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SE
정길영 감독, 이선균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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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이나 새벽에 혼자 돌아다녀도 안전한 나라' 라는 미사어구가 이제는 민망해져버린 한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사회가 되어버렸다.
    물론, 초저녁에 상점, 음식점, 술집 등이 모두 문을 닫아버리는 나라들에 비한다면 한국은 아직까지도
    '흉악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나라'일지도 모른다. 밤새 운영을 하는 술집과 노래방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혼자 밤늦게 비디오 영화를 빌리러 간다거나 담배와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갈 때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자가 있지는 않은가 하는 두려움을 흔히들 가지지
    않는 곳이니까.

    그러나 이제는 나부터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 밤 늦게 가급적이면 혼자 돌아다니지 마라.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는 힘이 없다면."

    나는 밤 12시든 새벽 1시든 개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노래 부르듯 흥얼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은 잘 들어오지 않는 불빛 하나 없는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밤의 공기에 샤워했다.
    그러나 원초적인 공포인 어둠속을 유유히 걸어다닐 수 있는 자는 이제 살인범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감정 하나 없는 그런 자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어둠 속에서 내가 신경을 썼던 것은 '내 노래를 방해하는 자가 안 왔으면' 하는
    단순한 것 뿐이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이제 내가 신경을 쓰는 것은 '어떤 미친놈이 나를 공격하면 어쩌지' 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정당방위'라는 이름 하에 나의 방어공격이 지나치지는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조심성이 많아진 것이다.
    밤에 보이는 인간들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진 것이다.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시원한 나의 사랑스럽고 순수한
    밤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 분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속에는 두 명의 살인자가 나온다.
    한 명은 어릴 때부터 '타고난 악(惡)'의 기미를 보였던 자로써 4명의 여성을 연쇄살인하는 감정결핍자.

   


    다른 한 명은 자신의 어머니가 죽은 이유를 다른 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분노에 의한,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충동살인을 하게 되면서 선했던 자아를 악으로 바꾼 자.

   


    아이러니하게도 타고난 살인자의 악의 스위치를 켜준 것은 충동살인을 하면서 스스로의 인생을 구덩이에
    밀어넣은 자이다.
    인간은 모두 선과 악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인간 사회의 도덕과 규범들에 교육을 받으면서 선이 악을 다스리게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게 해준다. 그것이 바로 초자아.
    그러니까 모두에게는 자신을 통제하는 '엄마'나 '아빠'를 자아 안에 가지고 있는 셈인데, 가끔 그 기능이
    고장나 버리는 자들이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힌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그들을 악인으로 완벽하게 깨어나게 해준 동기들이 모두 개념없고 막돼먹은 어른이나
    몹쓸 환경 탓이 많다. 물론,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바른 어른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다행스럽게도!),
    인간에게 가장 많은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인간, 인간, 인간들이다 !!

    이 영화에서도 범죄 심리학적으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어릴 때의 몹쓸 환경 탓으로 이들 살인범들의 삐뚤어진 세상살이를 그리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서로가 자신을 구제해 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아직도 성악설보다는 성선설을 지향하는 나로써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불신을 가지게 되는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슬프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할 때가 올 때마다 괴롭다.

    이 짧은 글을 쓰는 동안 긴 시간 동안 복잡한 심정으로 시간을 태우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웃'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산걸까.

    그럼에도 아직까지 성선설을 계속 믿고 싶은 나는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고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내일을 향해 오늘도 웃으며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서로가 서로를 조금만 더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주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희망을
    마침표에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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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4-2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오전에 어떤 분은 밤에 운동하러 가는 길에 남자 셋이 따라와서 전속력으로 달려 도망치니까 욕하고 사라졌대요. 정말 무서운 세상이지요. 근데 에쓰님은 호신술도 알고 있는 거예요? 음... 어쩐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L.SHIN 2008-04-25 18:08   좋아요 0 | URL
현명하군요. 위험하다 싶은 예감이 들면 일단 피하는게 상책입니다.^^

Mephistopheles 2008-04-2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들은 참 좋은 영화였는데......
내용이나 극의 진행이 참 거시기 했어요...

