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nemuko > 희망의 밥상 외

  이 책은 실론티님의 리뷰를 통해서 알게 되었던 책이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와 항상 함께 나오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탓에 환경 구호 활동에도 열심인 인물이란 건 처음 알았다. 
  '유기농' 이나 '웰빙' 혹은 '로하스' 라는 단어들이 요즘은 그래도 뜸하다. 광풍이 지나간 탓인지 아니면 이미 자리를 잡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좋은 줄 알지만 너무 비싸다' 던가 그런 이유로 '여지껏 괜찮았는데 뭘 새삼스럽게..' 였었다. 하지만 이 책은 왜 그런 '사소한' 이유로 우리가 '희망의 밥상'을 포기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일러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여지껏 먹고 괜찮았던' 음식들이 아니다. 농약 문제고, 유전자 변형 작물에 관한 문제고 다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닐거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게 문제였었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공포가 그 속에 숨어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이 책의 가장 강점은 내게 '올바른 방식으로 재배하고 길러낸 먹거리'들을 찾아 먹어야 하는 이유가 오로지 내 몸과 내 가족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는 것이다. 수요는 공급을 창출한다. 다국적 기업의 시장 논리를 이길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은 바로 소비자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단순한 식량 증산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그 지역의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제인 구달이 채식주의자라 채식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나오고, 미국 실정에 맞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등장하는 탓에 우리의 상황과 딱 맞춤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먹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를 이제는 시작할 이유가 생긴 것 같다.

  이 책을 더 먼저 읽었다. 아이들이 굶주리는 이유는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먹을 것이 제자리에 없어서이다. 많은 곳에는 너무 많고, 없는 곳에는 아무 것도 없고.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그것으로 먹고 살 수가 없단다. 열심히 지은 농작물은 다국적 기업에서 대량으로 지어 싸게 파는 농산물 보다는 턱없이 비싸서 팔리지 않고, 혹은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 팔려갈 기호품들(커피 같은)만 열심히 키우기 때문이란다.

 

  으음.... <스킵>이 너무 좋아서 기대가 컸던 탓인지. 아니면 역시나 전쟁에 관해서는 일본인의 심정을 공감하기가 쉽지 않아서일까 그저 그랬다. 아무리 그 시절 그 상황은 우리 모두 이상했었다고 한들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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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emuko > 장바구니에 들어 있는 책

  김용옥이란 사람에 관해선 예전의 호감도 사그라든지 이미 오래고, 다만 그의 강의를 들으러 다니던 무렵 간간히 들려주던 기독교 이야기가 은근히 재밌었던 기억이 있어서. 내 별반 이유없는 기독교 혐오증을 부채질할 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일단 읽어보고 싶다.

 

 

  아침에 한겨레 책 섹션을 읽다가 거기서 본 책인데 왜 식량이 남아돌아 폐기처분을 하면서도 세상에는 굶어죽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걸까에 대한 이야기란다. 기자의 리뷰만으로도 대충의 내용이 짐작은 간다만 직접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하루에 영양결핍과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이 10만명이라니 상상이 되나. 5초당 1명꼴로 죽는 거라니...)

 

 

  미야베 월드는 서서히 완성되고 있는 모양이다 ㅎㅎㅎ

 

 

 

  어째서 삼부작 중에서 가운데 <턴>을 빼먹고 이게 먼저 나왔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스킵>이 워낙 좋았던 기억이 있어 무진장 기다렸었다.

 

 

 

 누군가의 리뷰에서 <핑거스미스>보다도 두껍다는 이야기에 그냥 사고 싶어졌다면..

 

 

 

  '역사치'인 내가 역사라는 제목만 보면 혹하는 건 역시나 컴플렉스 탓이겠지? 저자의 <전염병의 역사>도 책장에 고대로 꽂혀 있는데 말이지. 그래도 왠지 저 2권만 읽으면 갑자기 세계사의 강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말도 안되는 예감이 무럭무럭 든다.  ㅎㅎㅎㅎㅎ

 

 

외에도 추리소설 잔뜩 대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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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icaru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석훈의 해제에 나온 것처럼, 이 책은 얼마되지 않은 어린이 기아 관련 서적 중에서도 가장 전문성과 객관성(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뜬구름 잡는 식의 정서적 대응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을 갖춘 책인 것 같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아이들에게 먼저 읽혀야 할 것 같다. 내 자식 세대에게까지 읽혀야 하는 현실(그떄까지 기아문제가 별반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데...)은 싫지만, 아마 그래야 할 가능성이 높다.ㅡ.ㅜ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인 아버지가 아들의 보편적이고, 마땅한 질문에 대답을 해 주는 형식이라서 기아 문제에 대한 배경 지식의 유무를 떠나 기아 문제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있다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다. 


