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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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원리는 도서관태곳적부터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세계의 미래 역시 영원하리라는 것을 곧바로 추리할 수 있다.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라면 그 누구도 그것을 의심할 수는 없다. 불완전한 사서인 인간은 우연이나 개구쟁이 조물주의 작품일지도 모른다. - ‘바벨의 도서관’, 99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 사이에는 독서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즐겁지 않은 책읽기는 고통이지만 자극과 도전이 필요한 책도 있다. 조금 어렵고 난해한 책의 경우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손대지 않기 시작하면 자기계발서와 감성적인 에세이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설도 그 층위가 다양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지 않고 문장이 만만치 않으며 사건과 갈등이 중심이 아닌 경우이다. 흔히 고전의 경우에 그런 소설을 만나기 쉽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이 이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열일곱편의 단편이 어느 하나 만만치 않다. 쉽고 재밌는 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읽을 이유가 없고 그의 명성 때문에 읽는 것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좋은 방법 중 하나가 해설을 먼저 읽는 방법이다. 시나 소설의 경우 평론가의 해설이 더 난해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을 옮긴 송병선의 해설은 스포일러가 없고 보르헤스 문학이 가진 장점과 소설의 의미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문학 세계를 알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20세기의 명민한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기호학, 해체주의,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등 다양한 현대 사상의 선구자라고 평가받는 이유를 이 한 권의 소설로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70년 전에 남미 작가가 쓴 소설들이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한 독자라면 천천히 음미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환상문학이라고 명명되는 보르헤스의 소설들은 일반적인 소설의 문법과 거리가 멀다. 현실에 존재하는 작가와 철학자가 등장하지만 허구의 인물과 책들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 주목할 만한 사건은 보이지 않고 갈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풍부한 부사와 형용사의 사용으로 수식어를 꾸며주지만 피수식어의 의미는 오히려 모호하다. 표현과 문장을 알기 쉽게 풀어내지 못한 번역가의 고민을 해설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집중력과 기초적인 배경지식이 요구되는 소설이다.

 

어떤 작품을 하나의 구조적 틀 안에서 이해하려는 방법은 이 소설에서 무의미해 보인다. 현실과 소설의 내용이 중첩되고 곳곳에 허구적 인물과 사건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때때로 길을 잃고 헤매거나 걸어온 길을 잊기 쉽다. 소설에 등장하는 쇼펜하우어와 칸트 그리고 보르헤스의 동료 작가와 들어본 적도 없는 작품들은 소설을 읽는 동안 그 진위 여부를 의심해야 한다. 소설 자체가 허구라는 순진한 믿음을 넘어 작가는 무한한 세계를 담은 절대적인 한 권의 책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천국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 도서관과 닮았을 것이라는 말을 한 보르헤스는 주목할 만한 소설가가 아니라 현실과 초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사상가로 보는 편이 적당할 듯 싶다. 그렇다면 보르헤스의 문학이 아니라 수단이 되는 셈이다.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을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볼 순 없지만 보르헤스는 인간의 상상력과 현실에서 불가능한 환상을 통해 세계 자체의 의미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의 작가와 영화감독 그리고 미국의 많은 작가들에게 수용되면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 그의 문학은 세계 고전이 되었다. 그것은 새로움에 대한 혹은 낯선 세계에 대한 환호였을지도 모르고 현실에 숨어있는 환상에 대한 호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위대한 문학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작가도 소설도 결국 인간의 삶과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현실적 잣대를 들이대자는 말이 아니라 70~80년대에 우리가 보르헤스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엘리트문학으로 치부한 데는 그만한 이유도 숨어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문학을 보는 내적 기준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고 외적인 관점과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도 조금씩 다르게 해석된다. 문학에 절대반지는 없다. 보르헤스의 소설도 세간의 평가와 무관하게 읽는 사람 나름의 방식대로 읽어도 좋다. 그 의미와 감동은 각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바로 그때 비오이 카사레스는 우크바르의 어느 이교도 지도자가 거울과 성교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12

 

 

2011120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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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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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의미와 역할

