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진/우맘 > 그가 나를 바꿨다
이 책, 아직 안 읽으셨다구요? 서점에 들리거든, 잠깐만 시간을 내세요. 5분이면 됩니다. 그리고 첫 장을 펴세요. ‘승인’이라는 페이지가 나옵니다. 이 페이지만 읽어도, 책의 반은 읽은 겁니다.
‘승인’이 재미있으셨습니까? 끅끅 소리 죽여 웃느라 민망했다구요? 아, 시간도 5분 더 내실 수 있군요. 그렇다면 머리말을 한 번 읽어보세요.
네? 머리말까지 읽으면 이 책을 얼마만큼 읽은거냐구요? 글쎄...아마 전부 다 읽은거나 마찬가지 일겁니다. 마이클 무어의 유머가 통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머리말까지만 읽고 멈출 수는 없을테니까요.
책을 덮은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를 읽는 동안, 나는 독서를 한 것이 아니었다. 마이클 무어, 얼굴 한 번 못 본 이 사람이 3D 홀로그램 영상으로 내 눈 앞에 전송되었다. 그는 엉덩이 뒤로 빼고 앉아, 무릎에 양 팔꿈치를 붙였다 떼었다 하며 이야기를 해 나간다. 종종 흥분해서 손을 휘젓기도 하고, 웃을 때는 의자 팔걸이를 두들겨 대는 마이클 무어. 그렇다. 이것은 독서가 아니라 마이클 무어와 나와의 생생한 대담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쉽고, 재미있고, 명확하게 할 수 있다니....그는 영화감독이지만 제법 괜찮은 작가이기도 하다.
‘또한 국가가 통제하는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는 많은 기업들이 있다. 제너럴 모터스가 그렇고 보잉이 그렇고 또....제길, 그냥 여러분의 바지를 벗고 상표를 한 번 보든지, 아니면 텔레비전을 분해해보라. 혹은 텔레비전을 분해하면서 바지를 벗어보든지. -88p'
이런 류의 유머에 몇 번이고 혼자 낄낄거렸다.(결코, 예를 든 저 문장은 이 책 속 최고의 유머가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그렇게 우스개소리만 던지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그는 정색을 하고 날카로운 지적을 서슴치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테러‘와의 전쟁이라 부른다. 당신은 정확히 어떻게 이 명사(名詞)와의 전쟁을 수행하는가? 전쟁이란 나라, 종교, 사람에 맞서 벌이는 것이다. 전쟁은 명사나 문제에 맞서 수행되는 것이 아니며, 그런 식의 시도는 --’마약과의 전쟁‘, ’빈곤과의 전쟁‘ 등 -- 번번이 실패한다. -138p’
다시 한 번 단언하건데, 위의 예문도 이 책에서 가장 날카로운 문장은 아니다. 웃으며 책을 읽다가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정신이 번쩍번쩍 들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부시가 과연 이 책을 읽었을지 안 읽었을지 매우 궁금해진다. 하긴...자신이 어렸을 때는 있지도 않았던 에릭 칼의 그림책을 ‘나도 어린 시절 감명 깊게 읽었다.’고 뻔뻔하게 둘러대는 독서력의 소유자가, 과연 이 장문의 책을 읽어 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만은.
<살인자의 건강법>의 주인공인 타슈는, 진정한 독자라면 책을 읽고 변해야 한다고 했다. 내용만을 읽고 책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오는 것은 진정한 독서가 아니라는 것.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의 진정한 독자이다.
나는 변했다. 이제 사람들이 부시나 이라크 전에 대해 말하는 자리에서 가만히 입 다물고 있지 않겠다. 책 한 권으로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이 전하는 정보 중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지식과 정보에 해당하는 부분이 아니다. 이 책은 나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논쟁을 피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이유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뭉그적거리며 덮어만 두던 나를, 자극하여 변화시켰다.
꼭 필요하다면 언쟁을 피하지 않을 것이며, 꼭 이길 것이다.(...때 아닌 선전포고 같군.-.-;) 참, 들어가기에 앞서 10장의 ‘보수적인 당신의 가족에게 말하는 법’을 재독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