L.SHIN 2008-04-28 09:22   좋아요 0 | URL
네, 신선한 맛은 없었습니다. 스토리 전개가 고리타분하달까. 흔한 호러소설에 나오는 형식이랄까.

칼리 2008-04-2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같은 천진한 외모로 섬뜩한 연기를 천연스럽게 해낸 류덕환의 재발견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하네요.

L.SHIN 2008-04-28 17:14   좋아요 0 | URL
저는 '왕과 나' 라는 사극에서 '김처선' 역을 열연한 배우의 색다른 모습을 보아서 재밌었습니다만.

칼리 2008-04-28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전 처음에 그 배우보고 에릭과 너무 닮아서 분간이 안되었었네요. 저만 그런가.-_- 인물과는 달리 이름도 조금 재미있었구요..^^
 
골든 에이지
세자르 카푸르 감독, 제프리 러쉬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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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는 뭔가 달랐을 것 같은, '여왕제의 시초' 답게 좀 더
    카리스마 있고 애환이 많고, 역사적 위업을 많이 달성했을 것 같은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든 것은 저 놈의 영화 표지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리니지]의 '질리언'을 떠올렸었다)

    은빛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전장에 직접 나가 진두지휘 했을 것 같은 이 표지를 보라.
    화려한 왕실의 '여자'로써가 아닌 한 나라의 '왕'으로써의 멋지고 강인한 모습, 감동을
    기대했던 나는 허탈해야만 했다.

   

    물론, 실제로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을 위해 많은 것을 이룬 '훌륭한 왕'이었던 것은
    사실이겠으나 이 영화는 그러한 것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다.
    그저 지금까지 봐 왔던 다른 감독, 다른 제작사에 의해 만들어진 숱한 엘리자베스 영화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여왕도 두려워하고 고민하며 사랑을 하고픈 평범한 여자다' 라는 인간적인 면만을 보여주는
    그런 흔한 영화.
    역사적인 내용도 왕이 한 나라를 이끌어 가면서 보여주었을 카리스마나 감동도 없다.
    보는 내내 느꼈던 것은 여왕의 패션쇼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는 것.
    보라.
    형형색색 화려한 옷과 보석들. 지저분하고 어두운 색 계통의 옷을 누더기처럼 입은 국민들 사이로
    지나가면서 '내가 너무 치장하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없었나.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하늘색 - 특히 푸른색 계열의 옷이 가장 많았다)

   
     (하얀색 혹은 아이보리색 - 거기다 자신의 최측근 시녀도 늘 자신과 비슷한 색의 옷을 입혔다)

    부가 왕의 특권이라고 치자.
    도대체 왜 이 영화 제목을 골든 에이지(Gloden age)로 지었나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여왕의 통치 아래 영국 국민들이 모두가 행복한 '황금 시대'를 만들었다는 역사적 위업을
    다루는 것이 아닌 '엘리자베스 개인 생활'만을 보여주는 듯한 영화라니.
    계속 엘리자베스 여왕의 평범한 일상만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전투를 벌여 이겼다
    라는 아주 짧은 영상 한 토막으로 '엘리자베스 1세는 대단해' 라는 주제를 완성시켰다고 하지 말라.

    여왕의 초상화들을 보면 실제로도 엄청 화려하게 꾸몄던 엘리자베스 1세.
    제발 그녀의 업적이 '뛰어난 베스트 드레서'로서만 길이길이 기억될 영화만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지겹다구)

 

   


   

    도대체 이 영화의 주제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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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3-10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황진이를 보고 송혜교 인형놀이라고 했던 평들이 떠오르는데요 ㅎㅎ

L.SHIN 2008-03-11 10:03   좋아요 0 | URL
오,그렇다면 이것은 유럽판 인형놀이였던겝니까? ㅍㅍㅍ
 
추억은 방울방울 (2disc)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 / 대원DVD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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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7년 5월 2일