원론적이고 이론적인 소설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몫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소설은 ‘재미’가 우선이다.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서사의 힘은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며 의미이다. 재미없는 소설도 있긴 하다. 근대 이후 앙드레 부르통에 의해 ‘초현실주의 선언’이 발표되면서 전통적 가치에 도전하고 굳은 틀에 도전하는 새로운 시도가 문학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급변하는 사회와 역사적 발전 과정은 항상 새로운 형식과 기발한 상상력을 갈망했으며 그것은 모든 예술에도 통용되는 요구였다. 하지만 여전히 소설은 가장 대중적이고 쉽고 재미있는 갈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소설가들은 항상 낯선 이야기, 새로운 형식을 갈망하며 독자들 또한 미지의 세계를 갈망한다. 익숙한 세계에 대한 재발견과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욕망은 상상력으로 채워지고 작가는 독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유혹한다. 인간의 내면적 갈등, 타인과의 관계, 세계와의 충돌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작가는 이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고민의 흔적을 토해내며 독자들과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성찰하게 된다. 결국 이야기는 끝없이 진화하고 발전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가 선행된다면 이 모든 이야기들의 문법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새로움은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넘어서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다.

매일 벌어지는 문제 상황과 반복되는 갈등의 양상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역할이 소설의 몫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에게 정답을 요구할 수는 없어도 인간의 삶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요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소설은 우리들의 이야기,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 태어나서 어떻게 살 것이며 인생은 무엇이고 세상은 어떤 곳인가에 대한 요구가 없다면 소설은 의미도 없을뿐더러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런 면에서 정유정의 『7년의 밤』은 다양한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소설에게 혹은 작가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7년의 밤』은 우선 강력한 서사의 힘을 지니고 있다.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사건의 해결과 반전 혹은 결말을 끝까지 파헤치게 만드는 힘있는 소설이라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소설이다. 전직 야구선수 출신 사형수 최현수를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사건의 연결고리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사건이 벌어진 후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사실’ 아닌 ‘진실’이 드러나고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충분하게 선사한다. 게다가 사형수의 아들과 그를 돕는 조력자이자 내부 이야기의 서술자인 승환의 관계, 치과 의사 오영제와 그의 아내와 딸의 관계는 세령호를 중심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갈등의 층위를 만들어내고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장편소설의 흡인력은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다.

서사의 힘과 남은 고민들

고양이는 천둥이 치기 전에 뇌에 자극을 느낀다고 한다. 인간의 변연계에도 비슷한 감관이 하나 있다. 재앙의 전조를 감지하면 작동되는 '불안'이라는 이름의 시계. - 정유정, 7년의밤, 18쪽

소설의 가장 고전적 숙제인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하느냐에 대한 질문이 작가의 말의 제목이 되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소설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현수가 오영제의 딸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이 소설은 그 과정과 이후의 사건들을 정밀하게 추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하나의 사건이 앞 선 사건의 결과가 되고 뒤이은 사건의 원인이 되는 구성 때문에 독자의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소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서사의 힘이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듯하다.

표면상으로는 최현수의 이 소설의 중심이지만 그의 아들 서원과 오영제가 그리고 소설가 승환이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서원과 동갑내기 오영제의 딸 세령이나 그의 아내 문하영, 최현수의 아내 강은주는 이야기의 주변에 머물러 있다. 최현수와 안승환 그리고 최서원의 캐릭터는 분명하고 설득력있게 그들의 행동과 사건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문제는 오영제다. 독특한 유형으로 이 소설의 재미를 불어넣는 인물 오영제의 성격과 행동에 설득력 있는 에피소드와 타당한 연결고리가 부족하다. 소설을 읽는 동안 ‘왜’라는 질문을 여러 차례 하게 되는 것은 개별 독자의 이해력 부족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이 소설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아내와 딸에 대한 집착과 폭력을 묘사하는 부분이나 이후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만한 개연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작은 아쉬움들을 상쇄할 만한 ‘재미’와 ‘흡인력’만으로도 이 소설은 작가의 오랜 준비와 치밀한 구성, 풍부한 상상력을 빛나게 한다. 스킨스쿠버, 댐의 운영방식, 수사과정 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소설에 현실감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머지않아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추측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만하다.

