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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쎈연필 > 호오오오오오잇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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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성을 현실에 끌어들이는 기법을 오롯이 글로 쓴다면 극단의 결과가 나온다. 성공하면 백년을 고독하게 보낼 필요가 없는데, 대부분 실패한다. 그래서 감히 현실 소재를 뛰어넘는 것을 끌어들여와 글쓰기를 할 엄두를 못 낸다. 그런 점(환상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지의 즉물성이 확실한 만화는, 매력 만땅(왠지 만땅이라는 어휘를 쓰고 싶다)의 예술이다. 이 만화집에 실린 모든 단편이 고르게 재밌고 울림이 있다. 현실과 환상의 병치를 작가는 아주 능숙하게 구사한다. 너무 능숙해서, 갈고 닦은 게 아니라 타고난 재능 때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가의 처녀작이 작품집의 맨 뒤에 자리한다. 아닌 게 아니라 터치가 투박한 것이 아마추어 냄새를 팍팍 풍긴다. 나는 그 냄새나는(?) 처녀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기존 질서에 대한 재해석, 해체, 그리고 감추며 드러내기! 감추며 드러내기는 미메시스+낯설게하기이다. 훌륭한 기본기와 플롯은 작가의 덕목일진저. 그 덕목을 갖춘 작가가, 그것도 신인이, 패기 넘치게, 기존의 꽉 막힌 체계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진선미를 보았나. 이렇듯 우리가 알지만 낯선 소재… 가 작품집 전체를 관통한다.

리바이어던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용가리가 되겠고 일어 중역하면 고질라쯤 되겠다. 그것은 대체로 생명체로 상징되어 왔다. 권력자들은 대부분 인간들이니. 이 작가는 그 괴물을 기계로 환치시켰다. 맹목적인 선함의 강요는 단선적인 이데올로기가 된다. 선이 선으로서 기능하는 건 악이라는 관념과의 비교 때문이다. 그래서 선/악은 절대적일 수 없다. 절대적일 수 없는 게 절대적(모두가 착하게 살았답니다)이 된다는 것은 곧, 다른 관념을 억압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일 게다. 이 작품의 리바이어던이 눈달린 컴퓨터라는 것은, 정보(눈)와 이성(컴퓨터)을 통제한다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에 따르면, 옛날의 대중은 나쁜 놈이 누군지를 인식했다. 처리할 대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권력자들은 직접적 억압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중은 누구를 향해 돌을 던져야 할지를 모른다. 문화 산업이란 것으로 대중들의 생활 양태를 조작한다. 그러니까, 무비판적인 대중의 양산, 그것이 현대의 권력자들이 문화 산업을 키운 주목적이다(문화 산업의 최강대국이 단연 미국이고, 그것을 무지막지하게 수출하는 까닭이 이거다). 어쩌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는데, 그런 점(얘기를 길게 할 수 있게 만드는 점)에서 리바이어던은 잘 다듬어서 서사화 해도 괜찮을 듯한 우화이다.   

선택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작품이다. 근래에 읽은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남자고교, 군대, (남성들만 득시글대는) 노가다판을 거친 청년(마초의 탄생!). 청년도 나름대로 애저린 서사를 지니고 있을 게다. 가난한 고학생이며 불안한 가정에서 자랐다든지… 헌데 작가는 그런 너저분한 사연을 생략한다. 환경이 좆이건 지랄이건, 사람은 살면서 수차례의 탈태(?) 기회를 부딪친다. 그런데 자기가 가진 (물질적인 게 아닌 정신적인) 것이 비루하다고 느끼면서도 자기가 가진 것을 고집하는 인간이 대다수다. 때문에 선택의 기로에서, 청년은 친구를 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곤충학자의 시선을 느꼈다. 아무쪼록 그런 관찰력과 과감함을 더욱 업그래이드 하시길.

앞에 실린 세 작품은, 재미로 치면 월등했지만, 마무리와 구성이 엉성하게 느껴졌다. 보고 난 후 이런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사건을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독자를 잡고 이끌어가는 능력도 있다. 헌데 왜 그런 식으로 끝내지? 엮은 매듭을 감당 못하는 듯했다. 하늘로 날려버리거나, 바다로 보내버리거나, 죽여버리거나, 변신시키거나, 회개하는 것 ㅡ 가장 불필요한 마무리 서사다. 나는 사실 둘리의 마지막 장면을 봐도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젊은 만화가 중에, 이런 방면에 공력을 쏟는 작가가 있다는 건 기대되는 일이다. 기대는 곧 미래. 미래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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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반딧불,, > 나는 눈을 닫고 싶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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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제각각 자신의 처지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삶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뿐. 그들을 누구도 욕할 수는 없는 것이다.

허나 돌아보아야 할 것들을 돌아보지 못하고, 꼭 해야할 것들을 무시한다면 지탄을 받는 것이다.

