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프리카인이다 - 남아프리카의 전사와 연인, 예언가가 들려주는 역사이야기
막스 두 프레즈 지음, 장시기 옮김 / 당대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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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 세계는 나를 끊임없이 밀어냈다. 내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합리성의 측면에서 이것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고로 나는 비합리성에 내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나보다 더 불합리한 백인 때문이었다. - 프란츠 파농, <검은피부 하얀가면>, 156

148823, 포르투갈 항해사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모슬 베이의 해변에서 중세의 격발식 화살로 코이코이족 남자 한 명을 쏘아죽였다. 최초로 아프리카 땅에 발을 내디딘 하얀 피부 유럽인과 검은 피부 아프리카인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유럽인은 코이코이족을 위협적인 야만인으로 생각했겠지만 거꾸로 그들은 유럽인을 머리가 길고 거추장스런 옷을 걸친 바다 위에 낯선 침략자로 보았을 것이다. 검은 피부와 하얀 피부만큼이나 서로 다른 관점으로 그들은 상대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피부색과 인종이 다른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배타적이고 이질적인 문화가 충돌하고 생존의 위협을 느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비극은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운명 같은 것이었다.

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계사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의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아프리카는 없는 대륙 취급을 당한다. 세계 제2의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대해 관심도 애정도 없다. 미개하고 가난한 대륙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아프리카는 인류 최초의 직립 원인들이 생겨난 곳이다. 대략 300만 년에서 500만 년 사이에 두 발로 서서 멀리 바라보고 방향 감각을 익힌 우리 조상들의 손은 자유를 얻었다. 이때부터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도구의 사용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조상들의 뿌리는 바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시작되었다.

600여 년 동안 아프리카는 숱한 오해와 편견 속에서 세계사의 극히 일부분만 차지해 왔다. 그것도 서구 열강들이 점령하고 지배한 식민지 역사가 대부분이다. 중세부터 시작된 유럽의 약탈은 결국 아프리카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고서야 끝이 난다. 굴욕스런 과거와 현재의 가난은 우리에게 아프리카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심어 주었다. 드넓은 초원과 인류의 원시적 삶이 보존되어 있는 시원(始原)의 공간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얼마나 오해를 받고 있으며 또 얼마나 잘못 이해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네덜란드계 독일인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백분리 정책 반대활동을 했던 루츠 판 다이크는 처음 만나는 아프리카에서 인간이 무엇이냐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 말 한 마디가 우리들이 아프리카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준다. 검은 대륙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로 아프리카를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들의 역사를 조금 더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너무 먼 대륙이지만 아프리카는 우리들의 근원을 살펴볼 수 있는 땅으로서 첫 번째 의미를 갖는다.

모든 것이 시작된 곳으로서 기원전 55천만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은 독자들에게 낯선 경험과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3,000가 넘는 넓이를 감안하면 아프리카를 몇 가지 특징으로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사하라 북쪽과 남쪽이 다르고 서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의 지리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과 이슬람의 문화가 유입되는 과정은 아프리카의 뼈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책은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유럽인의 입장에서 아프리카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저자는 쉽고 재밌는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그들의 역사를 말해 준다.

