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 산업혁명부터 지구화까지 25개 테마로 세계를 읽는다, 개정판
김윤태 지음 / 책과함께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457쪽

하나의 세상, 두 개의 눈

저녁 무렵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한 후 누군가를 만나 사고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사고를 전달하게 된다. 뉴스에나 신문기사에 나오는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늘상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다. 하나의 세상을, 동일한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두 개다. 왼쪽과 오른쪽 눈의 시선이 겹쳐 입체감을 형성하고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의 두 개의 눈이 다른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가로지르는 역사서술이란 무엇인가. 연대기 순으로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는 단선적인 방법에 익숙한 우리는 왕조중심의 한국사, 유럽중심의 세계사에 너무나 익숙하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인류의 역사를 성찰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넘나들며 상황을 파악하고 원인과 결과를 통해 그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역사가들만의 몫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살펴볼 수 있는 눈은 타인의 그것을 빌릴 수가 없다. 그래서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 또한 존재 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윤태의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의 마지막 문장은 당연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세계사는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역사이다. 인종과 국가, 종교와 문화, 언어와 민족을 넘어 시간의 두께와 공간의 흐름을 읽어내는 세계사는 숱한 역사가들의 지적대로 두 가지 전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선택’의 문제이다. 어떤 사건과 인물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세계사는 다르게 서술될 수 있다. 신문의 편집처럼 선택 자체가 주관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관점’의 문제이다. 왼쪽에서 볼 것인가 오른쪽에서 볼 것인가 위에서 볼 것인가 아래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짐작했겠지만 ‘산업혁명부터 지구화까지 25개의 테마’로 읽는 이 세계사는 차례를 통해 저자의 관점과 책 전체의 흐름을 우선 음미할 필요가 있다. 맹자의 말대로 한 권의 책을 읽고 작가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지 않겠는가. 진보적 관점에서 세계사의 주요 장면들을 해석한 이 책은 익숙한 인물과 사건들이 펼쳐져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의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다.

상식과 교양 그리고 세계사

아주 먼 옛날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common sense’와 ‘good sense’의 차이를 설명하시던 영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상식과 양식 혹은 상식과 교양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갖춘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삶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제목처럼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가 아니라 ‘교양인’이 되기 위한 세계사이다. 잡다한 상식과 역사적 사건, 과거의 인물에 대한 정보를 나열한 책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과 풍부한 독서와 관련 분야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통해 각각의 테마에 집중하고 있다. 시기로 말하자면 근현대 세계사에 해당한다. 아주 먼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우리들 삶의 조건을 형성하게 된 세계사를 짚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과거의 책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설명과 나열이 아니라 정확한 분석과 해석이다. 각각의 개념들을 짧은 분량으로 설명하는 것은 깊이도 없고 내용도 빈약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나름의 관점으로 명확하고 조리 있게 정리하고 그 의미를 분석한다. 어렵지 않게 읽히는 문장과 밀도 있는 해석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만큼 개성 있고 독특한 교양서로 손색이 없음을 증명한다. 각 장 끝에 ‘더 읽을 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코너이다.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잘 만들었는지, 저자는 또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볼 때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는 양서들이 소개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연표와 색인목록은 책의 꼴을 제대로 갖춘 마무리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책과 논문, 칼럼, 학술회의와 토론회의 내용이 일부 담겨 있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어색하거나 이질적인 느낌은 없다. 각각의 주제에 집중하면서도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성인과 청소년들에게 두루 맞춤한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어떤 역사도 완전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다만 다양한 관점을 가진 책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역사란 어느 한 면만 보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란 모조리 부정하거나, 무조건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시각을 갖고 있는 한 과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합의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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