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그만두는 방법 - 국가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과 문화
니시카와 나가오 지음, 윤해동 외 옮김 / 역사비평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 행위가 습관이 되고 버릇이 되고 생활의 일부가 되다가 때로는 책이 일이 되고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하고 책이 또 다시 다른 책을 낳기도 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걷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책이 인연이 되어 만나는 사람도 많다. 나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고 넓은 겨울길님은 이제 읽는 단계를 넘어 자연스레 글쓰기의 단계로 넘어간 듯싶다. 두 번 만남이 모두 인상 깊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상사는 물론 삶의 방법과 태도까지 즐겁고 유쾌하며 긴 여운이 남는 대화는 다음 만남을 기다리게 한다. 또 한 분의 이웃 소나기님은 느린 호흡으로 산책하듯 책을 즐긴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좋고 타인의 글을 모방하거나 현학적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생각과 삶을 통해 책을 받아들이고 녹여내는 통찰력을 지닌 분이다. 꽤 긴 시간동안 블로그에 책에 관련된 글을 올렸으나 책 선물을 받은 건 처음이다. 일면식도 없는 분과의 소통과 작은 인연이 감사할 뿐이다. 연초에 소나기님이 보내온 두 권의 책 중 첫 번째 책을 읽었다.

니시카와 나가오의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는 작고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역사책이다. 좋은 책은 당연히 훌륭한 저자를 전제한다. 서문에서 『국경을 넘는 방법』의 속편이라고 밝히고 있는 이 책은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 학자의 깊은 사유와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책이 아니라 ‘국민’의 개념과 의미부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고 있는 독자라면 책의 의미와 내용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으리라. 국가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문명과 문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이 두 용어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굳게 믿고 있는 문명과 문화의 차이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한 나라의 문화라고 명명하는 것들에 대한 고찰, 하나의 문명권이라고 인식하는 것들에 대한 반성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성찰이다.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금메달 시상식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눈물 흘리는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보자.

거기에 민족이 결합되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민족이란 개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심했듯이,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명명했듯이 문화만큼 모호한 개념이기도 한 민족이라는 개념은 곧바로 문화와 연결되는 것은 일종의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는 아닌가. 저자는 이 개념을 일본인과 일본문화론에 적용시키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었다. SNS는 지구를 하나로 묶고 있다. 아이폰 오카리나 어플의 경우 놀랍게도 전세계 곳곳에서 오카리나 연습을 하는 사람들의 소음에 가까운 소리들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다. 인종과 민족을 넘어 문명과 문화 그리고 민족의 구분은 또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구별짓기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역자 서문의 인상 깊은 부분 하나.

무릇 독서라는 행위는 ‘계발’에 그 핵심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명 개념은 문명 간의 위계성, 혹은 보편의 우월성을 논의의 전제로 삼습니다. 그러나 문화 개념은 개별성을 전제함으로써 각 문화의 특수성이나 차별성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110224-0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 역사 교과서를 찢어버려라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책도 마찬가지지만, 역사에 관한 책을 읽기 전엔 항상 버릇처럼 제목을 한참 들여다 본다.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의 목적과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듯이 역사도 마찬가지다. 세계사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면 어떤 목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대략 갈 길을 짐작하고 거리와 방향을 알고 출발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많은 차이가 난다.

임지현의 책이라면 일단 방향과 목적이 보이는 듯하다. 뻔한 이야기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떤 내용으로 그곳에 이르기 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표지에는 이미 ‘새로운 세대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고 ‘만들어진 역사, 국사와 세계사 교과서를 찢어버려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눈길을 끈다. 다소 자극적이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니 놀랄 것은 없다. 다만 얼마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와 정교한 논리로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일 뿐.

이 책은 저자의 딸에게 보내는 형식의 역사 이야기를 역사 속 인물들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각색한 것이다. 말하자면, 임지현의 『세계사 편지』는 자와할랄 네루의 『세계사 편력』의 형식을 빌려 온 것이다. 형식이야 어찌됐든 책의 내용과 깊이가 누구에게나 읽힐 만큼 훌륭하다.