 

어떤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만화와 판타지에서는 현실도피성의 환상을 꿈꾸는

나의 머리 구조는 이것은 너무 잔혹한 것이라고 계속 이야기한다.

영상으로 보여지는 것은 활자로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더 슬프고 극적이다.

그리고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정면으로 들이대어서 눈을 못 떼게 한다.

나는 차라리 눈 감고 싶다. 차라리 닫고 싶다.

 

 

그런데도 그럴 수가 없다.  꿈에라도 쫓아오는 둘리의 그 슬픈 눈매가, 해골만 남은 모습이...

무력감이 뼛 속 깊이 새겨져 있는가보다.  나는 모른다.

모른 척 할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나를 용서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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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아영엄마 > 현실은 슬프고, 차갑고, 냉혹하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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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 무엇을 담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까지 봐왔던 여느 만화와는 다른, 우리가 나날이 마주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아내고 표출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나도 상처받고, 반성하고, 두려워하였다. '사랑의 단백질'을 볼 때 문득 떠오른 것은 인터넷상에서 접한, '강아지를 팝니다'라는 표지판을 목에 건 개의 사진이었다. 그 개야 그 글의 의미를 알리 없고, 그저 자기 자신의 강아지가 팔려나가는 순간이 되어서야 생때같은 자식과의 이별에 끙끙거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닭집 주인은 엄연히 먹고 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자기 자식을 파는데,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 속한 것을 파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 살기 위해 자신의 것을 떼어내 파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그런 누군가가 피눈물을 흘려가며 파는 것들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 이 책 제목에 나오는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둘리가 누구인가... 80년대에 우리 곁으로 찾아온 그는 '둘리를 모르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간첩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잘 알려지고 많은 사랑 받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작가 최규석은 영원히 아기로 머물러 있을 것 같던 둘리를 갑자기 현실세계로 불러내어 살아가게 만들었다. 마법을 행하던 손가락을 잃어 버린 둘리의 모습이나 적나라한 현실임을 일깨워주는 또치, 도우너, 철수, 희동이... 그들은 모두 이제 명랑만화 속의 주인공들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에 가졌던 환상을 뒤로 하고, 현실이 내뿜는 냉기 속에서 서서히 얼어가는 것은 아닐는지....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도 변해 버린 둘리-어쩌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르는..-를 당장이라도 보다듬어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싶어진다.

 아이조차도 자신을 위해 남을 짓밟는 냉혹한 현실의 법칙 속에서 살게 만들어 버린<콜라맨>은 그 작품 말미에 실린 평처럼 의도를 지닌 마무리로 현실감이 반감된 면이 있다. 콜라맨을 데려가고자 하는 사내의 나이를 좀 더 후년-자신의 삶을 진실로 반성할 줄 아는 나이-으로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외 중간중간에 실린 몇 컷으로 이루어진 작품도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작품이고, 행복한 삶이라는 미명 아래 인간들이 스스로를 기계-컴퓨터-에 예속시키는 미래를 경고하는 <리바이던> 등등, 최규석의 작품은 어느 것 하나 쉬이 보고 넘길 수 없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는 세상은 달콤한 사랑이야기나 행복한 삶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실은 슬프고, 차갑고, 냉혹하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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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oulkitchen >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사랑은 단백질>

나는 은박에 싸여 작은 종이 상자에 담겨져 있다가 당신에 의해 개봉되었다. 튀겨진 내 몸은 채 열기가 가시지 않아, 은박이 젖혀지면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나는 여덟 살 난 닭돌이. 하늘을 날고 싶었지만 날개가 작아 날 수 없었다. 그리고 가난한 아버지는 나를 잡아, 털을 뽑고, 기름에 튀겨 당신에게 팔았다. 그렇게 내 몸 값은 9천 원. 차마 내 목을 내리칠 수 없었던 아버지에 의해 살았을 때의 모습 그대로 튀겨진 내 모습은 참혹하다. 당신들은 쉽게 나를 먹을 수 없다. 그런 당신들에게 아버지는 생전의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인다. 오, 아버지 그러지 마세요. 나는 이 튀겨진 뜨겁고 참혹한 몸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요. 그들로 하여금 어서 빨리 나를 먹어치우게 하세요. 그래서 나를 방귀이게, 트림이게 하세요. 나는 이제 그저 공기이고 싶어요.....그들 중 하나가, 내 뼈를 갈아 종이컵에 담는다. 그들 중 다른 하나는 풍선에 내 생전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오오...나는 그 풍선에 매달려 난다. 날고 있다.