 

 

     역시 '미야쟈키 하야오' (이 애니에서는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의 그림과 내용은 언제나 무지개 저편에 있는 세상같이 아름답고 따뜻하고 환상적이어서
    눈을 감아야만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았을 때는 문에다 검은색,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이 있는 원판을
    붙이고 돌려서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가고 싶어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았을 때는 가까운 개천에 가서 꼬구라져 있는 자전거를 꺼내면
    물의 용신이 튀어나와 '하쿠'가 있는 곳에 데려다줄 것 같았고,
    <이웃집 토토로>를 보았을 때는 빨간 우산을 높이 쳐 들고 화분들 앞에서 방방 뛰면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나무처럼 금방 쑥쑥 자랄 줄 알았다.

     '미야쟈키 하야오'는 어른들을 위한 '움직이는 동화'를 만드는 마술사와도 같은 멋진 사람이다.

    오랜만에 그의 인생의 철학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담긴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멋진 밤이었다.
    속직히 [추억은 방울방울] 이라는 촌스런 제목 때문에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던 '애니'다.
    하지만 보는 내내 -
    마치 화가의 풍경화를 보는 듯한 멋지고 섬세한 시골 배경 그림에 몇번이나 감탄을 하고,
    주인공 '다에코'의 귀엽고 깜찍하고 소학교 5학년다운 행동을 보며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나의 성경과도 같은 위의 '애니'에 비하면 극히 현실적인 소재이고, 흘러가는 스토리 전개도
    밋밋하지만, 잔잔한 감동을 잊지 않고 주는 '미야쟈키'의 흔적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도쿄에서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던 28세의 '다에코'는 긴 휴가를 받아 고향같은 시골에
    내려와 여러 농경생활을 하며 자연속에서 사는 것을 동경한다.
    그녀가 처음으로 시골 일을 했던 것은 '홍화' 꽃을 따기.
    샛노란 꽃들을 따서 말리고, 찌고, 여러 과정을 거쳐 붉은 색의 재료로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에도 시대, 상류층 도시 여인들에게 최고의 로망이었던 '연지'로 태어나는 꽃이다.
    그야말로, 천연 립스틱인 것.

    그러나 연지 한통을 위해 수 많은 홍화의 꽃잎을 따서 정성스럽고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의 작업을
    해야하는 옛날 농촌 여인들은 그 시대에 장갑 없이 맨손으로 홍화를 따야 했고,
    홍화의 가시에 손이 베어 피가 물들어져 꽃잎은 더욱 붉어졌다고 하니 평생 가야 그 사치스런
    연지를 구경도 못하는 가난한 농민들의 삶이 어떠했을까 하는 '다에코'의 독백.





    수천년 수만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가지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겹겹히 서 있는 산들과
    아름다운 숲과 논.밭의 시골 풍경을 가리키며 -

    "이 모든 자연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인간은 살기 위해 자연과 싸우기도 하고, 조화를 이루어 살기도 하면서 -
     오랜 세월을 거쳐 이 같은 자연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죠.
     그것이 바로 이 시골의 풍경입니다."


     반듯한 도시 생활을 하다가 유기농업에 뜻을 품고 시골로 돌아온 젊은 청년의 말에 '다에코'는

    "그래서 그렇게 (시골이) 그리웠구나"

    라고 혼잣말처럼 하는데.

    깨끗한 자연의 축복을 받으며 하루하루 아침에 뜨는 태양을 향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었다.
   

    '다에코'의 어린 시절의 추억 이야기들이 아기자기하게 이쁘고 재밌고 조용하게 감동스럽다.





    '미야쟈키'는 언제나 꿈을 꾼다.
    그의 이야기들을 통해 아름다운 깨달음, 자연과의 동화, 환상속에 담겨 있는 삶의 철학 등을
    우리들이 가슴에 담아가서 현실로 옮겨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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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2008-04-1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아이들하고 함께 봤던 애니에요. 아니..지난겨울이었나..^^ 보면서 시골이 그렇게 그립고 가고싶었던게 단지 어릴적 추억뿐만이 아니었나봐요. 또 보고싶은 영화에요.