어떤 사람들의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노동과 희생을 먹고 자란다. - 임지현, 『세계사 편지』, 머리말

비교역사문화연구소를 만들어 본질적인 역사인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만들어진 역사로서의 민족주의와 국사의 해체를 주장해 온 임지현은 이 책을 통해서도 세계사를 관통하는 편협한 역사인식에 반기를 든다. 19명의 문제적 인물을 등장시켜 말을 건네는 역사학자의 마음을 헤하려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들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하지만 이것은 객관적인 사실들을 토대로 사건을 재해석하면서 독자들을 설득하는 것과 다름없다. 청자를 누구로 상정하든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접근 방식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에드워드 사이드, 『예수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 한나 아렌트는 물론 김일성과 박정희 그리고 공자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에서 잊지 못할 인물들을 선정했다. 그 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역사적 관점과 이 책의 의미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간단한 인물에 대한 소개와 그 뒤로 이어지는 저자의 편지는 독자에게 새로운 즐거움과 독특한 방식의 역사 이야기를 전해준다.

형식은 내용을 규정한다. 이러한 편지 형식은 일단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장점이 있다. 화석화된 인간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물론 주된 내용은 독자들을 위해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접근 방법이다. 저자 특유의 관점이겠으나 비판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을 만한 일들을 회고한다. 일관된 방식으로 역사적 인물들의 잘못을 꾸짖거나 현재의 관점으로 아쉬움을 드러내는 방식은 아니다.

저자는 해박한 세계 역사에 대한 지식과 명료한 해석 능력을 갖추고 있다. 비교 연구가 가능하려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 책을 통해 그리고 저자가 써 내려간 편지의 행간을 통해 독자들이 찾아야 할 것이다. 각각의 인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독자들은 제 3자의 관점을 취하게 된다. 독자에게 직접 서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특정한 독자를 염두에 둔 글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른 사람의 편지를 훔쳐 보는 느낌으로 조금 더 객관적 관점을 갖게 된다.

지나 간 역사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가정법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도 없다. 그것은 그저 현재의 관점으로 지나 간 시간을 돌아보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다양한 방법으로 과거를 재구성하다 보면 새로운 사실이 보이고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지금-여기’에 서 있는 우리들의 삶이 결국 과거의 연장선이고 미래의 거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계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제 대학생이 되어 버린 딸 ‘희주’에게 역사 공부를 하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책을 맺는다. 나도 ‘내’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 본 후 과거를 돌아봐야겠다. 현재를 알지 못하고 내가 서 있는 곳의 뿌리와 근본을 알지 못한 채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지금, 바로 여기를 똑 바로 알지 못할 바에야 역사를 공부하지 말라는 역설적인 책 『세계사 편지』는 그래서 더욱 정밀한 역사 공부의 출발로 삼아야 할 것 같다.

너와 상관도 없는 먼 과거를 파헤치기보다는 우선 ‘네가 서 있는 곳을 파헤쳐라.’ 공식적 역사를 부정하고 밑으로부터 살아 있는 역사를 갈구했던 맨발의 스웨덴 역사가 스벤 린드크비스트의 주장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처럼 ‘역사 공부’ 하지 말거라. - 임지현, 『세계사 편지』, 희주에게, 389쪽


100718-0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2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9년에 우리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보냈다. 21세기의 시작은 20세기 초반의 흐름만큼이나 격동기를 거치고 있는 느낌이다. 바보 노무현은 대통령 당선만큼이나 극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4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거쳐 이명박 정권의 등장, 노무현의 자살과 뒤이은 김대중의 죽음으로 우리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한꺼번에 보냈다. 노무현은 황혼녘의 부엉이가 되어 날아간 것이 아니라 새벽녘에 부엉이 바위에서 자살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기틀이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비명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목격하고 있다. 용산참사를 필두로 일련의 사태들은 ‘설마’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는 빠른 속도로 뒷걸음치며 과거를 또 다른 미래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한홍구의 『대한민국史 1~4』, 『특강』에 이은 『지금 이 순간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며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필수적인 프리즘이다. 역사는 어차피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에 불과한 것일지 모르지만, 객관적 사실의 흐름을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는 것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 책은 ‘지금-여기’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알기 위해 필요한 조감도라고 볼 수 있다.

