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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평점 :
인간이 무엇이냐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다. - 25쪽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아주 먼 옛날, 300만 년에서 500만 년 사이에 원숭이들이 두 발로 서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자유로워진 두 손은 이제 무언가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방향감각이 더 예민해졌으며 더 넓은 시야가 확보되었다. 약 20만 년 전, 원숭이들은 뇌의 용량이 커졌고 드디어 현생 인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5억 5000만 년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가장 오래된 대륙이고 가장 많은 지하자원을 품은 대륙이다. 인간은 여기서 처음으로 곧게 서서 걷는 법을 배운 것이다. 약 10만 년 전에 이들은 대륙을 떠나 중동으로 진출했고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던 베링을 통해 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로 이동했다. 유전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빈곤과 기아, 각종 질병과 AIDS, 종교 분쟁과 정치적 혼란 등으로만 기억하는 대륙 아프리카.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을 떠올려보자.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갖게 된 편견은 아닐까. 인간이 다른 인간과 사물에 대해 갖게 되는 잘못된 판단과 심리적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이성의 힘은 아닌가.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너무 멀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이 없기 때문에 이해와 관심이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다른 많은 편견처럼 아프리카는 그저 무관심한, 불필요한, 의미 없는, 보기싫은, 열등한 대륙인가. 우리 인류의 기원이 되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관심은 아닌가.
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 고통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알지도 못하면서 갖게 된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한방에 날려주는 책은 아니다. 다만 편견과 의심 없이 아프리카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한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를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유럽에 대한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프리카의 과거를 알게 된다면 우리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사라지지 않을까.
이 책은 케이프타운에서 거주하는 네덜란드계 독일인에 의해 씌어졌다. 저자는 잘못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거창한 의도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기쁨을 드러내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검정은 많은 색깔들을 갖는다.
우리가 찾는 빛깔은 검정,
검정은 아주 다채롭고
검정은 장님한테만 어둡게 보인다…….
함부르크 대학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던 소년이 부르던 노래처럼 ‘검정’이라는 색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이야기에 불과한 책이다. 그 오랜 시간 아프리카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일들과 대륙에서 살아온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기에 이 한 권의 책은 너무 작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와 검정색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차별이 아닌 차이를 경험해야 한다. 인간의 탐욕과 폭력이 빚어낸 비참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로 보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이 갖는 아주 작은 의미이다.
기원전 5억 5000만 년 전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는 긴 시간을 개괄하며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저자 루츠 판 다이크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기원과 다양한 문명을 소개하는 데 절반을 할애했고 나머지 절반은 유럽 열강들의 침략과 아프리카의 해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살육과 일방적인 폭력, 짐승처럼 팔려간 노예들의 역사는 어떤 비극적인 표현도 부족해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 또한 신산스럽다. 아직도 빈곤과 기아, 에이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검은 대륙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알고 역사를 바로 보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세계사’를 단순히 승자의 역사로만 기억할 수는 없다. 수많은 패자의 눈물과 짐승처럼 죽어간 사람들의 피를 잊지 않는 것이 현재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아닌가 싶다. 그들이 잃어버린 혹은 우리가 빼앗은 것이 무엇일까. 무지는 죄악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하는 책이다.
“마침내 이곳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시오!”(1895년 서아프리카 모시의 왕) - 140쪽
20111114-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