기아를 무기로 사용하는 다국적 기업

새로 알게 된 사실 가운데 놀라웠던 것은 단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식 그리고 분유회사(슈퍼마켓에 가면 유기농 식품이라고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회사들과 국제 기아 문제와 관련하여 이윤과 관련된 작동 방식이었다. 이 책에서는 스위스 네슬레가 나왔다. - 대표적인 예로 1970년대 분유를 무상으로 제공하여 당면한 어린이 기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칠레 아옌데 대통령의 죽음(CIA와 결탁한 군부들이 대통령궁에 습격)-이다.


기아에 관해 가르치지 않는 학교, 불편해서 외면하고자 하는 진실.

기아 상황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어떤 수단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수업 같은 것이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에서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도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걸림돌인 것 같다. 전쟁과 정치적 알력 관계로 인해 구호 조치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현실, 구호 조직들이 구호 활동을 할 때 빠지게 되는 딜레마 그리고 사막화와 삼림 파괴(원인 제공자는 누구?) 언급하지 않고, 그냥 입을 닫아버림으로써 생기는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고.

 

 배고픔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어서, 기아와 그 끔찍한 결과는 세부적이고 정확한 분석을 필요로 하건만 학교는 침묵하고 있단다. "그들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고 있지. 그런 탓에 학생들은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애를 가지고 졸업할 뿐 기아를 초래하는 구체적인 원인과 그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단다."


 "<기아의 지리학>에서 조슈에 데 카스트로는 "사람들이 기아의 실태를 아는 것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긴다“는 거야. 그래서 그 지식 위에 침묵의 외투를 걸친다는 거야. 오늘날 학교와 정부와 대다수의 시민들도 이런 수치심을 가지고 있단다."


"서구의 부자 나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우리 모두가 죽지 않도록 자연 스스로 주기적으로 과잉의 생물을 제거한다는 거야.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가 담겨 있는 말."


"맬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렸지만,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거든. 날마다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구호 시설에서 웅크린 채 죽어가는 아이들... 수단의 덤불 속을 비쩍 마른 몸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일반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거든. "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지정시키고,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분노를 몰아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맬서스의 신화를, 끔찍한 사태를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사이비 이론을 신봉하기 이른다고.


 

피난민 엄마들은 난민 캠프 앞에서 아이들을 안고 있었지. 아이를 싼 누더기 천이 아이가 갸날픈 숨을 몰아쉴 때마다 위아래로 들썩이는 모습은 정말 가슴이 아팠단다.


"기아는 부드러운 죽음이다. 점차 소약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이 없이 죽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빠 자신을 세뇌시키고 있었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단다. 누더기 속에서 일그러진 작은 얼굴들은 그들이 가공할 고통을 겪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어. 작은 몸들이 흐느끼며 오그라들고 있었지. 어만 누이들은 때로 숨진 아이의 얼굴에 가만히 수건을 덮었어.




특히, 불평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금융과두지배.....

 

남반구에는 기아 희생자들의 피라미드가 쌓이고 있고, 북반구에서는 다국적 금융자본과 그 과두제가 부를 쌓아가고 있다. 경제의 유일한 견인차는 이윤지상주의라는 입장. 신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 두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허구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이 시대의 급박한 과제인 셈이다.

 

글로벌화한 금융 자본은 결코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기존의 금융 전략가들을 천문학자에 비유한다. 천문학자가 천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경제학자는 경제적 현상 앞에 서 있다. 천문학자는 자기장을 측정하여 별들이 궤도를 계산하고, 학문적 활동을 객관화한다. 오늘날 금융 전략가는 천문학자처럼, 자연 법칙을 들먹인다. 그들의 눈에는 현실을 변화사키고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게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저자는 서서히 변화하는 공공 의식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예전만해도 수천만 명이 기아 또 사망하고 수억 명이 만성적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런 일로,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져 왔지만 현재는 그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라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에.