L.SHIN 2008-04-16 13:44   좋아요 0 | URL
재밌었던 애니입니다~ ^^
홍화꽃으로 연지 만드는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
 
라따뚜이 - 할인행사
브래드 버드 감독, 피터 오툴 외 목소리 / 브에나비스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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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8년 1월 12일

 

 

       " 까하하하하하하하 ~ "
    멀쩡한 소파 놔두고 그 앞에, 바닥에 앉아서 낸 나의 웃음 소리다.
    보통은 두 다리를 소파 위에 올려놓고 편하게 앉아서 보는데, 가끔은 바닥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화면에 몸을 좀 더 가까이 한 채  볼 때가 있는데, 기분이 좋으면 두 발을 비비 꼬기도 한다.
    별 기대를 안 하고 보았는데 다 보고 나서의 흡족한 표정과 함께 내 머리속에선 이 애니의 DVD 를
    구입 예정 리스트에 담고 있었다. (웃음)

   



    나는 만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게다가 동물도 좋아해서 만화/애니 + 동물의 조합이라도 있다면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며 좋아 죽는다.
    내게는 쥐도 사랑스러움의 대상이지만, 흔히들 세상에서 말하는 '가장 더럽고 가장 미천한 존재인' 쥐를
    가장 깨끗해야 할 주방에서 요리사로 변신 시킨 이 애니의 그 설정이 정말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보아 온 3D 애니메이션 중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퀄리티의 섬세함은 흡사
    사진과 실사 영화를 합쳐 놓은 듯 했다. 그만큼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이 진보했다는 거겠지.
    내가 3D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한게 <TOY STORY> 였었는데 이젠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도 '영화' 라는
    장르 중 하나로 어엿히 자리매김한 듯 싶다.

    특히, 물은 어찌나 실감나게 표현했는지, 그 촉감이 느껴지는 듯 했다.

   

    (좀 더 사실적이고 멋진 물의 표현이 많은데, 아쉽게도 첨부할 사진은 지금 이것 뿐이다 =_=)

 

    냄새만으로 모든 음식은 물론, 쥐약이 타 들어가 있는지 없는지도 감별해내는 절대후각의 지존 '애미'는
    파리 시내 외곽의 어느 마을에서 음식을 먹을 때 '까탈쟁이'라고 가족,친구들의 조롱을 받으며 사는 평범한 쥐였다.
    그가 다른 쥐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쓰레기가 아닌 주방에 놓인 신선한 음식을 몰래 훔쳐먹던 집에서 TV로 통해
    본 '구스타프' 명요리사를 동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집 주인 할머니가 그들 쥐를 보고 코끼리라도 잡을 정도의 위력이 대단한 장총으로 잡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쥐 일가족들은 시내물에 배를 띄어놓고 탈출하는데, 자신이 동경하는 '구스타프'의 요리책을 챙기다가 그만
    혼자만 하수구의 거친 물살에 떠내려가 혼자가 되어 버린다.

    외로움과 배고픔에 지친 그가 하수구에서 벗어나 윗 세상으로 올라가 보게 된 것은, 아름다운 파리 -
    그를 요리사로, '꼬마 주방장'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는 '맛의 성지' 파리였었다.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더러운 쓰레기를 먹고, 음침하고 그늘진 곳이나 하수구에서 살며 세상 모든 인간들에게서 언제 어느 때라도 죽임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게 운명인 생쥐가 프랑스 파리 최고 레스토랑의 주방에서 인간 파트너 '앤서니'와 함께 모두를
    감동 시키는 요리를 만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것은 작은 깨달음과 교훈을 주는 영상 동화다.
    요리사의 꿈을 가지고 있는 자들, 그리고 각자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거나 아직 실천하지
    못하는 환경에 놓인 자들에게 희망과 격려의 메세지를 주고 싶어하는 그런 기특한 동화.
    과거의 동화들이 이쁘거나 익살맞은 그림과 함께 한 책에 실렸다면, 현대는 이렇게 애니메이션을 통해 만들어지는
    시대로 변한 것 뿐 아닐까. (웃음)