이에 비해 통아프리카사는 기자의 눈으로 아프리카 역사에 접근하고 있다. 역사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서구의 시각도 승자의 논리도 아닌 객관적 관점으로 서술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해 쉽고 편안한 문체로 객관적 사실들을 전달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왕래가 있었거나 빈번한 교류가 일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욱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대륙이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 또한 제 삼자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나는 아프리카인이다는 막스 투 프레즈라는 아프리카인이 이야기하는 아프리카의 역사다. 앞의 두 책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아프리카의 역사지만 이 책은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아프리카의 속살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역사 서술 방법에서 벗어나 실제 아프리카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주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는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중심이라는 점과 저자가 검은 피부가 아니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보기 드물게 솔직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누가 역사를 이야기하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럽인, 한국인, 아프리카인이 말하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조금씩 다르다. 제삼자와 당사자가 다르듯 역사는 서술하는 사람의 입장과 태도가 반영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이제 더 이상 낯선 세계, 미지의 땅이 아니다. 세계의 일부로 더불어함께살아가야 하는 이웃으로 아프리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과거와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했지만 세계는 나를 밀어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프란츠 파농의 말을 뼈아프게 새기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것은 아프리카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120416-03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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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리치 세계사 즐거운 지식 (비룡소 청소년) 17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클리퍼드 하퍼 그림, 박민수 옮김 / 비룡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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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은 어린 시절 수시로 의식을 잃었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기억의 정전 상태인 블랙 아웃을 경험한 에반은 현재의 삶이 혼란스럽다. 영화를 되감듯 현재의 불행을 막기 위해 수없이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선택을 하지만 그 결과 현재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과거를 조작할 수 있는 에반도 완벽하게 만족스런 현실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 <나비효과>는 에시튼 커처의 인상적인 연기와 함께 우리 삶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현재의 삶은 지난 시간의 결과이며 연속적인 인과관계의 순환이다.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처럼 아주 작은 차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다. 하물며 인류의 역사는 어떨지 생각해 보자.

영화처럼 가정법이 존재하지 않는 역사는 인류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다. 현재와 미래를 살펴볼 수 있는 전망대의 역할을 하는 역사는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길러준다. 마치 도미노를 구경하듯 원인과 결과의 연속적인 과정을 살피는 것은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하다. ‘역사history’는 인간(he)이 겪은 모든 이야기에 대한 기록(story)을 의미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지금-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본질적인 원인을 살펴보는 일이다. 또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역사는 폭넓은 시야를 제공하고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주며 단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하나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문자의 발명은 인류 문명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축적된 지식을 영원히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기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하는 사람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그래서 역사를 바라볼 때는 기록된 사실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필요하다. 기록 자체에 대한 객관성을 의심할 수도 있어야 하며 그 뒤에 숨은 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민족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가 일본인들에게는 식민지의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서로의 입장과 태도에 따라 역사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식될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처음 역사를 접하는 사람은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곰브리치 세계사는 역사를 설명하는 수많은 방법 중에서 스토리텔링이라는 탁월한 방법을 활용한다. 역사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이나 연대를 외우는 것이 역사 공부의 전부는 아니다. 곰브리치는 청소년들을 위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세계사를 이야기로 풀어낸다. 1936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이 여전히 읽히고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객관적인 사실과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하기 위해 부담 없이 집어 들기 좋은 책이다. 인류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세계사 전체를 두루 살펴보고 있기 때문에 역사를 시작하는 데 적합하다. 단순한 연대기적 서술이 아니라 거대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가듯 서술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진하다. 다만 저자 곰브리치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 등의 역사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철저하게 유럽 중심의 세계사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세상은 넓고 책은 많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세계사를 끝내려는 욕심은 버리는 것이 좋다.

이어서 세계사 편지를 보면 역사가 조금 현실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 책은 만들어진 역사, 국사와 세계사 교과서를 찢어버려라고 말하는 임지현이 두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역사 속 인물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사적인 편지 형식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게 더욱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에드워드 사이드부터 김일성, 박정희를 거쳐 체 게바라와 마르코스를 만나고 니키카와 나가오를 읽는 동안 독자들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세계사의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책이다. 공식적 역사를 부정하고 밑으로부터 살아 있는 역사를 갈구했던 스웨덴 역사가 스벤 린드크비스트의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라.’는 말은 우리와 상관없는 먼 과거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 삶과 직접 관련된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라는 의미이다. 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사 편력한국판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의미 있는 책이다.

역사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 방법에서 벗어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색다른 관점으로 세계사를 바라본다. 사이토 다카시는 세계사는 암기과목이 아닙니다. 세계사는 수학이나 물리학 이상으로 그 근원적인 이치와 작동 원리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중요한 분야입니다.”라고 말하며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세계사의 흐름과 작동원리를 풀어내고 있다. 세부적인 사건이 아니라 핵심 코드(관점)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갖는다면 진짜 역사에 대한 재미를 알게 된다. 이 책은 세계사도 결국 인간에 대한 탐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며 역사에 대한 관심 또한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인류의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인간의 감정이라는 주장이 긴 여운을 남긴다.