 

오늘날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고 인간적인 지구를 만들기 위해 이제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가면 된다. 이를 위해 자연 도태설이나 멜서스의 인구론 같은 따위는 없어져야 한다. “잘못된 것 안에 올바른 삶은 없다.”고 했던 아도르노의 말처럼,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다. 이런 땅에서의 행복이 과연 행복일까? 저자의 말처럼, 인류의 6분의 1을 파멸로 몰아넣는 세계 질서에 동의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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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돌이 >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에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가?

이런 끔찍한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이다.
때때로 내 아이의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눈물겹도록 고마워해야 될 일임을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바로 이런 글을 만나고 이런 뉴스기사를 접하고 할때이다.
제 자식 귀한것에 눈먼 에미는 한편으로 내 자식이 이런 상황이 아님에 안도하고 감사한다.
또한 한편으로 남의 불행에 빗대어 자신의 행운을 감사하는 이기심에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내 옆에 굶주리는 친구가 있다면? 또는 바로 내 이웃의 아이들이 굶어죽고 있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그 상태로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집에서 쌀이며 반찬이며를 퍼다 줄 것이며, 또 누군가는 행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봐줄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 옆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그런데 그것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멀고 먼 남의 나라 또는 그리 멀지 않더라도 어쨌든 내 눈에 직접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그 나라의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내가 도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다고?
그래 그렇게 우리는 딱 떨어진 거리만큼 무감각하고 무책임하다.
아니 애써 없는듯 모르는척 눈을 감는것일게다.

끊임없는 내전에 시달리는 소말리아는 기아구제를 위한 정책은 커녕 국제사회의 지원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듬으로써 의도적인 살인을 벌이고 있다.
오늘도 브라질이나 필리핀의 대도시에서는 부자들이 먹고 버린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을 찾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고...
심지어 그런 상황을 바꾸고자 최소한 국민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들은 식량생산과 유통 소비를 통제하는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식량이 인간의 기본 생명을 지키기 위한 역할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을 파괴하고 이윤을 위한 무기가 되는 체제를 과연 정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자본주의 체제의 무서움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윤 창출 즉 돈이 되는 것이라면 내가 더 많은 돈을 쌓을 수 있는 것이라면 하루에 10만명이 굶어죽든지 말든지 남는 식량을 불태워 없애버릴 수 있는 비정함.
그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그것이 자기 탓이 아니라 돈이 없는 그들의 문제라고 큰소리칠수 있는 죽일놈의 뻔뻔함.
정말로 말도 안되는 이 체제는 오늘도 잘 굴러가신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저 체제에 구멍을 내는건 가능하기나 할까?
그건 모르겠다.
다만 내 옆의 사람이 굶고 있는데 내입에 내 자식의 입에 밥들어가는것만 기특하다 훌륭하다 되지 않는것처럼 좀 떨어진 그들의 고통 역시 외면하면 안된다는 것 밖에는....
그걸 흔히 인지상정이라고 하는거 아닌가?

유엔조사관이었던 저자가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것처럼 나는 또 내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아마도 더 이상의 굶어 죽는 아이들이 없어질때가지 이 책은 유효기간을 가질 터...

부디 바램이 있다면 지금은 어린 내 아이가 중학생쯤 되어 이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될때는 더 이상 이 책이 읽지 않아도 되는 그런 책이 되기를......
그저 역사책 속에서 과거에는 그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났대라고 넘어갈 수있기를 바라는건 너무 큰 바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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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노아 >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기아의 진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가 만약 100명의 마을이라면... 63억 지구인을 100명으로 축약해서 비교해 본다면....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평균치가 나온다.

20명이 영양상태가 충분하지 않고, 그중 한사람은 아사직전입니다. 하지만 15명은 비만 상태입니다.


6명이 모든 부(富)의 59%를 독점하고 있고, 전부 미국인입니다.

74명이 39%를 갖고 있으며 20명은 겨우 2%를 나눠 갖고 있습니다.


75명이 먹을 것을 비축하고 있고, 비바람을 피할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25명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중 17명은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마을에서 한 사람이 대학을 나왔고, 두 사람이 컴퓨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14명은 글을 읽지 못합니다.