<콜라맨>

아이들은 순수하고 또 그만큼 잔혹하다. 영화 <킬링 필즈>에서 사람들의 머리에 검은 비닐봉지를 씌워 무심히 살인을 저지르는 아이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비뚤어진 집>의 소녀처럼, 어린 나처럼, 그리고 이 만화 속의 아이들처럼. 그들에게 콜라맨이라 불리는 이 정신지체 장애인은 사람도, 어른도 아니고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다. 콜라 한 병이면 꼬추도 까보여주고, 콜라 한 병이면 수족처럼 부려먹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발적으로 발생한 어떤 사건을 은폐시키고, 그 죄를 뒤집어 씌울 수도 있다. 콜라 한 병이면 말이다. 컬러로 그려진 <내사랑 단백질>에 비해 펜선이며 그림체가 세련되지 못하지만 그게 오히려 이 이야기의 남루한 배경과 잘 맞아 떨어진다.

<공룡 둘리>

그들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를 생각하는 자리에 낙관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피엔딩의 영화, 사고나 화재의 현장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사람,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연인이나 더없이 예쁜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내게는 다 슬프고 불행하게만 그려지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나 뿐인 건 아니었는지 여기, 불법체류자가 된 둘리와, 고길동에게 사기를 치다 그 아들 철수에게 팔려버린 도우너와,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되어 몸을 파는 또치와, 양아치가 되어 감방에나 드나드는 희동이와, 밤무대 가수가 된 마이콜이 있다. 제대로 공룡이 되지도 못하고 어린 시절의 동글한 얼굴에 주름만 잔뜩 껴버린 둘리는, 마지막에 고길동의 무덤 앞에 몸을 둥글게 말아 눕고, 정말 공룡의 모습이 되어..다시..빙하기가 오려나봐요...라고 혼잣말을 한다. 이제...무엇이 멸종될 것인가.

 

이 책이 도착한 날은 5월 4일이었고, 그 날은 고조할아버지(할머니인가 암튼) 제사였다. 나는 사흘동안 머리를 콕콕 찧어대는 편두통때문에 돌기 직전이어서 조용히 우리 방으로 들어와 이 만화책을 펴들었는데, 작은엄마가 들어와선 일은 안돕고 결혼도 안 하는 주제에 늦게 들어와 만화책이나 보고 있네, 하는 눈으로 나를 봐주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책은 너무나도 괜찮았고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그 늦은 시간에 제삿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새벽 2시 넘어까지 뒷설겆이를 다 하고 나서도 잠이 오지 않아 오래 뒤척였었다.  이 책엔 위의 세 작품 외에도 단편 세 편이 더 수록되어 있고, 또 몇 편의 쪽만화가 같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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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다연엉가 > 기억을 더듬으며....

어제 저녁에 쓴 글이다. 그냥 여기에 요렇게 한 자 남길란다.굳이 리뷰가 아니더라도 차력사들 괜찮겠제^^^

 

퇴근할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문을 닫고 일어서서 편안한 곳으로 돌아가기가  머뭇거려진다. 창밖엔 비가 많이 내린다. 오늘 같은 날이면 더욱더 무덤을 안고 있는 둘리가 떠오른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편안한 세상을 맞이하고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읽었던 어느 단편집에서의 손가락 무덤이 생각났었다. 어떤 말로 나열하기 보다는 손가락 무덤이라는 제목 자체에서 난 전율을 느낀 기억이 있다.

책을 손에 놓은 지가 몇주가 지나고 있다. 지금쯤은 나의 어릴적 꿈과 희망의 둘리가 되살아 날만도 하건만 아직도 슬픈 둘리가 뇌리속에 박혀 있어 그 책의 파고듬의 강도가 깊었는가 싶다. 한 번 읽고 아직까지 나의 손에 돌아오지 않은 책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욽어 보고 싶다. 오늘 같이 비가 오는 캄캄한 밤이면 더욱더 그렇다.

둘리를 읽고 난 뒤 침울한 나에게 누군가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해 달라!!! 죽고 싶다고 연발하는 자에게 벼랑의 끝에선 자에게  뒤에서 살짜기 밀어버리기 보단 꼭 붙잡아 주는 이를 만나고 싶다. 우리의 머리속은 참으로 희안하여 자꾸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면 들수록 늪인것을 이 둘리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현실이 고달프고 험난해도 이 책속의 상황으로 될 지언정 우리는 희망을 잃지 말자... 쓰레기를 뒤져서 개미떼가 새까맣게 달려든 사과 한 조각을 집으면서 입으로 꽉 베어먹어서라도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잊지 말자.  인간인것을 알면서도 가면을 쓰서 인간인것을 망각하고 벗어 던져서 비로소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인간은 되지 말자. 그때는 벗지 못한 자에게 먹히는 상황이 될지라도 우리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만은 되지 말자.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쓸 만은 참으로 많았는 것 같았는데 막상 쓸려고 달려드니 이 책이 비로소 그립다....... 일요일 돌아오면 그 때 내 다시 한 번 읽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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