인간이 가진 ‘불안’과 ‘공포’ 그리고 내면적인 ‘충동’과 ‘욕망’에 대한 깊은 성찰은 정유정이라는 작가를 주목하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다. 천명관의 『고래』 이후에 서사의 힘을 유감없이 느끼게 해 준 소설이지만 소설은 드라마의 대본이나 시나리오와 다른 문체과 스타일의 재미까지 갖추어야 한다. 문장과 표현이 빚어내는 분위기 언어가 갖는 보이지 않는 울림까지 보여줄 수 있다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개별 독자의 취향이겠으나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를 그의 스타일대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일 수 있겠다.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총을 가지면 누군가를 쏘게 되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천성이라고. - 정유정, 7년의 밤, 474쪽


2011112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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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중력 문학과지성 시인선 400
홍정선.강계숙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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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또 다시 100권이 쌓였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은 1978년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로 출발했다. 1990년 100권 째 기념으로 나온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를 감격스럽게 읽었던 기억이 새로운데 벌써 1997년에 200권 『시야 너 아니냐』에 이어 2005년에 300권 『쨍한 사랑 노래』 그리고 2011년 400권 『내 생의 중력』을 읽었다. 다른 어떤 느낌보다도 켜켜이 세월이 쌓이고 생은 저물어 가고 또 다른 생명이 피어나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어렴풋한 감흥. 신비롭고 기묘한 생의 감각.

시인과 비평가가 걸러낸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지난 6년간의 시간이 그 이전 100권의 단위처럼 엮였다. 불연속적인 시간을 분절적으로 사용하고 돌아보고 성찰하는 인간의 습성.

광휘의 속삭임

저녁 어스름 때
하루가 끝나가는 저
시간의 움직임의
광휘,
없는 게 없어서
쓸씀함도 씨앗들도
따로따로 한 우주인,
(광휘 중의 광휘인)
그 움직임에
시가 끼어들 수 있을까.

아픈 사람의 외로움을
남몰래 이쪽 눈물로 적실 때
그 스며드는 것이 혹시 시일까.
(외로움과 눈물의 광휘여)

그동안의 발자국들의 그림자가
고스란히 스며 있는 이 땅속
거기 어디 시는 가슴을 묻을 수 있을까.
(그림자와 가슴의 광휘!)

그동안의 숨결들
고스란히 퍼지고 바람 부는 하늘가
거기 어디서 시는 숨 쉴 수 있을까.
(숨결과 바람의 광휘여)
- 정현종, 『광휘의 속삭임』(352)에서


대가의 숨결과 노련한 솜씨가 자연과 인간과 시간의 비밀을 벗겨 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들춰내기도 한다. 내 안의 숨은 그림자와 타인과의 관계를 끝없는 기다림으로 표현하기도 하면서.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랑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 정일근,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358)에서


무언가 기다릴 것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삶의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조금씩, 꼭 그만큼씩 사라져 가는 어제와 오늘이 아니라 멀어진 거리만큼 다가오고야마는 미래의 시간들이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비밀이 아니라 알고 싶지 않는 생의 이면일 수도.

알 수 없어요

내가 멍하니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고

내가 생각에 빠져 있으면
누군가 묻는다
왜 그리 멍하니 있느냐고

거미줄처럼 얽힌 복도를 헤매다 보니
바다,
바닷가를 헤매다 보니
내 좁은 방.
- 황인숙, 『리스본行 야간열차』(341)에서

의미와 무의미,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물과 불, 산과 강. 언어의 반대편 혹은 모순을 들여다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을 들여다보라. 거기에 시가 찾는 진실이 숨어 있다. 아니, 인간의 눈과 귀와 입을 막아버리는 검은 그림자가.

모순 1

삶의 갈래
그 갈래 속의 수렁
무수하다

손과 발은 열 길을 달려가고
정수리로 치솟은 검은 덤불은
수만 길로 뻗는다
끝까지 갔다가 돌아 나오지 못한 진창에서는
바글바글 애벌레가 기어오른다

봄꽃들 탈골한 길로
단풍 길 쏟아진다

손가락마다 지문을 새겨 살아도
내 몫이 아닌 흙이여
- 조 은, 『생의 빛살』(374)에서


목소리 높여 옳고 그름을 외치고 적당한 거리와 시선이 만들어낸 착각을 믿으며 달콤한 합리화로 밀어붙이는 힘! 파리는 늘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죽을 놈과 살 놈을 구별하지도 못한 채.