대체, 언제부터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했는지 모르겠다.  과거에는 아니 그랬는데 현대로 오면서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인류의 역사는 어쩌면 '불공평'의 역사였을 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못 사는 것,  누구는 거느리고 살고 누구는 굽신거리며 살았던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 불합리한 체제에 불만을 품어왔고, 또 그것을 깨부수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시민들은 역사의 주체가 되어갔고, 제 손으로 쟁취한 자유를 누리는 황홀함도 맛보게 되었다.  그런데, 권력과 부의 단맛을 맛본 사람은 자신이 내몰고자 했던 기득권의 그 행태를 답습해 가며 새로운 귀족으로 거듭났다.  인간은 원래 욕심 사나운 존재였고, 욕심이 욕심을 낳고, 죄가 죄를 낳아 사망에 이르렀다.  이렇게 결론지으면 되는 걸까?  그러면 끝인 걸까?


책을 읽는 동안 답답함에 한숨이 나왔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안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는 세상... 비타민 A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 꼴이라는 것... 세계 인구의 1/7에 해당하는 8억 5천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는 것... 이게 과연 정상적인 삶의 모습인가.

심지어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1/4은 부유한 나라의 소가 먹고 있다는 사실... 이젠 경악하기에도 지친다. 


자연환경에 의한 절대적 빈곤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모든 빈곤한 국가의 가난한 이유는 아니다.  그보다는 구조적인 불합리성이 더 많으며 강대국의 착취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고, 자국 내의 독재자와 소수 부유계층의 착취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가 힘을 쓰고는 있다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없으며, 그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보내주는 구호물품이 현지에서 제대로 쓰여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이웃을 그들의 독재자만 손가락질하며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정일이 아무리 미워도 우리가 북한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배불리 먹으며 풍요를 자랑하며 사는 나라들도 그 풍요가 선택받은 축복이라는 오만 속에서 살아서는 아니 된다.  또, 지금 당장 굶어 죽지 않는다 하여서 배고픔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일을 남의 일로만 여기는 우둔함을 보여서도 아니 될 것이다.  당장 직면한 우리나라의 실정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한미FTA를 체결하면서 정부는 자유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처럼 국민을 현혹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서 힘없고 가난한 국민이 ‘더불어’ 잘 살게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멀게 느껴지고 남의 일처럼 여겨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급작스럽게 찾아온 이상한파로 전 미국과 유럽은 꽁꽁 얼어붙는다.  미국의 수많은 피난민들이 멕시코 국경을 넘으려고 하지만 멕시코 정부는 허락하지 않고, 결국 정부 부채를 탕감하는 조건으로 그들은 국경의 문을 연다.  미국은 그 동안의 오만함을 버리고 전 세계와 함께 공존을 추구하며 살겠다는 약속을 대통령을 통해서 전하게 된다.  영화의 결말은 감독의 성향을 생각할 때 꽤 뜻밖이었으며 인상적이기도 했는데, 그 정도의 극한의 순간을 맞보지 않고는 인간은 겸손함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엄습했었다. 


더 이상, 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이며 세상은 아름답고 따뜻한 곳이라는 얘기는 하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인간은 원래부터 악한 존재라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인간은 다만, 약하고 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유혹에 약하고 도전에 약하고 고난에 약한 것이라고.  인류의 역사가 투쟁의 역사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아와의 싸움도 인간이 극복해내야 할 투쟁이라고 여긴다.  그 투쟁은 가난하고 굶주리는 나라만의 몫이 아니라, 전 인류가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하는 공동의 과제이다.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부, 행복의 대가로 다수가 억눌리고 굶주리고 불행하게 살아야 한다면, 그 사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사회가 과연 오래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혹여 그런 사회가 있다고 한다면, 그 사회를 거부하고 정상으로 돌리기 위한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아주 미약할 수 있다.  그러나 외면하지 않는 힘, 함께 아파하는 마음, 이웃을 향해 내미는 작은 손길 하나가 결국엔 인류의 역사와 미래를 바꾸어나갈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  우리의 마음 안에서, 우리의 가정 안에서, 우리의 학교 내에서, 이 사회에서, 이 지구상에서 말이다.


감상에 빠진 덕분에 책 이야기를 거의 못했다.  심각한 주제를 쉽게 표현해 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꽤 강점을 가지는데,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기아의 진실을 들려주는 대화 형식으로 책은 이어진다.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있고, 꼭 대답해 주어야 할 마땅한 질문들이 다양하게 녹아 있다.  책을 통해 얻게 된 진실과, 깨달아야 할 많은 부분들은 밑줄 긋기를 통해서 고스란히 옮겨 보련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두고 깊이 읽어야 할 책이다.  처음 출간된 것이 2000년이었는데 한국엔 늦게 도착한 감이 있다.  어린이를 지나쳐버린 청소년들에게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기꺼이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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