루쉰이 한 얘기처럼 어디에고 처음부터 길이 나 있는 법은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다들 새 시대의 첫발을 떼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한 30여 년 역사를 공부하고 나니 남는 생각은 한 번도 역사에서 길이 복잡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생각이 복잡했을 뿐이다. - P. 7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이라는 머리글에서 한홍구가 술회한 것처럼 역사에서 길이 복잡한 적이 없었다. 다만 우리의 생각만 복잡했을 뿐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길을 가면 된다. 길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 완고한 현실에 순응하자고 하면 기득권에 편입하기 위한 소수의 행복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무한 경쟁 속에 모든 사람이 부나방처럼 달려들 수밖에 없다. 행복은 그곳에 있지 않다는 것은『꽃들에게 희망을』 같은 책을 통해 아이들도 알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는 일은 왜 어려운 것일까?

  자본과 권력 -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욕망의 블랙홀. 그것이 다수의 행복과 더불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가로막고 독점하는 있는 소수를 위해 남용되는 역사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인가. 가장 손 쉬운 방법 중에 하나는 바로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것만큼 현명한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다. 과거의 시행착오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개선하는 일이 문명을 이룩한 인간 역사의 역할과 기능이다. 머나먼 선사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몇 십 년 전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현실은 얼마나 참혹한가. 그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면 눈 뜬 장님의 시대를 건너갈 수밖에 없다.
 
  현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계급과 계층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속한 계층적 문제의식을 공유하지 못한 채 흑백 논리의 이분법적 사고와 극단적 지역주의에 기반한 투표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우리는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이며 역사의 발전과 퇴행의 갈등일 뿐이다. 누구를 위한 혹은 무엇을 위한 정책과 제도인가를 놓고 사람들은 늘 똑 같은 기준을 제시한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왜 다른가?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만큼 민주화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노무현 같은 대통령이 벼랑에서 뛰어내려야 할 만큼 민주화되지 않았다고 얘기해야 한다. - P. 9

  용산참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을 통해 확인된 공인된 국가 권력의 횡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어떤 경찰, 검사, 기자, 정치인이 되라고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의롭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나? 이 책의 저자 한홍구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우리 역사에서 지난 600년 동안 부모들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왔다는 겁니다. 조선시대 내내 권력에 도전하면 모난 돌이 정 맞고, 귀양 가고, 멸문지화를 당했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개고생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보니 아무도 젊은이들에게 정의롭게 살라고 가르치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거죠. - P. 269

  1960년 4. 19와 1980년 5. 18에 대해 아는 세대와 모르는 세대가 있다. 1991년을 기점으로 학생운동은 사라졌다. 시민사회가 그 역할을 대신할 정도로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으로 우리는 착각한 것일까? 이 책은 5. 18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1987년 6월로 이어진 현대사의 흐름과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과정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역사라기 보다 철지난 잡지나 빛바랜 신문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 기분이 너무 우울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한민국처럼 다이나믹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는 국가는 세계사에서도 찾기 힘들다. 신산스런 역사의 한 복판에서 피를 흘린 사람들은 힘없는 서민들이었고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이념과 사상을 떠나 사소한 일상과 행복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 작은 소망과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척박해도 꿈꾸고 노력하면 지500년을 버틴 조선 왕조도 19세기 들어 '세도정치'라는 극단적인 닫힌 체제로 굳어졌을 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망해버렸습니다. 지렁이도 용이 되는 세상이 진정으로 사람 살 만한 세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P. 269

상식과 이성이 통용되고 합리와 논리가 사회의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언제쯤 쓸 수 있을까. 끝없는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사회가 될수록, 승자 독식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나날이 가혹해질수록,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될수록 ‘지금 이 순간의 역사’는 암울하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위안을 삼고 이렇게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제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네 꿈이 무엇이냐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조금만 노력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정한 룰과 게임의 법칙을 통해 자유와 평등, 사랑과 평화, 나눔과 배려를 가르칠 수 있을까? 우리의 역사는 지금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최소한 다음 세대에게 올바른 길은 제시해 주어야 하지 않는가. 옳고 그름과 선악의 가치 판단은 아니더라도 삶의 목표와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100418-0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는 암기가 아니다. 하지만 학력고사 세대인 나는 여사를 암기 과목으로 기억한다. 씨줄과 날줄처럼 정교하게 얽혀 있는 역사적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사실들을 기억하기도 바빴다. 시험을 목적으로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다. 그러나 역사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와 같다. 전체와 부분의 유기적인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역사는 얼마나 지루한 흑백 화면인가.