    늘 자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부주방장과 사정을 모르는 다른 요리사들에 의해 몇 번이나 죽을 뻔 하기도 하고,
    인간과 어울리지 말라는 가족의 반대도 부딪혀 보고, 파트너와 트러블도 생기는 등 갖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아 행복한 결말을 맺는 이 단순한 스토리에서 기분이 좋았던 것은 두 가지 때문이었다.

   



    " 모두가 요리할 수 있다 "

    라는 신조를 내세운 전 주방장이자 레스토랑의 주인이었던 '구스타프'의 말이 너무 멋졌기 때문이다.
    신분의 귀천을 떠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공평히 기회를 주는 것,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세상의 진기한 재료로 온갖 기술과 멋을 낸 '럭셔리 음식'이 아닌 '라따뚜이'라는 평범한 음식에 정성을 넣어
    잔인하게 혹평만 하던 귀신같은 비평가를 감동시켜 따뜻함을 느끼게 해 준 부분은,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
    나는 언제나 사랑은 대물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이런 내용을 접할 때면 마냥 기분이 좋다.^^

    게다가 어벙하고 왕 소심한 성격 때문에 늘 무시만 받고 살던 '앤서니'가 '애미'로 인해 조금씩 밝은 성격이 되고
    나중에 자신만의 가게까지 차리는 모습에서,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는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는데 단지 그 기회를
    못 만났을 뿐 모두가 훌륭해질 수 있다는 여운을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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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 올마이티 - 아웃케이스 없음
톰 새디악 감독, 모건 프리먼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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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7년 10월 5일

 

 

     " 왜 하필 저에요? 왜 방주를 지으라고 하냐고요."
    "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나? 난 그 기회를 주는거야."

    



    어느 날 갑자기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법사 할아버지처럼 수염이 계속 자라고, 동물들은 짝을 지어 자신만을
    ?아다니는 바람에 일상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진 에반이 눈 앞에 있는 신에게 원망을 하자, 신이 응답한 내용이다.

    잘 나가는 뉴스 앵커에서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승승장구 성공의 인생을 걷는 그는 선거 당시
    " 세상을 바꾸자 " 라는 슬로건대로 새 집에서의 첫날 밤 기도를 한다.
    그러니까 신은 그 기도를 들어준 것 뿐이라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미칠 지경인거다.
    신을 믿는 자들은 영화의 에반처럼 진짜로 '나 신이다'라고 말하는 이가 나타나면 오히려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무슨 웃긴 아이러니인가.
    신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은 눈 앞에 신이 나타났어도 '상식 밖' 이라며 그 존재를 처음부터 순수하게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뭘 믿고 있는 것일까.
    눈 앞에 보이는 것, 자신이 인간 사회에서 학습한 '상식적인 것들'이 아니면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 그것은 진짜로
    신인가 아니면 종교인가?
    차라리 솔직하게 '신이라는 증거를 보여주세요' 라고 말을 한다면 낫지, 무조건 미친사람 취급한다는게 문제이다.

   
    (에반의 모습이 변하기 전, 자신의 의원실에서)

    그렇다면 에반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좀 더 살기 위한 도시 개발 계획? 전쟁이 없는 세상? 모두가 잘 사는 유토피아?
    물질문명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국립자연공원을 없애고 개발하자는 상원 의원의 법의안에 지지하겠다고 나서는,
    그것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에반이 말하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란 이런 것이었던가.

    신은 말한다.

    " 방관하지 않고 아낌없이 사랑해주는 것 "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란다.

   



    알다시피, 이 영화에서의 신은(모간 프리먼)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Bruce Almighty)'에서도 신으로 나왔던 아저씨다.
    그 때도 지금도 올 화이트로 옷을 입고 부드럽지만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 풀풀~ 풍기고 다니는 흑인 아저씨,
    이젠 헐리우드에서 '신' 역할로 자리매김했나 보다. (웃음)
    '에반 올마이티(Evan Almighty)'는 '부르스 올마이티'의 속편이라더라. 어쩐지 신이 같더라니.

