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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영 감독, 이선균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늦은 밤이나 새벽에 혼자 돌아다녀도 안전한 나라' 라는 미사어구가 이제는 민망해져버린 한국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사회가 되어버렸다.
    물론, 초저녁에 상점, 음식점, 술집 등이 모두 문을 닫아버리는 나라들에 비한다면 한국은 아직까지도
    '흉악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나라'일지도 모른다. 밤새 운영을 하는 술집과 노래방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혼자 밤늦게 비디오 영화를 빌리러 간다거나 담배와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갈 때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자가 있지는 않은가 하는 두려움을 흔히들 가지지
    않는 곳이니까.

    그러나 이제는 나부터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 밤 늦게 가급적이면 혼자 돌아다니지 마라.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는 힘이 없다면."

    나는 밤 12시든 새벽 1시든 개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노래 부르듯 흥얼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은 잘 들어오지 않는 불빛 하나 없는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밤의 공기에 샤워했다.
    그러나 원초적인 공포인 어둠속을 유유히 걸어다닐 수 있는 자는 이제 살인범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감정 하나 없는 그런 자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어둠 속에서 내가 신경을 썼던 것은 '내 노래를 방해하는 자가 안 왔으면' 하는
    단순한 것 뿐이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이제 내가 신경을 쓰는 것은 '어떤 미친놈이 나를 공격하면 어쩌지' 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정당방위'라는 이름 하에 나의 방어공격이 지나치지는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조심성이 많아진 것이다.
    밤에 보이는 인간들에 대한 불신감이 높아진 것이다.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시원한 나의 사랑스럽고 순수한
    밤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 분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속에는 두 명의 살인자가 나온다.
    한 명은 어릴 때부터 '타고난 악(惡)'의 기미를 보였던 자로써 4명의 여성을 연쇄살인하는 감정결핍자.

   


    다른 한 명은 자신의 어머니가 죽은 이유를 다른 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분노에 의한, 일시적인 감정에
    의해 충동살인을 하게 되면서 선했던 자아를 악으로 바꾼 자.

   


    아이러니하게도 타고난 살인자의 악의 스위치를 켜준 것은 충동살인을 하면서 스스로의 인생을 구덩이에
    밀어넣은 자이다.
    인간은 모두 선과 악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인간 사회의 도덕과 규범들에 교육을 받으면서 선이 악을 다스리게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고 살아가게 해준다. 그것이 바로 초자아.
    그러니까 모두에게는 자신을 통제하는 '엄마'나 '아빠'를 자아 안에 가지고 있는 셈인데, 가끔 그 기능이
    고장나 버리는 자들이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힌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그들을 악인으로 완벽하게 깨어나게 해준 동기들이 모두 개념없고 막돼먹은 어른이나
    몹쓸 환경 탓이 많다. 물론,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바른 어른이 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다행스럽게도!),
    인간에게 가장 많은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인간, 인간, 인간들이다 !!

    이 영화에서도 범죄 심리학적으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어릴 때의 몹쓸 환경 탓으로 이들 살인범들의 삐뚤어진 세상살이를 그리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서로가 자신을 구제해 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아직도 성악설보다는 성선설을 지향하는 나로써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불신을 가지게 되는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슬프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할 때가 올 때마다 괴롭다.

    이 짧은 글을 쓰는 동안 긴 시간 동안 복잡한 심정으로 시간을 태우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웃'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산걸까.

    그럼에도 아직까지 성선설을 계속 믿고 싶은 나는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고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내일을 향해 오늘도 웃으며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서로가 서로를 조금만 더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주면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희망을
    마침표에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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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4-2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오전에 어떤 분은 밤에 운동하러 가는 길에 남자 셋이 따라와서 전속력으로 달려 도망치니까 욕하고 사라졌대요. 정말 무서운 세상이지요. 근데 에쓰님은 호신술도 알고 있는 거예요? 음... 어쩐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L.SHIN 2008-04-25 18:08   좋아요 0 | URL
현명하군요. 위험하다 싶은 예감이 들면 일단 피하는게 상책입니다.^^

Mephistopheles 2008-04-2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들은 참 좋은 영화였는데......
내용이나 극의 진행이 참 거시기 했어요...

L.SHIN 2008-04-28 09:22   좋아요 0 | URL
네, 신선한 맛은 없었습니다. 스토리 전개가 고리타분하달까. 흔한 호러소설에 나오는 형식이랄까.

칼리 2008-04-2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같은 천진한 외모로 섬뜩한 연기를 천연스럽게 해낸 류덕환의 재발견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하네요.

L.SHIN 2008-04-28 17:14   좋아요 0 | URL
저는 '왕과 나' 라는 사극에서 '김처선' 역을 열연한 배우의 색다른 모습을 보아서 재밌었습니다만.

칼리 2008-04-28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전 처음에 그 배우보고 에릭과 너무 닮아서 분간이 안되었었네요. 저만 그런가.-_- 인물과는 달리 이름도 조금 재미있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