 거부하는, 또는 능력이 되지 않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대들에게는 거의 핵폭발의 위력으로 평가 받고 있다. 속도전으로 몰입하는 빠른 진행이 일등공신이다. 아이들의 폭력과 국가의 폭력을 적절히 왕복하며 사용한 비유도 흥미로웠고, 그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은 쿠바의 카스트로와 나란히 사진을 찍은 아버지의 정체다. 수상한 과거를 의심받던 엄마는 ‘역시나!’ 성공한 자본주의가문출신이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전복을 꿈꾸는 혁명가 집단과 미나미 선생같은 중간 제도권자등 국민구성원의 총출동이다. 그래서일까. 소설은 내내 왕왕 시끄럽다. 도쿄 뒷골목가의 그 이층 다다미집엔 사건사고도 많지!


1권이 끝나가는 무렵에 서둘러 남쪽으로 짐가방을 꾸리는 가족의 모습에서 2권의 내용은 벌써 머릿속에서 찰칵댄다. 큰 그림으로 볼 때 오쿠다 히데오의 책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책이 갖는 위험성은 그것의 목소리가 ‘국가’를 향해 내리꽂고 있다는데 있다. 거대권력을 경쾌발랄하게 쫘르륵 내려 휘갈기는 짧고 경쾌한 문체는 얄미움을 넘어서 귀엽다. 계층간의 분화를 구도화해서 보여주는 이 책을 두고 ‘만화’적 기법을 차용한 명랑만화라고 말한다면 무리일까. 왜 우리는 국가를 그토록 심각하고 심란한 발음으로 논해야 하는 건가. 고로 이 책은 '국가'라는 거대단어에 대한 문체의 전복이다. 국가주의를 종교로 삼는 일본에서 “개인 단위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얏!”-(328쪽)라는 무정부주의자 우에하라 이치로씨의 남쪽 행에 나도 슬며시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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