  한 나라의 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원시시대에서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현대의 순서대로 역사를 서술하는 직선적 역사서술은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데 유용하지만 졸음이 쏟아진다. 이런 통사류의 역사는 수없이 많다. 평면적인 서술 방법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책이 주목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사이토 다카시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한 세계사이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가지 주제를 내세웠다.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가 그것이다.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선 욕망은 물질과 동경이 역사를 움직인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쓰였다. 커피와 홍차, 금과 철, 브랜드와 도시를 중심으로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조망한다. 서양 근대화의 힘이 되었던 모더니즘, 군주들의 영토확장에서 비롯된 제국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을 몬스터로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세계사의 중심에서 서 있었던 종교를 통해 인간에게 신의 존재는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20세기가 전문가를 필요로 한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통합적 지식인 즉 백과사전적 지식인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싶다. 학문간 경계를 넘어 창발적 사고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단편적인 지식은 이미 차고 넘친다. 정보는 흘러넘쳐 주체할 수가 없다. 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하고 정확한 것들을 수렴,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이 미래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굴러왔고 때로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했지만 세계사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과 관점은 저절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사이토 다카시는 세계사를 읽어낼 수 있는 키워드를 제시한다. 어떤 일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관점에 따라 문제의 원인을 달리 진단한다. 원인이 달라지면 결과도 다르다. 역사를 공부하는 즐거움은 바로 이런 통찰력을 기르는 데 있지 않을까? 결국 역사는 인간의 삶이다. 역사는 중심에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 놓여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하고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은 물론 행동 양식과 삶의 패턴을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한다. 세계사를 읽는 즐거움 인류의 발자취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사에 대한 나름의 기준과 설명이 명확하다. 구체적 지식이나 복잡한 흐름에 연연하지 않고 재미있고 즐겁게 접근할 수 있도록 쓴 책이다. 프롤로그에서 ‘다섯 가지 힘’과 ‘인간의 감정’을 통해 역사를 읽는다고 선언한 말이 빈 말이 아니다. 역사를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말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저자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대를 제공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능하게 해 준다. 한 권의 책에 대한 높은 평가가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으나 이 책은 다른 책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 역사도 어떻게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다만,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 세계사의 지루한 흐름도 필요하다. 흥미와 신선함 측면에서만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세계사에 관한 다소 딱딱한 통사적 흐름이라도 읽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읽어 둘 필요가 있다. 이 책 한권으로 세계사를 이해할 수는 없다. 둘째, 다양한 관점을 읽혀야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섯 가지 외에도 세계사를 지배한 힘은 여러 가지이다. 그 핵심 키워드는 수없이 많을 수 있다. 저자의 관점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름의 기준과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은 이 책을 풍요롭게 읽어내는 좋은 방법이 된다. 마지막으로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해설을 구별해서 읽어야 한다. 세계사의 흐름과 사건을 저자가 이해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역사는 해석하는 사람 수만큼 다양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역사에 관한 다양한 관점의 책들을 읽어두면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저자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거나 조금씩 다른 원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도 사건도 그러하다. 사랑은 영원히 서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말도 그렇다.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 수만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대를 이해한다. 역사학자의 관점이나 깊은 지식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지금-여기’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읽는 진정한 이유다.