이제 막 역사에 입문하는 청소년들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은 많이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이나 연대기적 서술에 의존하는 역사는 신문기사와 다름없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를 뒤적여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니라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살아있는 역사를 이해하고 스스로 비판적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의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질문을 던져 보자. 어떤 사실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보고 그 결과를 확인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갖는다면 역사는 더 할 나위 없이 흥미진진한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이 될 것이다.

 

120409-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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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시대의 일상사 - 순응, 저항, 인종주의, 개마고원신서 33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개마고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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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는 무엇을 말해 줄 수 있는가

도대체 일상사는 무엇을 다루는가? 이 물음을 염두에 두고 포이케르트는 일상사는 새로운 영역이라기보다 “새로운 전망”이라고 말한다. 전망, Perspective, 원근법, 즉 새로운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은 바로 “아래로부터의 역사(Geschichte von unten)”를 추구한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 400쪽

최근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일었던 교과서 문제는 많은 것은 시사한다. 정권의 부침에 따라 좌우되는 교육현실이야 하루 이틀도 아니니 자괴감을 가질 것도 없다.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차이보다 일제 식민지에 대한 관점, 이승만에 대한 평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시선이 당황스럽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쉼 없이 굴러가고 인간의 삶과 더불어 그 평가의 잣대로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고정된 관점이나 실체적 진실을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 평가라는 것은 최소한의 합의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자명한 사실 확인과 그 사실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풍부한 논의가 가능해야 역사는 살아 숨을 쉬게 된다. 박제된 역사는 빛을 잃기 마련이고 권력을 가진자들의 해석과 관점은 언제나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변증법적 관점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선으로 현재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일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며 미래를 위한 이정표이다.

개인의 자발적인 노력과 관심이 아니라면 거시적 안목으로 역사를 접근할 수밖에 없다. 왕조 중심, 정치와 권력 투쟁 중심의 역사로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조금 다른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시적인 관점으로 시대를 통찰할 수 있다는 것은 모순처럼 들린다. 하지만 일상사는 특정 시대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정치와 권력, 계급과 자본의 정점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일상사는 연대기식으로 서술되는 역사보다 살아 숨쉬는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며 사람 냄새나는 역사로 읽힌다.

<뮤직박스>라는 영화가 아우슈비츠에 대한 관심의 출발이었을 것이다. 이후에 <쉰들러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 <파이니스트> 같은 영화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같은 책을 통해 끊없이 재생산 되는 히틀러와 유대인 학살 문제를 들여다보지만 먼 나라의 역사에 대한 피상적인 해석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수백만 명을 학살한 인류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제노사이드(genocide)의 잔혹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근대화 이후 인류의 수적 팽창과 과학 기술의 발달보다도 사회의 계층구조, 계급의 충돌, 감시와 처벌, 규율과 욕망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주인공인 나치와 히틀러에게 표를 던지고 그를 추종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불만을 표시하고 저항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포이케르트의 『나치 시대의 일상사』는 이런 질문들에 답하고 있는 책이다. 대량 학살의 과정과 심리 분석, 유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아우슈비치의 참상, 집단적 광기에 대한 분석과 해석 등 지금까지 수없이 다루어졌던 방식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책이다. 1982년의 저작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과거의 특정 시대와 사건에 대한 해석을 주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옮긴이의 해설에서 인용한(400쪽) 말은 포이케르트의 『나치 시대의 일상사』가 가진 가장 큰 의미이다. 새로운 영역이 아닌 ‘새로운 전망’을 읽어 냈다면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또한 ‘아래로부터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작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면 카프카의 말대로 이 책은 우리에게 도끼 같은 혹은 찬물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이다. 한 사회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하위 50%를 작은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 안에서도 노조위원장이나 노조 간부들은 큰 사람들에 해당한다. 계급과 계층을 막론하고 ‘작은 사람들’에 주목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과거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실의 모습이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언제까지 ‘빨갱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매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지나간 일들에 대한 호기심이나 사실 확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래’에 해당하는 ‘작은’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 행동과 실천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모른다.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역사는 오롯이 그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인 포이케르트는 노동자와 청소년의 일상에 주목한다. 비상사태에 처한 ‘일상’은 어떻게 다른 것이며 민족공동체를 내세운 총통과 나치의 주장이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특히 ‘청소년’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에 관한 세밀한 분석이 압권이다.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의 내부 보고서에서부터 저항 세력의 문건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인용과 사례를 통해 독자들은 실제 그 시대를 살아냈던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 받을 수 있다. 나치 시대를 바라보는 수많은 관점과 이야기들, 다양한 영화들, 소설들이 널려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지적 호기심이나 타인의 불행에 안도하는 태도로서의 접근이 아니라 우리들의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일상사는 나치 시대의 그것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를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역사는 언제나 우리와 무관한 권력자, 가진자, 승리한 자의 기록일 수는 없다. 우리처럼 ‘작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숨 쉬고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현실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우리의 역사를 만든다. 토인비의 말대로 과거에서 무언가 조금 배울 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천천히 나치 시대의 일상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올바른 역사 이해를 위해서는 사회와 정치구조를 겨냥하여 일반화하는 접근 방법과 일상의 모순을 담고 있는 경험을 겨냥하여 개별화하는 접근 방법 모두를 포기할 수 없다. - 93쪽