   
    (브루스 올마이티 중에서 1)


   
    (부르스 올마이티 중에서 2)




    갑자기 옛날 옷을 입고 머리와 수염은 산발인채 '노아의 방주'를 짓겠다고, 홍수가 날거라고 하는 남편을 미쳤다고
    생각하며 아들 셋을 데리고 집을 나가있던 아내의 앞에 다정한 흑인 아저씨는 또 한번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 사람들은 신에게 기도를 하지. 용기를 달라고. 하지만 정말 신이 용기를 바로 주는걸까?
      신은 그 사람이 용기를 부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거야.

      사람들은 행복하게 해달라고, 가족과 더욱 더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지.
      신은 그 사람에게 당장 사랑을 주지 않아. 사랑할 기회를 주는거야."

    



    예전에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오프라가 자신의 옛 이야기를 풀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에 너무 출연하고 싶었는데, 자신이 너무 뚱뚱하고 못생겨서 캐스팅이 안될거라고
    생각했었단다. 그래서 운동장을 죽어라 뛰며 울면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바이블송을 부르면서. 땀과 눈물이 뒤범벅되어 '그 영화에 출연하게 해주세요, 해주세요' 하고
    울면서 몇시간을 기도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전화가 오더란다.

    " 오프라, 당신이 그 영화에 여주연으로 캐스팅되었어요!! 그런데 지금 운동을 하나요?
      아니, 그게 왠말입니까!! 만약 당신이 살을 뺀다면 우리는 다른 여배우를 찾아야만 한다구요!"

    그녀는 그게 자신의 진심을 담아 기도를 한 덕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도를 할 때는 구체적으로, 진심으로' 하라고
    시청자들에게 충고해주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게 아닌 것 같다.
    그녀는 전부터 그 영화에 관심을 갖었었고, 마음속으로 계속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신은 기회를 주었는데, 그녀는 만족스럽지 못한 오디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잡고 싶어서 죽어라
    운동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꼭 해야겠다는 열정으로 부딪힌 그녀의 의지가 이미 그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 많은 기회를 접하고 산다.
    그것이 신이 내려준 기회이든, 인생이 주는 기회이든간에 우리는 그것을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기 위한 수단임을
    자각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놓치고 만다.
    나 역시 그렇다.
    늘 용기를 달라고 마음으로 기도를 하지만, 정작 용기를 부릴 기회를 만들 생각조차 안하거나 용기를 부릴 의지를
    만들어내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니 용기라는 것이 표면 밖으로 나올 턱이 있겠는가.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러나 눈과 마음을 꾹 담고 있는데, 스스로를 사랑해주지 않는데 어찌 행복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기회에 얽힌 우스개 소리 하나가 생각난다.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는 열심히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구명 보트가 그를 구하러 왔는데, 그는 극구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 전 하느님이 구해주실거에요!! 괜찮아요. 하느님이 구해주실거라요!! "

    그 사람의 고집이 너무 완고해서 구명 보트가 그냥 갈 수밖에 없었고, 그는 비바람 속에서 계속 기도를 했다.
    잠시 후 두 번째 구명 보트가 와서 그를 또 구하러 왔지만 그는 또 사양하며 자신의 믿음을 자부했다.
    그러나 거친 폭퐁우 속에서 배는 침몰했고 그는 죽었다.
    하느님 앞에 간 그는 원망을 하며 따졌다. 왜 자신을 구하러 와주지 않았냐고. 그러자 우리의 하느님 하시는 말,

    " 아, 그래서 구명 보트를 두 번이나 보내줬잖아 !! "





    혹시 지금도, 나는 수 많은 기회들을 -
    과거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는 것들을 위한 기회들을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에반이 먹고 있는 빵을 달라고 조르고 있는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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