100226-0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삶이 역사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인류의 삶이 대나무의 마디처럼 굳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이 현대사라고 생각한다. 먼 훗날 나도 역사의 일부가 될 것이니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도 물론 중요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들을 사회적 현상이라고 하며 그것들은 고스란히 미래의 결과가 된다. 기록된 역사는 평가를 받을 것이고 다음 세대의 현실로 이어진다.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지금 벌어지는 일에 대한 원인을 밝히는 일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모든 일의 결과는 아니지만 나비효과도 무시할 수는 없다. 씨줄과 날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역사를 하나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결과를 분석하는 일도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대안도 달라진다. 역사는 그래서 중요하다. 다양한 관점과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역사는 항상 승리자에 의해 서술된다. 지금도 그렇다. 현실 정치권력은 집권당과 선출된 대통령에 의해 좌우된다. 대의 민주주의는 간접 민주 정치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출된 민의도 어차피 사람에 의해 움직여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사는 투표에 의해 정확하게 실현되는 것일까? 누구에 의해 권력을 움켜진 사람들이 승리자인가? 그 승리자들은 패배자에게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

  선거와 투표에 의해 승자와 패자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국민으로 나눠진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국민의 손에 의해 선출된 권력은 국민의 눈치를 보고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 행위를 해야 한다. 전자민주주의 시대에는 선거와 투표 방법도 달라져야한다. 간접민주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지금까지 시행하던 선거와 투표 방법을 바꿔 즉각적으로 민의가 정치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저비용으로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포퓰리즘과 의식 없는 대중들, 선전선동 등 예상되는 문제가 적지 않지만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다함께 고민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들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홍구의 역사 인식과 태도는 명확하다. 일관성과 다양성은 서로 모순되는 성향이다. 따라서 일관성을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나는 한홍구가 가진 일관된 역사인식 태도와 방법에 대체로 동의한다. <대한민국史> 등 그의 저작과 인터뷰를 통해 접한 역사학자 한홍구의 관점은 진보적이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를 모아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근현대사의 결절점을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현재의 문제에 대한 또 하나의 해법이다. 과거 청산 문제를 비롯하여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과 통찰은 그 대안을 모색하는 토대가 된다.

  특히 뉴라이트라는 단체에서 근대사를 왜곡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호도하는 문제는 우리의 삶의 근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다.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새는 안정감 있게 하늘을 비행한다. 피비린내 나는 좌우 이념대립이 아직도 진행형으로 계속되는 나라에서 생존과 직결된 문제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만 했던 과거는 불행한 현재를 낳았다. 한홍구는 이 문제들에 대해 철저한 고증을 거쳐 조목조목 그들의 허황된 주장과 왜곡된 안목을 비판한다.

  나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여행을 즐기고 싶은 국민은 아무도 없다고 믿는다. 역주행의 시대에 마음을 다지면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한홍구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한홍구의 <특강>은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으로 포문을 연다. 간첩 조작 사건, 언제나 공사중인 토건족의 나라, 민영화 논란, 광우병 괴담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괴담의 사회사, 일본순사에서 백골단 부활에 이르는 경찰 폭력의 역사, 사교육 공화국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들을 꼼꼼이 돌아본다.

  하나의 사회적 현상에는 오랜 역사적 기원이 숨어있다. 어떤 이론이나 주장에 따라 전체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적 토대를 점검한다. 실증 사례와 역사적 상황들은 현실의 문제들을 조망하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을 지켜보아야만 하는지 의아스럽다. 당연히 누려야 하는 국민들의 헌법적권리들은 권력의 개가 되어 짖고 있는 경찰과 검찰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다. 언론 통제가 시도되고 교육은 불공정한 게임이 지속되고 있다. 가진 자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이 동원되고 있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의 ‘절정’의 한 구절이다.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진 않다. 다만 움직여 현실을 바꿀 의지와 행동이 부족하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모두의 고민이 각자의 자리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더불어 함께’는 그 다음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촛불을 ‘몸에 밴 민주주의의 역동성’이라고 평가하며 희망을 끈을 놓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의 저력과 상식을 믿고 싶다. 한발 더, 조금 더 움직일 수 있다면 변화는 가능하고 우리는 그렇게 발전해 왔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역사의 교훈이며 현실에 대한 냉정한 안목과 비판적 관점이다. 희망은 그곳에서 싹트는 작은 풀꽃이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며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090513-0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