파리

꿈은 늘 제자리에서 맴돈다
적당한 거리와 시선이 만들어낸 착각에
세상은 떠 있다
밥상머리에 달라붙은 파리들은
한시도 가만 있지 않는다
자유로운 어둠을 뚫고 생겨난 생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파리채를 들고 가까이 가자
죽을 놈과 살 놈이 구별되지 않았다
- 조인선, 『노래』(378)에서

그리하여 머나먼 지구별로의 여행자들은 ‘당신’에게 고백한다. ‘사랑하는 당신께’. ‘당신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라고, ‘나의 텍스트는 당신의 텍스트’라고. 내가 당신의 텍스트가 아니라 당신이 나의 텍스트가 아니라 이렇게 네모난 시 안에서 당신과 나와 텍스트가 뒤섞이듯이 혼란스럽게 컨텍스트를 외면한 채 끝없이 나와 당신과 텍스트가 꼬리를 물고 텍스트는 텍스트라고.

당신의 텍스트 1
- 사랑하는 당신께

당신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
나의 텍스트는 당신의 텍스트
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의 나
나의 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
나의 텍스트는 텍스트의 당신
텍스트의 당신은 텍스트의 나
당신의 나는 텍스트의 텍스트
텍스트의 나는 텍스트의 당신
당신의 나의 텍스트는 텍스트
나의 당신은 텍스트의 텍스트
- 성기완, 『당신의 텍스트』(349)에서



201111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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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1-11-26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300권째 나온 쨍한 사랑 노래를 산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책꽂이 한켠에 놓여있겠군요.

sceptic 2011-11-26 20:58   좋아요 0 | URL
시 읽는 즐거움 오래오래 함께 하세요.
 
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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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와 제목은 독자에게 많은 말을 건넨다. 이미 알고 있는 작가가 아닌 경우 표지 디자인과 제목, 편집과 분량은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책의 목적과 방향을 적절하게 드러내거나 내용을 적절하게 압축한 제목은 책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은 진리는 아니겠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로 깊은 인상을 남긴 김이설의 장편소설 『환영』의 표지를 본 순간 소설의 제목과 내용과 표지를 한동안 음미했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 ‘오는 사람을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는다는 의미의 환영(歡迎)인가 아니면 신기루 같은 환영(幻影)을 의미하는 걸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200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의 하드커버의 포장이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허다한 일본 소설류에 손이 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 그릇에 담겨 있어 마땅찮다.

소설이라는 갈래 자체가 인간의 삶에 대한 비루한 일상을 바탕으로 한다고 전제하면 얼마나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인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남루함, 드러내고 싶지 않은 슬픔, 포기하고 싶지 않은 희망,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들이 길게 나열되는 소설을 대할 때마다 독자들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주 오래된, 국어시간에 한번쯤 들어보았을 감정이입이나 카타르시스는 문학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어떤 형태로든 소설은 그 한없이 재생산되는 이야기의 이야기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삶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되는 것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김이설의 소설이 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알 수 없고, 또 어떤 이야기들을 더 담아낼지 모르겠으나 칙릿(Chick Lit)과 거리가 먼 진정성을 담아내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가 나름의 독특한 문체와 개성을 갖춰 나간다는 것은 자신만의 나름의 영역을 구축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김이설의 개성 혹은 색깔은 어떤 것일까.

서른셋의 서윤영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남편과 고시원에서 만나 아이를 갖고 옥탑방에서 함께 살기로 한다.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의 경계를 넘어 물가의 백숙집에서 일을 하게 된다. 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무능했던 아버지와 가난한 어머니 동생 민영과 준영 모두 윤영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고 기대는 존재들이다. 마치 불행 종합선물세트를 완벽하게 갖춘 것 같은 주인공은 ‘여성’이다. 딸이고 언니이며 누나이고 아내이고 며느리이며 엄마인 윤영이 위태롭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을 때마다 삶은 신산스럽게 부서진다.