20111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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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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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엇이냐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다. - 25쪽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아주 먼 옛날, 300만 년에서 500만 년 사이에 원숭이들이 두 발로 서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자유로워진 두 손은 이제 무언가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방향감각이 더 예민해졌으며 더 넓은 시야가 확보되었다. 약 20만 년 전, 원숭이들은 뇌의 용량이 커졌고 드디어 현생 인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5억 5000만 년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가장 오래된 대륙이고 가장 많은 지하자원을 품은 대륙이다. 인간은 여기서 처음으로 곧게 서서 걷는 법을 배운 것이다. 약 10만 년 전에 이들은 대륙을 떠나 중동으로 진출했고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던 베링을 통해 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로 이동했다. 유전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빈곤과 기아, 각종 질병과 AIDS, 종교 분쟁과 정치적 혼란 등으로만 기억하는 대륙 아프리카.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을 떠올려보자.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갖게 된 편견은 아닐까. 인간이 다른 인간과 사물에 대해 갖게 되는 잘못된 판단과 심리적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이성의 힘은 아닌가.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너무 멀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이 없기 때문에 이해와 관심이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다른 많은 편견처럼 아프리카는 그저 무관심한, 불필요한, 의미 없는, 보기싫은, 열등한 대륙인가. 우리 인류의 기원이 되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관심은 아닌가.

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 고통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알지도 못하면서 갖게 된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한방에 날려주는 책은 아니다. 다만 편견과 의심 없이 아프리카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한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를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유럽에 대한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프리카의 과거를 알게 된다면 우리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사라지지 않을까.

이 책은 케이프타운에서 거주하는 네덜란드계 독일인에 의해 씌어졌다. 저자는 잘못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거창한 의도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기쁨을 드러내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검정은 많은 색깔들을 갖는다.
우리가 찾는 빛깔은 검정,
검정은 아주 다채롭고
검정은 장님한테만 어둡게 보인다…….


함부르크 대학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던 소년이 부르던 노래처럼 ‘검정’이라는 색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이야기에 불과한 책이다. 그 오랜 시간 아프리카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일들과 대륙에서 살아온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기에 이 한 권의 책은 너무 작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와 검정색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차별이 아닌 차이를 경험해야 한다. 인간의 탐욕과 폭력이 빚어낸 비참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로 보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이 갖는 아주 작은 의미이다.

기원전 5억 5000만 년 전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는 긴 시간을 개괄하며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저자 루츠 판 다이크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기원과 다양한 문명을 소개하는 데 절반을 할애했고 나머지 절반은 유럽 열강들의 침략과 아프리카의 해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살육과 일방적인 폭력, 짐승처럼 팔려간 노예들의 역사는 어떤 비극적인 표현도 부족해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 또한 신산스럽다. 아직도 빈곤과 기아, 에이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검은 대륙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알고 역사를 바로 보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세계사’를 단순히 승자의 역사로만 기억할 수는 없다. 수많은 패자의 눈물과 짐승처럼 죽어간 사람들의 피를 잊지 않는 것이 현재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아닌가 싶다. 그들이 잃어버린 혹은 우리가 빼앗은 것이 무엇일까. 무지는 죄악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하는 책이다.

