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나는 나의 깃발을 흔들뿐이다. 개인 만세!
남쪽으로 튀어! 2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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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상향은 어느 누구에게도 착취당하지 않는 자급자족의 생활이야” 반국가주의자 우에하라 이치로는 네 명의 가족을 데리고 도쿄를 떠난다. 그가 가는 곳은 오키나와에서도 더 남쪽인 이리오모테섬. 1권에서 지로는 수학여행경비 문제와 국민연금 납부 문제로 국가기관과 불화를 겪는 아버지 때문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엄마는 왜 아버지 같은 사람과 결혼했을까’, ‘어리다는 건 여러모로 억울하다’고 속으로 혼자 마음의 병을 앓는다. 아키라 아저씨가 주고 간 시계를 귀에 대고 초침소리를 들으며 소년은 어른의 세계를 엿듣는다. 이제 얼렁뚱땅 갑자기 살게 된 남쪽나라에서 지로의 성장은 가속도로 쭉쭉 뻗어 나간다. 하지만 이 걱정 많은 소년의 성장통은 2권에서 완전히 졸업한다. 염소우리를 만들고, 페인트칠을 하고 많은 방문객을 맞이하느라 감상에 빠져 사춘기를 향연 할 공간이 없다. 예상 시나리오대로 몰상식한 아버지의 기행은 남쪽 섬에서 이야기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곧 이어 궁색하지만 행복한 남쪽살림에 국가권력의 폭력은 해일처럼 들이닥친다. 공무원과 아버지의 대결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화해의 기운이 전혀 없는 평행선의 다툼이다. 이번에는 국민연금과 수학여행경비 차원이 아니라 생존권과 핫라인으로 연결된 짜릿한 절규의 현장이다. 리조트 재개발과 개인의 삶의 보장이라는 큰 테마다. 다시 말해서 “날씨 좋은 날에는 논밭을 갈고, 비 오는 날에는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본디 인간이 지녀야 할 모습”-(127쪽)을 파괴하는 괴물의 습격이다. 청경우독(晴耕雨讀)은 개인의 이상주의이며 적자생존(適者生存)은 정글의 법칙이다. 정글을 관리하는 국가라는 괴물은 국가에 반(反)하는 정체를 해체하고 제거하는 이념을 갖고 있다.


2권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아버지의 노동이며,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열두 살 소년의 쾌속이다. 지로는 비가 새는 지붕조차 최악은 아니라고 자위하며, 전학 첫날 ‘이 섬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다섯 명의 학생과 한가한 수업진도, 선생님들의 양심적인 자세에 도쿄태생은 한 시간 반을 걸어서 통학하는 열의를 보인다. 소년은 소녀를 만나고, 새로운 인식을 만나고 새로운 하늘과 바다를 품는다. 그러나 지로가 만난 아버지의 전투가 1권에서 사상의 문제였다면 2권은 좀 더 세분화된다. ‘개발/환경/주민의 생존권/국가정책/자본가의 이익/전통보존과 말살/구시대와 현대의 충돌’ 이라는 복잡한 다차원 방정식을 푸는 문제다. 이 문제를 복잡하게 보는 시각은 많은 사유의 밤을 고뇌하며 보낸다. 하지만 세상만물의 이치를 하나의 원으로 보는 시각은 고민이 필요 없다. 답은 늘 하나로 준비되었다. 언제나 기회주의자들만이 사색의 밤이 긴 법. 단순하게 개인의 삶을 종교로 모시는 아버지는 ‘국가는 내 삶에 침입할 자격이 없다’로 저항한다. 명료한 답은 후련하다. 하지만 당신은 불온하다는 평을 매사 호쾌한 아버지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테러리스트야 말로 명예로운 이름”-(193쪽), “나는 나의 깃발을 흔들 뿐이다”-(196쪽)에서 아버지는 국가라는 공동체에 참여 하고 안하고는 개인의 선택에 따른 자유행위임을 강조한다. 한가한 남쪽바닷가에서 자급자족의 삶으로 일가를 이루고 사는 꿈을 지닌 아버지. 국가가 겨눈 창끝은 개인이 소망하는 최소한의 터전조차 허락하지 않고 그들의 낙원으로부터 끄집어내어 팽개친다. 강제로 국민을 국가에 편입시키고 굴복을 강요하는 체제가 빚어낸 그 많은 인류사의 비극을 이 책에서는 보이지 않는 희망의 이상향으로 끌어낸다. 그것은 파이파티로마의 땅이다. 홍길동이 세운 율도국이나 이어도에 대한 측면공유가 여기에 있다.


중간에 누나의 급작스런 방문과 섬에 대한 애착, 아버지에 대한 관대함의 발견은 1권에서 보여준 것과 극적인 대비라 독자는 다소 시니컬하다. “나도 화염병 한 번쯤 던져보고 싶은데”-(245쪽)라는 대목에서는 누나가 보여준 도쿄에서의 행동이 오버랩 된다. 누나의 놀라운 반전은 그저 덩달아 놀랄 수밖에! 그럼 뭘 기대했단 말인가. 정말, 허풍선이 이치로가 야스쿠니에 불을 질러주기를 기대한다면 소설이 소설을 넘는 오버가 되고 만다. 그런 건 김진명의『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근육질로 연기를 하는 실베스터 스텔론의『람보』시리즈에서나 기대하자. 그런 점에서 오쿠다 히데오의 교묘한 종결처리방법인 ‘파이파티로마’는 진부하지만 적절했다. “힘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것을 끝까지 허락하지 않은 영혼이 지금도 저 먼 남쪽에서 바람을 보내오고 있습니다.”-(310쪽)  “그러나 지금 그들은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이상은 어디로 사라졌는가”-(314쪽) 오쿠다 히데오가 쓴 명랑가족 우에하라 이치로씨의 가족사는 정직한 정신으로 저항했던 과거의 물음을 현대의 무대위에 디지털로 올려 놓았다. 국가는 왜 개인에게 적이 되어야 하는가의 현실적 물음이 2권의 주제다. 개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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