왕사장과 아들 태민 그리고 함께 일하는 이모님과 언니를 둘러싼 일상은 결코 만만치 않다. 독자들 입장에서 삶을 왜 고해(苦海)라고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면 간접 경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특별한 소설이 될 수 있겠다. 공감의 끄덕임, 동정의 눈물, 안도의 한숨 – 그것이 무엇이든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투명한 바닥을 들여다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누구나 알 수 없는 생의 비밀을 궁금해 한다. 누가 말해 줄 수 있는지 모르지만 교회와 절로 때로는 무당을 찾아 답답함을 풀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과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이다. 생을 대하는 태도와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불가해함. 그 비밀의 문을 열고 싶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닐까. 삶에 지쳐 문득,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거나 빗방울이 후드득 소리를 내는 순간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닐까.

김이설의 『환영』은 현실을 바라보는 겹눈처럼 다양하게 읽힌다. 경계를 넘을 때마다 우리를 반기는 ‘어서오세요’처럼 읽힐 때도 있고, 현실은 결국 환영(幻影)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다. 다만 그 조건과 상황 그리고 태도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이 순환 구조인 것 같은 구성은 뫼비우스처럼 우리의 생이 반복되기 때문이 아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우울한 샹송 같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삶의 허무주의가 아닌 아주 작은 ‘시작’과 ‘희망’의 불씨를 조금 아주 조금씩만 보여주는 소설을 기다려 볼 참이다.


2011112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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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
도종환 지음, 이철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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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평론가 김상욱 교수가 함량 미달이라고 했다는 <흔들리며 피는 꽃>은 시적 긴장감이나 문학적 완성도를 떠나 <담쟁이>와 더불어 도종환 시인과 동시에 떠오르는 시다. 『접시꽃 당신』으로 8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도종환 시인. 이제 25년이 지나 시인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물론 그가 쓴 시와 더불어.

8월에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고은, 도종환 두 시인의 ‘북콘서트’가 있었다. 2차까지 함께 할 기회가 있어 맥주 한 잔과 더불어 시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에 담겨 있다. 밝은 표정과 웃음을 잃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웠던 시인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일평생 교육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몸담은 시인의 삶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역사와 민주화운동, 문화운동의 한 부분을 오롯이 보여준다. 그때마다 힘이 되어준 시인에게 시는 어떤 의미였으며 그때마다 어떤 시들이 탄생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은 기쁨보다 슬픔이 웃음보다 눈물이 가득하다.

가난했던 유년의 기억부터 위암으로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접시꽃 당신』의 성공, 그리고 최근의 시집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이르는 과정은 시인의 삶과 시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자전적 해설에 해당하는 이 책은 시인의 삶과 시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왔던 시대와 우리 사회의 면면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를 성찰하는 것은 문학적 진실을 반추하는 기회이며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문학이 한 시대를 증거한다고 볼 수 있을까. 도종환의 시는 현실과 서정 사이에 멈칫거리는 부분이 있다. 정호승의 시 회색이라고 비판을 받았던 것과 달리 도종환의 시는 『접시꽃 당신』에 대한 최두석의 비판부터 끊임없이 논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시인은 문지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단 한 번도 원고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서운함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성과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도종환의 시가 과연 함량 미달로 느껴질까. 그것의 판단 기준은 비평가의 몫일까. 여전히 자신의 삶과 시에 열정을 잃지 않은 시인의 작품세계를 평가하는 것은 조금 더 뒤로 미뤄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시인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그의 삶을 통해 작품 세계까지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도종환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고 아직 그의 시를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의 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삶과 문학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를 물어뜯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시인의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다. 타인의 불행과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보다 그 상처를 잘 견뎌낸 그의 시가 아름답다.

시인의 말대로 가슴으로 쓴 시는 독자에게 가슴으로 전해지고 울면서 쓰면서 쓴 시는 눈물까지 전달된다.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써야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들부터 군데군데 묻어나는 한숨과 눈물은 그의 시만큼 가슴을 적신다. 한 편의 시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편의 소설만큼.

손잡고 함께 걷는 일은 어렵다. 사람마다 다른 생각, 다른 관점, 내부적 갈등…….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할 수 없고, 시인 같은 심성만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지도 않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담쟁이>는 도종환의 삶과 시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시가 아닐까 싶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20111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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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1-11-2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와보네요.
여전히 좋은 글 쓰고 계시네요.

sceptic 2011-11-26 21:00   좋아요 0 | URL
책에 코를 박고 잉크냄새를 킁킁거리고 싶은 유혹을 버릴 수는 없죠. 감사합니다.