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할머니가 추운 날(그러니까 쌀쌀맞은 바람이 피부를 칼같이 써는 날),
길에서 사람들에게 작은 티슈(무슨 교회라고 씌여 있는)를 나눠주고 있는
중이었나보다. 내가 지나갈 때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하며 뼈 위에 가죽만
살짝 덮은 것 같은, 그 추운 날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내게 티슈를 건네줄 때,
나는 한 손에는 가방을, 한 손에는 짐을 들고 있다는 핑계로 받지 않으면서,
'네~'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었다.
그런데 자꾸 그 작은 할머니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마음으로 내려와 명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은 어느새 슈퍼에서 따뜻한 음료 2개를 사들고 그 할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할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째, 이게 신의 시험이었으면.
나의 무신경하고 매정한 성격을 보면서,
'끌끌, 넌 그럴줄 알았어'하고 생각하시겠지, 저 위에서는?
그러기에는 내가 똥고집 성격이라,
주변 어딘가에 있겠지. 그 짧은 다리로, 그 약한 몸으로 얼마나 멀리 갔겠어 하면서
찾아 다녔다. 얼마 안 가서, 빙고!
그 할머니가 길 건너 건물 앞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티슈를 주며 전도하고 있었다.
음...나는 옷 양쪽 주머니에 들어있는 음료들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잠시 망설였다.
'다른 사람 있는 거 싫은데'
낯을 가리는 근성이 또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음료가 식기 전에 줘야 하는데, 동동동.
번개 같은 속도로(잉?) 할머니에게 다가가 그녀의 얄상한 팔에 걸려 있는 가방에
음료수들을 쑤셔놓고 냉큼 돌아서 내 갈 길 가버렸다.
식기 전에 마셨을까?
그녀는 사실 음료보다 자신의 전도가 통하는 것에 더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신은 좋아하지만, 교회는 좋아하지 않는다.
2. 얼마 전, 버스 좌석에 앉았는데, 찰그랑~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었다.
그래서 발쪽을 보니, 열쇠가 떨어져 있었다. 내 것은 아니다.
그럼, 앞 사람 것? 내가 앉은 좌석에 먼저 앉았었던 사람의 것?
음...잠시 망설이다가 열쇠를 주워 앞의 남자 어깨를 툭툭 치며 물었다.
'열쇠 떨어트렸어요?' 라고 했던가, '본인 열쇠에요?'라고 했던가..? (긁적)
남자는 자기 열쇠가 맞는지, '아, 감사합니다'라고 웃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가
무표정한 내 얼굴을 보고 이내 엉성하게 굳은 얼굴로 돌아 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귀찮아서 안 주우려다가,
'이 추운 날, 집에 못 들어가면 곤란하겠지' 싶어 주워준 내 본심은 -
당신이 그렇게 고마워할 정도로 기특하지는 못해.
바로 줍지 않고 몇 초간 망설였다는 것을 알고도 그렇게 고마워 할까?
하지만 그 후로, 내내..아, 같이 웃어줄걸 그랬나? 하고 약간의 후회.
4. 며칠 전이었던가. 길거리에서 어떤 남자가 혼자서 소리를 질러댔다.
다른 말은 기억나지 않고,
'하나님, 생각해보겠대, 일요일'
요 세 단어만 생각이 난다.
젠장, 그래서 그날 밤, 자면서 내내 나는 머리를 짜내야했다.
도대체 그 남자가 뭐라고 했더라?
'나한테 복권 번호를 알려주려면 토요일 8시 전에 생각해주세요'
라고 답변해줘야 하나.
이런 괘씸한 생각을 하면, 위에서 번개를 치겠지.
그런데 나는 살면서 천둥번개 소리를 듣고 두려워 한 적이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늘 오히려 좋아서 꺅꺅대고 그 천둥번개 치는 속에서
뛰어다녔단 말입니다, 하나님.
어차피 복권 번호 따위 안 알려줄 것 알아요, 안다구.
정말로 궁금하다.
그 남자가 뭐라고 소리쳤는지.
그런 남자는 지금까지 영화에서만 봤지, 현실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 충격이었다.
5. 오늘이다.
아, 어제인가?
약속이 있어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아줌마가 나한테 물었다.
'ㅇㅇ 역 가는 차인가요?'라고 물었던가, 'ㅇㅇ 역 가는 차는 어디서 타나요?'
라고 물었던가...(긁적)
그 하얀 옷의 아줌마가 말한 ㅇㅇ 역 때문에 내 머리는 전철 노선표를 신나게
그리고 있었는데. 아줌마가 눈치 챘는지 'ㅇㅇㅇ 역 다음이요' 그러길래,
나도 모르게 '아!' 하고 외마디 소리를 외쳤다.
그리고는 신나게, '그건 ㅇㅇ행 차를 타야 되요. 여기서 타는 건 맞는데.
이건 타면 안되요. 이번 것은 ㅇㅇㅇ행 차거든요'
평소 그런 질문에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내가 왜 그렇게 신나서 외쳤는가.
얼마 전, 누군가가 닫히려고 하는 지하철 문 밖에서
'이거 ㅇㅇ 행 가는 차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이게 그거였던가?'하고 선뜻 대답해주지 못한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었기 때문이렸다.
위의 글 중, 3번은 쓸 수 없다.
비밀이라서가 아니라, 빨리 잠을 쳐 자라고 징징거리는 나의 뇌가 지금
비협조적으로 나와서, 기억을 할 수가 없어서이다.
왜 이 글들을 쓰고 앉았냐면,
음...
나는 그저 1년 동안 방치해버렸던 내 자신과 대화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두어 달 전이었던가,
뇌 테스트에서, 기가 막힌 결과가 나왔던 것의 충격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결과일까.
남들의 뇌 속에서 여러 단어들이 있더만.
나의 뇌는 딱 세 글자만 나오더라.
'엉뚱함'
나의 뇌는 온통 이것으로만 가득차 있더랜다.
그 사진을 캡쳐해놓고 알라딘에 글을 올려서 같이 웃을 작정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서 임시 저장한 사진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글이 쓰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