“마침내 이곳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시오!”(1895년 서아프리카 모시의 왕) - 140쪽


2011111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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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 산업혁명부터 지구화까지 25개 테마로 세계를 읽는다, 개정판
김윤태 지음 / 책과함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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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457쪽

하나의 세상, 두 개의 눈

저녁 무렵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한 후 누군가를 만나 사고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사고를 전달하게 된다. 뉴스에나 신문기사에 나오는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늘상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다. 하나의 세상을, 동일한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두 개다. 왼쪽과 오른쪽 눈의 시선이 겹쳐 입체감을 형성하고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의 두 개의 눈이 다른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가로지르는 역사서술이란 무엇인가. 연대기 순으로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는 단선적인 방법에 익숙한 우리는 왕조중심의 한국사, 유럽중심의 세계사에 너무나 익숙하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인류의 역사를 성찰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넘나들며 상황을 파악하고 원인과 결과를 통해 그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역사가들만의 몫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살펴볼 수 있는 눈은 타인의 그것을 빌릴 수가 없다. 그래서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 또한 존재 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윤태의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의 마지막 문장은 당연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세계사는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역사이다. 인종과 국가, 종교와 문화, 언어와 민족을 넘어 시간의 두께와 공간의 흐름을 읽어내는 세계사는 숱한 역사가들의 지적대로 두 가지 전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선택’의 문제이다. 어떤 사건과 인물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세계사는 다르게 서술될 수 있다. 신문의 편집처럼 선택 자체가 주관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관점’의 문제이다. 왼쪽에서 볼 것인가 오른쪽에서 볼 것인가 위에서 볼 것인가 아래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짐작했겠지만 ‘산업혁명부터 지구화까지 25개의 테마’로 읽는 이 세계사는 차례를 통해 저자의 관점과 책 전체의 흐름을 우선 음미할 필요가 있다. 맹자의 말대로 한 권의 책을 읽고 작가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지 않겠는가. 진보적 관점에서 세계사의 주요 장면들을 해석한 이 책은 익숙한 인물과 사건들이 펼쳐져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의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다.

상식과 교양 그리고 세계사

아주 먼 옛날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common sense’와 ‘good sense’의 차이를 설명하시던 영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상식과 양식 혹은 상식과 교양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갖춘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삶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제목처럼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가 아니라 ‘교양인’이 되기 위한 세계사이다. 잡다한 상식과 역사적 사건, 과거의 인물에 대한 정보를 나열한 책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과 풍부한 독서와 관련 분야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통해 각각의 테마에 집중하고 있다. 시기로 말하자면 근현대 세계사에 해당한다. 아주 먼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우리들 삶의 조건을 형성하게 된 세계사를 짚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과거의 책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설명과 나열이 아니라 정확한 분석과 해석이다. 각각의 개념들을 짧은 분량으로 설명하는 것은 깊이도 없고 내용도 빈약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나름의 관점으로 명확하고 조리 있게 정리하고 그 의미를 분석한다. 어렵지 않게 읽히는 문장과 밀도 있는 해석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만큼 개성 있고 독특한 교양서로 손색이 없음을 증명한다. 각 장 끝에 ‘더 읽을 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코너이다.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잘 만들었는지, 저자는 또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볼 때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는 양서들이 소개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연표와 색인목록은 책의 꼴을 제대로 갖춘 마무리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책과 논문, 칼럼, 학술회의와 토론회의 내용이 일부 담겨 있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어색하거나 이질적인 느낌은 없다. 각각의 주제에 집중하면서도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성인과 청소년들에게 두루 맞춤한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어떤 역사도 완전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다만 다양한 관점을 가진 책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역사란 어느 한 면만 보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란 모조리 부정하거나, 무조건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시각을 갖고 있는 한 과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합의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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